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도서관 전쟁] - 가벼운 영화의 분위기 그리고 무거운 주제.

쭈니-1 2014. 9. 18. 14:46

 

 

감독 : 사토 신스케

주연 : 에이쿠라 나나, 오카다 준이치

 

 

[도서관 전쟁]? 뭐 그런 제목의 영화가 다 있어?

 

지난 3월 27일 [도서관 전쟁]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일본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제목 자체가 촌스러웠고, 도서관에서 전투복장을 한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담은 영화의 포스터도 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유명한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니 [도서관 전쟁]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영화 [20세기 소년]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소년] 역시 일본의 유명한 만화를 원작으로한 SF 영화입니다. 비록 완결편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원작 만화를 워낙에 재미있게 본 저는 영화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의 원대한 세계관을 쫓아가기엔 급급한 그저 그런 영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20세기 소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암울한 세계관과 미스터리, 그리고 만화를 고스란히 영화로 옮겨 놓은 것까지... 원작을 자유자재로 바꾸며 영화화하는 할리우드와는 또 다른 일본 영화만의 재미라고나 할까요? 암튼 [도서관 전쟁]에서 [20세기 소년]을 발견한 저는 뒤늦게 [도서관 전쟁]을 감상했습니다.

 

 

 

미디어 양화법안 시행 30년 후...

 

1988년 일본. 성 묘사, 폭력, 차별적인 표현을 규제하는 미디어 양화법안에 대해서 찬반 토론이 격렬하게 진행됩니다. 미디어 양화법안의 반대론자는 미디어 양화법안은 결국 언론 통제를 가져올 것이고, 사상은 탄압해서도 규제해서도 안된다며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찬성론자는 나쁜 표현이 청소년에게 미칠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며, 정부가 그러한 방향성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1989년 미디어 양화법안은 통과되었고, 전국의 서점, 도서관의 책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인해 유해 미디어로 검열되며 소각됩니다. 그리고 미디어 양화법을 실행에 옮기는 단체 양화대는 총기로 무장을 합니다.

2004년 검열에 대항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를 가진 조직인 도서대가 설립됩니다. 도서대는 도서관 자유에 관한 선언을 토대로 활동하는데, 도서관 자유에 대한 선언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도서관은 자료 수집의 자유를 가진다.

2. 도서관은 자료 제공의 자유를 가진다.

3. 도서관은 이용자의 비밀을 지킨다.

4. 도서관은 모든 부당한 검열을 반대한다.

도서관의 자유가 침해됐을 때 우린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킨다. 우리는 책을 지키고 사람들의 자유를 지킨다.

[도서관 전쟁]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 양화법이 시행된지 30년후인 2019년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양화대 VS 도서대

 

[도서관 전쟁]은 미디어 검열을 강화하려는 양화대와 도서관 내에서 그러한 검열에 맞서는 도서대의 대립이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더대체 이 상반된 법안이 어쩌다가 공존하게 되었는지는 영화에서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습니다. 단지 20년 전 미디어 양화법안을 찬성하는 무장단체에 의해서 히노 도서관이 습격을 당하고 도서관 관계자들이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국민의 반발심리를 잠재우기 위한 방책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법안이 공존하다보니 당연히 양화대와 도서대는 사사건건 대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두 단체는 무장이 허용된 단체이다보니 가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살상을 위한 전투가 아닌 서로를 향한 기싸움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양화대와 도서대의 전투에 대해 시민들은 '전쟁 놀이'라며 비아냥거립니다.

[도서관 전쟁]이 양화대와 도서대의 대립이라는 소재로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설정 때문입니다. 서로 죽이기 위한 전투가 아닌 그저 시간을 정해 놓고 위협 사격을 하는 정도의 전투로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일 수가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도서대와 양화대의 대결이 아닌 20년 전 히노 도서관을 습격했던 과격 우익단체와 주인공의 대결로 진행됩니다. [도서관 전쟁]이 약간은 아쉬운 이유입니다.

