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님포매니악 볼륨 1] - 본능과 이성의 대화... 어서 빨리 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다.

쭈니-1 2014. 6. 25. 15:26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주연 : 샤를로뜨 갱스부르, 스텔란 스카스가드, 스테이시 마틴, 샤이아 라보프, 크리스찬 슬레이터, 우마 서먼

개봉 : 2014년 6월 18일

관람 : 2014년 6월 24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도그마 95', 그후 20년... 본능과 이성의 충돌

 

영화탄생 100주년이었던 1995년 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4명의 젊은 덴마크 감독들이 '도그마 95'를 선언합니다. '도그마 95'는 영화의 인위적 요소를 배제하고 영화의 순수성을 되찾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그마 95'에 의하면 촬영은 세트가 아닌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필름의 인위적인 조작과 필터, 특수조명을 금지 시키는 등 과도한 테크닉으로 포장된 영화를 지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도그마 95'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입니다. 우리에겐 [킹덤]과 [어둠 속의 댄서]로 잘 알려진 그는 [도그빌], [안티크라이스트], [멜랑콜리아] 등 숱한 화제작을 연출한 문제적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젊은 시절 주장한 '도그마 95'을 아직 지키면서 영화를 연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도그마 95'는 특수효과를 앞세운 할리우드에 저항한 젊은 유럽 영화 감독들의 이상적 외침에 불과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관심조차 없었던 '도그마 95'라는 20년 전의 선언을 이제와서 다시 꺼내든 것은 [님포매니악 볼륨 1]을 어제 보고 왔기 때문입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오프닝, 물방울이 떨어지는 어느 뒷골목을 카메라가 천천히 잡아냅니다. 그 흔한 배경음악도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소리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도그마 95'가 떠올렸던 것입니다. 

 

설마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제와서 '도그마 95' 선언 그대로 영화를 찍으려 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드는 그 순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그런 저를 비웃듯 어느 노신사의 등장과 함께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갑자기 분출시킵니다. 

참 흥미로운 오프닝입니다. 자연 그대로의 순수성을 영화에게 되돌려 주자는 '도그마 95'를 떠오르게 하는 비오는 골목 장면과 인위적인 기계음을 앞세운 헤비메탈이 공존하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오프닝. 그러한 상반된 오프닝에는 조(샤를로뜨 갱스부르)와 샐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이라는 역시 상반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뒷골목에서 피 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조를 비추는 장면에서는 인위적인 음향 사용이 자제되었습니다. 하지만 샐리그먼이 등장하자마자 영화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헤비메탈 음악이 배경으로 사용됩니다. 이는 조와 샐리그먼이라는 두 캐릭터의 상반된 성격을 영화 초반부터 관객에게 강력하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섹스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에 충실한 조는 날 것 그대로를 담은 인간 본연의 모습입니다. 다시말해 본능에 충실한 캐릭터인 셈입니다. 그와는 달리 헤비메탈 음악과 함께 등장한 샐리그먼은 자신의 본능을 감춘 이성적인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상반된 두 캐릭터가 이야기를 나눕니다. 조가 자신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샐리그먼은 그것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는 식입니다.

 

 

