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나르 패니리
주연 : 사샤 로이즈, 도미닉 보가트
나를 사로 잡은 매력적인 소재
제 영화적 취향은 국내 개봉작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영화들이 있고, 그러한 모든 영화들에 관심을 갖기엔 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내 개봉작 위주로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가끔은 국내 미개봉작에도 관심을 갖게 됩니다. 대개 제가 좋아하는 감독, 배우의 영화이거나, 화제가 되었던 영화들입니다.
[익스트랙티드]를 포털 사이트의 영화 정보에 검색하면 2014년 6월 19일에 개봉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익스트랙티드]는 극장 개봉이 아닌 다운로드 시장에 직행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니르 패니리라는 신인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사샤 로이즈, 도미닉 보가트 등 낯선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평론가, 혹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었던 영화도 아닙니다. 결국 제가 [익스트랙티드]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익스트랙티드]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타인의 기억 속에 갇힌 남자라는 영화의 소재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억에 대한 SF 스릴러. 저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익스트랙티드]에 제 시간을 투자하였습니다.
그가 타인의 기억 속에 들어간 이유
[익스트랙티드]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천재 과학자 톰(사샤 로이즈)은 사람의 기억을 살펴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고 거대투자자들 앞에서 시연회를 열게 됩니다. 그러나 시연회 당일 투자자가 교정국 관계자이며 실험 대상자가 살인 혐의로 수감 중인 마약중독자 앤서니(도미닉 보가트)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엔 시연회를 중단하려 했던 톰. 하지만 뱃속에 있는 아기와 사랑하는 아내 생각에 결국 실험을 강행하게 됩니다. 결국 톰은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그가 자신의 애인을 살해하는 기억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앤서니의 기억에서 빠져 나오려 하는 순간 뜻하지 않은 시스템 오작동으로 톰은 앤서니의 기억 속에 갇혀 버리게 됩니다.
일단 저는 이 영화의 초, 중반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톰이 타인의 기억을 살펴 볼 수 있는 기계를 만든 이유는 타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잃어버린 소중한 기억을 찾아주거나, 혹은 그들의 기억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아픈 기억을 찾아내 치유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액의 투자금이 초심을 잃게 만듭니다. 앤서니의 기억 속에 4년 넘게 갇혀 있었던 톰은 그제서야 초심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게 됩니다.
누군가의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앤서니의 기억 속에 갇힌 톰. 그는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바로 여기에서 중요한 키포인트가 있는 것이죠. 톰은 앤서니의 기억을 무려 4년 동안이나 공유했습니다. 그만큼 톰은 앤서니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그가 애인을 살해한 그날의 끔찍한 기억까지... 어쩌면 톰은 앤서니 자신보다 앤서니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자! 여기에서 이 영화는 본격적인 시작을 합니다. 톰은 우여곡절 끝에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앤서니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앤서니는 톰에게 한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뭔가 다른 진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톰에게 자신의 기억을 통해 진실을 밝혀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제 [익스트랙티드]는 톰이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빠져 나가 가족의 폼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앤서니가 저지른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이라는 두가지 이야기가 서로 겹치며 본격적인 클라이막스로 치닫습니다.
후반부에 가서 힘을 잃다.
사실 저는 [익스트랙티드]의 본격적인 클라이막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1차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기 시작한 영화였기에 초반부분만 조금 보다가 멈출 생각이었지만,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중반부분까지 보고 만 것이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 부분을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으로 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일단 영화 보기를 멈춘 것입니다.
그러다 며칠 후 제 스마트폰을 TV에 연결해서 드디어 [익스트랙티드]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감상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익스트랙티드]는 바로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부터 매럭적인 소재의 힘을 잃어 버리고 비틀거립니다.
톰이 앤서니의 기억을 되찾아주는 장면부터 약간의 억지가 느껴지더니, 앤서니가 저지른 살인 사건에 대한 진실은 반전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싱거웠습니다. 이미 영화 초반 톰은 투자자에게 기억의 조작, 즉 세뇌에 대해서 설명했고, 그렇기에 톰이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물렀다면 벌써부터 눈치챘어야했던 부분입니다. 뻔한 반전을 가지고 마치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진 것 마냥 친절하게 설명까지 곁들이는 니르 패니리 감독.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있나?
기억이라는 것은 사실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이 편한대로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오래된 기억과 충격적인 기억은 더욱더 조작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톰은 앤서니가 자신의 애인을 살해하는 기억을 보이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그건 천재 과학자라는 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제가 기억이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낀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아무리 톰이 앤서니의 기억 속에서 4년이 넘는 시간을 살고 있었다고 해도 어느 기억은 긴 세월 동안 희미해져서 제멋대로 뒤바뀌었을 것이고, 또 어떤 기억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스스로 조작되었을 것입니다. 타인에 의한 세뇌까지 감안한다면 [익스트랙티드]의 조작된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 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니르 패니리 감독은 영화를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 버렸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언급되었어야할 조작된 기억 부분은 마지막 반전으로 내세워 영화를 대충 마무리짓습니다. [익스트랙티드]는 그러한 부족한 상상력이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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