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크리스토프 갱스
주연 : 레아 세이두, 뱅상 카셀, 앙드레 뒤솔리에
개봉 : 2014년 6월 18일
관람 : 2014년 6월 29일
등급 : 전체 관람가
22년전,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간직하고...
1993년 12월 8일...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집에서 VIDEO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당시의 제 영화노트에 적혀 있는 감상평을 잠시 옮기자면... " 아름다움과 재미, 감동과 교훈까지 주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아니 최고의 영화였다."라고 쓰여 있네요.
디즈니 [미녀와 야수]는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었습니다. 결국 [양들의 침묵]이 작품상을 수상했고, [미녀와 야수]는 음악상과 주제가상 수상에 그쳤지만,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굉장한 뉴스였습니다.
결국 디즈니는 [라이온 킹]에 이어 2012년 [미녀와 야수]를 3D로 변환하여 재개봉시켰고, 최근에는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가 개봉하여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인 [엣지 오브 투모로우],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 등의 틈에서 꾸준히 관객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이렇게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비록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가 개봉했던 6월의 셋째주는 제가 브라질 월드컵 열기에 휩싸인 탓에 극장으로 달려갈 수 없었지만, 꼭 극장에서 봐야할 기대작으로 손꼽아 놓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16강 탈락으로 인하여 브라질 월드컵의 분위기가 시들해진 이후에도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가 거의 대부분의 극장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었던 탓에 [미녀와 야수]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일요일 아침 9시 30분에 [미녀와 야수]가 집근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덜컥 예매를 하고 말았습니다.
6월 29일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일주일의 피곤을 풀기 위해 늦잠을 자야 하는 날이지만, 그날만큼은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알람 시계가 시끄럽게 울렸습니다. 결국 구피를 시작으로 웅이와 제가 차례대로 일어나 세수를 하며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바로 [미녀와 야수]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구피는 "어제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를 봤는데, 연달아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야해?"라며 투덜거렸지만 [미녀와 야수]를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 구피의 투덜거림은 제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아침 일찍 저희 가족은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의 늦잠을 포기한 것이 전혀 후회되지 않았을 만큼 저는 [미녀와 야수]가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결국 그날 저희 가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극장으로 달려가 [미녀와 야수]를 보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이번엔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 역사박물관역으로 가서 <웨타 워크숍, 판타지 제왕의 귀환> 전시회를 관람한 후, 기진맥진해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일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를 보고나니 이번엔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다시한번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웅이는 서둘러 학교 숙제를 마쳤고, 웅이의 숙제가 끝나자마자 구피의 눈총을 받으며 웅이와 함께 이번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를 봤습니다. 22년만에 다시보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도 저는 여전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왜 야수가 되어야만 했는가?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를 보며 저는 저도 모르게 익숙한 노랫소리를 계속해서 흥얼거렸습니다. 1993년 12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를 본 후 용돈을 긁어모아 곧장 OST를 구입했을 정도로 저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22년만에 다시 들으니 정말 좋더군요.
영화를 본 후 제 책장에 먼지가 쌓인채로 놓여 있는 [미녀와 야수]의 OST를 몇 분동안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Beauty And The Beast'를 비롯하여 'Belle', 'Gaston', 'Be Our Guest'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저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디즈니 [미녀와 야수]의 최대 강점은 바로 음악입니다. 하지만 22년전의 영화라서 그런데 그림체는 지금다시 보니 약간 촌스러웠고, 1시간 2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말해주듯이 스토리 라인에 너무 서둘러 끝마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와는 달리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1시간 55분이라는 러닝타임을 꽉 채운 느낌입니다.
우선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의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를 단순 비교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왕자가 야수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사연입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는 장미 한송이를 선물하며 하룻밤 묶을 것을 청한 노파의 부탁을 고만한 왕자가 거절하였고, 요정으로 변한 노파는 왕자의 마음 속에 사랑이 없는 것을 알고 그를 야수로 변하게 했다고 합니다. 요정이 약간 속좁은 듯... ^^
그와는 달리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에서는 야수의 사연을 더욱 절절하게 잡아냅니다. 황금 사슴 사냥에 흠뻑 빠진 성주(뱅상 카셀)는 더이상 사냥을 하지 않겠다는 약혼녀와의 약속을 어기고 또다시 황금 사슴 사냥을 나섭니다. 그리고 드디어 황금 사슴을 활로 쏴 죽이는데, 알고보니 그 황금 사슴이 바로 자신의 약혼녀였던 것이죠.
그녀는 숲의 요정으로 성주와 사랑에 빠져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인간으로 변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성주는 자신의 약혼녀를 사냥한 것입니다. 결국 숲의 요정을 죽인 성주는 신의 저주를 받게 되고 야수의 모습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 중에서 원작에 충실한 야수의 사연은 무엇일까요? '미녀와 야수'는 1740년 프랑스 작가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가 잡지를 통해 처음 발표하였으며, 1756년 잔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이 빌레느브의 것을 요약하여 재출간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는 바로 보몽 부인의 쓴 요약본 동화인 셈이죠.
