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용기가 있는가?

쭈니-1 2014. 7. 30. 11:00

 

 

감독 : 라이언 머피

주연 : 줄리아 로버츠, 하비에르 바르뎀, 리차드 젠킨스, 제임스 프랭코

 

 

리즈는 무엇이 힘들었는가?

 

스마트폰 영화 다운로드 어플인 Hoppin에서 지난 일요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하룻동안 무료 였습니다. 2010년 9월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던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공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가 놓칠리가 없죠. 게다가 이 영화를 일찌감치 본 구피는 "굉장히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영화였어."라는 추천까지 했으니, 제가 다운로드 버튼을 누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월요일 밤, 혼자 거실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이 영화의 초반을 보며 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리즈(줄리아 로버츠)를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장, 번듯한 남편, 그리고 맨하탄의 아파트까지 완벽해보이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영화의 초반 그녀는 행복해 보였습니다. 남편인 스티븐(빌리 크루덥)에게 카리브해 출장을 함께 가자고 제안을 하며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하고 싶다며 리즈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리즈는  한밤중에 일어나 "결혼 생활의 끝이 보인다!"라고 고민하더니 스티븐에게 다짜고짜 "우리 이혼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 두 부부 사이에 더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이언 머피 감독이 그러한 갈등을 보여주지 않으니 관객인 제가 리즈를 이해할 수가 없죠. 그녀가 신에게 기도하며 제가 어떻게해야 하냐고 울부짖는 장면은 그렇기에 저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안방에서 잠시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온 애끚은 구피에게 "도대체 저 여자는 왜 힘든거야?"라며 짜증부렸을 정도입니다.

 

 

 

머무는 것보다 힘든 것은 떠나는 거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영화 초반은 리즈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영화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스티븐이 꿈을 위해 대학원 진학을 원하자 "우린 마치 다른 배를 타고 있는 것 같아."라며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젊은 연기자 데이빗(제임스 프랭코)과 만나 불같은 사랑을 나누더니 "계속 이렇게 사는건 죽는 것보다 잔인해."라며 또다시 데이빗의 곁을 떠납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가끔 여자는 정말 이해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저 역시 구피와 12년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끔은 구피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안되기도 하거든요. 아마 갑작스럽게 리즈에게 이혼당한 스티븐과 이별을 통보받은 데이빗 또한 멍한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저는 영화의 초반 리즈가 아닌 스티븐과 데이빗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남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리즈가 이탈리아, 인도, 발리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점차 그녀가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난 것입니다. 리즈가 스티븐과 이혼하기 전 "머무는 것보다 힘든 것은 떠나는 거다."라고 다짐했던 부분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리즈의 친구인 델리아(비올라 데이비스)는 리즈에게 "아기를 낳는 것은 얼굴에 문신하는 거다. 확신이 서야 해."라고 충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리즈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훌쩍 떠날 수가 없습니다. 내겐 얼굴의 문신과도 같은 웅이가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리즈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로마에서 달콤한 게으름을 배우다.

 

아마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많은 영화팬들에게 좋은 영화로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리즈의 용기있는 선택 때문일 것입니다. 우린 그럴 수 없으니까요. 직장, 가족, 그리고 내가 이룬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난다는 것은 평범한 우리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어디한번 리즈의 여행을 뒤쫓아가볼까요? 리즈가 처음 도착한 곳은 로마입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활기찬 이탈리아 친구들을 만나고, 맛잇는 음식을 실컷 먹습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달콤한 게으름'입니다. 이탈리아인들의 생활신조이죠.

성공적인 도시인이 되려먼 모든 것을 조절해야 합니다. 새벽형 인간이 되어 자기 계발에 힘써야 하고, 칼로리를 조절해서 몸매 관리를 해야 하며, 인간관계, 돈 관리 등등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운다면 우리는 경쟁 사회에서 뒤처져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리즈는 로마에서 '달콤한 게으름'을 배웁니다. 똥배 걱정없이 피자를 실컷 먹고, 밤새 쇼파에서 뒹굴다가 아침부터 친구들과 칠면조 요리를 나눠 먹으며 절제되지 않는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런 리즈의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자기 자신을 편하게 놓아준 것이죠.

