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피막] - 무섭고, 웃기고, 슬프다가 행복해진다.

쭈니-1 2014. 11. 21. 16:30

 

 

감독 : 반종 피산다나쿤

주연 : 마리오 마우러, 다비카 후네

 

 

비실남 쭈니, 공포영화에 도전하다.

 

지난 목요일, 저는 회사에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그날의 연차 휴가는 영화를 보기 위한 휴가가 아닌 종합병원에서 수면내시경 검사를 포함한 건강검진을 받는 구피를 위한 휴가였습니다. 이미 2년 전의 경험을 통해 병원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구피를 기다려야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저는 영화 주간지와 함께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 몇편을 스마트폰 안에 저장해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그날 제가 선택한 영화는 [쇼를 사랑한 남자]와 [피막]입니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경우는 이미 몇일 전부터 조금씩 봤던 영화이기에(마이클 더글라스와 맷 데이먼의 사랑 연기에 대한 오글거림 때문에 한번에 쭈욱 보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피막]의 경우 저로써는 심사숙고한 선택의 결과입니다.

제가 [피막]을 두고 고민한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가 공포이기 때문입니다.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는 저는 몇년 전부터 아예 공포영화를 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막]은 코미디가 섞인 공포 영화이고, 사람들이 많은 병원에서 작은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본다면 오랜만에 공포 영화를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판단해서 큰 맘먹고 [피막]에 도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코미디가 섞인 영화라고해도 공포 영화는 공포 영화더군요.  [셔터], [샴] 등 태국의 공포영화 감독으로 유명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도 효과적인 공포 장치들을 통해 오랜만에 공포 영화를 보는 저를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태국의 설화 '매낙 프라카농'

 

[피막]은 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귀신 이야기인 '매낙 프라카농'의 이야기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매낙 프라카농'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뱃속의 아기와 함께 죽은 만삭의 여자 귀신 낙의 이야기입니다. 태국에서는 흔히 여성의 이름 앞에 매를 붙여 부르며, 프라카농은 낙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의 지명이니 '매낙 프라카농'을 직역한다면 '파라카농에 사는 여성 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낙 프라카농'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라카농 선착장 주변에 젊은 부부인 막과 낙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낙이 임신한 어느날 막은 전쟁터에 징집되어 나가게 됩니다. 홀로 남은 낙은 아기를 낳다가 그만 뱃속의 아기와 함께 죽게 됩니다. 그리고 만삭의 귀신이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막은 낙이 죽은 줄 모르는 채 집으로 돌아오고, 이미 귀신이 된 낙과 재회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막에게 낙이 죽었음을 알리지만, 낙을 너무 사랑한 막은 마을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라임이 마루 밑으로 떨어지고, 낙이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 비정상적으로 팔을 길게 뻗어 라임을 줍는 모습을 목격한 막은 그제서야 낙이 귀신임을 알게 됩니다. 결국 막은 낙으로부터 도망갈 계획을 세웁니다.

낙을 속여 사원으로 피신한 막. 낙은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남편을 계속 부추긴 것이라며 분노해서 마을사람들에게 난동을 부렸고, 어쩔 수 없이 막은 퇴사사의 힘을 빌려 낙을 냄비 안에 가둡니다. 그리고 프라풋타짠 스님에 의해 낙은 평화롭게 사후 세계로 가게됩니다.

 

 

 

피막 프라카농

 

'매낙 프라카농'은 1937년 최초로 영화화된 이래 현재까지 무려 20여편 이상의 다양한 장르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TV 드라마, 라디오 드라마, 뮤지컬 등의 소재로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피막]은 우리에겐 생소한 내용의 영화이지만, 태국에서는 누구나 다 아는 익숙한 소재를 영화화한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막]이 태국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익숙한 이야기를 색다르게 변주시킨 각색의 힘입니다. 그것은 이 영화의 원제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피막]의 원제는 '피막 프라카농'입니다. 원작의 제목인 '매낙 프라카농'을 살짝 변주시킨 것으로 원작이 낙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라면, [피막]은 막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겠다는 당찬 포부와도 같습니다.

[피막]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만삭 귀신의 이야기라는 원작의 기본 설정을 유지하지만 다른 것들을 대폭 수정됩니다. 특히 막의 네 친구를 등장시켜 코믹한 부분을 담당시킨 것이 신의 한수였습니다. 그들의 활약은 [피막]을 뻔한 공포 영화가 아닌, 코미디가 가미된 신선한 공포 영화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물론 그들의 코미디는 우리나라의 80년대 슬립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만 같았지만, 요즘은 이런 구식 코미디를 볼 수 있는 영화가 드물기에 제겐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귀신은 누구?

 

막의 네 친구가 신의 한수인 이유는 단지 코믹한 부분을 맡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원작이 막과 낙, 그리고 퇴마사와 프라풋타짠 스님이라는 단조로운 등장인물을 가진 이야기라면 [피막]은 막의 네 친구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다채롭게 진행시킵니다.

이렇게 다채로워진 캐릭터의 진면목은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집니다. 네 친구들은 막이 귀신일 것이라 철썩같이 믿다가도, 갑자기 막이 귀신일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피우고, 나중에는 막과 낙의 결혼 반지를 가지고 있는 애가 귀신이라며 배에게 떠밀어 버립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이 관객 입장에서 그냥 바보 친구들의 웃기는 해프닝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영화의 초반부 전쟁터에서 총을 여러번 맞는 막의 모습을 보고 '혹시 막이 귀신은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기도 했고, 군인 시체를 나르는 배를 본 후에는 '막 뿐만 아니라 네 친구들 모두 귀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렇기에 누가 귀신일까? 라는 문제로 소동을 피우는 영화의 후반부가 저 역시도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피막]은 이렇게 다채로운 캐릭터에 의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 놓았지만,  라임을 줍기 위해 팔을 길게 뻗는 낙의 귀신으로써의 특징등을 잘 살리는 등 원작에도 꽤 충실한 영화였습니다. 그러면서 관객이 좋아할만한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끝냄으로써 흥행 영화로써의 면모도 갖춰나갑니다.

실제 '매낙 프라카농'은 무서운 귀신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변주되어 태국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매낙의 무덤이 있다는 '싼매낙프라카농' 사당은 최근에는 행운을 비는 사당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원작과는 달리 막과 낙의 행복으로 끝을 맺는 [피막]이 태국 관객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