 

 

 

좌충우돌 도서대원 카사하라

 

[도서관 전쟁]은 이렇게 도서대와 양화대의 대립으로는 영화의 재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다보니 좌충우돌 여주인공 카사하라(에이쿠라 나나)를 통해 영화의 재미를 구축합니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 좋아하던 동화책을 양화대에게 검열당해 빼앗길 위기에 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어느 도서대원의 도움을 받았고, 그로 인하여 도서대에 지원하게 됩니다.

하지만 카사하라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도서대원의 얼굴도, 이름도 모릅니다. 그저 막연하게 그를 나의 왕자님이라며 동경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한 그녀의 엉뚱함은 호랑이 교관인 도죠(오카다 준이치)와 사사건건 충돌을 일으킵니다.

[도서관 전쟁]은 상당 부분을 카사하라의 캐릭터에의한 재미에 기대는데, 카사하라의 엉뚱함은 영화의 코믹함을 안겨주고, 도죠와의 관계는 말랑말랑한 멜로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예상하지 못한 영웅적 활약을 통해 도서대원으로써의 성장기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장르는 다르지만 [노다메 칸타빌레]의 노다 메구미(우에노 주리)를 연상키십니다. 엉뚱 발랄한 여주인공이 좌충우돌 사건을 일으키며 성장하는 이야기. [도서관 전쟁]이 관객들에게 제시한 영화적 재미인 셈입니다. 

 

 

 

 

검열은 필요악인가?

 

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이라는 또다른 무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서관 전쟁]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검열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한 일본식 만화적 상상력입니다. 그렇기에 [도서관 전쟁]은 그저 보고 잊어버릴 영화는 아닙니다.

[도서관 전쟁]은 검열에 대해서 관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합니다. 얼핏 검열은 꼭 필요한 정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무분별한 성적, 폭력적 표현은 성장기의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구분은 누가 해야할까요?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결국 검열은 권력이 되고, 검열권을 거머쥔 권력자들은 자신의 마음대로 국민의 볼 권리, 읽을 권리, 들을 권리를 빼앗을 수가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세월 군사정권을 경험했고, 그로인한 문화의 검열을 오랫동안 받아 왔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를 내세워 온갖 매체를 검열하고 결국 미디어를 장악한 권력자들. 그들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것을 차단시킨다는 미명아래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도서관 전쟁]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고등학생인 카사하라가 읽던 동화책은 용사가 용의 머리를 베어 버리는 것이 잔인하다는 이유로 유해 도서로 지정됩니다. 하지만 카사하라는 진짜 이유는 동화 속 캐릭터들의 개성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유해 도서로 지정된 것이라 말합니다. 획일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정부로써는 동화 속 개성이 다른 캐릭터는 교육적으로 안좋은 것이죠.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군사 정권 시절, 온갖 말도 안되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가요의 사정을 듣고나면 [도서관 전쟁]의 설정이 그렇게 말도 안되는 과장만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언젠가 사람도 태운다.

 

[도서관 전쟁]에서는 영화 초반 이런 자막이 나옵니다.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언젠가 사람도 태운다.'이는 마치 진나라의 시황제가 실용서적을 제외한 사상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것을 일컫는 '분서갱유'를 연상하게 합니다. 진시황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중국의 전국시대를 끝낸 영웅이 아닌 폭군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도 바로 '분서갱유'에 의한 그의 탄압책 때문이기도 합니다.

검열은 어쩌면 현대판 '분서갱유'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라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현대판 '분서갱유'가 버젓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요? [도서관 전쟁]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국민의 무관심 때문이라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정부의 검열 정책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결국은 이러한 비극을 가져온 것이라고...

[도서관 전쟁]이 바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가벼운 [노다메 칸타빌레] 스타일로 풀어 놓은 것입니다. 영화를 본 후 저 역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 역시 청소년에게 유해한 문화 매체는 청소년의 손에 닿지 못하게 해야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누가 정할 것이며, 그러한 검열이 또다른 권력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도서관 전쟁]의 주제에도 동의합니다. 참 어려운 문제죠. 그러한 주제가 있기에 [도서관 전쟁]은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