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비드 에이어
주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미레유 에노스, 올리비아 윌리암스, 테렌스 하워드, 샘 워싱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의 개봉일 변경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영화
저는 [사보타지]의 제목을 들으면 가장 먼저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 떠오릅니다.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 국내 개봉일을 7월 16일에서 돌연 7월 10일로 앞당겼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갑작스로운 개봉일 변경으로 스크린을 잡을 수 없었던 작은 영화들은 변칙 개봉이라며 반발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반발한 것이 [사보타지]의 수입사인 (주)메인타이틀픽쳐스였습니다.
결국 7월 10일 개봉 예정이던 [사보타지]는 7월 23일로 개봉일을 늦춰야 했고,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보다 더 무서운 [군도 : 민란의 시대]를 만나며 극장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영화 다운로드 어플인 hoppin에 [사보타지]가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본 저는 그냥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왕년의 액션 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보타지]가 이렇게 썸머시즌 대작 영화들 틈에서 제대로 관객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결국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하는 것을 보니 힘없는 작은 영화사의 비애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대작 영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작은 영화에 대한 짠한 마음과는 별도로 [사보타지] 자체만으로는 좋은 평가를 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액션과 스릴러가 혼합된 이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위해 영화 전체를 포기한 듯한 그런 영화입니다.
천만달러는 어디로 갔을까?
[사보타지]는 마약검거반 특수부대 최정예 브라보팀이 애틀란타의 거대 마약 조직을 급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존 브리쳐(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이끄는 브라보팀은 능수능란한 솜씨로 마약 조직을 소탕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거액의 돈 앞에서 그들은 갑자기 시간을 끕니다. 상부 몰래 마약 조직의 자금 중 천만 달러를 뒤로 빼돌린 것입니다.
문제는 상부에서 천만 달러가 사라졌음을 눈치채며 존 브리쳐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빼돌린 천만 달러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입니다. 자! 여기에서 이 영화는 한가지 의문점을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과연 천만 달러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존 브리쳐와 그의 팀원들이 아니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진 그 돈을 과연 누가 빼돌린 것일까요?
하지만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보타지]의 오프닝에 이미 제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영화의 오프닝은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담고 있거나([안녕, 헤이즐]처럼) [사보타지]처럼 영화의 반전에 대한 힌트를 숨겨놓는데 이용됩니다. [사보타지]는 오프닝에서 범죄조직에 의해 고문을 받으며 죽어가는 존 브리쳐의 아내의 영상을 보여줍니다.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러한 영상을 보는 존 브리쳐. 그리고 8개월 후로 시간이 넘어가고 애틀란타 마약 조직을 급습하는 장면이 이어진 것입니다.
오프닝에서 대놓고 반전을 알려주다.
아내가 고문을 받으며 죽는 영상을 일그러진 표정으로 보는 존 브리쳐. 그러한 오프닝은 존 브리쳐라는 캐릭터를 완성합니다. 존 브리쳐는 아내의 복수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영화에서는 존 브리쳐의 복수가 아닌, 사라진 천만 달러에만 집중합니다. 자! 그렇다면 존 브리쳐의 복수와 사라진 천만 달러의 상관관계만 대입하면 [사보타지]가 제시한 첫번째 질문인 '천만 달러는 어디로 사라졌는가?'라는 질문의 해답을 쉽게 찾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은 사라진 천만 달러가지고는 반전이 약하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존 브리쳐가 이끄는 브라보팀의 팀원들이 누군가에 의해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참 이상한 진행 방식입니다. [사보타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오프닝에서도 밝혔듯이 존 브리쳐의 복수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자 사라진 천만 달러의 행방으로 영화가 진행되고, 그것도 모자라 브라보팀원들의 죽음이라는 자극적인 장면들을 끼워 넣어 가장 중요한 존 브리쳐의 복수를 자꾸만 감춥니다.
이것은 오프닝에서 너무 대놓고 반전을 드러낸 것에 대한 부작용입니다. 눈치 빠른 관객들을 속이려다보니 다른 것에 이목을 돌리도록 유도해야 했고, 그것이 사라진 천만 달러, 브라보팀원의 죽음이라는 전개로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존 브리쳐의 복수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이상한 영화가 된 것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다.
사라진 천만 달러의 행방이라는 첫번째 질문은 존 브리쳐의 복수라는 영화의 소재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하지만 '누가 브라보팀원들을 죽이는가?'라는 두번째 질문은 존 브리쳐의 복수와 전혀 동떨어진 느닷없는 전개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보타지]는 점점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브라보팀원의 죽음을 수사하기 위해 FBI요원 캐롤라인(올리비아 윌리암스)이 등장하고, 존 브리쳐와 캐롤라인의 느닷없는 사랑의 감정이 끼어듭니다. 물론 존 브리쳐가 캐롤라인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곁가지들이 [사보타지]의 러닝타임을 대부분 잡아 먹습니다.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끝입니다. [사보타지]가 갑자기 끝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가장 중요한 존 브리쳐의 복수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영화가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이 [사보타지]를 2부작으로 기획한 것이 아니라면, [사보타지]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어정쩡하게 끝나버리는 이상한 액션 스릴러 영화로 기록될 것입니다. 게다가 '누가 브라보팀원들을 죽였는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존 브리쳐의 복수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숨기기 위해 심어진 장치이다보니 반전의 당위성도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이렇듯 [사보타지]는 영화의 오프닝에서부터 존 브리쳐의 복수를 꺼내놓고, 그것을 감추겠다며 이런 저런 곁가지들을 끌어들인... 그러다가 결국 가장 중요한 존 브리쳐의 복수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영화를 끝내는, 참 이상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사보타지]의 흥행 부진으로 [사보타지 2]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으니 결국 [사보타지]는 이상한 영화로 남을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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