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더 바디] - 반전이 늘 마지막은 아니다.

쭈니-1 2014. 5. 30. 18:46

 

 

감독 : 오리올 파울로

주연 : 휴고 실바, 호세 코로나도, 벨렌 루에다, 오라 가리도

개봉 : 2014년 5월 22일

관람 : 2014년 5월 28일

등급 : 15세 관람가

 

 

[그녀]의 여운을 간직한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를 보고나서 10여분 후에는 곧바로 [더 바디]를 봐야 했습니다. [더 바디]를 보기 전, 간단하게 요기라도 할 생각으로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우유를 사서 먹었습니다. 편의점에는 알바 학생을 비롯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저를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의 테오도르가 그러했듯이 저 역시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사로 잡혀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그녀]의 여운이 저 수 많은 인파 속에서도 제게 외로움을 안겨준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 집에 가서 외로움을 좀 더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회사와 집을 오고갔기에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가 제겐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더 바디]를 놓치기가 너무 아쉬웠습니다. 제가 [그녀]의 여운을 잠시 미뤄두면서까지 [더 바디]를 보려했던 이유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스페인 스릴러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스페인 스릴러 영화를 많이, 그리고 자주 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길예르모 델 토르 감독의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비롯하여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을 맡은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줄리아의 눈] 등 스페인 스릴러 영화는 제게 강한 인상을 안겨줬었습니다.

 

특히 [더 바디]의 주연 배우인 벨렌 루에다는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에서는 사라진 아들을 찾기 위해 광기에 휩싸인 로라 역을, 그리고 [줄리아의 눈]에서는 선천적 시력 장애로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쌍둥이 언니의 자살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파헤치는 줄리아 역을 연기하며 제겐 스페인 스릴러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쯤되면 제가 [그녀]의 여운을 잠시 뒤로 미루고 [더 바디]를 선택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잔잔한 러브 스토리인 [그녀]와는 달리 [더 바디]는 새로운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 아내를 살해한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녀]와 [더 바디]는 사랑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상반된 영화인 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더 바디]는 보는 내내 저는 아내인 마이카(벨렌 루에다)를 죽인 알렉스(휴고 실바) 의 범행 대신 10년전의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하이메(호세 코로나도) 형사의 아내를 향한 애절한 그리움과 연인인 카를라(오라 가리도)와의 사랑에 집착하는 알렉스의 절박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시 사랑이라는 것은 추악한 범죄보다 아름다운 진심이 더 어울리기에... 

 

 

사라진 아내의 시체... 그녀는 살았는가? 죽었는가?

 

스릴러 영화의 영화 이야기를 쓸 때마다 항상 밝히는 것이지만, 제 글에는 영화의 내용 및 반전이 포함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더 바디]를 아직 안보신 분이라면 제 글을 가급적이면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더 바디]는 자신에게 집착하는 미모의 재력가 아내 마이카에게 벗어나 연인 카를라와 함께 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알렉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복용 후 8시간 후에 심장 마비로 죽게 되는 독극물을 이용하여 마이카를 살해합니다. 하지만 완전 범죄처럼 보였던 그의 범행은 시체 검시소에서 마이카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알렉스는 마이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는 마이카가 자신의 계획을 미리 알고, 죽은 것처럼 위장했다가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담당 형사인 하이메는 알렉스가 시체를 빼돌린 것이라 의심합니다. 부검이 진행될 경우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까봐 부검 이전에 마이카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빼돌린 것이라고...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대결 구도입니다. 만약 마이카가 살아 있다면 [더 바디]의 대결 구도는 알렉스와 마이카가 될 것입니다. 하이메는 그들의 대결 구도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더 바디]의 대결 구도는 알렉스와 마이카가 아닌 알렉스와 하이메로 진행됩니다. 알렉스는 마이카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계속 발견하지만 그는 이미 하이메에 의해 구금된 상태이며, 하이메는 알렉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알렉스가 하이메에 의해 구금된 상황에서는 알렉스와 마이카의 대결 구도가 성립이 안됩니다. 어찌 되었던 그는 경찰의 손아귀에 있고, 그러한 상황에서 마이카가 복수를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제한적이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저는 영화를 보며 이 영화의 진정한 시작은 알렉스가 경찰의 구금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더 바디]는 영화가 끝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알렉스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장치는 마이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알렉스와 알렉스가 마이카의 시체를 빼돌렸다고 생각하는 하이메의 대결로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

 

 

아내의 죽음을 대처하는 두 남자의 상반된 태도

 

바로 이 시점에서 한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하이메라는 캐릭터입니다. 대개 이런 류의 스릴러 영화에서 경찰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더 바디]는 영화의 대결 구도를 알렉스와 하이메로 설정한 만큼 하이메의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꽤 공들입니다.