그러한 원작에 의하면 왕자에게 호의를 거절당한 요정의 저주로 인하여 왕자는 야수가 되었다고 하니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제시한 야수의 사정이 원작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미녀와 야수'의 이야기도 약간 변형되었는데, 또다른 버전의 동화에서는 왕자가 사악한 요정의 청혼을 거절하여 그로인한 저주로 야수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결국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야수의 사연을 좀 더 극적으로 각색한 것입니다.
벨은 외동딸이 아니었다.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야수의 사연을 극적으로 각색하며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벨에 대해서는 원작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아버지는 엉뚱한 발명가였고, 벨은 외동딸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 벨의 아버지는 몰락한 상인이었고, 벨에게는 세명의 오빠와 두명의 언니가 있었습니다.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벨(레아 세이두)에서는 철없는 두명의 언니와 말썽꾼인 세명의 오빠가 있습니다. 부유한 상인이었던 벨의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의 배가 거센 폭풍에 난파되자 그는 파산을 하게 되었고, 모든 재산을 잃고 시골집으로 이사하게 되는 것까지 원작과 동일합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가 벨의 가정사를 단순화한 것은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인하여 벨과 야수의 이야기가 너무 급하게 진행된 감이 있습니다. 이에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며 벨의 캐릭터를 좀 더 세심하게 잡아냅니다.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캐릭터가 원작에 충실하게 세밀하게 그려짐으로써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지긴 했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는 더욱 탄탄해졌습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어린이 관객을 타깃으로 한 탓에 집중력이 약한 어린이 관객을 위해 러닝타임을 최대한 줄였지만, 성인 관객을 타깃으로 한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그러한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 악역을 저처했던 왕자병 개스통과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에서 돈에 눈이 먼 악당인 페르뒤카스 모두 원작에는 없는 창작된 인물이라고 합니다. 원작에서 악역은 벨의 언니들이라고 하네요.
벨의 언니들은 벨이 야수에게 붙잡혀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호화로운 성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질투심을 느껴 벨이 야수에게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결국 벨은 언니들 때문에 야수에게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야수가 건네준 마법의 거울을 통해 죽어가는 야수의 모습을 보게 되고 결국 성으로 돌아가지만 이미 야수는 죽어 있었다고 합니다.
야수는 벨을 그리워하다가 심장이 찢어져 죽는다는 설정인데,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서는 벨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개스통의 야비한 음모가,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에서는 벨의 오빠를 협박한 페르뒤카스 일당의 폭력이 영화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한 셈입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서 저주에 걸린 야수의 하인들이 관객의 웃음을 책임진다면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애서는 마법에 걸린 사냥개들의 귀여운 모습들이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역시 모두 원작과는 달리 창작된 캐릭터들입니다. 이렇듯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 비교해서 같은 듯 다르며, 원작과 비교해서도 원작에 충실하다가도, 영화적 재미를 위해 풍성한 각색을 이용하기도 하는 영특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몰랐던 이야기
사실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를 보기 전, 저는 한가지 걱정을 했습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데 과연 재미있을까?'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녀와 야수' 이야기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를 비롯하여 최근에는 알렉스 페티퍼와 바네사 허진스를 내세운 [비스틀리]처럼 약간 변형된 이야기로도 영화화되곤 했습니다. 그렇기에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를 보기 전 너무 잘 아는 이야기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를 보며 그러한 제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에 익숙했던 저는 벨이 3남3녀 중 막내라는 사실도 몰랐고, 벨의 아버지가 몰락한 상인이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마치 새로운 이야기를 보는 것 마냥...
벨이 야수의 성에서 조금씩 야수의 사연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야수와 숲속 요정이 가슴 아픈 사랑이 비밀이 벗겨지는 장면들도 좋았는데,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는 흥겨운 음악과 귀여운 캐릭터들을 통해 즐겁게 감상했다면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화려한 색체와 야수의 가슴 아픈 비밀을 통해 가슴 찡한 감정을 안고 영화 속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구피는 이 영화를 본 후 딱 한가지가 불만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왕자가 너무 나이가 많아~"였습니다. 하긴 벨을 연기한 레아 세이두가 85년생, 29살인데 반에 야수를 연기한 뱅상 카셀은 66년생, 48살입니다. 뭐 아주 오랫동안 야수로 살았기 때문에 나이가 많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나름 뱅상 카셀의 카리스마가 야수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암튼 야수가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와는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며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뭐 이 정도면 일요일의 늦잠을 포기한 댓가치고는 꽤 호화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는 또 나름대로 흥겨웠고,
프랑스판 [미녀와 야수]는 또 나름대로 아름다웠다.
어떻게 포장하건 원작의 매력은 이렇게 다양하게 변형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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