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상준
주연 : 이민기, 박성웅, 이태임
개봉 : 2014년 6월 11일
관람 : 2014년 6월 1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영화들의 전성시대?
언제부터인가 극장가의 우리 영화는 남성미를 내세운 영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류승룡의 남성적 매력이 돋보였던 [표적]을 시작으로, 이선균과 조진웅의 대결로 영화를 진행시킨 [끝까지 간다]가 흥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6월 3일에는 [우는 남자]와 [하이힐]이 동시에 개봉해서 각각 장동건과 차승원의 남성적 매력을 전면에 배치했으며, 6월 11일에는 [황제를 위하여]와 [스톤]이 남성미 넘치는 영화의 바통을 이어 받았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개봉예정작을 보더라도 정우성, 이범수 주연의 [신의 한수], 지성, 주지훈, 이광수가 주연을 맡은 [좋은 친구들], 하정우와 강동원의 카리스마가 격돌할 [군도 : 민란의 시대], 최민식이 카리스마 넘치는 이순신 장군역을 맡은 [명량] 등등 대부분의 우리나라 흥행 기대작은 남성 캐릭터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엇비슷한 영화들이 동시에 개봉하면 아무리 남성미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고 할지라도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미 [우는 남자]와 [하이힐]이 흥행에 실패했고, [황제를 위하여] 역시 기대와는 다른 흥행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신세계]의 흥행성공 이후 남성미 넘치는 영화에 우루루 몰려든 우리나라의 영화 기획자들은 이러한 쏠림 현상에 대해서 반성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황제를 위하여]를 보고 왔습니다. 저 역시 남성미 넘치는 영화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황제를 위하여]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에 이은 이민기의 연기 변신과 이민기와 박성웅의 카리스마 격돌, 그리고 이 영화에서의 노출 연기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이태임에 대한 호기심이 저를 극장으로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아쉽게도 [황제를 위하여]를 보기 전부터 느꼈던 피곤함을 영화를 보는 내내 느껴야 했습니다.
솔직히 [황제를 위하여]는 굉장히 감각적인 영화입니다. 부산의 야경은 마치 그림같이 멋있었고, 이민기의 강렬한 눈빛 연기는 예전의 이민기를 잊기에 충분했습니다. 강한 남성 영화가 뜨면서 전성기를 맞이한 박성웅의 매력 넘치는 연기도 좋았고, 몸을 사리지 않는 이태임의 노출 연기도 예상만큼 화끈했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영화의 겉모습이 멋있다고해서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멋있는 영화가 재미있어질 확률도 분명 높지만, 그러한 멋이 속까지 꽉 차지 않은채 겉멋만 든 영화라면 보고나서 허무해지기 마련입니다. [황제를 위하여]가 그렇습니다. 남성적인 멋진 액션과 화끈한 섹스씬이 펼쳐지고, 이민기와 박성웅이 아무리 멋있게 폼을 잡아도 그것이 전부라면 관객을 만족시킬 수가 없는 법이죠.
초반 10분...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한다.
[황제를 위하여]는 시작하자마자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어느 모텔에서 벌어지는 피가 난무하는 단체 습격씬. 사시미칼을 집어든 조직 폭력배와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은 다른 조직의 폭력배들의 혈투.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뒤엉킴 속에서도 이환(이민기)만은 슬로우 비디어로 멋지게 관객앞에 등장합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피가 난무하는 혈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플래쉬백으로 이환과 연수(이태임)의 섹스씬이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모텔 습격씬이 끝나면 곧바로 부산의 화려한 야경이 비춰집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오프닝씬은 [황제를 위하여]가 가지고 있는 영화적 재미인 폭력, 섹스, 그리고 부산의 야경을 한꺼번에 함축하여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오프닝 장면은 영화의 첫 시작이 아닙니다. 이 장면 이후 이환의 나래이션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촉망받는 야구 선수였지만 승부 조작에 연루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되었고, 이후 부산 최대 규모의 조직인 황제 캐피탈의 대표 상하(박성웅)를 만나 그의 조직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는 것까지...
