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밀리언 웨이즈] - 과감하지 못한 성인 코미디보다, 의외의 훈훈한 로맨스에 박수를...

쭈니-1 2014. 6. 13. 23:47

 

 

감독 : 세스 맥팔레인

주연 : 세스 맥팔레인, 샤를리즈 테른, 리암 니슨, 아만다 사이프리드, 닐 패트릭 해리스

개봉 : 2014년 6월 12일

관람 : 2014년 6월 1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19곰 테드]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매주 목요일은 새로 개봉하는 신작 영화를 보느 날입니다. 당연히 신작 영화 중에서 기대작 1순위를 먼저 봐야 할테지만, 여러  이유로 기대작 1순위 영화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은 기대작 1순위 영화를 웅이와 함께 봐야할 영화일 경우입니다. 웅이와 영화 보기는 주말이나 가능하기에 웅이와 함께 봐야할 기대작 1순위는 신작 영화의 개봉일인 목요일이 아닌 그 주의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보곤 합니다.

기대작 1순위가 뒤로 밀리는 경우는 또 있습니다. 비록 기대작 1순위 영화는 아니지만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서둘러 보지 않으면 언제 극장에서 내려질지 모르는 영화가 있다면 기대작 1순위 영화를 미뤄두고 최우선적으로 그 영화를 먼저 봅니다. 지난 목요일 제가 기대작 1순위인 [황제를 위하여] 대신 [밀리언 웨이즈]를 본 것이 바로 그러한 경우입니다.

[밀리언 웨이즈]는 [19곰 테드]를 통해 미국식 성인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줬던 세스 맥팔레인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게다가 샤를리즈 테른을 비롯하여 리암 니슨, 아만다 사이프리드,  닐 패트릭 해리스, 지오바니 리비시 등 유명 배우들이 이 영화를 위해 기꺼이 망가지기를 자청하고 나섰으며, 무엇보다도 제가 좋아하는 서부극입니다.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만남, 얼핏 들으면 이 두 장르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곰인형과 성인 코미디를 완벽하게 조화시켰던 [19곰 테드]를 떠올려 보면 어울리지 못할 이유 또한 전혀 없습니다.

 

[19곰 테드]는 어린 시절 왕따를 당하던 존(마크 월버그)의 소원에 의해 생명을 얻게된 곰인형 테드(세스 맥팔레인)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왕따 소년과 그러한 왕따 소년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주는 귀여운 곰인형. 여기까지는 훈훈한 가족용 코미디의 소재입니다. 그런데 세스 맥팔레인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존과 테드의 우정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 것이죠. 어른이 된 존과 마찬가지로  성인 곰인형이 된 테드도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음담패설과 욕설을 일삼습니다.

[19곰 테드]는 귀여운 곰인형이라는 소재에 성인 코미디에 접목시키며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덕분에 [19곰 테드]는 2억1천8백만 달러가 넘는 북미 흥행 수입을 올렸고, 월드 와이드 흥행 성적은 무려 5억4천9백만 달러입니다. 제작비 5천만 달러의 영화가 10배가 넘는 흥행 수입을 올린 셈입니다. 이러한 [19곰 테드]가 있었기에 저는 [밀리언 웨이즈]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밀리언 웨이즈]는 북미에서 극도의 흥행 부진에 빠져 있습니다. 게다가 국내 개봉에서도 상영관을 몇개 잡지 못한채 개봉 첫날 일일 박스오피스 10위에 그쳤습니다. 하긴 전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19곰 테드]마저도 우리나라에서는 26만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으니 [밀리언 웨이즈]의 흥행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극장에서는 흥행이 부진한 영화의 경우 1주일 상영조차 힘듭니다. 그렇기에 [밀리언 웨이즈]는 이번 주가 지나면 상영하는 극장을 찾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가 [황제를 위하여]를 미뤄두고 [밀리언 웨이즈]를 보기 위해 서둘러 극장을 찾은 이유입니다. 

 

 

서부극 + 성인 코미디? 서부극 + 로맨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저는 서부극을 좋아합니다. 물론 제가 본격적인 영화광의 길에 접어들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서부극은 멸종 위기를 맞이한 한물간 영화 장르였습니다. 그렇기에 서부극을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국내에 개봉했던 서부극을 대부분 재미있게 관람했습니다. 특히 요 몇년간 개봉한 서부극인 [더 브레이브], [장고 : 분노의 추적자]는 제겐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그러한 서부극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에 [밀리언 웨이즈]를 보러 극장으로 향하며 거친 서부극이라는 장르와 미국식 성인 코미디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굉장히 궁금했습니다. 그러한 궁금증 속에 드디어 영화가 시작됩니다. [밀리언 웨이즈]는 오프닝에서부터 전형적인 서부극의 배경인 황량한 사막과 서부극에 어울리는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저는 속으로 '시작이 꽤 좋은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서부극의 장르 자체를 비틀며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밀리언 웨이즈]는 마치 고전 서부극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과 음악으로 영화를 시작했으니까요.

