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님포매니악 볼륨 2] - 조금은 듣기 어려웠던 그녀의 남은 이야기들.

쭈니-1 2014. 7. 5. 23:56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주연 : 샤를로뜨 갱스부르, 스텔란 스카스가드, 샤이아 라보프, 제이미 벨, 월렘 데포, 미아 고스

개봉 : 2014년 7월 3일

관람 : 2014년 7월 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볼륨1'을 봤으니 '볼륨2'도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가 극장가를 휩쓸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적게는 두편, 많게는 세, 네편을 극장에서 보는 저로써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격하게 아끼지만,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다른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이 짜증나기도 합니다.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가 개봉한지 2주차가 되었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영화의 흥행 기대주 [신의 한수]까지 개봉하며 이제 극장가는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와 [신의 한수]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신의 한수]는 일요일 저녁에 구피와 보기로 했기에 다른 영화를 먼저 보려고 극장 상영시간표를 샅샅히 뒤졌지만, 결국 '볼 영화 없음!'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님포매니악 볼륨 2]입니다. [신의 한수]와 같은 날 개봉한 [나쁜 이웃들]은 다운로드 시장에 오픈되면 봐도 되었고, [소녀괴담]은 제가 공포영화를 못보기에 어차피 볼 계획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님포매니악 볼륨 2]는 다릅니다. 이미 [님포매니악 볼륨 1]을 극장에서 봤고, 조(샤를로뜨 갱스부르)의 대담한 성 체험담을 재미있게 관람했기에 [님포매니악 볼륨 2]를 극장에서 놓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2]가 상영하는 극장이 별로 없었고, 있다고해도 평일 낮 시간대나, 새벽 시간대에만 상영해서 회사에 연차 휴가를 내지 않고는 [님포매니악 볼륨 2]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집근처 멀티플렉스를 넘어 서울 시내 모든 극장으로 범위를 넓혔고, 그 중 토요일 아침 8시55분에 [님포매니악 볼륨 2]을 상영하는 CGV 압구정을 선택했습니다. 이미 지난 주 일요일에 [미녀와 야수]를 보기 위해 일요일 아침의 늦잠을 포기했던 저는 2주 연속 휴일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극장으로 향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CGV 압구정에서 [님포매니악 볼륨 2]를 관람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었나봅니다. 아침 8시 55분까지 압구정에 가기 위해서는 좀 더 부지런히 서둘렀어야 했지만, 전날 새벽에 브라질 월드컵(독일 vs 프랑스)을 본 여파로 피곤에 쩔은 저는 알람이 울린 후에도 10분 정도 늦장을 부리고 말았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열심히 압구정으로 향했지만, 토요일 아침에 출근 인파들로 인하여 지하철은 점점 연착되었고, 결국 압구정에 도착했을 때엔 8시 55분을 훌쩍 넘겨 시계 바늘이 9시 15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압구정역에서 CGV 압구정으로 뛰어가면서 속으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상영관을 독차지한 [트랜스포머 : 사라진 시대]를 원망했고, 늦잠을 자버린 게으른 제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차라리 [님포매니악 볼륨 1]을 보지 않았다면 [님포매니악 볼륨 2]를 보기 위해 이렇게 토요일 아침부터 땀나게 뛰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라는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색정증에 걸린 조의 남은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제겐 이렇게 처음부터 어려웠습니다.

 

 

