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게리 플레더
주연 : 마이클 더글라스, 브리티니 머피, 숀 빈
개봉 : 2002년 3월 15일
뉴욕의 정신과 의사 네이선의 어린 딸이 납치됩니다. 유괴범들이 노리는 것은 단 한가지, 네이선의 환자인 엘리자베스에게 하루안에 6자리 숫자를 알아내는 것. 아무리 유능한 정신과 의사인 네이선이라할지라도 그건 어려운 일이었죠. 하지만 그는 해야합니다.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돈 세이 워드>...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스릴러 영화의 백미는 역시 감독과 관객간의 두뇌 게임이죠. 감독은 영화속에 함정을 파놓고 관객을 유인하고, 마지막엔 예상치못했던 반전으로 관객을 우롱합니다. 관객은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영화속의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골몰하게 되죠. 그러다가 감독이 파놓은 함정을 피해 스스로 미스테리의 진실을 풀어낼때의 그 짜릿한 기분이란...
특히 <식스센스>라던가 <디아더스>처럼 뛰어난 심리 스릴러 영화에 길들여있는 관객들에게 스릴러라는 장르는 정말로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아직 괜찮은 스릴러 영화 한편 만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과 같이 우리 영화가 급속도로 성장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뛰어난 스릴러 영화를 만들 수 있겠죠.)
암튼 이 영화 미국 박스 오피스에서도 1위를 차지했고, 내용도 괜찮고해서 저는 무지 기대했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붙어보자.'거의 이런 심정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되었죠. '기필코 <식스센스>라던가 <디아더스>에서처럼 어처구니없이 감독에게 패배하는 일은 없으리라.' 전 굳은 결심을 했죠.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전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저와 두뇌게임을 벌이기엔 <돈 세이 워드>는 수준미달이었죠.
예를 들어 동네에서 싸움을 무지 잘 한다고 소문난 녀석과 싸우기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긴장하며 한판 싸움을 기다렸는데 녀석이 싸움한번 제대로 하지못하고 기권하고 도망갈때의 그 허무함이라고나 할까요. (예가 좀 유치했나요?)
암튼 전 영화가 끝나고나서 영화 시작전의 전투태세를 풀며 한동안 망연자실했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원했던 것은 심리 스릴러였거늘...
자! 이제 <돈 세이 워드>와 저의 그 시시했던 한판 승부의 현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1991년 뉴욕, 여섯명의 범죄자가 은행에 침입 고가의 다이아몬드 하나만을 강탈합니다. 그러나 은행 강도단의 한명인 버로우가 동료들을 속이고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도망칩니다. 강도단의 리더인 패트릭은 복수를 결심하죠.
'으흠~ 이건 다이아몬드를 사이에두고 벌어지는 복수극이군.' 일단 영화의 초반 제가 느낀것은 이겁니다. 너무 스케일이 작다는 것... 다이아몬드가 지아무리 비싸다 할지라도 얼마나 하겠습니까? 지까짓게 비싸봤자 몇천만달러... 요즘처럼 억억거리는 시대에 겨우 몇천만달러가지고 저러나 싶더군요. 하지만 영화의 스케일은 스릴러 영화의 재미와는 별로 무관하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영화가 정말로 엄청난 물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복수극이었다면 긴장이 더했겠지만...
이제 영화의 축을 이루는 세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한명은 네이선이라는 정신과 의사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을 둔 유복한 상류층인 네이선역은 마이클 더글라스가 맡았더군요. 그는 <원초적 본능>처럼 약간 비열한 캐릭터에 어울리는데... 그가 네이선이라는 캐릭터와 안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참기로 했습니다. 싸움의 상대가 비실비실해 보이는 상대라 할지라도 그가 강하다면 별 문제 없는것과 같은 같은 이치죠. ^^
또 다른 주인공은 엘리자베스라는 19세의 어린 정신병자입니다. 아버지의 충격적인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10년동안 정신병원에 수용되어있던 엘리자베스역은 브리티니 머피라는 낯설은 여배우가 맡았더군요. 하지만 연기력은 꽤 있는 듯 합니다.
