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정범
주연 : 장동건, 김민희, 김희원, 브라이언 티
개봉 : 2014년 6월 4일
관람 : 2014년 6월 1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모두들 이 영화는 추천하지 않았다.
지난 6월 4일 새로운 신작들이 개봉했을 당시 제 기대작인 단연 톰 크루즈 주연의 SF 액션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였습니다. 하지만 [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같은 날 개봉했던 두편의 한국영화 [우는 남자]와 [하이힐]도 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우는 남자]와 [하이힐]은 비슷한 점이 많은 영화입니다. 이정범과 장진이라는 믿을만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것에서부터 장동건과 차승원이라는 스타 배우의 원톱 주연까지... 게다가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강력한 액션을 담아내고 있으며, 제작비도 적지 않게 투입된 액션 대작입니다.
하지만 [우는 남자]와 [하이힐]은 개봉 첫주에 [엣지 오브 투모로우]는 물론 [끝까지 간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말레피센트]에게까지 밀리며 나란히 주말 박스오피스 5위와 6위라는 처참한 흥행 성적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우선 [하이힐]의 문제점은 명확하게 눈에 띕니다. [하이힐]은 트랜스젠더라는 일반 관객들에게 거부감이 드는 소재를 선택했고, 근육질의 차승원에게 여장을 시키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 관객의 외면으로 이어진 것이죠. 물론 장진 감독의 의도 또한 명확했습니다. 남성미가 강조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한 차승원에게 트랜스젠더의 캐릭터를 연기시킴으로서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인의 폭력을 관객들에게 이입시킨 것입니다. [하이힐]은 흥행 성적이 비록 신통치 않지만, 장진 감독이 의도했던 영화의 주제는 잘 전달된 영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는 남자]는 어떤 문제로 100억이라는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일까요? 많은 분들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영화 속 장동건의 매력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 [우는 남자]를 보러 가는 제 머릿 속에는 그러한 궁금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는 남자]를 직접 보고나니 이 모든 문제점은 이정범 감독의 전작인 [아저씨]와의 단순 비교에서 나오는 문제점들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2010년에 개봉한 [아저씨]는 굉장한 영화였습니다. 아동납치와 장기밀매라는 잔혹한 범죄에 대한 태식(원빈)의 액션은 손에 땀을 쥐게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원빈의 매력은 남자인 제가 봐도 "우와! 멋지다."라는 감탄사를 저절로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아저씨]는 영화관 입장권 통산망 기준 617만이라는 흥행 대성공을 이뤄냈습니다. [아저씨]가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굉장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저씨]의 흥행 성공으로 이정범 감독은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정범 감독에게는 기회였지만, 반대로 [우는 남자]에게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분명 [아저씨]와 비교한다면 [우는 남자]의 영화적 재미는 많이 부족한 편입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전혀 감안하지 않은채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라는 호기심으로 영화를 본 저는 [우는 남자]를 꽤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곤은 멋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일단 [우는 남자]는 [아저씨]와 주인공에 대한 캐릭터 설정 자체가 전혀 다른 영화입니다. [아저씨]의 경우는 아동납치, 장기밀매라는 잔인한 범죄로부터 이웃집 소녀인 소미(김새론)를 구하기 위한 태식의 액션이 영화적 재미의 책임집니다. 태식은 범죄의 덫에 걸린 어린 소녀를 구하는 과묵한 영웅이기에 이정범 감독은 최대한 태식을 멋있게 포장해냅니다.
하지만 [우는 남자]에서 곤(장동건)은 영웅이 아닌 악당입니다. 그는 중국의 범죄 집단인 흑사회의 냉혈한 킬러로 타겟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 죽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곤은 어린 소녀를 죽이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곤이 어린 소녀를 죽이는 그 순간 곤을 멋있게 포장하려는 모든 시도는 물거품이 됩니다. 어린이를 죽였다는 것은 관객이 허용할 수 있는 범죄의 기준을 훨씬 넘어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저씨]의 태식이 어린 소녀를 구하는 영웅이라면, [우는 남자]의 곤은 어린 소녀를 죽이는 악당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정범 감독은 곤에게 어린 소녀를 죽인 악당의 굴레를 덮어 씌운 것일까요? [아저씨]를 통해 멋진 주인공이 가져다주는 흥행의 달콤함을 맛본 그가 [우는 남자]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곤을 멋진 주인공이 될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우는 남자]는 제 2의 [아저씨]가 아니다!'라는 이정범 감독의 당찬 선언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정범 감독은 곤의 멋있음을 포기하는 대신 곤의 과거 장면들을 통해 곤을 최대한 불쌍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우는 남자]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키포인트입니다.
