감독 : 이권
주연 : 강예원, 송새벽, 박그리나
반전이 돋보이는 로맨틱 코미디?
극장가의 최고 성수기는 여름방학 시즌입니다. 이른바 썸머시즌이라 부르는데, 썸머시즌이 되면 국내외 대작 영화들이 줄지어 개봉합니다. 지난 8월도 그랬습니다. 한국영화 빅4라고 불렀던 [군도 : 민란의 시대], [명량], [해적 : 바다로간 산적], [해무]가 7, 8월에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고, [드래곤 길들이기 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허큘리스] 등 할리우드 블럭버스터도 썸머시즌 관객의 선택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블럭버스터의 대박 행진은 여름방학이 끝나는 8월 말쯤에 끝이 납니다. 저 역시 썸머시즌동안 블럭버스터 영화들을 일일히 쫓아다니며 봤기에 8월 말에는 조금은 소소한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영화가 바로 [내 연애의 기억]입니다.
[내 연애의 기억]은 겉보기엔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톡톡 튀는 매력이 돋보이는 강예원과 코믹 연기의 대가 송새벽을 내세웠고, 아이돌그룹인 슈퍼주니어를 대거 출연시킨 코미디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의 이권 감독아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대작 영화들에 살짝 지친 제게 가벼운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영화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 연애의 기억]을 보려고 하는 순간 이 영화에 대한 심상치 않은 소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반전이 뜻밖이다.'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공포 영화더라.'까지... 그 순간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던 저는 [내 연애의 기억]을 극장에서 보는 것을 포기했고, 이렇게 다운로드 시장 출시후 큰 맘을 먹고 그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영화의 초반은 영락없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내 연애의 기억]을 보기 전에 저는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차단했습니다. [내 연애의 기억]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공포 영화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궁금했지만 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겠다는 굳의 의지로 스포 차단에 심혈을 기울인 것입니다. 부디 영화에서 뜬금없이 귀신만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영화의 시작은 겉모습 그대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만나는 남자마다 씁쓸한 추억만 떠안았던 은진(강예원). 그녀는 순수남 현석(송새벽)을 만나며 이번에는 다르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둔 어느날 현석에게 온 수상한 문자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현석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확신한 은진은 여경인 후배 소영(박그리나)과 함께 현석의 뒤를 캐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몰랐던 현석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내 연애의 기억]의 초, 중반은 강예원, 송새벽이 이전 영화들에서 구축한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가벼운 웃음을 안겨줍니다. 은진이 현석의 감춰진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도 스릴러의 기법보다는 코미디적 장치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소영이라는 조연 캐릭터인데... 전형적인 코믹 조연인 소영은 현석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와중에도 영화를 코믹하게 이끌어나갑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당황스러웠던 이유
[내 연애의 기억]의 문제는 점은 후반입니다. 현석의 사연이 드러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에서 공포 영화로 돌변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미 영화를 보기 전에 분위기가 돌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충격이 덜했지만, 만약 제가 [내 연애의 기억]에 대해서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하며 극장에서 봤다면 후반부의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전부 그들 각자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코미디 영화에서는 웃음을 기대하고, 액션 영화에서는 시원시원한 액션을 기대합니다. 최루성 멜로 영화에서는 눈물을 기대하고, 공포 영화에서는 오싹한 공포를 기대합니다. 그렇다면 영화들은 개봉하기 전에 자신의 장르를 정확히 밝힐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관객이 그 장르에 맞는 기대를 할테니까요.
하지만 [내 연애의 기억]은 포스터에서부터 영화의 예고편까지... 모든 초점을 로맨틱 코미디에 맞췄고, 그렇기에 당연히 관객들은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기대로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역시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이죠. 만약 이권 감독이 장르 영화에 대한 관객의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을 처음부터 의도했다면 [내 연애의 기억]은 완벽한 성공작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느 감독이 관객의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을 의도하며 영화를 만든다는 말입니까?
퓨전 영화? 장르 파괴? 하지만 넘지 말아야하는 선이 있는 법이다.
물론 요즘 들어서 틀에 박힌 장르 영화를 넘어서려는 영화들이 많습니다. [내 연애의 기억]과 종종 비교가 되는 영화 중에서 [오싹한 연애]가 있습니다. 손예진과 이민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와 공포라는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두 영화를 뒤섞어버리며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오싹한 연애]의 포스터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내 연애의 기억]과는 달리 포스터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와 공포 영화의 퓨전 영화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오싹한 연애]를 선택하는 관객들에게 제대로된 기대를 하게끔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다. 게다가 영화에서도 초반부터 공포 분위기를 제공함으로써 로맨틱 코미디 속의 공포가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내 연애의 기억]은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마치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두편의 영화를 따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초, 중반과 후반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뜬금없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로맨틱 코미디속의 공포가 뜬금없게 느껴지다보니 후반부의 공포 분위기가 제대로 살아나지도 않습니다.
초, 중반의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 또한 후반부 시작과 동시에 이미 망쳐졌습니다. 아무리 은진이 휴대폰 속의 사진을 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석이 사랑이었다.'라고 회상을 해도 더이상 [내 연애의 기억]을 로맨틱하게 받아들이는 관객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송새벽이 [내 연애의 기억]을 선택한 이유는 잘 알겠습니다. [방자전]의 변학도로 주목을 받은 이후 그는 언제나 코믹한 조연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자신의 코믹한 이미지를 활용해서 [위험한 상견례]를 흥행 성공시켰지만, [아부의 왕]에서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송새벽이 선택한 것은 이미지 변신이었고, 단시간내에 확실한 효과를 보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도희야]입니다.
최근 개봉작인 [덕수리 5형제]에서는 코미디 영화 속에서 안전하게 이미지 변신을 꾀했는데, [내 연애의 기억]은 [도희야]와 [덕수리 5형제]의 중간에 위치한 영화입니다. 코미디 영화에서의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 이제 더이상 송새벽을 코미디 전문 배우의 틀로 가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권 감독이 [내 연애의 기억]을 연출하며 뭘 기대한 것인지는 아직도 전혀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남과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현석과의 사랑도 결국엔 사랑이었다며 은진을 어루만지는 것일까요? 만약 로맨틱 코미디를 보기 위해 [내 연애의 기억]을 선택한 관객들이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 깜짝놀라는 것을 보며 만족한 것이라면 이권 감독은 상업 영화 감독으로써 자격 미달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원했던 것을 [내 연애의 기억]에 제대로 풀어넣지 못한 연출력 부족이고요. 어찌되었던 [내 연애의 기억]은 알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웠던 그런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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