그 이후로 보여주는 것이 서부극이라는 장르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양치기 청년 알버트(세스 맥팔레인)와 전형적인 서부극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잔인한 총잡이 클린치(리암 니슨)의 캐릭터 소개입니다. 특히 알버트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저를 포복절도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의 초반 결투에 나선 알버트가 그림자를 이용하여 성인 코미디를 펼쳐 보이는 장면은 제가 기대한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절묘한 조화였습니다. 이러한 [밀리언 웨이즈]의 초반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부극 안에 성인 코미디를 효과적으로 삽입시키겠다는 세스 맥팔레인의 다짐으로 보였습니다.

 

이후 [밀리언 웨이즈]는 알버트가 겁쟁이라는 이유로 연인이었던 루이즈(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실연의 아픔에 빠져 있던 그가 우연히 악명높은 총잡이 클린치의 아내인 애나(샤를리즈 테른)를 만나 가까워지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영화 초반의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는 알버트와 애나가 만나는 순간부터 자취를 감춰 버립니다.

영화 초반으로 인한 기대가 너무 컸기에 중반에 펼쳐지는 이러한 상황은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영화 초반만 하더라도 [밀리언 웨이즈]는 [19곰 테드]처럼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를 잘 조화시킬 것으로 기대가 되었습니다. 서부극의 전형적인 캐릭터 클린치와 성인 코미디에 어울리는 알버트의 등장은 이러한 두 장르의 조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 이후 클린치는 자취를 감춰버립니다. 그 대신 클린치의 아내인 애나가 등장하는데 문제는 애나의 등장과 함께 [밀리언 웨이즈]는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의 형태를 띄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애나와 알버트의 데이트는 애나가 알버트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고, 사막에서 데이트 도중 방울뱀과 만나는 등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제가 기대했던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가 맘껏 펼쳐지는 것 또한 아닙니다..

[밀리언 웨이즈]에서 서부극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클린치가 영화의 초반에 잠깐 소개되었다가 후반부가 되어서야 비로서 활약을 하는 것은 [밀리언 웨이즈]가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를 제대로 구축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서부를 배경으로한 로맨스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그것도 매력적이지만 애초에 제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기에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인 코미디는 조연에게 맡겨 버려!!!

 

[밀리언 웨이즈]가 알버트와 애나의 로맨스에 집중되며 클린치로 대표되는 서부극의 재미는 잠시 뒤로 밀립니다. 그렇다면 성인 코미디는? 아쉽게도 알버트에 의한 성인 코미디는 영화 초반 그림자 장난을 제외하고는 알버트의 친구인 에드워드(지오바니 리비시)와 그의 애인 루스(사라 실버맨)에게 넘어가 버립니다.

창녀인 루스. 그녀는 하루에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20명의 남자들과 돈을 받고 섹스를 나눕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러한 루스의 직업에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루스는 그날 만난 변태적인 손님의 성행위에 대해서 에드워드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심지어는 얼굴에 손님의 정액을 묻히고 에드워드 앞에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에드워드에게는 결혼전까지 순결을 유지하겠다고 섹스를 거부합니다. [밀리언 웨이즈]는 에드워드와 루스라는 어이없는 커플을 통해 성인 코미디의 잔재미를 이끌어냅니다.

[밀리언 웨이즈]는 성인 코미디를 에드워드와 루스에게 맡기고, 서부극의 재미는 클린치와 함께 잠시 뒤로 밀어둡니다. 그 대신 루이즈를 되찾고 루이즈의 새 남친인 포이(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애나와 함께 총 쏘는 훈련을 시작하지만, 점차 애나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알버트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런데 알버트와 애나의 사랑에는 성인 코미디도, 서부극의 재미도 없습니다. 그저 장소만 서부로 옮긴 평범한 로맨스가 있을 뿐입니다. 샤를리즈 테른은 이 영화의 성인 코미디적 재미를 위해서 좀 더 망가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름답고, 귀엽기만 했습니다. 세스 맥팔레인은 좀 더 과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19곰 테드]때와는 달리 몸을 사립니다.

