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쭈니-1 2014. 5. 23. 18:00

 

 

감독 : 브라이언 싱어

주연 : 휴 잭맨, 제임스 맥어보이, 마이클 패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개봉 : 2014년 5월 22일

관람 : 2014년 5월 22일

등급 : 12세 관람가

 

 

'배트맨'과 '엑스맨'의 공통점

 

제가 지금처럼 슈퍼 히어로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개봉한 [배트맨]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1992년 개봉한 [배트맨 2]는 제게 '캣우먼 앓이'를 안겨줬는데, 어찌보면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캣우먼'에게 흠뻑 빠지며 저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의 손을 떠나 조엘 슈마허를 새로운 감독으로 맞이하면서 '배트맨'에 대한 제 사랑은 분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배트맨 2]에 열광했던 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에 실망 이상의 분노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DC 코믹스의 대표적인 영웅 '배트맨'이 팀 버튼 감독에서 조엘 슈마허 감독으로 바뀌며 제게 실망감을 안겨줬다면, 마블 코믹스 출신 슈퍼 히어로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엑스맨'의 경우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에서 브렛 래트너 감독으로 바뀌며 제게 실망감을 안겨준 경우입니다.

2000년 개봉했던 [엑스맨]은 제게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새로운 인간 진화인 뮤턴트(돌연변이)들이 등장하자, 엄청난 능력을 지닌 뮤턴트를 두려워하며 그들을 공격하려는 인간들과 그러한 인간에 맞서 싸우려하는 에릭 랜셔(이안 맥켈런), 그리고 인간과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는 찰스 자비에 교수(패트릭 스튜어트)의 이야기가 놀라운 특수효과 영상과 함께 제 마음을 온통 빼앗아가버린 것입니다.

 

뮤턴트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인간들도 이해가 되었고, 그러한 인간들에 맞서 뮤턴트들을 지켜야 한다는 에릭 랜셔도, 언젠가는 인간들과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 찰스 자비에 교수도,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기억을 잃어버린 울버린(휴 잭맨)을 내세워 극의 중심을 잡아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연출력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놀라운 연출력은 2003년에 개봉한 [엑스맨 2]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이 그러했듯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도 2편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시리즈의 3편인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은 브라이언 싱어가 아닌 브렛 래트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은 '엑스맨'에 대한 제 애정을 분노로 바꿔놓았습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 대한 제 분노는 브렛 래트너 감독이 아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향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수퍼맨 리턴즈]의 감독을 맡으며 스스로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의 연출을 포기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엑스맨'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브라리언 싱어는 혼자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조엘 슈마허 감독에 의해 망가질대로 망가진 '배트맨'이 2005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만나며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간 것처럼, '엑스맨' 역시 2011년 매튜 본 감독에 의해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세바스찬 쇼우(케빈 베이컨)에게 참혹한 생체 실험을 당했던 에릭 랜셔(마이클 패스벤더)와 부유한 집에서 남부러울 것이 성장한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의 과거를 통해 그들이 뮤턴트이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짜임새있게 보여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는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 대한 제 분노를 가라앉힐만큼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로 시작된 새로운 '엑스맨 3부작'은 '엑스맨'의 완벽한 부활 외에도 제게 깜짝 놀랄만한 선물을 안겨줬습니다. 바로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 이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드디어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복귀한 것입니다. [엑스맨 2]이후 무려 11년만에 우리는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을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홀로 '엑스맨'에 복귀한 것이 아닌 이전 '엑스맨 3부작'의 영웅들을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불러 들이며 저와 같은 올드팬들을 기쁨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한때 [수퍼맨 리턴즈]를 연출하기 위해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외면했던 브라이언 싱어 감독. 그는 8년 전의 실수를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통해 완벽하게 만회한 것입니다.

 

물론 매튜 본 감독의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도 그 자체로 완벽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올드팬의 입장에서는 아쉬움도 조금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엑스맨'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뮤턴트인 울버린이 영화의 초반 깜짝 출연 정도의 분량으로 얼굴을 내비치는데 그쳤고, 젊어진 찰스 자비에 교수와 에릭 랜셔의 모습도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저와 같은 올드팬들의 아쉬움을 알고 있었는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는 아예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게다가 이안 맥컬런의 에릭 랜셔와 패트릭 스튜어트의 찰스 자비에 교수는 물론 할리 베리가 연기한 스톰과 안나 파킨의 로그도 잠시마나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보너스는 영화의 후반부에 나오는 진 그레이(팜케 얀센)와 스콧(제임스 마스던)입니다. 특히 울버린이 애틋한 표정으로 진 그레이를 바라보는 장면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여운이 남았습니다.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통해 아쉽게 떠나보내야만 했던 진 그레이였기에 그녀를 다시 볼 수 있게 서비스해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이렇게 추억팔이를 통해 관객을 끌어모으려는 얄팍한 영화라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함께 복귀한 이전 '엑스맨 3부작'의 멤버들이 반갑긴 했지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진정한 재미는 그러한 반가운 얼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공의 적은 그들을 뭉치게 했지만 대응 방법은 서로 달랐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제게 있어서 완벽한 영화입니다. 우선 추억의 뮤턴트들이 추억팔이에 의한 어거지 출연이 아닌 치밀한 스토리 라인 안에 자연스럽게 등장하여 올드팬인 제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는 점은 큰 플러스 요인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뮤턴트들에게 있어서 공공의 적인 센티널을 등장시켜 뮤턴트 최악의 위기를 그려냄으로서 영화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센티널은 마치 [토르 : 천둥의 신]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디스트로이어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센티널이 디스트로이어와 비교해서 더 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량 생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맞서 싸워야 하는 뮤턴트에 따라 능력도 바뀐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센티널의 능력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미스틱(제니퍼 로렌스)의 유전자를 센티널의 창조자인 트라스크 박사(피터 딘클리지)가 손에 거머쥐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초반 센티널에 의해 무자비하게 죽음을 당하는 뮤턴트들의 모습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센티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키티 프라이드(엘렌 페이지)의 능력을 이용, 1973년 과거로 돌아가 센티널의 제조를 막아내는 것입니다. 마치 [터미네이터 2]의 스토리 라인을 떠오르는 부분인데,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터미네이터 2]와는 달리 과거로 돌아가 센티널을 없애는 것이 아닌, 센티널을 만들 명분을 없애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센티널을 만들 명분을 없애는 것 자체가 오랜 세월 찰스 자비에가 주장했던 인간과의 공존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바스찬 쇼유에 의해 참혹한 일을 겪어야 했던 에릭 랜셔는 인간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인 뮤턴트를 지키기 위해 인간 말살도 불사하려합니다.

