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용균
주연 : 김희선, 주진모, 조승우, 최강희
개봉 : 2001년 11월 23일
저는 영화를 고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답니다. 영화보러 가기전 무슨 영화를 볼까 고르는 것과 비디오 가게에 서서 그 수많은 영화들을 보며 비디오를 고르는 것... 그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른다면 금상첨화죠. ^^)
토요일... 월차를 낸 저는 오랜만에 비디오 가게에 들렸습니다. 한때는 비디오 가게에 가도 볼 영화가 없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한동안 뜸했더니 못본 영화들이 많이 출시되어 있더군요. 마음같아선 모두 빌려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단 한편만 고르기로 했죠.
뭘 볼까??? 시원시원한 액션이 돋보인다는 <머스킷티어>를 볼까? 아니면 우리 영화인 <고양이를 부탁해>를 볼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저는 결국 <와니와 준하>라는 순정 영화를 골랐습니다. <머스킷티어>보다는 진지할것 같고 <고양이를 부탁해>보다는 가벼울 것 같아 오랜만의 조용한 휴가를 즐길 영화로 충분하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토요일 <와니와 준하>를 본 저는 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재미가 없었냐구요? 아뇨. <와니와 준하>... 무지 재미있습니다. 화면도 예쁘고 배우들도 멋있고 스토리도 아기자기하고. 전 두번이나 봤죠. 그런데도 또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 그 동안 제가 잊으려 애쓰던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만들더군요.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영화를 보고나서 전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습니다. <봄날은 간다> 이후로 이렇게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영화 처음 봤습니다. 그렇지않아도 요즘 봄을 타느라 괜히 그녀 생각에 잠 못이루는 날이 많았는데 <와니와 준하>는 아예 이런 내 뒤숭숭한 마음에 쐐기를 박아 버리더군요. 도저히 이대로는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제 여동생을 꼬셨습니다. 술먹자고... 올해 27살인 제 여동생은 제 표정을 보더니 나가서 양주를 사오더군요. 깔끔하게 양주를 먹자며... 그날 저는 여동생과 잘 먹지도 못하는 양주를 두병이나 비우며 날 버린 그녀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횡설수설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물론 다음날 머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맘에 있던 말을 다해버리니 속은 시원하더군요. 제 여동생이 그러더군요. 이제 잊을때도 되지 않았냐고... 인연이 아닌것 같으니 잊으라고... 맞습니다. 이젠 잊을때도 됐죠. 이젠 잊어야죠. -_-;
요즘들어 제 영화이야기 분위기가 칙칙해지는 것 같죠? 봄 탓을 하기는 하지만... 죄송합니다. 반성중... 다음부턴 로맨틱 영화 안볼꺼양~~~
맨처음 <와니와 준하>라는 영화를 접했을때 저는 줄거리를 읽고 깜짝놀랬었죠. 영화의 기본 스토리가 20대 남녀의 동거이야기이며, 그 안에 근친간의 사랑과 동성애 코드까지 섞여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영화의 분위기는 이런 선정적인 소재와는 달리 순정 영화를 표방할 정도로 예쁜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궁금했었습니다. 과연 이런 소재로 어떻게 순정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되더군요. 선정적인 소재로도 충분히 예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암튼 김용곤 감독이라는 걸출한 신인 감독이 탄생한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흐뭇했습니다.
젊은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예쁜 화면 -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멋진 그림이 되는 젊은 배우들입니다. 특히 누드집 스캔들 이후 김희선의 첫 출연 작품으로도 이 영화는 유명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김희선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김희선이 맡은 와니라는 캐릭터는 이복 동생인 영민과의 첫사랑을 간직한채 준하와 동거하는 20대 애니메이터입니다. 그동안 김희선이 출연했던 영화들이 김희선의 매력을 충분히 뽑아내지 못했던 것에 반에 이 영화는 김희선의 매력을 완전히 영화속에 녹여 놓습니다. 평범해보이지만 내면에는 아픔을 간직한 너무나도 가녀려서 언제나 위태로워 보이는 와니는 김희선의 청초한 매력속에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있더군요. 아마 쾌활한 신세대 여성의 이미지가 강했던 김희선은 이 영화로 어느 정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군요. (<와니와 준하>를 본 후 김희선이 너무 좋아 졌습니다. ^^)
김희선의 상대역인 주진모는 <무사>에서 보여주었던 남성다움을 벗어던지고 보통의 평범한 시나리오 작가 준하로 변신하였습니다. 와니를 너무너무 사랑하기에 그녀의 흔들리는 모습에 가슴아파하는 준하... 아무래도 주진모는 <무사>에서의 거친 장군역보다 이런 편안한 보통의 남자 캐릭터가 더 맞는 것 같군요.
이 두 배우외에도 와니의 첫사랑인 영민역에는 <춘향뎐>에서 열연을 보여주었던 조승우가 매력적인 얼굴로 잘 메뀌주었으며 영민을 사랑하는 와니의 후배 소양역의 최강희는 자칫 너무 가라앉을뻔한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내며 이 영화에 균형을 맞춰줍니다.
이 네명의 배우들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멋진 그림을 연출해내더군요. 그렇기에 선정적인 소재도 이 빛나는 배우들앞에 순정영화로 변신할 수 있었나 봅니다.
연인들의 내면을 잘 잡아낸 탄탄한 시나리오 - 제가 이 영화를 보며 술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 탓입니다. 대부분의 로맨틱 영화들이 조금 오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생활의 사랑보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선 이 오버가 필수요소죠. 그래서 영화속의 사랑을 보면 마치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을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곤 했죠.
