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말레피센트] - 사악한 마녀에게서 찡한 감동을 느끼다.

쭈니-1 2014. 6. 3. 20:00

 

 

감독 : 로버트 스트롬버그

주연 :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샬토 코플리, 샘 라일리

개봉 : 2014년 5월 29일

관람 : 2014년 6월 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말레피센트]가 되기까지...

 

1679년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의 동화집 <옛날 이야기>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고, 이후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수록되며 널리 알려진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어린이의 사랑을 받은 동화 중의 하나입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아이가 없어 슬퍼하던 왕과 왕비에게 예쁜 공주님이 태어납니다. 이에 왕과 왕비는 그 나라의 모든 요정들을 초대하여 축하 파티를 엽니다. 하지만 파티에 초대되지 못한 나쁜 마녀가 자신을 초대하지 않았음에 분노하며 공주가 16살이 되는 해에 물레 바늘에 찔려 죽도록 저주를 내립니다. 이 광경을 본 요정들은 마녀의 저주를 100년의 잠으로 바꾸고, 마녀의 저주에 놀란 왕은 나라 안의 모든 물레를 불태워 버립니다.

어느덧 16살이 된 공주는 호기심에 성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그곳에는 노파로 변장한 못된 마녀가 물레를 돌리고 있었는데, 물레를 처음본 공주는 신기한 마음에 물레를 만져보다가 그만 바늘에 질려 100년동안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100년 후 홀로 깨어날 공주를 걱정한 요정들은 성안의 모든 사람들이 공주와 함께 잠들도록 만듭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성은 가시덩굴로 뒤덮입니다. 그리고 공주가 잠든지 100년 후 사냥을 가던 이웃나라 왕자가 마침 그곳을 지나다가 성 안에 아름다운 공주가 잠들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 안으로 들어가 공주에게 키스를 합니다. 이로써 공주와 성안의 모든 사람들은 깨어나고 공주와 왕자는 결혼하여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1959년 디즈니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만듭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원작 동화와 내용이 거의 같지만, 오로라 공주가 물레 바늘에 찔려 잠들기 전에 이미 필립 왕자와 첫 눈에 반해 사랑하는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고 설정합니다. 그 덕분에 오로라 공주가 사랑의 키스를 받기 위해 100년 동안이나 긴 잠에 빠지지 않아도 되었고, 성안의 사람들 역시 오로라 공주를 따라 100년 동안 강제 수면을 취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원작 동화가 태어난지 335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지 55년만에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말레피센트]로 다시 태어납니다. 여기서 잠깐... 왜 하필 제목이 '말레피센트'인 것일까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라는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면 차라리 '오로라 공주'라는 멋진 제목을 붙여도 충분할텐데 말입니다.

'말레피센트'는 사실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내린 나쁜 마녀의 이름입니다. 결국 디즈니는 아무도 그 이름을 기억하려 하지 않고, 그저 나쁜 마녀라고만 불렀던 '말레피센트'를 주인공으로 격상시켜 영화 속으로 부활시킨 것입니다.  게다가 '말레피센트' 역에는 할리우드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에게 맡겨 졌습니다. 그럼으로써 [말레피센트]는 모든 관객의 관심을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오로라 공주가 아닌 나쁜 마녀 '말레피센트'로 집중시킵니다. 과연 디즈니는 왜 그러한 모험을 한 것일까요? 

 

 

악당의 사연

 

혹시 여러분은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찾지 못하셨나요?  저는 어린 시절 <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한가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레피센트'가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내린 이유입니다.

동화에서도, 그리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도 그저 '말레피센트'가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앙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고작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제 갓 태어난 귀여운 아기에게 그런 끔찍한 저주를 내리다니...

