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인간중독] - 그들은 사랑이 아닌 사람에 중독되었다.

쭈니-1 2014. 5. 23. 10:41

 

 

감독 : 김대우

주연 : 송승헌, 임지연, 조여정, 온주완, 전혜진

개봉 : 2014년 5월 14일

관람 : 2014년 5월 2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금지된 사랑은 김대우 감독의 주특기이다.

 

드디어 [인간중독]을 보고 왔습니다. 이번만큼은 야한 영화를 혼자 보러 갈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끈질기게 구피를 (신세계백화점 상품권 5만원권으로) 유혹했지만, 구피는 "싫어. [인간중독]은 혼자 보러 가!"라며 매몰차게 제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결국 [색, 계]를 혼자 보러 갔을 때 겪은 뻘쭘함의 기억 때문에 잔뜩 긴장하며 최대한 한산한 극장에서 [인간중독]을 보기 위해 관람 극장, 시간대를 심사숙고해서 드디어 보고 왔습니다.

사실 제가 [인간중독]을 기대한 이유는 야한 영화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내용없이 여배우가 옷을 벗는 영화가 보고 싶다면 차라리 웹하드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포르노를 보는 것이 나을테니까요. 제가 [인간중독]을 극장에서 보기로 선택한 진짜 이유는 바로 김대우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김대우 감독은 [정사],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의 각본으로 유명세를 탄 이후 [음란서생], [방자전]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한 인물입니다. 그의 영화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의 소재가 일관되게 금지된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정사]는 동생(김민)의 약혼자(이정재)와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주부(이미숙)의 이야기였고,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는 9년째 수절하며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정절녀(전도연)를 유혹하다가 결국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조선시대 바람둥이 선비(배용준)의 이야기입니다.

 

금지된 사랑에 대한 김대우 감독의 탐구는 감독 데뷔 후에는 더욱 노골적이 되었습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음란서생]은 명망높은 사대부 집안 자제이자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윤서(한석규)가 음란 소설을 쓰며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왕의 총애를 받는 정빈(김민정)과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김대우 감독의 최고 흥행작인 [방자전]은 춘향(조여정)에게 첫 눈에 반한 방자(김주혁)가 장원 급제한 몽룡(류승범)의 여자인 춘향을 탐하며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김대우 감독은 금지된 사랑을 영화화하면서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조선 시대의 신분 차이가 금지된 사랑의 소재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윤서는 양반인 사대부의 자제이지만 윤서가 사랑에 빠지는 정빈은 권력의 최상위층에 자리잡은 왕의 여자입니다. [방자전]은 기생의 딸인 춘향이 신분 상승을 위해 양반인 몽룡을 유혹하고, 그러한 와중에 최하위 신분계층인 노비 방자가 춘향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음란서생]도, [방자전]도 서로 다른 신분의 차이 때문에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신분의 차이를 넘나드는 금기의 사랑은 [인간중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달아가던 196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김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중 최초로 사극이 아닌 현대물인 셈이죠. 하지만 [인간중독]은 군관사를 주요 무대로 삼으며 군 특유의 계급 사회를 금기된 사랑이라는 소재에 이용합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사극을 벗어난 김대우 감독이 [인간중독]에서는 또 어떤 금지된 사랑의 비극을 보여줄 것인지...

 

 

솔직히 [방자전]보다는 별로였다.

 

[인간중독]에 대한 제 감상 포인트는 금지된 사랑의 비극이 뿜어내는 깊은 여운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인간중독]은 분명 김대우 감독의 영화 중에서 제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방자전]과 비교해서는 기대이하였습니다.

[방자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버린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김대우 감독은 <춘향전>에서 조연에 불과한 방자가 춘향에게 흑심을 품는다면... 이라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신분상승의 욕망과 아슬아슬한 금지된 사랑의 사이에서 비극에 빠져드는 춘향과 방자의 모습을 깊은 여운으로 그려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중독]은? [인간중독]에서 금지된 사랑의 덫에 빠지는 것은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과 김진평의 부하 경우진(온주완)의 아내인 종가흔(임지연)입니다. 김진평의 아내인 이숙진(조여정)은 군단장(정원중)의 딸이고, 김진평은 베트남전에서의 활약으로 모두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군관사 안에서 최상위층 권력을 움켜쥔 인물입니다.