'볼륨 1'과는 달리 나는 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CGV 압구정에 도착한 시간은 영화가 시작된지 15분 가량이 지난 후였습니다. 평소에는 10분간의 광고 타임을 싫어했는데, 그날 만큼은 그나마 10분간의 광고 타임 덕분에 [님포매니악 볼륨 2]를 덜 놓친 셈입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 조는 '섹스의 비밀스러운 묘약은 사랑'이라는 절친 B의 가르침대로 첫사랑인 제롬(샤이아 라보프)를 만나 섹스의 세가지 성부인 '정선율'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아!"라는 조의 절규로 [님포매니악 볼륨 1]은 끝맺음합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2]는 제6장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조용한 오리)'로 시작됩니다. 저는 영화가 시작된지 15분 가량 지난 후에 입장한 탓에 앞 부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앞부분의 상황은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제롬과 조는 결혼한 듯이 보였고, 놀랍게도 조에게는 어린 아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롬과의 섹스 도중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아!"라고 절규했던 조가 어쩌다가 제롬과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는 극장에 늦게 입장한 제 탓이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저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을 보며 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비록 색정증에 걸려 아무 남자하고 마구잡이로 섹스를 즐겼지만, 그것은 그녀의 성적 취향의 문제일 뿐, 범죄 행위가 아니었기에 조를 무작정 미워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님포매니악 볼륨 1]을 저는 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했다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의무와 책임감을 부여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조는 이제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으니 더욱 의무와 책임감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조 뿐만 아니라 제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조는 끊임없이 섹스를 탐닉합니다. 결혼 후, 섹스 불감증을 겪게되자 오히려 더욱 자극적인 섹스를 찾게 되고, 그러한 조의 행위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을 별 거부감 없이 봤던 제게도 조에 대한 거부감을 안겨주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조에 대한 거부감이 들기 시작하자 부담없이 즐겼던 [님포매니악 볼륨 1]과는 달리 [님포매니악 볼륨 2]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조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말조차 통하지 않는 거리의 흑인 청년들과 2대1 섹스를 시도하고, 가학적인 사도마조히즘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특히 갖난 아들을 집에 홀로 남겨두고 K(제이미 벨)와 사도마조히즘에 빠져드는 조의 모습은 제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결코 이해할 수가 없는 지경까지 도달합니다.

K와의 만남을 위해 집을 비운 조. 그때 조의 아들이 깨어나고 홀로 위험한 난간위에 올라가는 장면을 보며 저는 속으로 울부짖었습니다. 만약 저 아이가 잘못된다면 이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결코 조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행히 제롬이 때맞춰 집으로 돌아오고 아이는 무사합니다. 그제서야 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의 만행은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은 제발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달라는 제롬의 마지막 부탁(혹은 최후 통첩)을 조는 거부합니다. 오늘 나가면 다시는 아기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제롬의 말에도 조는 가증스러운 눈물을 흘리며 아기와 마지막 작별을 나눕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말입니다.

그녀는 어머니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포기하고 자신의 쾌락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쯤되면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자책하던 조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는 그러한 그녀의 자책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님포매니악 볼륨 2]가 시작하자마자 저는 속으로 조를 욕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더이상 섹스를 탐닉하는 철없는 소녀가 아니다.

 

비록 조는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의 쾌락을 선택했지만 그렇다고해서 성인인 조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닙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 조는 섹스를 탐닉하는 철없는 소녀에 불과했지만 조의 캐릭터가 스테이시 마틴에서 샤를로뜨 갱스부르로 넘어온 [님포매니악 볼륨 2]에서는 사회적인 책임을 짊어진 성년입니다. 그렇기에 조의 직장 상사는 조에게 심리치료를 강요합니다.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서 조는 결국 심리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제7장 '거울'은 조가 직장 상사의 명령대로 심리치료를 받는 장면으로 진행됩니다. 조는 치료 첫날 사람들에게 자신을 '색정증(님포매니악)'이라고 소개하지만 의사는 '성중독자'로 고쳐주며 여기 있는 환자 모두 똑같다고 말합니다. 처음에 조는 그러한 의사의 말을 순순히 듣습니다.

의사가 섹스을 연상시키는 일상의 도구들을 치우라고 말하자, 집 안의 모든 물건들 치워버리고, 모서리를 붕대로 칭칭 감아버립니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의 처방이 조에게 먹힐리가 없습니다. 섹스를 연상시키는 모든 물건을 치운다고 해도 조는 손가락 하나만 있으면 언제든 자신의 성기를 자극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손가락을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결국 조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는 생즉증이고, 난 당신들과는 달리 내 추잡한 욕정을 사랑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이로써 그녀는 성인으로써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제도권 사회에서 벗어나 불법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습니다.

 

어쩌면 조가 L(월렘 데포)을 찾아간 것은 당연합니다. 성인으로써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한 탓에 조는 제도권 사회 안에서 살 수없게 되었으며, 이는 불법 채권회수업자인 L을 찾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조의 모습은 제8장 '총'에서 그려집니다. 조 역시 불법 채권회수업자가 된 것이죠.

조가 채무자로부터 채권을 회수하는 방식은 무조건 물건을 부수며 협박하는 이전의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조는 채무자의 감춰진 성적 환상을 건드리고 그들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그녀가 소아성애자인 채무자를 협박하는 장면은 그렇기에 굉장히 인상깊습니다.