물론 그러한 설정이 통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선과 악이 흑과 백처럼 명확했던 이분법의 시절에는 악당이 나쁜 짓을 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이유가 필요없었습니다. 그저 악당이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는 것 뿐이니까요. 그러한 선과 악의 이분법은 당연했고, 영화에서도 영웅과 악당의 존재는 백과 흑의 차이처럼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이제 액션 영화에서도 단순한 악당 캐릭터는 관객에게 먹히지 않습니다. 그가 왜 악당이 되었는지, 왜 그런 나쁜 짓을 하게 된 것인지, 어느 순간부터 영화들은 악당의 사연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흑과 백의 단순한 논리로 선과 악을 표현했던 시절은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러한 단순한 이분법 시대의 종말은 어린이를 대상으로한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루미네이션을 주목받는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격상시킨 [슈퍼 배드]와 드림웍스의 [메가마인드]는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애니메이션으로 나란히 2010년에 개봉하며 흥행 대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주먹왕 랄프]는 비록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8비트 게임 '다고쳐 펠릭스'에서 악당 역할을 맡았던 랄프가 자신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모험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애니메이션입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비슷한 시기에 앞다퉈 악당을 소재로한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셈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 불기 시작한 악당의 전성시대는 2013년 연말부터 2014년 연초까지 전 세계를 강타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통해 최절정에 올랐습니다. [겨울왕국]은 안데르센 동화인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왕국]은 단순히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데 그치지 않고 온 세상을 꽁꽁 얼려버린 악한 마녀 '눈의 여왕'의 사정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엘사라는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캐릭터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동안 무시되었던 악당의 사연에 관객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덕분에 '말레피센트' 또한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았습니다. 그녀가 왜 갓 태어난 오로라 공주에게 잔인한 저주를 내릴 수 밖에 없었는지, [말레피센트]는 매력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든 비극은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다.

 

[말레피센트]는 어린 '말레피센트'(엘라 퍼넬)를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어린 '말레피센트'는 마법을 지닌 숲의 요정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가장 순수한 마음을 지닌 착한 요정이었습니다. 

다른 요정들이 인간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과는 달리 어린 '말레피센트'에게는 인간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말레피센트'의 순수한 마음 덕분에 인간 소년인 스테판과 우정을 쌓게 됩니다. 하지만 '말레피센트'의 비극은 바로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간과의 인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레피센트]에 나오는 인간은 하나같이 욕심으로 가득합니다. 마법의 숲을 공격하는 헨리 왕이 그러합니다. 마법의 숲에 사는 요정들이 인간들에게 그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지만, 헨리 왕은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마법의 숲을 공격합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 뿐입니다. 마법의 숲에 숨겨진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인이 된 스테판(샬토 코플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아로 자란 스테판은 어렸을 적부터 왕이 되겠다는 야망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마법의 숲을 공격했다가 '말레피센트'에게 굴욕을 당한 헨리 왕이 자신의 복수를 해주는 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고 흑심을 품은채 '말레피센트'를 찾아갑니다. 스테판의 욕심은 '말레피센트'와의 우정 그리고 사랑 따위보다 강력했던 것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게 묻습니다. "아빠, 그냥 스테판이 '말레피센트'와 마법의 숲에서 함께 살면 더 행복했을텐데, 왜 왕이 되려고 욕심을 부렸을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웅이의 의문이 이해가 됩니다. 마법의 숲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스테판이 인간으로써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말레피센트'에게 갔다면, 그들은 마법의 숲에서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마법의 숲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침범되지 않는 한 지상의 낙원과도 같은 곳이니까요.

어쩌면 웅이의 그러한 의문은 웅이가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 스테판과는 달리 순수한 오로라는 '말레피센트'에게 마법의 숲에서 살고 싶다며 조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법의 숲에서는 스테판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라며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 구피처럼,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상의 낙원을 눈앞에 두고도,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웅이의 말대로 스테판이 왕이 되겠다는 허황된 욕심을 버리고 '말레피센트'와의 사랑에서 행복을 찾았다면 이 모든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하지만 헨리 왕이 그랬던 것처럼 스테판 역시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 그리고 그 배신의 댓가가 고작 인간의 왕이라는 허울뿐인 껍데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분노. 바로 이 모든 것이 '말레피센트'가 스테판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를 선택한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미 '말레피센트'도 스테판으로 인하여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따뜻한 눈빛