본능에 충실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사실 지난 주 내내 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빠져 있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곤했고, 결국 감기몸살에 스트레스성 장염까지 걸렸지만, 주말마저도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제, 저를 이 지경으로 빠뜨린 회사일이 어느정도는 잘 마무리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긴장감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며, 시원함과 함께 허무함이 밀려 왔습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은 그러한 제 복잡한 기분을 달래줄 것으로 기대하고 선택한 영화입니다. 왜하필 [님포매니악 볼륨 1]이었는지는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판타지 멜로 [미녀와 야수]도 있고, 니콜 키드먼의 기품있는 모습을 즐길 수 있는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와 코미디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있는데, 저는 그들 영화 대신 [님포매니악 볼륨 1]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제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영화라고는 [킹덤]과 [어둠 속의 댄서]만 봤었고, 그들 영화마저도 영화를 보는 내내 유쾌함 대신 불편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제 상황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전혀 맞지 않아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며, 또한 가장 금기시하는 섹스를 소재로한 영화라는 점이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물론 단순히 야한 영화를 기대한 것은 아닙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가 단순히 야한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점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고, 이 영화에 대한 다른 분들의 리뷰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님포매니악 볼륨 1]에 그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성적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섹스라는 소재를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신랄하게 비꼼으로써 얻을 수 있는 반항의 쾌감입니다. 제가 지난 주내내 반항 대신 복종을 택하며 얻은 직딩의 비애와 스트레스를 [님포매니악 볼륨 1]이 시원하게 날려주길 기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앞서 소개한 이 영화의 오프닝만큼이나 [님포매니악 볼륨 1]은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임과 동시에 반항의 쾌감과 의외의 웃음까지 안겨줬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님포매니악 볼륨 1]을 관람했기에 영화가 끝났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넘었지만, 연달아 [님포매니악 볼륨 2]가 보고 싶었을 정도였습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은 골목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조를 발견한 샐리그먼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샐리그먼은 다친 조를 위해 응급차를 부르려고 하지만 조는 이를 완강히 거부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지 따뜻한 밀크티였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샐리그먼은 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샐리그먼의 침대에서 다친 몸을 추스리는 조.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샐리그먼에게 들려줍니다. 두살 때 이미 자기 성기의 센세이션한 느낌을 발견했던 그녀가 이후 수 많은 남성들과 섹스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이 '낚시 대전', '제롬', 미세스 H', '섬망', '오르간 학파'라는 부제목으로 차례대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일단 조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십대 소녀의 당돌한 섹스 경쟁, 첫사랑, 섹스 상대의 전부인이 집으로 쳐들어온 상황,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과 각기 다른 섹스 스타일을 가진 남자들과의 경험까지... 조의 이야기는 제 예상과는 달리 심각함 대신 코믹함이 가미되었습니다. 게다가 조의 섹스 경험담을 들으며 중간 중간 끼어드는 샐리그먼의 어이없는 한마디는 웃음을 안겨줍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렇게 유머 감각이 넘치는 감독일줄은 미처 몰랐네요.

 

 

조는 왜 자기 혐오에 빠져 있는가?

 

조의 이야기를 듣기 전 우리가 한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 영화의 오프닝에서 조는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골목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샐리그먼이 응급차를 부르는 것은 물론 경찰에 신고하는 것조차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모두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샐리그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줄때도 그녀는 "내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아느냐?"며 자기 혐오에 빠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막상 조의 이야기를 듣던 샐리그먼은 그러한 조의 자기 혐오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섹스라는 사회 금기에 죄책감을 느끼는 그녀에게 샐리그먼은 "날개가 있는데 좀 날면 어떤가?"라며 반문하기도 합니다.

결국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조의 섹스에 대한 체험담임과 동시에 그녀가 왜 자기 혐오에 빠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녀가 누구에게 폭행을 당했는지, 왜 폭행을 당했으면서 자책을 하며 신고하기를 거부했는지에 대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조가 샐리그먼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하나씩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장 '낚시대전'은 10대의 철없는 사춘기 시절, 어린 조(스테이시 마틴)가 절친인 B와 함께 기차에서 '누구 더 많은 남자와 섹스를 하나' 내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능수능란한 B에게 큰 점수차로 지던 조. 하지만 1등급 열차에 타고 있는 중년의 신사를 유혹하면 조가 역전 승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조는 자신과의 섹스를 거부한 중년의 신사에게 다가섭니다. 사실 그는 아내의 배임기에 맞춰 서둘러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아내를 임신시키기 위해 자신의 정자를 아끼려는 중년의 신사. 하지만 조는 오랄섹스를 통해 '제발 그러지마!'라는 그의 외침을 공허하게 만듭니다.

 

'낚시대전'은 마치 10대의 섹스 코미디를 보는 듯, 경쾌하게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조차 조는 자기 혐오의 요소를 찾아냈고, 샐리그먼은 조의 행위로 인하여 오히려 중년 신사의 정자는 활동성이 활발해져 아내를 임신시켰을 것이라며 그녀를 위로해줍니다.

