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로완 조페
주연 : 니콜 키드먼, 콜린 퍼스, 마크 스트롱, 앤 마리 더프
니콜 키드먼과 콜린 퍼스의 조합을 포기할 수는 없다.
지난 10월 30일 [내가 잠들기 전에]라는 제목의 영국 스릴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외국의 스릴러 영화는 흥행하기 힘든 장르입니다. 지금까지 외국 스릴러 영화 중에서 최고 흥행작은 [나를 찾아줘]가 기록한 174만명이 최고 기록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내가 잠들기 전에] 역시 5만명의 누적관객을 동원한 후 쓸쓸히 다운로드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잠들기 전에]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디 아워스]로 200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니콜 키드먼과 [킹스 스피치]로 2011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의 만남을 그냥 흘려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잠들기 전에]는 제가 극장으로 달려갈 틈도 주지 않고 순식간에 극장 간판을 내려 버리더군요. 아쉽게도 다운로드 오픈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래도 [내가 잠들기 전에]의 다운로드가 오픈되자마자 곧바로 볼 수 있었으니, [내가 잠들기 전에]를 극장에서 놓친 아쉬움이 조금은 달래졌습니다.
매일 기억을 잃는 여자
[내가 잠들기 전에]는 매일 아침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 채 남편인 벤(콜린 퍼스)의 품에서 깨어나는 크리스틴(니콜 키드먼)의 이야기입니다. 벤은 매일 아침 크리스틴에게 그녀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벤이 출근하고나면 내쉬(마크 스트롱) 박사가 벤 몰래 전화를 해서 기억을 되찾기 위한 치료를 시작합니다.
사실 이러한 소재는 이제 새롭지는 않습니다. 이미 단기기억상실증 영화의 전설이 되어 버린 [메멘토]가 있고, 매일 기억을 잃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담은 [첫 키스만 50번째]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상실이 영화의 소재로 꾸준히 사용되는 것은 그만큼 이 소재가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내가 잠들기 전에]는 새로운 소재의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제 호기심을 자극하며 영화 속에 푹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이 영화는 '크리스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에서부터 '벤과 내쉬 중 누구를 믿어야 하나?'까지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던지며 수수께끼를 맞춰보라고 제안합니다. 마치 크리스틴이 단편적인 기억으로 이 모든 퍼즐을 하나씩 맞춰 나가야 하는 것처럼, 저 또한 끊임없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영화 속에 몰입해야 했습니다. (이후 스포 포함)
캐스팅의 묘미를 잘 살렸다.
[내가 잠들기 전에]의 등장 인물은 너무 제한적입니다. 만약 '누가 크리스틴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그녀의 기억을 잃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에만 집착한다면 용의자는 남편인 벤과 담당 의사인 내쉬로 국한됩니다. 하지만 벤은 크리스틴에게 무언가 감추려 하고, 그와는 반대로 내쉬는 크리스틴이 잃어버린 과거를 끄집어내려 합니다. 결국 '누가 크리스틴에게 폭력을 행사해서 그녀의 기억을 잃게 만들었나?'라는 질문의 해답은 벤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내가 잠들기 전에]는 캐스팅의 묘미를 살려 그러한 단순한 해답 찾기를 방해합니다. 우선 벤을 연기한 콜린 퍼스는 선한 외모에서 알 수 있듯이 착한 연기를 주로 했던 배우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매일 아침 기억을 잃는 크리스틴을 살뜰하게 챙기는 벤을 연기했을 때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내쉬를 연기한 마크 스트롱은 강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역을 주로 연기한 배우입니다. [셜록 홈즈]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던 악당 블랙우드가 대표적입니다. 그렇기에 내쉬 박사가 크리스틴을 치료한다며 그녀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저는 내쉬 박사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정답을 산출해 놓고도 꾾임없이 정답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캐스팅의 진정한 묘미입니다.
[나를 찾아줘]의 반대말같은 영화
영화의 후반 크리스틴의 친구인 클레어(앤 마리 더프)가 "그 남자가 누군인지는 몰라도 네 남편 벤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진정 소름돋았습니다. 물론 어렴풋이 벤을 의심하긴 했지만, 매일 기억을 잃는 그녀를 너무나도 정성껏 돌봐준 벤이기에, 그를 조금이라도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사이 저는 크리스틴에게 감정이입을 해버렸군요.)
이후 스토커남으로 돌변한 벤과 크리스틴의 사투가 벌어집니다. 사실 그 부분부터 영화적 긴장감이 살짝 감소하긴 했습니다. 벤의 선한 외모 탓에 그의 공격이 그렇게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내가 잠들기 전에]는 마지막 반전이 밝혀지고나서도 한참 영화를 진행시키며 스스로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가 잠들기 전에]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저는 이 영화를 구피와 함께 봤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한테 "바람피면 크리스틴처럼 되는 거야!"라며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잠들기 전에]는 [나를 찾아줘]의 반대말과도 같습니다. [나를 찾아줘]는 바람핀 남자의 최후를 그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는 [나를 찾아줘]가 훨씬 높지만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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