곤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하지만 곤의 어머니는 빈곤함에 지쳐 곤을 버리려합니다. 어린 곤은 그것을 직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그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것 뿐인데..." 하지만 어머니의 자살로 곤의 작은 바램은 결국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곤의 과거는 어쩌면 곤의 현재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곤의 과거는 현재의 곤이 저지르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들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곤은 어머니의 자살로 버림을 받은 그때부터 내적 성장이 멈춰버립니다. 그렇기에 그는 마치 어린 아이같습니다. 처음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타겟인 모경(김민희)과 처음 눈빛이 마주치는 곤. 그런데 그는 모경에 대한 살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뛰어난 킬러라면 자신의 살기를 감추고 타겟에게 접근할테지만, 내적 성장이 멈춘 곤은 어린 아이의 솔직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장면은 [우는 남자]에서 여러 군데 발견됩니다. 영화의 오프닝, 곤이 자신의 실수로 죽인 소녀인 유미와 처음 눈빛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그의 장난끼가 발동합니다. 냉혈한 킬러라면 그러한 행동으로 목격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서울에 도착한 후 변실장(김희원)에게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도 그러합니다. 그러한 어린 아이같은 곤의 모습은 곤을 멋있게 포장하는 대신 관객에게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간직하고 성장이 멈춘 곤의 측은함을 어필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곤의 행동
어머니의 자살로 인하여 어린 시절 내적 성장이 멈춰버린 곤. 그렇기에 그의 행동은 마치 사고뭉치 어린 소년의 말썽처럼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모경에 대한 곤의 행동들이 그러합니다. 물론 곤이 모경을 쉽사리 죽이지 못한 것은 유미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조직의 명령을 배신하고 모경을 도와주는 곤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는 남자]를 본 관객들이 대부분 스토리 라인의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모경을 대하는 곤이 행동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한국에 도착했을 때 곤은 모경의 사진을 보며 욕을 합니다. 스스로 유미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내고, 임무를 완수하려는 자기 암시인 셈입니다. 처음 곤이 유미와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마추쳤을 때에는 유미에 대한 살기를 감추지 않았고, 곤과 유미가 처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곤의 목소리에는 모경에 대한 반감이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는 유미의 죽음 후에도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회사 생활을 해나가는 모경이 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무책임했던 자신의 어머니와 모경을 동일화시킵니다. 그저 함께 있고 싶었던 것뿐인데, 결국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매정한 어머니. 그러한 곤의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유미를 잃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모경에 대한 반감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모경이 유미의 유치원에서 보내준 DVD를 보며 울음을 터트리고, 자살을 시도하자 모경에 대한 미움은 보호본능으로 바뀝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곤의 어머니. 그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려했던 모경. 곤이 모경을 구해주는 것은 어머니의 자살을 막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과오를 만회하는 즉흥적인 선택입니다.
이후에도 곤은 모경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를 죽이려는 다른 조직의 킬러들을 처치하거나 모경에게 경고를 할 뿐입니다. 그러한 곤의 행동은 유미를 죽였기에 당당하게 모경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곤을 버리려 했던 기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곤은 자신을 버리려는 어머니와 함께 하기 위해 차 뒷 트렁크에 숨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곤은 모경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와 함께 하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곤의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모경에게 고스란히 투여한 행태로 나타납니다.
곤의 동료인 차오즈(브라이언 티)는 곤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곤과 같은 아픔이 없는 차오즈로서는 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곤은 대답합니다. "그냥 피곤해서..." 어린 시절의 아픔에 갇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곤. 그는 이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끝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감각적 총격씬... 그것만으로도 만족
물론 대부분의 관객들이 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정범 감독이 곤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곤의 과거가 중요한 만큼 [우는 남자]는 곤의 과거 장면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무분별한 과거 회상씬 남발로 인하여 영화 자체가 조잡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정범 감독은 선택은 과거 회상씬을 최대한 간략하게 생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오히려 곤의 캐릭터가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정범 감독으로서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진 냉혈한 킬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켜 놓고, 그러한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남을 것입니다.
[우는 남자]는 액션 영화입니다. 물론 액션 영화라도 캐릭터는 중요합니다. 캐릭터가 제대로 완성되어야 캐릭터의 액션에 정당성이 부여되고, 관객들이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며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될테니까요. 그런만큼 곤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이정범 감독의 과오가 [우는 남자]의 흥행 실패로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영화 후반의 총격씬은 '과연 이정범 감독답다.'라는 탄성이 나올만 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미국과는 달리 총기 소지가 불법인 만큼 영화에서도 무차별 총격씬을 보기 힘듭니다. [우는 남자]와 같은 날 개봉한 [하이힐]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하이힐]은 사시미칼과 맨주먹, 쇠파이프 등이 총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이정범 감독은 과감하게 총격씬으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완성합니다.
무차별 총격씬으로 인하여 [우는 남자]는 다른 우리나라 액션 영화와의 차별화에 성공합니다. 다른 액션의 경우 근접 액션일 수 밖에 없지만, 총을 이용한 [우는 남자]의 액션은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쯤 한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제목이 '우는 남자'일까요? 영화에서 곤의 어머니는 어린 곤에게 '절대로 울면 안된다.'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어머니와 낯선 미국땅으로 떠나야 하는 두려움에 사로 집힌 곤은 어머니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눈물을 흘립니다.
곤이 킬러로 성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킬러는 강인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그러한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킬러인 곤에게는 절대 해서는 안될 불문율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곤은 목놓아 웁니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냅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려고 할 때도, 결국 어머니가 죽음으로 자신을 떠났을 때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며 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비로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남자들은 어렸을 적부터 울면 안되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남자가 함부러 울면 안된다는 어른들의 말은 강한 남자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눈물은 감정의 표출이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 결국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우는 남자]를 보며 마지막 곤의 눈물이 참 슬프면서도 속시원해 보였습니다. 이제 그는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몇 십년의 시간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눈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으니...
영화를 보며 슬픈 장면이 나오면 나는 운다.
깜깜한 극장 안은 남자가 울기 딱 좋은 장소이다.
그것은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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