[인간중독]이 [방자전]보다 여운이 깊지 않은 것은 바로 그러한 김진평의 위치 때문입니다. 신분 최하위 계층인 방자와 춘향의 사랑은 그들의 낮은 위치 때문에 아슬아슬했고, 그러한 아슬아슬함이 마지막 비극의 단초가 됩니다. 하지만 김진평은 군관사 안에서 최상위 계층이고, 그렇기에 김진평과 종가흔의 금지된 사랑에는 아슬아슬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김진평과 종가흔의 금지된 사랑(혹은 불륜)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탄탄대로입니다. 김진평은 종가흔과의 사랑에 있어서  장애물에 불과한 경우진을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보낼 수도, 누명을 씌워 버릴 수도 있을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 또한 비극으로 치닫습니다. 종가흔이 김진평의 사랑을 죄책감 때문에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인간중독]의 비극은 관객인 제게 여운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음란서생]의 비극과 [방자전]의 비극의 자연스러웠던 반면, [인간중독]의 비극은 자연스럽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음란서생]과 [방자전]의 비극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비극이 권력자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란서생]에서는 권력의 최상위층인 왕(안내상)이 윤서와 정빈의 관계를 알아버렸고, [방자전]에서는 방자와 춘향이 사랑이 몽룡의 출세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음란서생]과 [방자전]은 비극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아무리 영화가 코미디의 모양새를 띄고 있어도 마지막 비극에 저는 여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김진평은 군막사 내에서 권력의 최상위 계층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종가흔과의 사랑을 좌지우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랑의 대상자인 종가흔이 김진평의 사랑을 거부했고, 결국 그들의 사랑을 비극으로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진평과 종가흔, 본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중독]은 종가흔이 김진평의 사랑을 거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좀 더 심혈을 기울여 표현해야 했습니다. 

 

 

캐릭터의 사정이 빠져 있다.

 

김진평과 종가흔의 비극적 사랑은 그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지닌 그 누구의 소행이 아닌, 그들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중독]은 스스로의 사랑을 비극으로 만든 김진평과 종가흔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관객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들의 캐릭터를 좀 더 세세하게 잡아내야 했습니다. 그들의 비극적 사랑을 깊은 여운으로 완성해내래면 말입니다. 그러나 김대우 감독은 캐릭터 설명을 최대한 생략해버립니다.

우선 김진평을 보면... 김진평은 베트남전의 영웅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참혹한 전쟁을 겪은 그는 은밀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설정은 매우 탁월한 선택입니다. 겉보기에는 완벽한 전쟁 영웅이지만 속으로는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김진평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비극적인 사랑을 치닫게 하는 불안전한 내면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중독]은 그러한 면을 적절하게 이용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중독]에서 김진평이 베트남에서 겪은 참혹한 전쟁의 후유증을 표현하는 장면은 딱 두 장면에 불과합니다.  김진평이 정신과 의사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장면과 경우진 부부와의 피크닉에서 자신이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 뿐입니다. 그나마 베트남전 참혹함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은 꿈 장면 뿐인데... 그래가지고는 전쟁에 의한 깊은 내상을 입은 김진평의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부족합니다.

김대우 감독은 베트남전의 참혹함을 담은 장면들을 좀 더 추가했어야 했고, 그럼으로써 김진평의 불안전한 내면을 관객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베트남전의 참혹함으로인한 불안전한 내면이 김진평을 금지된 사랑에 집착하게 만들었고, 그 집착이 비극이 되었음을 좀 더 적극적으로 관객에게 이해시켰어야 했습니다.  

 

종가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종가흔의 부모는 중국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았고, 이질로 죽은 아버지의 시체 옆에서 10여일을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경우진의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식모로 키워졌고, 경우진과 결혼하기에 이르릅니다. 그러한 종가흔의 과거는 군관사 내 2인자인 최중령의 아내(전혜진)에 의해 뜬소문처럼 전해질 뿐입니다.

경우진의 어머니는 종가흔과 김진평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그녀는 "내 아들은 나쁜 놈이잖아."라고 이야기하지만, [인간중독]에는 경우진이 나쁜 놈이라는 단서조차 없습니다. 경우진은 권력 앞에서 비열한 인간일뿐, 나쁜 놈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최중령의 아내를 비록한 군관사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우진보다 나아보이지 않습니다.)

