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월리 피스터
주연 : 조니 뎁, 레베카 홀, 폴 베타니, 모건 프리먼, 킬러언 머피, 케이트 마라
개봉 : 2014년 5월 14일
관람 : 2014년 5월 15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나는 왜 이 영화에 실망했는가?
[트랜센던스]와 [고질라], [인간중독]과 [신촌좀비만화]... 이렇게 기대작이 무려 네편이나 개봉된 이번주. 저와 구피는 일찌감치 [트랜센던스]를 기대작 1순위로 선정해놓고 어서 빨리 개봉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극장에서 직접 관람한 [트랜센던스]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물론 너무 기대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센던스]의 국내 포스터에도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다크 나이트], [인셉션]의 천재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은 맡은 영화인데다가, [캐리비안의 해적]의 영원한 잭 스패로우 선장, 조니 뎁과 [아이언맨 3]로 주목을 받은 라이징 스타, 레베카 홀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이니 기대가 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트랜센던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SF영화입니다. 인공지능 컴퓨터를 연구하던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이 과격한 반과학단체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자 그의 아내인 에블린(레베카 홀)이 윌의 뇌를 슈퍼 컴퓨터에 업로드 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컴퓨터가 우리의 삶에 뗄래야 뗄 수가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트랜센던스]의 스토리 라인은 가까운 미래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제 호기심을 더욱 자극시켰습니다.
결국 제가 [트랜센던스]에 기대한 것은 제작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과 같은 놀라운 경험입니다. [인셉션]은 꿈의 세계를 소재한 영화였기에 온라인의 세계를 소재로한 [트랜센던스]와 비슷해보였습니다.
그러나 [트랜센던스]는 [인셉션]과는 달리 상상력 자체가 부족한 영화입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캐릭터는 밋밋했고, 기대했던 배우들의 연기마저 기대 이하여서 제가 감정이입을 캐릭터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트랜센던스]의 실망스러움은 북미 개봉에서부터 드러났었습니다. 2014년 4월 18일에 북미에서 개봉한 [트랜센던스]는 개봉 첫 주를 박스오피스 4위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시작하더니 개봉 3주째에는 박스오피스 TOP10에서 밀려나는 부진한 흥행을 보였습니다. 결국 순수 제작비 1억달러가 들어간 [트랜센던스]가 북미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입은 고작 2천2백만 달러. 이 정도면 2014년 최악의 흥행 실패 영화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만합니다.
실망스러운 북미 흥행 결과와 상관없이 [트랜센던스]를 기대했건만, 영화를 보고나서 저도, 그리고 구피도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영화가 왜 미국에서 흥행에 실패했는지 알겠네." 그렇기에 이번 [트랜센던스]의 영화이야기는 제가 왜 [트랜센던스]에 실망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윌은 죽었는가? 아니면 살았는가?
[트랜센던스]는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컴퓨터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센던스]가 제 흥미를 이끌어낸 것은 세부적인 아이디어가 독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 컴퓨터가 새롭게 만들어진 창조물이 아닌 윌 캐스터라는 천재 과학자의 뇌를 업로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윌 캐스터는 죽었습니다. 그의 육체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어 강에 뿌려집니다. 그러나 윌을 사랑한 에블린은 그를 이대로 보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시킵니다. 이로써 윌은 죽었지만 그와 동시에 컴퓨터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철학적인 질문이 나옵니다. 과연 윌은 죽은 것일까요? 살아 있는 것일까요? 에블린은 윌이 살아 있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컴퓨터 안에 업로드된 윌은 에블린과의 추억, 사랑하는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에 비록 육체는 없지만 살아 있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윌과 에블린의 오랜 동료이자, 남 몰래 에블린을 짝사랑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맥스(폴 베타니)는 윌이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컴퓨터에 업로드된 것은 그저 윌의 기억을 데이타화한 것에 불과하기에 컴퓨터에 업로드된 윌은 진짜 윌이 아닌 데이타 덩어리라고 에블린을 설득합니다.
이건 매우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과연 인간이 살았고, 죽었음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까요? 육체로? 아니면 정신으로? 만약 육체의 죽음을 인간의 죽음으로 정의한다면 윌은 죽은 것이 분명하지만, 정신의 죽음을 인간의 죽음으로 정의한다면 윌은 엄연히 살아 있는 인간이 됩니다. 현재로서는 그 무엇이 '정답이다'라고 단정짓기 어렵습니다.
[트랜센던스]는 바로 이 부분에서 첫번째 재미를 찾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윌이 살아 있는 인간인지, 아니면 컴퓨터에 업로드된 데이타 덩어리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었기에 그러한 혼란을 잘 이용한다면 새로운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트랜센던스]는 이 첫번째 재미를 스스로 걷어차버립니다.
에블린은 윌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그가 되살아나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했고, 그러한 시도가 성공했을 때 윌이 되살아난 것이라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맥스는? 그는 애초부터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겠다는 에블린의 생각에 반대하며 말립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윌이 충고합니다. "난 이제 곧 죽으니까 상관없지만, 자넨 평생 에블린에게 들들 볶일거야." 그렇습니다. 맥스가 내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에블린을 도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한 것은 순전히 에블린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윌의 뇌가 컴퓨터 업로드에 성공하자마자 '이건 윌이 아니다'라며 반발하고나서는 것입니다. 또다시 에블린을 윌에게 빼앗기기 싫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에블린과 맥스는 컴퓨터에 업로드된 윌에 대해서 사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제대로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 윌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라는 질문의 대답을 구할 수 있는 제대로된 힌트 제공자가 아닌 셈입니다.
