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팀 버튼
주연 : 조니 뎁, 프레디 하이모어
개봉 : 2005년 9월 16일
관람 : 2005년 9월 8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배트맨 비긴스]는 팀 버튼의 [배트맨]과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던 올 여름... 저는 유난히 팀 버튼이 그리워졌었습니다. [배트맨]의 어두침침한 블럭버스터가 그리웠고, [유령수업], [화성침공]의 원색의 독특한 유머가 그리웠습니다. [슬리피 할로우]의 아름다운 공포 영화가 그리웠으며, [에드우드]의 그답지 않은 진지함도 그리웠습니다. 이런 제 그리움을 팀 버튼도 아는지 드디어 올 가을 [빅 피쉬]의 개봉 후 거의 1년6개월만에 그의 신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유령신부]가 연달아 개봉되네요.
팀 버튼은 제가 좋아하는 감독중의 한명입니다. 그의 독특한 영화들은 [혹성탈출]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제게 만족감을 안겨주었었죠. 팀 버튼의 그 수많은 영화중에서 저는 특히 [에드우드]를 좋아합니다. [에드우드]는 그의 영화중에서도 가장 알려지지않은 흑백 전기 영화로 미국에서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에드우드의 생애를 그린 영화입니다. 제가 [에드우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팀 버튼의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중 한명인 오손 웰즈와 동시대에 살았던 B급 영화 감독 에드워드를 영화화함으로써 자신의 영화적인 힘이 B급 영화에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죠. [에드우드]이후 그가 만든 영화가 B급 SF영화를 표방한 [화성침공]임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빅 피쉬]이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빅 피쉬]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탐냈을 정도로 완벽한 가족주의 판타지 영화입니다. 물론 팀 버튼은 [빅 피쉬]를 스티븐 스필버그라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독특한 판타지의 세계로 완성해냈지만 그의 이전 영화와 비교했을때 너무 착해서 당혹스러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 버튼의 신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절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B급 SF영화를 표방했으나 역설적으로 거대한 자본이 들어간 블럭버스터 [화성침공]의 흥행 실패는 어떠한 방향으로든 팀 버튼에게 영향을 주긴줬나봅니다. [화성침공]이후 그가 만들어온 [혹성탈출], [빅 피쉬],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분명 [화성침공]이전의 그의 영화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그중 [혹성탈출]에 대한 이야기는 하기조차 싫으니 관두더라도 [빅 피쉬]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이어지는 필모그라피는 분명 의미심장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팀 버튼의 상상력이 판타지적이긴 하지만 절대 동화적이진 않았기에 저는 이 유명한 동화와 팀 버튼의 만남이 어떤 영화로 탄생할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까지 저는 [빅 피쉬]는 팀 버튼의 영화중 예외적인 영화라고 생각했기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빅 피쉬]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가 될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셈입니다. 하지만 막상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관람하고나니 이 영화는 [빅 피쉬]와 연결되는 완벽한 가족 판타지 영화였습니다.
다시한번 팀 버튼의 이전 영화들을 들춰보죠. 그의 영화중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한 영화가 있기는 했던가요? 아니 제 기억엔 없었습니다. 그런데 팀 버튼은 자신의 페르소나인 조니 뎁까지 끌어들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간의 사랑이다.'라고 역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에게서 이렇게 가족이 갑자기 주요 소재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인지, 헬레나 본햄 카터와의 결혼 생활 덕분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본 후 한가지 인정해야할 사실은 팀 버튼이 예전의 기괴한 상상력을 잠시(그러길 빕니다만...) 버리고 착한 가족 판타지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기전에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영화를 직접 보고나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암튼 결과적으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꽤 유쾌하고 독특한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제겐 팀 버튼과는 어울리지않는 너무 과도한 가족주의 영화였던 탓에 아주 살짝 실망스러웠던 영화였습니다. 원작을 읽지 않은 저로써는 윌리 웡카가 다섯 아이들을 초콜릿 공장에 초대한 이유가 뭔가 호러적인 반전이 숨어있기를 원했는지도 모르죠.
웡카가 파놓은 함정에 아이들이 하나둘씩 곤경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이여! 아이 교육을 잘 시켜라'는 식의 너무 뻔한 교훈보다는 뭔가 음습한 음모가 숨어있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암튼 누가뭐래도 이 영화의 감독은 팀 버튼이니까요. 움파룸파족의 신나는 쇼를 보며 저런 장면은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더욱 잘만들텐데... 하는 생각을 했던 관객은 과연 저뿐인가요?
하지만 때이른 실망은 아직은 금물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보기전에 [유령신부]의 예고편을 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후 정말 오랜만에 보는 팀 버튼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유령신부]는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미술과 제작으로 연출에서는 한발자욱 물러섰던 팀 버튼이 직접 연출도 맡은 영화입니다. 예고편을 보니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비슷한 느낌이 들더군요.
[유령신부]로 팀 버튼은 다시 음습한 유령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것인지... 아직 그 확답은 [유령신부]가 개봉하는 10월이 되어야 알 수 있겠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느꼈던 그답지 않음이 [유령신부]에서 완벽하게 부활할것임을 기대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족 판타지와 B급 호러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팀 버튼의 또다른 능력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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