하지만 요즘, 현실의 사랑이야기도 얼마나 영화틱한지 보여주는 영화가 잇따라 등장하는 군요. 그 첫번째 영화가 바로 <봄날은 간다>입니다. 그 영화본 후 정말로 그 영화처럼 나의 봄날은 가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영화죠.
그리고 <와니와 준하>역시 그러합니다. 동거... 근친간의 사랑... 동성애가 어떻게 현실적일 수 있냐고요? 그도 그렇지만 이 영화의 내용이 조금 오버했다면 이 영화 자극적인 소재탓에 야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 아주 진솔하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장면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제 마음을 파고들어 떠난 그녀를 너무나도 보고 싶게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진솔한 시나리오 탓입니다. 이건 어찌 글로 표현이 안되네요. 그냥 직접 보세요. ^^;
순정 영화 그 새로운 형식 - 이 영화는 그 동안 우리나라엔 없었던 순정영화라는 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겠다며 용감하게 나선 영화입니다. '순정영화? 그냥 로맨틱 영화라고 하면 될것을... 암튼 장르도 잘 만들어낸다.'라고 이 영화를 보기전엔 생각했었죠.
하지만 <와니와 준하>는 순정영화라는 장르에 맞게 영화의 첫부분과 끝부분을 애니메이션으로 장식하며 새로움을 과시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순정 만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정도로 예쁜 화면과 캐릭터도 돋보입니다.
정말 순정 만화같은 느낌... 제가 순정 만화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만화는 다 좋아합니다. ^^;) 순정 만화는 여자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신데 그런 선입견을 깨고 순정 만화를 본다면 그 순수함에 금방 빠져들게 되죠. 이 영화도 바로 그 느낌입니다. 순수함... 그리고 진솔함까지...
이제 절 그토록 술 생각나게 만들었던 내용을 살펴보죠.
이 영화의 와니와 준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20대 동거 커플입니다. 와니는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준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아직 데뷰조차 못한 한마디로 백수였죠. 와니가 일하러 나가면 준하는 하루종일 방에 뒹굴며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일과입니다. 그리고 와니가 퇴근할때쯤 그녀를 마중나가기도 하죠. 하지만 와니는 그런 준하에게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를 믿고 기다릴뿐입니다. 이 두사람의 동거엔 이처럼 아무 문제도 없는 듯 보입니다. 영민이 귀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기 전에는 말이죠.
영민의 귀국 소식을 접한 와니에게 영민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영민과 보낸 시간이 많았기에 그에 대한 추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문득문득 와니의 기억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영민을 짝사랑했던 소양이 와니와 준하의 동거 생활에 들어오면서 와니의 영민에 대한 생각은 깊어지죠. 그리고 준하도 그러한 와니의 흔들림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와니가 어머니와 그리고 영민과 전화 통화할때 마치 앞에 같이 앉아 대화하는 것으로 보였던 장면입니다. 와니와 그녀의 가족속에서 준하는 소외될수 밖에 없었죠. 준하의 소외감을 이 영화는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앞에 마주보며 대화를 하는 와니와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영민. 그 앞을 서성이며 와니가 만들어놓은 벽속에 들어오지 못하는 준하...
결국 준하는 와니의 곁을 잠시 떠나기로 합니다.
아마도 와니는 영민을 잊기위해 준하와의 동거를 선택했을 겁니다. 그도 그럴것이 와니는 아버지에게 영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숨지게 됩니다. 결국 영민은 해외 유학을 가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영민에 대한 사랑에 도망쳐야 했던 와니는 준하라는 도피처를 찾아낸거죠. 하지만 영민의 귀국 소식과 함께 와니는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준하는 와니의 흔들림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와의 이별이 두려워 와니를 외면합니다.
준하는 서울로 떠나고 와니는 준하가 없는 집에 홀로 서서 웁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기에 그 존재감을 몰랐던 그녀는 결국 그가 떠나자 준하의 빈자리를 느낀거죠. 예전엔 저도 그 방법을 시도했었는데... 전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결국 이별로 연결되었으니까요. -_-;
하지만 준하에겐 와니는 첫사랑이었습니다. 영화의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영화는 준하와 와니의 인연을 설명하죠.
결국 두사람은 다시 만납니다. 이 영화는 와니와 준하가 각각의 사회 생활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 자신감을 두사람의 관계 회복으로 연결시킴니다.
자신감이 없어서 원화부로 옮기지 못했던 와니는 결국 원화부로 옮기며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그녀는 서울로 준하를 찾아가 자신의 흔들림이 이젠 끝이 났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줍니다. 아마 영민이 와니 곁으로 되돌아와도 와니는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겠죠. 준하라는 새로운 사랑을 확인했으니 (실제로 영민의 귀국 장면은 이 영화엔 없습니다. 영민은 단지 와니의 과거속의 남자였을 뿐이었던 거죠.)
준하도 자신의 시나리오를 바꾸려는 제작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자신감을 회복합니다. 아마 그는 안전적인 직장이없었기에 항상 와니에게 미안했을테고 와니가 이런 능력없는 자신을 떠날까봐 두려웠겠죠. 하지만 그는 제작사에 떳떳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와니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은 겁니다. 그는 두려움때문에 서울로 도피하는 것보다는 떳떳하게 와니 곁에서 그녀의 아픔을 치유하도록 도와주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해피엔딩이죠? ^^;
이렇게 글로 써보니 이 영화가 내게 가져다준 애틋한 그리움이 잘 설명되지 않는 군요. 제 능력의 한계!!! ^^; 에궁~ 또 술먹고 싶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