하지만 찰스 자비에는 인간과의 공존을 염원합니다. 그는 뮤턴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이해했고, 뮤턴트가 인간과의 공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인간들 역시 뮤턴트를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센티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센티널은 뮤턴트에 대한 인간의 공포가 만들어낸 뮤턴트용 살상 무기입니다. 에릭 랜셔는 센티널을 만들어 뮤턴트를 죽이려 했던 트라스크 박사는 물론, 미국 대통령 및 군 관료들까지 몰살하려합니다. 하지만 찰스 자비에 교수는 압니다. 그들을 죽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오히려 뮤턴트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을 더욱 키울 것이며 그로인하여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임을...

센티널이라는 공공의 적을 앞두고, 언제나 그랬듯 찰스 자비에 교수와 에릭 랜셔의 대응 방법은 서로 다릅니다. 그러한 와중에 사건의 키를 가지고 있는 미스틱의 마지막 선택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미스틱은 찰스 자비에 교수에게는 친동생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찰스 자비에 교수를 배신하고 에릭 랜셔의 편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그러한 점들을 복합적으로 이용하여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준비해놓은 영화인 셈입니다.

 

 

매력적인 신(新) 뮤턴트, 그리고 아포칼립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유일한 아쉬움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 맹활약했던 새로운 뮤턴트들이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점입니다. 특히 저는 세바스찬 쇼우의 측근 부하로 나왔던 엠마 프로스트(재누어리 존스)의 활약을 기대했습니다. 엠마 프로스트는 마블 유니버스에서 찰스 자비에 교수에 이어 '엑스맨'의 리더가 되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뮤턴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에서 너무 많이 점프를 해버립니다. 에릭 랜셔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용의자로 체포되고, 에릭 랜셔의 편에 섰던 엠마 프로스트를 비롯한 엔젤, 립타이드 등이 정부 요원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나옵니다. 부디 나중에라도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사이에서 벌어진 에릭 랜셔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의 진실도 영화로 나와주길...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비록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통해 선보였던 매력적인 새로운 뮤턴트들이 아쉽게 사라져버렸지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는 새로운 매력적인 뮤턴트들로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판빙빙이 연기한 블링크와 오마 사이가 연기한 비숍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역시 피에스트로 맥시모프(에반 피터스)입니다.

피에스트로 맥시모프는 퀵실버로 잘 알려진 뮤턴트로 광속과도 같은 빠른 속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퀵실버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도 등장할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퀵실버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퀵실버는 판권 문제로 인하여 서로 다른 캐릭터로 그려질 예정이지만,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보여준 퀵실버의 놀라운 능력은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마저 기대하게 했습니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는 마블 영화답게 히든 영상이 있습니다. 저는 깜박 잊고 2013년 [더 울버린]의 히든 영상을 보지 못하고 극장 밖을 나선 적이 있습니다. [더 울버린]의 히든 영상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대한 것이었기에 더욱 두고 두고 아쉬웠습니다. 그렇기에 기나긴 엔딩 크레딧을 기다리고 기다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의 히든 영상만큼은 사수하고 왔습니다.

이번 히든 영상의 등장 인물은 아포칼립스라는 뮤턴트라고 합니다. 원작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전 이집트의 아카바 부족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뮤턴트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캐릭터입니다. 아포칼립스는 그 어떤 뮤턴트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힘과 영생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포칼립스로 인하여 '엑스맨'은 센티널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다른 엄청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 이은 3부작의 마지막편 제목은 [엑스맨 : 아포칼립스]입니다. 이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아포칼립스를 통해 뮤턴트의 기원과 80년대를 배경으로한 '엑스맨'의 활약을 그릴 것이라 밝혔습니다.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가 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닉슨 대통령이 재임 중인 70년대를 다뤘으니, 80년대를 다루는 [엑스맨 : 아포칼립스]는 매우 자연스러운 설정인 셈입니다.

자! [엑스맨 : 아포칼립스]에서는 또 어떤 인류 역사가 뮤턴트에 의해 새롭게 쓰여질까요? 그리고 또 어떤 새로운 뮤턴트가 제게 즐거움을 안겨줄까요?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을 통해 더이상 회생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엑스맨'이 이렇게 완벽하게 부활한 것을 보면 영화 속의 찰스 자비에 교수가 이야기한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더욱 가슴와 와닿았습니다. 영원히 길을 잃지 않고 우리 곁에 돌아와준 '엑스맨'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길을 헤맨 것이 두고 두고 아쉽지만,

그래도 뒤 늦게나마 다시 제 길로 접어든 것에 만족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