 

영화를 보며 '이건 내가 기대했던 영화가 아닌데...'라며 실망하려던 찰라, 드디어 클린치가 본격적으로 출격합니다. 클린치의 재등장은 [밀리언 웨이즈]가 다시 서부극의 재미를 되살리겠다는 의지와도 같습니다. 특히 애나가 클린치의 항문에 꽃을 꽂어 넣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다시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라는 애초의 목적으로 되돌아 왔음을 천명합니다.

자신의 아내가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안 클린치는 알버트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알버트는 당연히 도망칩니다. 하지만 애나가 클린치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 알버트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애나를 포기하고 평생 겁쟁이로 살 것인지, 아니면 남자답게 클린치의 결투를 받아들일 것인지...

제대로 총을 쏠 줄조차 모르는 알버트와 서부 최고의 총잡이 클린치의 대결. [밀리언 웨이즈]가 제시한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물론 알버트는 정정당당하게 클린치와 맞서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이기에 당연한 결말일 것입니다. 그래도 서부극의 긴장감 넘치는 클리아맥스는 이 영화에 대한 제 실망을 어느 정도는 어루만져줬습니다.

 

 

서부에서 죽는 100만가지 방법

 

저는 이 세상 모든 영화를 재미있게 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가끔 제 목표와는 달리 영화를 재미있게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 자체가 워낙 엉망이라서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영화에 대한 잘못된 기대 때문에 영화의 재미를 놓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밀리언 웨이즈]는 바로 후자의 경우입니다.

[밀리언 웨이즈]에서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를 기대한다면 분명 실망할 것입니다. 물론 [밀리언 웨이즈]는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라는 목표로 제작된 영화로 보이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재미는 오히려 다른 부분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알버트와 애나의 사랑입니다.

[밀리언 웨이즈]의 원제는 'A Million Ways to Die in the West'입니다. 번역을 하자면 '서부에서 죽는 100만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원제의 제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알버트는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서부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고... 총에 맞아 죽고, 늑대에 물려 죽고, 인디언의 습격으로 죽고, 매일 사람들이 어이없게 죽어 나가지만 아무도 그러한 죽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곳이 바로 이 영화의 배경인 1882년 서부입니다.

실제 [밀리언 웨이즈]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코믹 코드로 이용할 뿐입니다. 그러한 시대 상황에서 여자들이 강한 남자에게 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착한 남자 알버트. 그는 서부에서는 루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루이즈도 알버트를 떠나 서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이죠.

 

하지만 애나는 알버트의 진가를 알아봅니다. 이미 서부에서 최고로 강한 남자인 클린치와 결혼을 한 그녀는 진정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강한 남자가 아닌 자신을 위해줄 수 있는 착한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강한 남자를 찾아 자신의 곁을 떠난 루이즈 때문에 상처를 받은 알버트와 강한 남자와 살아봤지만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님을 깨달은 애나의 만남. [밀리언 웨이즈]는 알버트와 애나의 사랑을 꽤 달콤하게 그려냅니다. 알버트와 애나에게는 성인 코미디의 굴레를 덮어 씌우지 않은 것은 그러한 그들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기 위한 세스 맥팔레인 감독의 배려입니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프로메테우스] 등 최근 너무 강한 캐릭터만 맡았던 샤를리즈 테른. 제가 잠시 잊고 있었던 샤를리즈 테른의 아름다움과 귀여운 웃음을 다시 일깨워줬다는 것은 그만큼 [밀리언 웨이즈]는 로맨스로서의 장르적 재미가 살아 있음을 뜻합니다.  

이렇듯 [밀리언 웨이즈]는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의 조화를 이룬 영화로 기대하고 본다면 좀 더 과감하지 못한 이 영화의 소심함에 실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밀리언 웨이즈]를 서부를 배경으로한 달달한 로맨스 영화로 감상한다면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부에서는 100만가지 방법으로 죽을 수 있지만, 그러한 죽음 따위 두렵지 않게 해주는 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요? [밀리언 웨이즈]는 비록 제가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제가 기대하지 못했던 로맨스를 안겨준 영화이기도 합니다.   

 

P.S. 세스 맥팔레인은 [빽 투 더 퓨쳐]의 열렬한 팬인가봅니다. 영화 중간에 브라운 박사(크리스토퍼 로이드)와 드로리안이 나와서 깜짝 놀랬습니다. 저 역시 [빽 투 더 퓨쳐]의 좋아하거든요. 

 

서부에는 100만가지 죽는 방법이 있듯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100만가지 방법도 있다.

그 중 하나는 기대했던 재미가 없어도 새로운 재미를 찾아내는 순발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