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표적] - 힘없는 자만 '표적'이 되는 세상

쭈니-1 2014. 5. 10. 01:00

 

 

감독 : 창감독

주연 : 류승룡, 이진욱, 유준상, 김성령, 조여정, 조은지, 진구

개봉 : 2014년 4월 30일

관람 : 2014년 5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황금연휴의 마지막을 [표적]으로 장식하다.

 

매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이면 저는 구피에게 묻습니다. "이 영화 볼래? 안볼거면 나 혼자 봐도 돼?"  그러면 구피는 "이 영화는 볼래, 이 영화는 안볼래."라고 대답해줍니다. 구피가 대답을 하고나면 저는 한주동안 이 영화는 언제 누구와 혹은 혼자 볼것인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죠.

5월 1일부터 6일까지 황금 연휴를 맞이하기 이전에도 그랬습니다. 구피는 "[역린]은 볼래, 하지만 [표적]은 안볼래."라고 대답을 해줬고, 이를 토대로 5월 2일 금요일에 혼자 [표적]을 보러 가고, 연휴의 마지막인 5월 6일에는 구피와 [역린]을 보러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5월 1일, 회사 동료들과 산행에 참가하고 돌아온 구피는 돌연 "[표적] 볼래, 우리 직원들이 재미있대."라며 말을 바꿔버렸습니다. 혼자 [표적]을 보러갈 생각이었던 저는 결국 계획을 바꿔 연휴의 마지막날 [표적]을 보고, [역린]은 연휴 이후로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구피의 연휴 마지막날 피날레는 [역린]에서 [표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표적]은 류승룡 주연의 액션 영화입니다.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주연같은 조연으로 맹활약하던 류승룡. 결국 그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7번방의 선물]을 통해 확실한 주연 배우로 발돋음했습니다. 

이렇게 대기만성형 배우로 평가받는 류승룡의 진면목은 바로 카멜레온같은 다양한 모습입니다. [시크릿]과 [최종병기 활]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을 연기했고,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더티섹시의 진가를 발휘하며 관객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7번방의 선물]에서 관객에게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겨주며 천만 관객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표적]에서 류승룡은 살인 누명을 쓴 전직 특수요원으로 강인한 액션을 선보이니다.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7번방의 선물]까지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줬던 류승룡이기에, 웃음끼를 완전히 뺀 액션 연기는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적으로 표현해냈습니다.

자! 그렇다면 [리오 2]로 시작해서 [47 로닌]과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거쳐, 쭈니의 황금 연휴 대장정의 마지막 영화 이야기 [표적]을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이후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표적]을 아직 안보신 분이라면 이 글을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처음부터 밑도 끝도 없이 달린다.

 

[표적]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여훈(류승룡)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총을 든 괴한은 여훈을 뒤쫓고, 여훈은 죽기 살기로 도망칩니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고 사람들이 몰리자 여훈을 뒤쫓던 괴한들은 자리를 피합니다.

병원으로 실려온 여훈. 여훈의 담당 의사 태준은 여훈의 총상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고 그날밤 태준은 괴한에게 공격을 당하고 만삭인 아내 희주(조여정)는 납치당합니다. 아내를 살리고 싶다면 여훈을 병원 밖으로 데려오라는 괴한의 협박. 어쩔 수 없이 태준은 경찰을 따돌리고 여훈을 병원 밖으로 빼돌리려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쉴틈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장면들입니다. 대부분의 액션 영화들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 한가로운 일상을 보여주거나, 오프닝은 밑도 끝도 없이 달렸다가도 오프닝이 끝나면 한숨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하지만 [표적]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달립니다. 오프닝의 액션이 끝나고 나면 한숨 돌릴 시간적 여유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태준의 아내가 납치되는 상황이 잇달아 벌어지며 쉴틈은 커녕 오히려 더욱 앞을 향해 달리도록 종용하기만 할뿐입니다.