셀리그먼(스텔란 스카스가드)은 조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소아성애자를 비난합니다. 하지만 조는 오히려 그를 옹호합니다. 그녀는 소아성애자중 성범죄를 저지르는 5%가 문제일 뿐, 나머지 95%는 금지된 성적 취향을 숨긴채 살아가야 하는 잔인한 형벌을 받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성적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이제 조는 채권회수업에서 승승장구합니다. 성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한 탓에 더이상 제도권 사회에서 살 수 없었던 조. 그녀는 불법의 세계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내며 나름의 행복을 찾은 것입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P(미아 고스)입니다.

 

 

충격적 결말을 향해...

 

조는 이제 늙었습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섹스를 탐닉하는 반항적인 소녀였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녀는 제도권 사회의 사회적 책임을 거부한 탓에 불법의 세계로 흘러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성공적인 채권회수업자가 된 후에는 자신의 성적 쾌락을 점차 잊고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까지 포기하며 지키고자 했던 성적 쾌락을 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후계자로 P를 영입합니다. 결손 가정에 자란 P는 조를 믿고 따릅니다. 그리고 조는 P와 동성애적 사랑에 빠지며 다시금 잊고 있었던 성적 쾌락을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비극의 시작입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에서 왜 조는 피투성이가된 채 골목에 쓰러져 있었던 것일까요? 그 비밀은 조와 P의 동성애적 관계, 그리고 조를 충격에 빠뜨리는 P와 제롬의 관계에 있습니다. 스스로를 색정증이라 자랑스럽게 외치며 쾌락을 위해서는 아무 남자하고나 섹스를 즐겼던 조. 그러한 쾌락을 위해서 가정조차 포기했던 그녀가 P와 제롬의 관계에 질투심을 느끼다니 참 묘한 아이러니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선언합니다. 세상과 꿋꿋이 맞설 것이라고... 언덕 위에 굽은 나무처럼 내 모든 힘을 다해 세상과 싸울 것이라고.. 그러한 조를 향해 셀리그먼은 위로와 격려를 보냅니다. 당신이 했던 행위들을 만약 남성이 했다면 별 일 아니었을 것이라며 말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훈훈하게 끝낼리가 없죠.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마지막의 훈훈한 분위기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웠지만, 끝까지 신사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던 셀레그먼의 마지막 표정을 통해 이성으로 가득찼다고 믿는 현대 사회의 감춰진 추악한 본능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강한 카운트 펀치를 날리는 것입니다. 

 

분명 [님포매니악 볼륨 2]는 [님포매니악 볼륨 1]와 비교해서 강도가 쎕니다. 2대1 섹스, 사도마조히즘, 동성애 등이 등장하는 [님포매니악 볼륨 2]의 섹스 장면은 [님포매니악 볼륨 1]을 순한 영화로 느끼게끔 만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조금은 코믹했던 [님포매니악 볼륨 1]과는 달리 [님포매니악 불륨 2]는 느와르의 분위기마저 물씬 풍깁니다. 특히 P의 등장은 굉장히 강렬했는데, 이미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스테이시 마틴이라는 신예 배우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흠뻑 빠졌던 저는 미아 고스라는 또다른 놀라운 신예 배우의 등장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로만 따진다면 [님포매니악 볼륨 1]에게 좀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색정증에 걸린 한 여성의 고백을 담은 이 영화에서 제가 이해할 수 있었던 조의 행동은 [님포매니악 볼륨 1]까지였고, [님포매니악 볼륨 2]의 조의 행동은 제게 거부감을 안겨줬기에 강도의 쎄기와는 별도로 저는 [님포매니악 볼륨 1]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관객에게 조를 이해시키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닌, 스스로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믿는 관객들에게 조의 이야기를 듣게 함으로써 관객의 이성을 조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조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의 행동을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성기가 발기했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셀리그먼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파격은 이 영화의 영상이 아닌, 예상하지 못했던 셀리그먼의 마지막 행동이었습니다. 그러한 결말은 [님포매니악 볼륨 2]이 끝나고나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게끔 만들었습니다. 

 

[님포매니악 볼륨 1]을 본 후 내가 너무 방심했나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가 만만치 않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님포매니악 볼륨 1]의 의외의 재미에 잠시 방심했다가 뒷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렇기에 [님포매니악 볼륨 2]의 관람은 이래저래 내겐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