마지막 주인공인 패트릭역은 <반지의 제왕>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숀 빈이 맡았습니다. 강인해보이면서도 어딘지모르게 비열해보이는 숀 빈의 분위기라면 다이아몬드를 찾기위해 네이선의 어린 딸을 납치하는 그런 치밀하지만 비열한 패트릭역에 잘 어울릴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명의 주인공 중 2명의 주인공은 합격점.(물론 제 기준입니다.) 이 정도면 시작은 아주 좋았었습니다.
이제 영화는 본격적인 두뇌 싸움에 들어갑니다. 저도 정신 바짝 차리고 의자를 당겨 앉았죠.
앞에서 설명했던 세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트릭은 네이선의 딸을 데리고 있죠. 네이선은 딸을 되찾기위해선 엘리자베스에게 비밀을 알아내어 패트릭에게 알려 줘야 합니다. 시간은 단 하루. 과연 네이선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엘리자베스에게 비밀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일단 영화의 원투펀치가 꽤 마음에 들더군요. 사건의 제3자인 네이선은 본의아니게 사건의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됩니다.
첫 장면으로 유추해보건데 엘리자베스는 은행강도단의 배신자인 버로우의 딸입니다. 아마도 버로우는 패트릭에게 살해되고 10년전의 다이아몬드의 행방을 아는 유일한 인물은 엘리자베스겠죠. 패트릭이 알고싶어하는 6자리 숫자는 다이아몬드가 숨겨진 곳의 비밀을 담은 숫자이고요.
이제 제 관심은 과연 네이선이 어떻게 엘리자베스에게 비밀을 알아낼것인가 입니다. 하지만 <돈 세이 워드>는 여기에서부터 저와의 싸움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네이선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엘리자베스의 혼란스러운 기억속에서 비밀을 알아낼것이라는 제 생각과는 정반대로 네이선은 엘리자베스에게 애원을 하더군요. 자신의 딸이 위급하니 비밀을 알려달라고요. 이런...
엘리자베스도 정신 이상자인 듯 연기를 했을뿐 사실 맨 정신이라는 군요. 그녀는 네이선이 불쌍하다며 순순히 어버지가 살해된 상황과 숫자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그러자 이 영화 초반의 가장 큰 수수께끼였던 6자리 숫자의 비밀은 아주 쉽게 드러나더군요. 이게 뭐야...
영화와의 한판 두뇌싸움을 기대했던 저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기가 막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관객의 뒤통수를 치던 반전이 있겠지... 그래 긴장을 늦추어선 안돼.'라며 제 자신을 추스리고 감독이 준비할 수 있는 반전이 어떤것일까 알아내기위해 온갖 상상을 다했습니다.
'그래. 어쩌면 버로우가 살아있을지도 몰라. 아냐, 어쩌면 모든것이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위한 엘리자베스의 계략일지도 몰라.'
저는 있지도 않는 마지막 반전을 상상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죠.
하지만 영화는 거기에서 끝이 납니다.
이게 뭐야~~~
이 영화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Prologue에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절대 상상못한 반전이 기다린다.'
도대체 어디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봤더라면 그냥 볼만한 영화였을텐데... 괜히 제 전투욕만 불태우게 만들어 이렇게 사람을 실망시키다니...
어디나와 한판 붙어볼 영화 없소??? ^^;
P.S. 영화 후반 네이선은 중국인으로 보이는 듯한 동양인의 핸드폰을 아무 가책없이 빼앗습니다. 핸드폰을 어이없이 빼앗긴 동양인은 반항한번 못하고 혼자 투덜거리죠. 마이클 더글라스... <폴링다운>에선 한국을 비방하더니... 미국이라는 나라... 동양한테 무언가 빼앗는 것을 좋아하나 봅니다. 우리의 불쌍한 김동성선수도 이 영화의 동양인처럼 어이없이 금메달을 빼앗겼죠? 그러면서 미국은 말하겠죠. 어쩔수없다고... 납치범을 잡기위해 미안하다는 소리한마디 하지않고 핸드폰을 빼앗는 네이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