이렇게 이환의 과거를 쫓아가다보면 영화 오프닝에서의 모텔 습격씬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자!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짚어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황제를 위하여]의 오프닝씬인 모텔 습격씬은 과연 두번이나 반복해서 등장할만큼 중요한 장면인가? 라는 점입니다
[황제를 위하여]처럼 중요한 장면을 오프닝에 배치한 후, 과거로 되돌려 오프닝의 장면을 설명하는 것은 영화에서 꽤 자주 써먹는 기법입니다. 대부분 그런 영화의 경우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즉 마지막 장면을 배치합니다.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반전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황제의 위하여]는 조금 다릅니다. 모텔 습격씬은 대부분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끝부분이 아닙니다. 모텔 습격씬이 영화의 중반에 두번째 등장했을때 저는 시계를 잠시 들여다봤는데, 1시간 45분의 러닝 타임 중 정확히 50여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것은 말그대로 모텔 습격씬이 [황제를 위하여]의 중간 장면임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모텔 습격씬으로 영화의 전반부와 다른 급반전을 이루는 것일까요?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의 급반전이라 함은 이환과 상하의 관계가 틀어지는 부분인데, 모텔 습격씬은 그러한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차라리 이환과 작두(정흥채)의 1대1 결투씬과 작두를 산에 묻는 장면이 전반부와 후반부가 나눠는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황제를 위하여]는 모텔 습격씬을 오프닝에 배치했을까요? 그것은 단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에 모텔 습격씬과는 상관이 없는 연수와의 섹스씬도 중간중간에 삽입된 것이죠. [황제를 위하여]는 그런 식입니다. 스토리 라인을 짜임새있게 이루기 위함이 아닌, 그저 화려함과 자극적인 장면들을 관객에게 보여주며 현혹시키는 장면들로 영화를 가득 채워버립니다.
연수는 이환에게 어떤 존재인가?
[황제를 위하여]가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과 자극적인 장면들로 가득 채워진 것은 연수라는 캐릭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황제를 위하여]와 같은 남성미가 가득 넘치는 영화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줄 여성 캐릭터는 흥행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세계]의 송지효가 연기한 신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연수는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요? 일단 이환과의 로맨스는 아닙니다. 이환과 연수를 로맨스 관계로 묶기에는 조금 어정쩡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환과 상하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 팜므파탈같은 존재일까요? 아쉽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분명 연수로 인하여 이환은 조직에서의 공고했던 자신의 위치를 잃지만, 그것이 이환과 상하의 관계가 틀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저 눈요기거리인 셈입니다. [황제를 위하여]에서 연수라는 캐릭터를 쏘욱 빼보죠. 전혀 스토리 라인을 진행시키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이미 이환은 승부 조작에 연루된 과거 때문에 자신이 3년동안 키워낸 스포츠 도박 사이트의 경영권을 상하에게 빼앗겼고, 그로인하여 이환과 상하의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두의 말 한마디로 이 둘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진 것이죠. 연수와의 관계는 이환과 상하의 관계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황제를 위하여]는 영화 개봉 전부터 이태임의 노출 연기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했습니다. 이태임이 과거 드라마에서 나왔던 수영복 자태가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박상준 감독은 이태임을 그런 식으로 영화에 이용한 것입니다. 물론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이태임 역시 [황제를 위하여]의 노출씬으로 인지도를 끌어 올렸으니 서로에게 WIN - WIN인 셈이긴 합니다만...
이환과 연수의 첫 만남부터 보죠. 이환과 연수의 첫 만남은 영화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박상준 감독이 연수라는 캐릭터를 중요하게 부각시키려 했다면 황제 캐피탈의 조직원이 되는 것을 주저하던 이환이 연수에게 욕망을 느낀 후 황제 캐피탈의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으로 묘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환과 연수의 첫만남에서 이미 이환은 황제 캐피탈의 조직원이 되기로 마음 먹은 후였습니다.