 

디즈니 애니메이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처럼 '말레피센트'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 스테판 왕은 갓 태어난 오로라 공주를 세 요정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스테판 왕은 '말레피센트'에 대한 복수에 여념이 없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스테판 왕의 복수가 오로라 공주를 위한 것이 아닌 개인적인 광기가 되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말레피센트'의 저주가 두렵다고 해도 자신의 자식을 보고 싶고, 안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스테판 왕은 세 요정에게 딸을 맡긴 이후 '말레피센트'를 향한 복수에만 사로 잡혀 있습니다. 16살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오로라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스테판 왕이 광기에 사로 잡혀 있는 사이 '말레피센트'는 오로라(엘르 패닝)의 성장을 지켜봅니다. 마치 '말레피센트'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처럼, 순수의 결정체로 자라나는 오로라. 그러한 오로라를 바라보는 '말레피센트'의 표정에서는 자신이 저지른 사악한 저주에 대한 죄책감과 천사처럼 자라난 오로라를 향한 사랑이 눈에 보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말레피센트]가 내린 신의 한수입니다. 분명 안젤리나 졸리는 할리우드 여배우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개성 강한 배우입니다. 그렇기에 할리우드는 그녀를 여전사 캐릭터에 주로 캐스팅했습니다. 여전사 캐릭터를 안젤리나 졸리처럼 멋지게 해낼 여배우는 드물기 때문에 안젤리나 졸리 또한 여전사 캐릭터에서 최고의 매력을 발산했습니다.

처음 안젤리나 졸리가 사악한 마녀 '말레피센트'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의 강한 카리스마는 여전사에도 어울리지만, 악역을 맡았을 때에는 그 시너지 효과가 더욱 대단할 것임을 저는 눈치챘던 것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제가 모르고 있었던 것도 있습니다. 이제 그녀는 세 아이를 배로 낳았으며, 또 다른 세 아이를 가슴으로 낳은, 여섯 아이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중 비비안은 [말레피센트]에서 어린 오로라 역을 해냈다고 합니다. '말레피센트'로 분장한 안젤리나 졸리의 모습을 보고 울지 않았던 유일한 아이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그러한 안젤리나 졸리의 강한 모성애는 [말레피센트]에서도 드러납니다. 스테판의 배신 때문에 인간 자체를 혐오하지만, 오로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말레피센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다시 되찾게 됩니다. 덤벙대는 세 요정 대신 오로라를 지켜주는 '말레피센트'. 그런 '말레피센트'에게 오로라는 수호 요정이라고 부릅니다. 오로라가 자신을 수호 요정이라고 부르는 모습에 흔들리는 '말레피센트'의 눈빛. 저는 그 장면에서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내린 사악한 저주. 이제 거둬들이고 싶어도 거둘 수 없는 저주에게서 오로라를 구하려는 '말레피센트'의 애절한 몸짓, 그리고 어느사이 오로라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말레피센트'를 향한 복수에만 매달리는 스테판 왕의 광기. [말레피센트]는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동화의 세계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그래도 진정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로라 공주를 긴 잠에서 깨우는 진정한 사랑의 키스입니다. 게다가 '말레피센트'의 충실한 부하인 디아발(샘 라일리)이 거대한 용으로 변함으로써 펼쳐지는 스펙타클한 액션도 놓칠 수 없는 재미입니다. 결국 [말레피센트]는 디즈니 영화답게 있을 건 다 있으면서도, 사악한 마녀 '말레피센트'의 사랑 덕분에 감동의 크기는 더욱 커진 그런 매력적인 동화였습니다.

 

디즈니표 착한 동화를 보러 갔다가

'말레피센트'의 사랑에 감동을 안고 극장 밖을 나왔다.

그리곤 내 자신에게 외친다.

그래, 난 아직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