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닉 카사베츠
주연 : 덴젤 워싱턴, 로버트 듀발, 제임스 우드, 앤 헤이치
개봉 : 2002년 3월 15일
수려한 자연미가 돋보이는 어느 고속도로... 왠지 종교적인 색체가 짙어보이는 숙연해지는 음악이 흐르며 하얀 승용차를 탄 한 여성이 앞의 차를 앞지르기 위해 중앙선을 넘습니다. 그녀의 위태로운 운전은 이어지고 결국 사고가 납니다. 그리고 화면은 곧바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지만 나름대로 단란하고 행복한 존 큐의 가정을 비춰주죠. 이것이 영화 <존큐>의 초반 장면들입니다.
예전에 SBS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중에서 '5분의 법칙'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10분의 법칙'이던가??? 잘 기억이 안나네요. ^^;) 영화 감독인 장진 감독이 소개하는 코너였는데 그에 따르면 영화는 초반에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준다는 군요. 앞의 몇 장면만으로도 그 영화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전 그 코너를 볼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때 앞부분을 유심히 보죠.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지 미리 파악하기위해서...
<존 큐>의 경우 워낙 잘 알려진 영화이고, 이런 류의 영화의 결말이 거의 뻔하기에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는 영화의 앞부분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영화 오프닝씬을 장식한 한 여성의 교통사고씬... 도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생각하며 교통사고씬과 존 큐의 인질극을 연결시키기위해 무진 애썼죠.
영화의 초반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던 장진 감독의 이론이 이 영화에선 오히려 영화의 초반이 뻔해보이는 영화를 더욱 감춰준다라는 새로운 이론으로 탈바꿈한 순간이죠.
그러다가 영화의 중반 정도에 제가 내린 결정은 그 교통사고를 당한 여인이 이 영화에서 심장 수술의로 나오는 닥터 터너의 아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었죠. 제 이론은 이랬습니다. 존의 가정에 불어닥친 이 비극에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닥터 터너는 자신의 아내가 교통사고로 생명이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도와준다... 뭐 이런 식이었죠. 그럴듯 한가요? ^^;
하지만 영화는 후반으로 흐르며 이러한 제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알려주더군요. 이 모든것은 예정된 해피엔딩을 위한 수순이었던 겁니다. 결국 이 영화는 헐리우드의 해피엔딩 강박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해피엔딩을 위한 준비를 끝낸, 그래서 관객을 혼돈시키는 그런 영화였던 셈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 존 큐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차는 압류당하고 직장은 구해지지 않고 사랑하는 아들은 갑자기 쓰러집니다. 아들을 살리기위해서는 25만 달러라는 거액의 돈이 필요하지만 의료 보험회사는 존에게 자격이 없다며 딴소리를 해대고 그 어떤 기관들도 존을 도와주지 못합니다. 존은 집의 모든 것을 팔아버립니다. 아들의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서... 그러나 존이 가진 것들로는 아들의 수술비는 커녕 아들의 입원비조차 구할 수 없었죠. 이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존은 한가지 선택을 해야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질극이죠.
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야 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비극으로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 영화를 좋아하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해피엔딩으로 끝을 내려 한다면 너무 많은 무리가 따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존 큐>는 헐리우드 영화죠. 제 기억으로는 비극으로 끝나는 헐리우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 만큼 헐리우드는 해피엔딩 강박증에 시달리는 거대한 환자 같습니다. 그리고 <존 큐> 역시 헐리우드 영화임을 자랑하며 비극으로 끝나길 끝내 거부하죠.
먼저 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존은 비록 아들을 구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인질극을 벌이지만 결국 그는 사회적으론 범죄자가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의료 보험 제도가 잘못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수없는 제도이고 존 한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노릇이죠. 게다가 존의 인질극을 보던 병원 책임자인 레베카의 그 표정... 토요일 오후를 망친 존을 원망하는 그 차가운 표정에서 전 병원에서 조차 존을 도와주지 않을거라 생각했습니다. 언론은 취재과다로 존의 사건을 흥미위주로 만들어 버렸으며 출세를 노리는 경찰 서장은 존의 저격을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존의 아들은 병으로 인해 서서히 죽어 갈것이며 범죄를 저지른 존은 법의 심판을 받거나 저격수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두고 아주 상식적으로 따진다면 분명 그렇게 흐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기적이야."라는 존의 영화속 대사처럼 이 영화는 준비된 해피엔딩을 위해 기적을 마련해 두죠.