이환과 연수의 관계로 인하여 한득 회장(김종구)와 갈등을 빚는 것도 아니고, 상하가 이환과 연수를 떼어 놓음으로 인하여 이환이 상하에게 앙심을 품는 것도 아닙니다. 급기야 영화의 마지막에는 연수의 뒷모습을 보며 "한번도 그녀가 날 먼저 찾은 적이 없어."라는 거짓말로 둘의 관계를 정리합니다. 하지만 우린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그들의 관계에서 첫 손을 내민 것은 이환이 아닌 연수였음을... 결국 연수는 노출이라는 자신의 임무를 완성한 후 그녀의 존재가 필요없는 영화의 후반부엔 어정쩡한 이유로 퇴장해버린 것입니다.
귀찮아서 그랬을까? 후반부를 대충 그린 이유는?
영화는 예상대로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이환이 더 큰 야망을 위해서 상하를 배신하는 것으로 스토리 라인의 반전을 이끌어냅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영화의 후반부는 [황제를 위하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하지만 박상준 감독은 그러한 부분을 대충 넘겨 버립니다.
그로인하여 영화의 후반부는 아무 생각없이 마구 질주하는 고삐풀린 망아지같습니다. 욕망을 위한 이환의 반격은 특별한 설명도 없이 그저 깐죽대는 검사 한명 출연시킴으로써 서둘러 마무리짓습니다. 그 이후 한득의 반격, 상하의 심경 변화 등 [황제를 위하여]는 전반부에 영화가 보여줄 것은 전부 보여줬으니 이젠 남자들의 멋진 우정으로 마무리짓겠다며 대충 대충 영화를 결말짓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면은 [황제를 위하여]가 꽤 솔직한 오락 영화임을 드러냅니다. 이환의 복수, 그리고 욕망이라는 소재 하나만으로 부산 조직 폭력배의 잔인한 액션, 그리고 연기력 대신 몸매를 내세운 이태임을 느닷없이 벗기고, 극장 안 대부분일 것이 거의 확실한 남성 관객의 눈을 사로 잡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화려한 야경, 극장안을 빵빵하게 채운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마치 관객들에게 '복잡한 생각은 하지 말고 이 영화의 단순한 재미를 그저 즐기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박상준 감독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화려함과 자극적인 장면만으로 [황제를 위하여]는 제2의 [신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중반, 상하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이환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들은 오징어 배를 밤바다의 별이라며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만, 가까이서 오징어 배를 들여다보면 잡히고, 죽이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고 말입니다. 그러한 상하의 의미심장한 대사는 오히려 [황제를 위하여]의 박상준 감독이 되새겨야할 충고입니다.
분명 [황제를 위하여]는 화려한 감각적인 영화입니다. 영화 오프닝에서부터 후반부까지 이 영화의 감각적인 영상은 한편의 자극적인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황제를 위하여]가 담고 있는 주제는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폭력, 섹스, 배신, 그리고 야망 등 화려함에 감춰진 온갖 추잡한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결국 이환은 오징어 배의 불빛에 현혹된 한마리의 오징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을 뿐, 그는 치열한 욕망의 현장에 던져진 희생양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박상준 감독은 이환을 폼나게 그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나봅니다. 자신도 분명 이환이 오징어 배의 불빛에 현혹된 희생양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상하를 희생시켜서라도 이환을 끝까지 멋있게 그리고 싶었나봅니다. 그러나 영화의 화려한 멋은 영화 재미의 전부일 수 없습니다. 그저 영화 재미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뿐입니다. 그것을 제작자 및 감독들이 어서 빨리 깨달아야 제2의 [신세계]가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징어 배를 타 본적이 있는가?
멀리서 보면 화려하게만 보이는 오징어 배이지만,
배 위의 선원들은 싸늘한 밤바다의 바람을 버티고
오징어를 많이 잡아야 가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는 치열함으로 일을 한다.
그저 멀리서만 보고 '멋있다'라고 칭송하는 것... [황제를 위하여]는 그런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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