리즈가 로마 여행의 막바지에 아우구스테움에서 깨달음이 그렇기에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때론 무너져도 괜찮아.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잖아." 우린 우리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무너지면 다시 세울 수 있으니, 가끔은 내 자신에게 '달콤한 게으름'을 허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인도에서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다.

 

이탈리아 로마에 이은 리즈의 여정은 인도로 이어집니다. 인도의 아쉬람에서 명상을 하고, 기도와 봉사를 하며 생활을 하던 리즈. 그녀는 그곳에서 잔소리꾼 중년 남성 리차드(리차드 젠킨스)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리즈는 리차드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지만 그의 사정을 들은 이후에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리차드는 술과 마약에 쩔고 여자들과 어울리며 결국 다 잃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존심도, 직장도, 그리고 가족도... 특히 음주운전으로 8살난 아들을 죽일뻔 한 사건 이후, 아내와 아들이 집을 떠났고, 그후 10년 동안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울먹이는 리차드의 모습은 처음 인도를 방문한 리즈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자. 자신을 용서할 때까지 여기에 있기. 알지? 그럼 나머지는 저절로 잘될거야."라고 리즈에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리즈는 자신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났지만, 그로인하여 상처를 입은 스티븐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촘촘하게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가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구에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리즈의 경우는 진정한 내 자신을 찾고 싶다는 매우 개인적인 바람의 의한 행동 하나로, 그녀의 전남편인 스티븐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한 죄책감에 시달린다면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는 리즈의 여행은 무의미해집니다. 그녀는 리차드의 말처럼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리즈가 인도에서 기도하며 배운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발리에서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리즈의 마지막 행선지는 발리입니다. 사실 그녀의 여정은 발리에서 만난 주술사 케투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리즈는 발리에 머물며 여유로운 휴가를 만끽합니다. 그러다가 브라질에서온 펠리프(하비에르 바르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결혼에 대한 아픔 상처가 있는 펠레프, 그렇기에 그는 자신과 같은 이혼 경험이 있는 리즈에게 호감을 표시합니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리즈는 두려워합니다. 다시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녀는 이미 스티븐과 한번 결혼을 했고, 자기 자신을 되찾겠다며 스티븐에게 상처만 남겨주고 떠났었습니다. 펠리프와 다시 사랑한다면 펠리프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녀는 "어렵게 찾은 내 삶의 균형을 잃고 싶지 않아!"라며 펠리프와의 사랑을 외면하려합니다.

하지만 케투는 말합니다. "때론 사랑을 하다가 균형을 잃지만, 그래야 더 큰 균형을 찾아가는 거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아픔과 상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겪는 아픔과 상처가 가장 아프고, 가장 치유하기 힘든 법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사랑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법이죠. 사랑으로인한 상처가 두려워 평생 홀로 살아간다면 외로움이라는 또다른 상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것은 외로움은 그 어떤 아픔, 상처보다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리즈는 발리에서 그렇게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며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용기가 있는가?

 

"결국 이렇게 진실탐구법칙을 깨닫게 됐다. 중력만큼이나 강한 그 자연법칙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다 버리고 떠날 용기만 있다면, 안락함도 집착도 뒤로 한채 몸과 마음이 원하는 진실을 찾아 나선다면, 그 여행의 매 순간마다 새로운 걸 배우고 어깨를 부딪친 모두가 삶의 스승임을 안다면, 힘들겠지만... 아픔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진실은 당신을 비켜갈 수 없다. 이걸 다 믿게 된 건 바로 내 경험 때문이다."

마지막 펠리프에게 달려가며 리즈는  이탈리아, 인도, 발리에서 얻은 삶의 진실들을 다시금 되뇌입니다. 처음엔 자신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 놓은채 무작정 이탈리아로 떠났던 리즈. 그곳에서 실컷 먹으며 지친 도시 생활의 그림자를 걷어 냈고, 인도에서 기도하며 그녀가 상처줬던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벗겨냈고, 발리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한 셈입니다.

리즈는 펠리프에게 말합니다. '아트라베시아모' 이탈리아어로 '같이 건너보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리즈의 여정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으로 귀결되는 셈이죠.

저는 그녀처럼 내가 이룬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용기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며 리즈의 여정에 대리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리즈와는 달리 내 삶을, 그리고 내 가족들을 사랑하니까요. 지금의 내 자신을 무너뜨릴 이유가 없으니 리즈처럼 훌쩍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때 다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면서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