종가흔의 과거, 그리고 경우진으로 인하여 그녀가 어떠한 불행함에 빠져 있는지 [인간중독]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이 중요한 것은 김진평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것도 종가흔이고, 결국 김진평의 사랑을 거부함으로서 그들의 사랑을 비극에 빠뜨리는 것도 종가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종가흔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관객이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야 하는데 김대우 감독은 그러한 장면들을 아예 생략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김진평과 종가흔의 캐릭터를 최대한 생략하고 2시간 1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김대우 감독이 잡아낸 것은 김진평과 종가흔의 사랑과 섹스입니다. 그들이 금지된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들의 사랑이 비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빠져 있으니 [인간중독]의 파격적 섹스씬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사랑이 아닌 인간에게 중독되었다.

 

김대우 감독이 제목을 '사랑중독'이 아닌 '인간중독'이라 지은 것에 주목해야합니다. 김대우 감독 또한 어쩌면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김진평과 종가흔은 사랑이 아닌, 자신을 이해해줄 그 누군가가 필요했음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김대우 감독은 김진평과 종가흔의 캐릭터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채 그들의 사랑 놀음에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전부 소모해버렸습니다.

김진평에게는 아내가 있지만 이숙진은 남편의 진급과 2세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베트남전의 후유증을 내적 방황을 하는 김진평에게 이숙진의 존재는 오히려 압박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군단장의 딸인 이숙진이 그의 곁에 버티고 있는 한 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베트남전의 악몽은 계속 그를 괴롭힐 것입니다.

김진평이 종가흔에게 그렇게 순식간에 빠져든 것은 남편의 진급에만 관심이 있는 군관사의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종가흔의 독특한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김진평은 종가흔과의 금지된 사랑을 통해 현실에 대한 도피를 꿈꾼 것이죠. 그렇기에 김진평은 자신의 권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망가뜨려버립니다. 자신이 더 높은 곳에 올라가면 갈수록 그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짐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김진평은 종가흔에게 말합니다. 해변에서 함께 살자고... 그가 군복을 벗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 아닌, 베트남전의 참혹한 기억에 대한 해방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희망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악몽의 땅 베트남으로 발령됩니다. 김진평은 그저 베트남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신을 이해해주며 함께해줄 사람이 사람이 그리웠던 것 뿐인데, 그의 작은 소망은 오히려 그를 베트남으로 밀어넣은 것이죠.

 

사랑이 아닌 인간에 중독된 것은 종가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고아입니다. 그러한 그녀를 경우진의 어머니가 거둬주었습니다. 그녀가 경우진에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권력욕에 눈이 먼 경우진은 그녀를 자신의 진급에 이용할 뿐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경우진은 일부러 종가흔에게 등이 파인 옷을 입고 사단장에게 접근시키는 장면을 통해 그가 군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이유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어쩌면 종가흔이 김진평에게 먼저 접근한 이유도 경우진의 권력욕에 의한 계획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군관사 안의 최상위 권력자는 김진평이고, 경우진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리가 없을테니까요. 결국 종가흔은 김진평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종가흔이 김진평을 사랑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장면은 김진평이 그녀에게 함께 떠나자며 애절한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그녀는 김진평에게 "내 모든 것을 버릴만큼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녀는 비록 경우진의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핑계로 대고 있지만, 그녀의 말 그대로 그녀는 김진평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중독]은 어쩌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쟁으로 인하여(김진평은 베트남전, 종가흔은 한국전쟁) 불안정한 내면을 가진 이들이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을 그리워하는 영화인 셈입니다. 만약 김대우 감독이 그러한 면을 잘 살려냈다면 [인간중독]은 [방자전]보다 더욱 아릿한 여운을 제게 안겨줬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인간중독]에게 아쉬웠던 점입니다. 

 

우리는 가끔 사랑이 아닌, 사람 그 자체에 중독된다.

그것이 사랑이라도 굳게 믿으며...

[인간중독]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가 아닐까?

사람에 중독되었지만, 그것이 사랑이라 굳게 믿은 한 남자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