그럼 이 영화가 해피엔딩을 향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먼저 존의 인질극에 베테랑 협상가인 프랭크가 투입됩니다. 그는 베테랑 협상가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건을 감성적인 측면에서 풀려하죠. 아마 진짜 베테랑 협상가였다면 사건의 조기 진압을 위해 존의 저격을 명령했을 겁니다. 협상가의 임무가 그런 것 아닙니까? 인질범을 진정시켜 인질의 안전을 도모하고 다른 요원들이 인질범을 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주고...
하지만 프랭크는 존의 요구를 들어주기위해 노력합니다. 레베카가 이런 이야기를 하죠.
"이 자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다른 병원에서도 같은 일이 생겨요. 아픈 아이가 있는 건 존 혼자만이 아니예요."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전 그말에 동감합니다. 제도가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범죄 행위로는 아니죠. 만약 존의 인질극이 성공해서 존의 아들이 수술을 받게 된다면 존과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들은 모두 인질극을 벌이게 될겁니다. 비정해보이지만 그것이 현실이죠. 아마 이 영화가 실제 상황이었다면 존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프랭크는 처음부터 존의 편이었죠. 그가 존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건을 심각하게 분석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단지 그는 존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은근히 도우려 하죠. 그렇다면 프랭크는 냉정함이 요구되는 인질 협상가로써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아닌가요?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위한 첫번째 과정... 바로 프랭크라는 캐릭터입니다.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위한 두번째 과정은 바로 매스컴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의 경우 매스컴은 한 몫 단단히 하죠.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속의 매스컴은 철저하게 존의 편이며 존의 영웅만들기에 몰두합니다. 그거야 뭐... 어느 정도 이해됩니다. 영웅만들기 만큼 효과적인 시청률 상승효과는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그토록 냉정하던 레베카가 존과 아들의 통화장면을 TV로 보고 눈물을 흘리며 존을 도와주기로 마음을 고쳐먹는 장면은 좀...
이 영화속 레베카라는 캐릭터는 분명 냉정한 병원 책임자이며 모든 것에 원리원칙을 내세우는 그런 여자입니다. 영화의 초반 존에게 수술보다는 그냥 조용히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라고 권유하는 장면만으로도 알 수 있죠. 그런 여자가 겨우 존과 그의 아들의 통화 장면에 감동을 느껴 마음을 고쳐먹다니... 만약 그런 여지였다면 애초에 인질극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이 영화가 매스컴을 이용해서 해피엔딩의 과정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불만이 없지만 영화속의 캐릭터 성격까지 바꿔가며 해피엔딩을 완성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네요.
마지막으로 아무리 레베카의 마음이 바꿔었다 하더라도 존의 아들에게 맞는 심장이 없다면 말짱 꽝이죠. 존은 그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자살을 함으로써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주려 합니다. 전 그 순간 매우 신선함을 느꼈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 영화처럼 극적인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는 없을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존이 자신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지만 총알은 나가지 않습니다. 안전장치를 풀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이와 동시에 존의 아들에게 아주 딱 맞는 심장이 도착합니다. 존의 아내는 외치죠. "존! 기적이 일어났어요."... 역시 제가 기대했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흉내만 낸거죠.
다시 영화의 초반 교통사고 장면으로 돌아가죠. 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 교통사고가 존의 인질극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했었죠. 그런데 그 교통사고는 존의 아들에게 심장을 주기위한, 철저하게 준비된 해피엔딩을 위한 과정이었던 겁니다. 한 여성의 비극적 교통사고를 영화의 해피엔딩에 이용하다니...
전 이 영화가 이렇게 철저히 영화 오프닝씬부터 해피엔딩을 준비해놓고 마치 비극적인 사건이라도 터질 것처럼 저를 속였다는 것에 좀 불쾌감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런...
영화는 비록 존에게 가벼운 형벌을 내림으로써 아주 완벽한 해피엔딩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존의 아들은 병을 고쳤고 존은 가정을 지켰습니다. 게다가 그는 영웅이 되었죠.
덴젤 워싱턴의 연기와 아버지의 부정애를 내세운 스토리는 분명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입니다. 하지만 왜 꼭 해피엔딩이어야 하는 거죠? 이렇게 기적까지 일으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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