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끝까지 간다] - 우리가 응원해야 하는 나쁜 놈?

쭈니-1 2014. 6. 2. 15:37

 

 

감독 : 김성훈

주연 : 이선균, 조진웅, 정만식

개봉 : 2014년 5월 29일

관람 : 2014년 5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쁜 경찰 고건수.

 

2014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는 경쟁 부문에 후보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한때 해외 영화제에서 각광받던 우리나라 영화가 2013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이후 4회 연속 세계 3대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외면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비경쟁 부문에서는 꾸준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칸 국제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시선에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창 감독의 [표적], 그리고 시네파운데이션 단편 부문에 권현주 감독의 [숨], 감독주간에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가 초청되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표적]과 [끝까지 간다]의 칸 국제영화제 초청입니다.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영화라고 한다면 대부분 작품성 위주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표적]과 [끝까지 간다]는 작품성 위주보다는 상업성 위주로 만들어진 액션,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상업 영화들이 많이 발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칸 국제영화제가 주목한 우리나라의 액션, 스릴러 영화 [끝까지 간다]를 봤습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대강 세수만 한다음 부시시한 얼굴로 조조할인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아직 잠이 채 깨지 않은 상황에서 [끝까지 간다]를 봤는데,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잠이 확 깰만큼 [끝까지 간다]는 시작부터 무한 질주를 하더군요.

 

분명 [끝까지 간다]는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의 흥미로움은 바로 주인공인 고건수(이선균)의 캐릭터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사실 고건수는 결코 선한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선한 캐릭터라기 보다는 오히려 악한 캐릭터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끝까지 간다]는 영화의 시작부터 고건수가 얼마나 나쁜 경찰인지 보여줍니다. 어머니의 장례식날 비리 혐의로 내사를 받게 되었음을 알게된 고건수는 어머니의 장례식도 내팽개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급히 경찰서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만 실수로 사람을 치는 교통사고를 일으킨 것입니다. 사고 현장에서 즉사한 피해자. 하지만 고건수는 시체를 자신의 차 트렁크에 숨깁니다. 비리 경찰도 모자라 교통 사고로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유기하려합니다.

교통사고를 저지른 이후 음주운전 단속을 당하는 장면은 고건수에 대한 남아있는 정나미마저 떨어뜨리게 합니다. 차 트렁크에 시체를 숨겼음에도 불구하고 고건수가 음주운전 단속을 나온 경찰들에게 음주측정을 거부하며 난동을 피우는 장면은 그가 음주운전을 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고건수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음주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단속을 나온 경찰들에게 행패를 부립니다. 이쯤되면 고건수는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비리 경찰입니다.

 

 

코믹함으로 포장된 나쁜 경찰 고건수.

 

고건수는 시체를 어머니의 관에 숨기는 인륜을 저버리는 파렴치한 행위까지 저지릅니다. 비리 경찰에, 음주음전 교통사고에, 시체 유기까지... 아무리 이선균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고건수를 연기했다고해도 관객 입장에서 더이상 고건수를 응원할 수 없는 지경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건수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스릴러 영화에서 가끔은 함정에 빠진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스페인 스릴러 영화 [더 바디]가 대표적입니다. [더 바디]는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아내를 살해했지만 아내의 시체가 사라지며 함정에 빠지는 알렉스(휴고 실바)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더 바디]는 영화의 마지막에서 진짜 주인공이 알렉스가 아니었음을 드러내며 마지막 반전을 완성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더 바디]가 영리한 스릴러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간다]는? 이 영화는 나쁜 비리 경찰 고건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전반부는 코믹함으로, 후반부에는 더 나쁜 비리 경찰을 전면에 내세워 고건수에 대한 관객의 거부감을 없앱니다. 실제로 [끝까지 간다]의 초반은 코믹 스릴러 장르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온갖 악재를 한꺼번에 맞이한 고건수는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의 주인공처럼 어리버리하게 이 모든 상황을 모면하려 하고, 그러한 그의 모습은 관객에게 웃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의 관에 교통사고로 인하여 죽은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은 김성훈 감독의 초반 전략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솔직히 유교적 사상이 짙은 우리나라에서 어머니의 관에 낯선 남자의 시체를 숨기는 것은 상당히 거북스러운 장면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고건수가 "엄마, 미안해!"를 연발하며 시체를 관 속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끝까지 간다]의 코믹이 아무리 강력하다고해도 어차피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이기 때문입니다. 코믹함은 영화의 부수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기에 웃음으로 인하여 당장은 고건수에 대한 거부감은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화의 뒷맛마저 개운하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이 꺼내든 두번째 히든 카드는 바로 고건수보다 더 나쁜 비리 경찰을 악당으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등장한 박창민(조진웅)은 비리 경찰 중에서도 최강의 비리 경찰입니다. 고건수가 몇 백만원에 달하는 푼돈(?)을 받아 먹은 피래미 비리 경찰이라면 박창민은 고건수와는 상대가 될 수 없는 스케일이 큰 월척 비리 경찰입니다. 박창민은 고건수를 협박하며 고건수가 교통사고로 죽인 이광민의 시체를 가져오라고 시킵니다. 이제 나쁜 경찰 고건수는 자신보다 더 나쁜 경찰 박창민을 만나며 최악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나쁜 경찰, 더 나쁜 경찰을 만나다.

 

이제 [끝까지 간다]는 박창민의 등장과 함께 박창민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관객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영화의 남은 러닝타임을 할애합니다. 특히 박창민에 의해 고건수의 동료인 최형사(정만식)가 죽는 장면은 박창민의 악행에 대한 클라이맥스입니다.  

