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드래프트 데이] - 프로 스포츠를 사랑한다면 느낄 수 있는 짜릿함

쭈니-1 2014. 9. 2. 15:04

 

 

감독 : 이반 라이트만

주연 : 케빈 코스트너, 제니퍼 가너

 

 

총성없는 전쟁터에 갔다온 기분

 

지난 토요일, 저는 가족과 함께 북한산을 등반했습니다. 결혼 전에는 한때 산악회 회원이기도 했기에 10년 넘도록 산을 타지는 않았지만 북한산 쯤은 손쉽게 정상 등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북한산에 오르며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어렵게 정상에 오른 이후 내려오는 길에는 다리 관절이 아파서 절룩거리기까지 했다는...

월요일 밤, 원래는 [브릭 맨션 : 통제불능 범죄구역]과 [비긴 어게인] 중의 한편을 극장에서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에 산을 탄 후유증이 아직 남아 있는 관계로 그냥 집에서 뒹굴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극장에 갈 컨디션은 안되지만 영화 한편 못보고 월요일 밤을 넘기는 것이 아쉬워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보자는 기분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드래프트 데이]입니다.

[드래프트 데이]는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미식 축구에서 신인 선수를 선발하는 '드래프트 데이'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되기 13시간 전. 가장 열렬한 미식 축구팬을 보유하고 있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단장 써니(케빈 코스트너)는 이 총성없는 전쟁터에서 최종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합니다. 그의 그런 13시간 동안의 행적은 마치 제가 북한산에서 제 부실한 몸과의 총성없는 전쟁을 치룬 것처럼,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써니의 정신없는 하루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써니의 최악의 하루? 최고의 하루?

 

'드래프트 데이'는 써니에게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하루입니다. 그는 팀을 재건하기 위해 최고의 신인 선수를 뽑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의 하루는 시작부터 꼬여버립니다. 하필 이 중요한 순간 써니와 사귀는 관계인 팀의 수석 매니저 알리(제니퍼 가너)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갑작스러운 알리의 임신 소식에 써니는 제대로 된 반응을 하지 못했고, 결국 알리와의 관계가 서먹해져 버립니다.

게다가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시애틀 시호크스의 단장은 1순위 지명권을 넘길테니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향후 3년간 1순위 지명권을 달라는 협상을 제시합니다. 지금 당장을 위해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문제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구단주(프랭크 란젤라)가 신인 최대어인 보 캘러헌을 영입하라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보 캘러헌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시애틀 시호크스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써니는 시애틀 시호크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 영입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감독이 써니의 결정에 반발하고, 보 캘러헌과 포지션이 겹치는 팀의 간판 브라이언 드류는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난동을 피웁니다. 게다가 보 캘러헌에게 알려지지 않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써니는 점점 궁지에 몰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써니의 아머니는 써니의 전처와 함께 구단 사무실에 처들어와 아버지의 유골을 오늘 경기장에 뿌려야 한다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폭발직전의 상황까지 몰린 써니. 하지만 이성을 잃으면 안됩니다. 그가 이성을 잃는 그 순간 모든 것이 패배로 끝이나버리기 때문이죠.

 

 

 

미식 축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드래프트 데이]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영화 속의 캐릭터들처럼 관객들 또한 미식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관객에게 미식 축구는 굉장히 낯선 스포츠일 뿐입니다. 이 영화가 국내 개봉에서 흥행 참패를 거둔 이유입니다.

하지만 굳이 미식 축구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드래프트 데이]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드래프트 데이]는 미식 축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대부분은 신인 드래트프를 위한 각 팀의 기 싸움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팀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대형 신인 선수를 뽑기 위한 각 구단의 기 싸움은 미식 축구 뿐만 아니라 프로 스포츠라면 어디서건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드래프트 데이]를 재미있게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단장과 감독의 갈등. 그것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죠.

이제 써니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미 보 캘러헌을 뽑기 위해 3년간의 1순위 지명권을 시애틀 시호크스에게 넘긴 상황. 그런데 아무리봐도 보 캘러헌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점찍어 두었던 신인 최고의 수비수인 본테 맥에게 자꾸 마음이 가는 써니. 자! 써니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정신없이 써니의 하루를 쫓다보면 짜릿한 승리를 맛볼 것이다.

 

[드래프트 데이]는 써니의 하루만큼이나 정신없는 영화입니다. 써니를 중심으로 그에게 얽힌 수 많은 사람들이 써니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달려듭니다. 써니도 이에 지지 않고 다른 팀의 약점을 파고 들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쟁취해야 합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면서 단 한순간이라도 딴짓을 했다가는 이 복잡한 영화의 흐름을 놓칠 것입니다.

그러한 이 영화에서도 분위기를 늦추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알리입니다. 써니가 알리를 구단의 창고로 잠시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이 정신없는 영화조차도 잠시 뜨끈한 분위기로 돌아섭니다. 물론 그럴때마다 인턴 사원이 번번히 방해를 놓아서 뜨끈한 분위기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향후 3년 간의 1순위 지명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쟁취한 보 캘러헌을 지명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써니.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은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던 써니. 결국 그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를 얻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영화를 보는 저 역시도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죠.

[드래프트 데이]는 한때 [고스트 버스터즈],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데이브] 등을 통해 최고의 코미디 감독으로 활약하던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세련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중후한 멋이 있는 케빈 코스트너와 어울리지 않는 여전사의 옷을 벗어던진 후에야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제니퍼 가너의 편안한 연기 또한 참 좋았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