'낚시대전'에서는 당돌한 소녀들의 섹스 내기와 샐리그먼의 플라잉 낚시 경험이 겹쳐지기도 하는데, 조가 기차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는 이야기를 하는 중간 중간, 물고기를 낚으는 것도 그것과 마찬가지라며 이야기하는 샐리그먼의 모습은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제2장 '제롬'에서는 조의 첫경험 상대이자(샐리그먼은 조의 첫 경험에서도 어이없게 피보나치 수열을 대입시킵니다.) 직장 상사로 우연히 재회한 제롬(샤이아 라보프)과의 관계를 그립니다. 조는 한 명의 남자와 두번 섹스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세우지만, 조의 절친인 B는 이를 어깁니다. 그리고는 조에게 섹스의 비밀스러운 묘약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색정증에 걸린 여성이라고해서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조는 제롬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국은 그를 향한 자신의 애절한 마음을 편지에 담습니다. 하지만 제롬은 이미 자신의 비서와 결혼하여 세계일주를 떠나버린 상황. 그렇게 조의 사랑은 허무하게 마무리됩니다.

 

 

금기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비꼬기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바로 제3장 '미세스 H'입니다. '미세스 H'는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조에게 흠뻑 빠진 유부남. 조는 그를 그저 섹스 상대로만 여기지만, 그는 조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오해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정을 버리고 조를 찾아옵니다.

막장 상황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데 그의 아내인 H(우마 서먼)가 어린 세 아들들과 함께 조의 집을 찾은 겁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냉정하고 쿨한척 하지만 아이들을 내세운 그녀의 모습은 남편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가정으로 되돌아오게 하려는 가녀린 행동으로 보일 뿐입니다.

문제는 H의 그러한 행동이 굉장히 우스꽝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이런 상황이 오게 된다면 분명 불륜녀를 욕하고, 조강지처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며, '이것이 조의 잘못인가?' 라고 반문합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상황이라면 불륜녀에게 '가정 파탄범'이라며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는 무심하게 "나는 당신 남편을 사랑하지 않아요."라며 무덤덤하게 말합니다. 마치 난 단지 섹스를 원했을 뿐인데 뭘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지? 라는 표정으로 말입니다. 

제4장 '섬망'에서는 금기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 수위가 더 강해집니다. 조는 아버지(크리스찬 슬레이터)를 병간호하며 병원 직원과 섹스를 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의 성기가 젖어오는 것을 느낍니다. 조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와의 관계가 특별했기에 그러한 장면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조 역시 그러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듯 하지만 샐리그먼은 조에게 스트레스의 상황을 성적으로 푸는 사람들도 있다고 위로합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의 마지막 챕터인 제5장 '오르간 학파'에서는 음악과 섹스를 비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세가지 음정이 합쳐져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듯이 조에게 섹스는 자신을 위주로 배려 받으며 하는 섹스와, 남자가 주도하며 하는 섹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가 하나로 합쳐져 섹스의 세가지 성부 '정선율'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오르간 학파'에서는 각기 다른 섹스 스타일의 남성을 분활 화면을 통해 한꺼번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표현됩니다. 이렇게 고전 음악과 섹스를 비교하며 바흐의 음악을 즐기는 샐리그먼과 섹스를 즐기는 조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오르간 학파'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는 제롬과의 섹스 도중 "아무 것도 느껴지지가 않아!"라며 절규를 합니다. 색정증 그녀가 섹스에서 아무 것도 느끼질 못하다니... 2시간 동안 조의 섹스 체험담을 감상했던 제겐 조금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그렇게 [님포매니악 볼륨 1]은 막을 내리고 엔딩 크레딧과 함께 [님포매니악 볼륨 2]의 장면들이 짧게 나옵니다. 그러한 장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님포매니악 볼륨 1]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사실 [님포매니악 볼륨 1]에 대해서 좀 더 완벽한 리뷰를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의 중간 부분까지 밖에 못본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완벽한 리뷰는 [님포매니악 볼륨 2]를 보고나서야 가능해질 것입니다.

그래도 영화 중간 중간 다양한 남성 성기 사진이 나오는 장면, 블러 처리가 되었지만 적나라한 남녀의 섹스 장면 등 분명 [님포매니악 볼륨 1]은 충격적인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난해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능력이겠죠. 저는 조의 이야기를 어서 빨리 마지막까지 듣고 싶습니다.

 

아직 내가 조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조에 대한 이해는 볼륨 2를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녀가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