테러 단체에게 답을 구할 수도 없지 않은가?
에블린은 윌이 컴퓨터를 통해 살아난 것이라 믿습니다. 제 입장에서 영화 자체가 에블린을 중심으로 펼쳐지니 에블린의 생각에 공감하며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윌은 죽었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 것인가?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놓고 관객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채 그저 에블린의 판단을 멍하니 따라가게 만든 것입니다.
물론 [트랜센던스]에는 에블린과 맥스 외에도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멸망이라 주장하는 반(反)과학단체 RIFT의 리더인 브리(케이트 마라)는 윌은 죽었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서 에블린의 대척점에 설 수 있는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트랜센던스]는 제가 브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차단해버립니다. 왜냐하면 RIFT는 과격한 테러조직이고, 브리는 냉혹한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무고한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 테러 단체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질문의 답을 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센던스]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 2]를 보고 배웠어야 했습니다. 사실 [터미네이터 2]는 [트랜센던스]와 비슷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래에서 온 카일(마이클 빈)에게 인공 지능을 가진 기계들로 인하여 인류 최악의 전쟁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인공 지능 기계를 개발하려는 과학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당연히 사라 코너를 응원하게 됩니다.
물론 [트랜센던스]에서 제가 철저하게 브리의 편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터미네이터 2]와는 달리 [트랜센던스]는 누가 맞다라고 꼭 찝어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브리의 생각이 제게 혼란을 줬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녀는 너무 악독합니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과정이 좋지 않으면 지지를 얻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어쩌면 윌리 피스터 감독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에 브리의 편을 조금씩 늘려 나갑니다. RIFT에 납치된 맥스도 결국 RIFT와 함께 윌을 막으려 하고, 윌과 에블린의 스승인 요셉 태거(모건 프리먼)와 FBI 요원인 부캐넌(킬러언 머피) 또한 윌의 위험성을 알고 윌을 막기 위해 RIFT와 손을 잡습니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윌은 죽었는가? 아니면 살아 있는가?'라는 질문의 의미가 희석되어 버린 상태입니다. 윌은 인터넷을 통해 무한의 힘을 얻게 되었고, 맥스와 요셉, 그리고 부캐넌 요원이 RIFT와 손을 잡은 것은 이렇게 무한대로 힘을 키워나가는 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트랜센던스]는 육체를 잃은 윌은 죽은 것인가? 아니면 그의 정신이 컴퓨터 안에 있으니 살아 있는 것인가?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놓고 이러한 흥미로운 질문을 활용하지 못한채 흐지부지 끝을 내버린 셈입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윌이 스스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영화의 후반, 맥스는 물론 요셉과 부캐넌 요원까지 테러 조직인 RIFT와 손을 잡을만큼 윌에게 두려워한 것은 무엇일까요? 윌은 죽었는가? 살았는가? 라는 질문이 제대로된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는 이상 [트랜센던스]는 인터넷을 통해 무한대의 힘을 얻은 윌의 공포에 초점을 맞츨 수 밖에 없습니다.
중반까지 그러한 장치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윌은 금융정보를 통해 막대한 자본력을 갖추게 되었고, 에블린과 함께 미국의 작은 벽지 마을에 그들만의 왕국을 세웁니다. 특히 나노 기술을 통해 무엇이든 재생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윌의 성과에 에블린은 "대단한데..."라며 기뻐하면서도 두려운 모습을 감추지 않습니다.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란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법이다... 라고. 그 말의 뜻은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다는 것입니다. 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지식과 힘을 얻은 윌. 처음에 그는 RIFT의 위협으로부터 에블린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목표였지만, 나중에는 인류의 불치병을 고친다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요셉과 부캐넌 요원은 "윌이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었어."라며 경계합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만약 윌이 순수하게 불치의 병으로부터 사람들을 고쳐주겠다는 의도로 힘을 발휘했다면 모르겠지만, 윌은 자신이 고쳐준 사람들의 뇌를 자기 자신과 연결(윌은 그들을 하이브리드라고 부릅니다.)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로써 누구든 윌이 될 수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광경을 보고 경계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윌에 대한 두려움은 이렇게 윌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윌이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 것은 에블린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 처음 마틴이 하이브리드가 되었을 때 에블린은 분명이 그에 대한 반감을 표현햇습니다. 그렇다면 윌은 타인의 몸을 통해 에블린을 예전처럼 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이브리드 생산을 중지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계속해서 하이브리드를 만들어냅니다.
그러한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제게도 혼동을 줍니다. 과연 윌의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요? 정말 요셉과 부캐넌 요원이 걱정하는 것처럼 인류 전체에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으려는 것일까요? 그러한 의심은 에블린마저도 윌에게 돌아서게 만듭니다.
하지만 [트랜센던스]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윌의 진짜 의도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관객에게 아련한 감동을 선사하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RIFT가 과격한 테러인 탓에 영화의 초반 그들의 주장이 힘을 잃었듯이, 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에블린을 진정 사랑하기에 그녀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던 그의 순수한 의도가 힘을 잃었습니다.
[트랜센던스]가 제게 실망스러운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 영화는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질 수도 있었고,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윌을 오해했던 이들의 만행으로 결국 비극을 맞이하는 윌과 에블린의 슬픈 사랑으로 마지막에 짙은 여운을 남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트랜센던스]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제게 [트랜센던스]는 너무 아쉬운 기대 이하의 영화였습니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기술은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것이라고 한다.
만약 그런 미래가 온다면 우린 인간의 뇌가 업로드된 컴퓨터를 인간으로 대해야 할까?
그러한 충격적인 미래가 오기 전에 미리 내 생각부터 정리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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