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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사랑한 남자] - 리버라치가 아닌 스콧의 이야기

쭈니-1 2014. 11. 21. 13:33

 

 

감독 : 스티븐 소더버그

주연 : 마이클 더글라스, 맷 데이먼

 

 

아직은 나에게 불편한 이야기

 

2013년 10월 9일에 개봉한 영화중에서 [러쉬 : 더 라이벌]과 더불어 제게 기대작이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쇼를 사랑한 남자]입니다. 이 영화는 1989년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으로 감독 데뷔와 동시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에는 [트래픽]으로 아카데미 감독상마저 거머쥔 거장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입니다. 그는 작품성있는 영화 외에도 [에린 브로코비치], [오션스 일레븐], [매직 마이크] 등 흥행작도 다수 연출한 능력있는 감독입니다.

게다가 [쇼를 사랑한 남자]에는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았고, 로브 로우, 댄 애크로이드도 조연으로 출연합니다.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기대작이 될 수 있는 영화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쇼를 사랑한 남자]를 2013년 극장에서 보지 못했을 뿐더러, 개봉후 1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hoppin의 무료 다운로드로 겨우 봤습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 때문입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1950년대 데뷔이후 약 40년간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인기를 누렸던 피아니스트 리버라치와 그의 동성 애인 스콧 토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이 동성애를 연기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영화 보기가 꺼려지더군요. 아직은 제게 동성애 이야기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나만 불편한 것은 아니었나보다.

 

사실 저는 동성연애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는 아닙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등 동성애를 소재로한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일흔살의 나이에 짙은 화장을 한 마이클 더글라스의 연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 영화에 대한 불편함은 저만 느낀 것은 아니었나봅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우리나라에서 1만4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이는 국내에 개봉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영화의 최저 관객 기록입니다. 이전에는 [매직 마이크]가 기록한 2만7천명이 최저 기록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더 처참합니다. 북미에서는 아예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케이블 TV로 직행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못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미국 TV 방송계의 최대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에미상을 2013년에 휩쓸었습니다. 미니시리즈, 영화부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마이클 더글라스)이 [쇼를 사랑한 남자]의 차지였으니까요. [쇼를 사랑한 남자]는 비록 미국에서 극장에 내걸리지는 못했지만 대신 에미상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리버라치... 그는 누구인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쇼를 사랑한 남자]를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은퇴가 번복될 수도 있지만, 현재로써는 [쇼를 사랑한 남자]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마지막 영화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은퇴작으로 리버라치의 이야기를 선택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에겐 낯선 리버라치가 누군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리버라치의 본명은 브와지오 발렌티노 리버라치라고 합니다. 1950년대 TV 프로그램 '리버라치 쇼'에서 팝과 클래식 명곡들을 화려한 스타일로 연주하면서 최고 인기를 누리게 되었고, 연주 사이에 끊임없이 멘트를 날리는 스타일 때문에 '미스터 쇼맨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화려한 은촛대로 장식된 피아노를 연주했기 때문에 은촛대 모양이 리버라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리버라치는 그는 공식적으로는 동성애자라는 것을 평생동안 부인하며 살았습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보도한 매체들을 고소하여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에 전 운전기사이자 연인이었던 스콧 토슨이 그에게 위자료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동성애자라는 것이 만천하에 밝혀졌고, 결국 1987년 에이즈로 사망했습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버라치(마이클 더글라스)와 스콧(맷 데이먼)이 처음 만난 1977년부터 리버라치가 죽음을 맞이하는 1987년까지의 이야기가 스콧을 중심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불편하긴 하지만 연기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사실 저는 [쇼를 사랑한 남자]를 보면서 여러번 영화보기를 멈춰야 했습니다. 리버라치와 스콧의 키스 장면이 여러차례 등장하고, 급기야 적나라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섹스장면까지 나옵니다. 그럴때마다 저는 영화보기를 멈추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습니다. 그만큼 [쇼를 사랑한 남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그리고 보는 와중에도 제게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불편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 영화의 리얼리티가 잘 살려졌음을 의미하기도합니다. 실제 나이 일흔이 넘은 마이클 더글라스의 리버라치 연기는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했다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감이라는 국내 어느 영화 기자의 글을 수긍시킬만큼 리얼했습니다. (아카데미 대신 에미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의 특수분장입니다. 비록 화려한 삶을 살지만 나이가 드는 것만큼은 피할 수 없었던 리버라치. 그가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의 늙은 얼굴을 감추고 점점 젊어지는 모습은 실제 마이클 더글라스가 수술을 받고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였습니다. 그 중의 백미는 리버라치가 스콧의 얼굴을 자신과 비슷하게 수술시키는 장면입니다. 수술 후 스콧의 모습은 리버라치의 전애인이었던 빌리와 너무나도 비슷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빌리도 스콧처럼 수술을 했을 것이고, 그것은 리버라치가 자신의 젊은 애인들을 소유물처럼 생각했음을 나타내는 결정적 단서이기도 합니다.

 

 

 

 

버라치가 아닌 스콧의 이야기인 이유

 

[쇼를 사랑한 남자]를 보다보면 한가지 의문점이 떠오릅니다. 실제 유명한 인물을 내세우는 전기 영화의 경우 대부분 해당 유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일생을 되돌아봅니다. 하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버라치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작 주인공은 리버라치가 아닌 그의 애인 스콧입니다. 철저하게 스콧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스콧이 바라본 리버라치의 모습을 담아낼 뿐입니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왜 그러한 선택을 했을까요? 어쩌면 그러한 선택은 그의 영화계 은퇴와 맞물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리버라치는 할리우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화려하지만, 욕망에 충실한 리버라치, 그리고 화려하지만 철저하게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할리우드. 화려한 외면과는 달리 추잡한 욕망으로 가득찬 내면이라는 측면에서 리버라치와 할리우드는 굉장히 많이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스콧은 스티븐 소더버그 바로 자신을 의미하는 것일겁니다.  20대 중반의 나이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미국 영화산업을 이끌어나갈 예술성을 갖춘 젊은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버라치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 스콧의 인생을 망가뜨렸듯이, 할리우드에 대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속박 또한 그의 영화 경력을 망가뜨리고 있었습니다. 2001년 연출한 [트래픽]과 [에린 브로코비치]로 미국내 각종 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스티븐 소더버그는 작품성보다는 흥행성에 더 매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를 볼 수 있을까?

 

[쇼를 사랑한 남자]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무려 12년만에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그것도 할리우드 영화인의 축제인 아카데미가 아닌, TV  방송계의 축제인 에미에서 말입니다. 이건 마치 리버라치를 떠나 새 삶을 사는 스콧과 할리우드를 떠나 미드 <더 닉>을 연출하며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스티븐 소더버그의 모습이 교묘하게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영영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를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것일까요?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에이즈로 죽이전 리버라치는 스콧에게 전화해서 그와 함께 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합니다. 결국 스콧은 리버라치의 장례식장에 참석해서 그가 화려한 옷을 입고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회상하며 웃음짓습니다.

어쩌면 할리우드가 죽기전 스콧을 그리워한 리버라치처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게 구애를 펼친다면, 그래서 상업적 논리에서 벗어나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예술성을 맘껏 펼칠 기회를 제공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화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쇼를 사랑한 남자]를 바라보는 제 심정은 참 복잡미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