하이메는 10년전 사고로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며 그리워합니다. 그렇기에 마이카의 죽음에 무덤덤하게 대처하는 알렉스를 보며 그를 살해범으로 의심합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아내를 잃은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데, 저 녀석은 오늘 아내를 잃었는데도 너무 침착하군."

처음부터 하이메는 알렉스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출합니다. 그러한 설정은 [더 바디]가 굉장히 똑똑한 스릴러 임을 증명합니다. 영화의 대결 구도가 알렉스와 하이메로 진행되기 위한 당위성이 하이메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설명이 되는 셈이니까요. 하이메가 다짜고짜 알렉스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것은 그의 캐릭터 성격으로 본다면 당연한 것입니다.

 

[더 바디]는 영화의 대결구도가 알렉스와 하이메로 진행되면서 꽤 많은 것을 획득합니다. 첫번째는 범인과 형사의 진실 게임이고, 두번째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이카라는 변수에 의한 짜릿한 스릴입니다.

알렉스는 자신의 범행을 의심하는 하이메에 의해 구금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카는 알렉스를 압박해 들어옵니다. 물론 알렉스가 경찰과 함께 있음으로써 그는 안전합니다. 아무리 마이카가 모험을 즐기는 당찬 여자라고 해도 경찰과 함께 있는 알렉스를 어쩔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카를라는 다릅니다.   

알렉스가 카를라의 안전을 걱정하며 어떻게든 경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사이 카를라는 점점 위험에 노출됩니다. 물론 알렉스는 살해범이고 (마이카가 살아 있다면 살인 미수범입니다.) 카를라는 그러한 알렉스의 살인을 묵인하였습니다. 결국 그 둘은 범죄자입니다. 하지만 [더 바디]는 알렉스와 카를라의 사랑을 부각시키며, 카를라의 안전이 위협되는 장면을 통해 영화를 보는 제게 스릴을 안겨 준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더 바디]는 분명 잘만든 스릴러 영화인 셈입니다.

 

 

반전이 늘 마지막은 아니다.

 

마이카의 시체가 사라진 단 하룻밤 동안 시체 검시소 안에서는 알렉스와 하이메가 치열한 진실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는 죽음의 위험이 점점 카를라를 위협합니다. 그러한 이중 효과를 통해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의 묘미를 완성한 [더 바디].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반전 뿐입니다.

과연 마이카는 정말 살아 있는 것일까요? 그녀는 알렉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 모든 계획을 치밀하게 꾸며낸 것일까요? 마이카가 살아 있지 않다면 그녀의 시체를 가져간 사람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시체를 가져간 것일까요? 그리고 왜 알렉스를 위협하는 것일까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질 때쯤 느닷없이 하이메는 자신의 과거를 알렉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10년 전 뺑소니 사고로 아내를 잃은 하이메. 바로 그 순간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하이메가 아내를 잃은 10년 전 사고가 그저 알렉스와 하이메의 대결 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10년 전 사고는 그 이상을 넘어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솔직히 [더 바디]가 완벽한 스릴러 영화는 아닙니다. 이 모든 반전을 하이메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도 촌스럽고,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복수를 하는 모험을 선택한 것도 명확하게 설명이 안됩니다. 어찌보면 억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반전이 제겐 꽤나 신선했습니다. 왜냐하면 복수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절박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카를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어머니를 죽인 뺑소니범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하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단지 알렉스가 진범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과연 마이카와 알렉스에게 복수를 한 이후에 카를라와 하이메는 행복했을까요? 아뇨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이메는 어린 딸을 이 잔혹한 복수극에 끌어들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며, 카를라는 어머니를 죽은 범인과 섹스를 나누며 연인 행세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더 바디]의 반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복수 이후 하이메와 카를라가 겪게될 또 다른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더 바디]는 반전을 끝으로 속 시원하게 끝맺음하는 스릴러 영화가 아닙니다. 반전 뒤에 남겨진 여운... 그것이 [더 바디]의 진정한 재미인 셈입니다.

 

[더 바디]에는 스페인 스릴러 영화 특유의 스산함이 묻어있다.

그러한 스산함이 복수 후 남겨진 부녀의 마지막 눈빛에도 어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