물론 이 장면에는 약간의 억지가 섞여 있습니다. 최형사가 그곳에 차를 세울지 어떻게 정확하게 예측하고 건물 옥상에서 그런 번거로운 준비를 했는지 [끝까지 간다]는 별다른 설명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형사의 죽음 장면은 관객들이 완전히 고건수의 편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최형사의 죽음을 계기로 고건수의 악행에 등을 돌렸던 관객들조차 영화의 후반부에는 고건수를 응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게 [끝까지 간다]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나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경찰을 악당으로 설정함으로서 관객들이 나쁜 경찰을 응원하게 유도합니다. 특히 박창민이 최형사를 죽인 이후 곧바로 고건수의 가족을 위협하는 장면은 뻔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입니다. 

이제 [끝까지 간다]는 고건수의 반격으로 후반부를 장식합니다. 고건수가 치밀한 준비 끝에 박창민에게 멋진 카운트 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나쁜 경찰답게, 나쁜 방법이 총 동원됩니다. 하지만 이미 박창민의 악행으로 인하여 고건수를 응원하게된 관객은 고건수가 어떤 나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더이상 상관하지 않게 됩니다. 나쁜 경찰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관객이 나쁜 경찰의 편에 서게끔 유도한 김성훈 감독은 그러한 관객의 반응을 흐뭇하게 지켜봤을 것 같습니다.

 

분명 [끝까지 간다]는 재미있는 오락 영화입니다. 살인, 마약 등 온갖 추잡한 범죄가 영화를 가득 채우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는 웃깁니다. 이광민의 시체를 어머니의 관에 어렵게 숨겼는데, 당황스럽게 관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 음악소리처럼, 상황은 절박하고 잔인한데 그러한 장면들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 어떤 코미디 영화보다도 웃깁니다.

그러면서 스릴러 영화다운 스릴을 유지하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입니다. 고건수는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처럼 어리버리한 표정을 짓고, 박창민은 능글맞은 목소리로 고건수를 위협하지만, 그 두 캐릭터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스릴은 손에 땀을 쥐게할만큼 대단합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고건수와 박창민의 육탄전도 스릴러 영화라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잘 표현합니다.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육탄전은 주위 소품을 이용한 아기자기함으로서 웃음을 안겨주면서도 광기어린 고건수와 박창민의 대결로 스릴도 안겨줍니다.

결국 [끝까지 간다]는 오락 영화로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코믹함과 스릴을 동시에 지닌 잘 만든 액션, 스릴러 영화입니다. 비록 대단한 반전도 없고, 섬뜩한 스릴도 없었지만, 나쁜 경찰과, 그보다 더 나쁜 경찰의 대결 구도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영화 내내 정신없이 영화 속에 빠져들게하는 오락 영화를 만들어낸 김성훈 감독의 연출력이 대단하게만 느껴질 따름입니다.

 

 

나는 왜 나쁜 놈을 응원했나?

 

그날 밤, 잠들기 전에 구피에게 [끝까지 간다]의 내용을 이야기해줬습니다. 가끔 구피는 밤에 잠이 안오면 제게 혼자 보고온 영화의 내용을 이야기해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을 말해주면 어느사이 새근새근 잠이 들어버립니다. [그녀]의 내용을 이야기할 땐, 이야기가 시작한지 몇 분도 되지 않아 구피는 잠이 들어버렸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오랜만에 푹 잤다며 만족감을 드러내더군요.

그런데 [끝까지 간다]의 내용을 들려줬더니 구피는 잠이 들기는 커녕 오히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제게 되묻습니다. "고건수는 나쁜 놈이잖아. 그런데 그렇게 마지막에 잘 멀쩡해도 되는거야?" 그렇습니다. 고건수는 나쁜 놈입니다. 저 역시 영화의 초반, 고건수의 범행에 그에 대한 정나미가 뚝 떨어졌었으니까요. 하지만 박창민이 나타나고 영화가 고건수와 박창민의 대결 구도로 진행되며 나도 모르게 고건수의 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게 된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고건수가 나쁜 놈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구피의 한마디에 저는 마치 누군가에게 뒷통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쩌다가 나쁜 놈을 응원하게 된거지? 단지 박창민이 더 나쁜 놈이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의문이 든 것입니다. 물론 김성훈 감독의 연출력이 한 몫을 했겠죠. 그렇다면 또다른 의문이 듭니다. 왜 하필 김성훈 감독은 나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일까요? 함정에 빠진 착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도 될텐데... 왜 굳이 나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일까요?

 

어쩌면 김성훈 감독이 [끝까지 간다]에서 나쁜 비리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관객 스스로 고건수를 응원하게 유도함으써 공직자의 비리에 너무 관대한 우리 사회를 풍자한 것은 아닐까요?  

경찰은 범죄로부터 국민은 안전을 지켜주고 법을 수호하고 집행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조직보다도 청렴함이 우선시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건수는 우리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경찰은 분명 아닙니다. 어쩌면 박창민과 고건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둘다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할 부정부패의 암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나쁜 놈들도 있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라며 그들의 비리를 눈감아 줬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무신경함은 더욱 큰 비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끝까지 간다]를 보며 고건수를 응원했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무신경함에 저 역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김성훈 감독이 진정 의도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간다]를 보면서는 고건수를 응원했고, 영화를 보고나서 한참 후에 '내가 왜 나쁜 놈을 응원했지?'라는 생각에 많은 것들을 느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끝까지 간다]는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의 오락성을 넘어선 의미있는 영화였습니다.

 

더 나쁜 놈이 있다고해서 덜 나쁜 놈이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끝까지 간다]는 고건수를 응원한 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이 김성훈 감독의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