이렇게 쉴틈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영화의 경우는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장점이라 한다면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입니다. 자극적인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은 조금이라도 지루한 장면이 나오면 영화에 흥미를 잃곤합니다. 하지만 쉴틈없이 앞만 보고 달리니 지루한 장면이 나올 틈새가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 쉽게 질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강약 조절이 없고, 쉴새없이 달려나가기만 하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무덤덤해집니다. 그러니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된 클라이맥스가 시시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표적]은 장점을 확실하게 취합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약간 느슨해질 수 있는 여훈과 성훈의 관계 설명은 최대한 생략했고, 여훈과 태준이 처한 극한의 상황을 계속해서 관객 앞에 나열함으로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표적]이 영리한 것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본다면 [표적]의 후반부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송반장(유준상)의 정체는 너무 쉽게 드러나고 (영화의 포스터만 봐도 그가 악당임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광역 수사본부에서의 총격전은 너무 과합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앞만보고 달린 영화의 치명적인 약점인 클라이맥스의 무덤덤함이 [표적]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표적]은 이 모든 단점을 간단히 해결해버립니다. [표적]이 처음부터 다짜고짜 앞만 보고 달리는 영화가 숙명적으로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단점을 해결하는 방법은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의 분노 유발입니다. 국민을 지켜줘야할 경찰이 고작 돈 때문에 무고한 국민에게 누명을 씌우고, 총을 쏴대는 상황. [표적]은 그러한 상황에 직면한 소시민이 느낄 분노를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권력의 폭력

 

[표적]이 관객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터 치밀하게 준비된 것입니다. 가만히 영화를 들여다보면 영화 속의 피해자는 모두 사회적 약자입니다. 애초에 송반장이 살인 사건의 누명을 뒤집어 씌울 인물로 성훈을 지목한 것도 그가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성훈은 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호적상 가족이 없는 고아입니다. 송반장은 바로 그러한 점을 노린 것입니다. 가족이 없는 고아인데다가 틱 장애를 가졌기에 일반인들과 교류가 거의 없는 성훈. 그렇기에 그는 누명을 씌울 최적의 '표적'인 셈입니다. 비록 송반장의 계획은 여훈의 등장으로 꼬여 버렸지만...

성훈에게 납치된 희주 역시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입니다. 비록 희주를 납치한 범인은 성훈이지만, 영화의 중반부에는 희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성훈이 아닌 송반장입니다. 오히려 같은 사회적 약자인 성훈과 희주는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관계가 됩니다.

여훈의 뒤를 쫓는 영주(김성령) 역시 경찰 조직 내에서는 약자입니다. 그는 남성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여성의 몸으로 반장의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자신의 사건을 든든한 빽이 있는 광역 수사대 송반장에게 빼앗깁니다. 영주가 광역수사대가 장악하고 있는 살인 사건 현장을 방문하는 장면을 보면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오히려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어렵게 진실에 접근한 영주이지만 결국 송반장에게 허무하게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주를 뒤를 잇는 것 역시 같은 여성 경찰인 수진(조은지)이라는 사실 또한 의미 심장합니다.

 

고아, 장애인, 임산부, 그리고 여성... [표적]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피해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바로 국가 공권력을 상징하는 광역 수사대 송반장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는 국가가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불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과는 달리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우리는 분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세월호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국가가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무너진 상황에서 우리 힘없는 소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분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표적]의 송반장이 바로 그러합니다. 그는 단지 돈 때문에 사회적 약자인 성훈을 살인 사건의 범인을 누명을 씌우려고 했고, 그것이 어긋나자 동료 경찰인 영주를 죽이고, 임산부인 희주를 감금하고 죽이려 합니다. 그가 서슴치 않고 이런 폭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돈과 권력으로 자신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저지른 범죄를 무마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 총격전은 긴장감은 떨어졌지만,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송반장의 모습 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노가 [표적]의 클라이맥스를 끌어올리는 버팀목이 됩니다.  

 

 

힘없는 자만 '표적'이 되는 세상

 

스릴러 영화로 [표적]을 평가한다면 솔직히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범이 누구인지, 왜 그러한 짓을 벌였는지에 대한 진실은 너무 뻔했고, 송반장의 폭주는 그가 아무리 자신의 돈과 권력을 믿고 있었다고 해도 너무 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송반장과 그의 부하들의 동기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삐뚤어진 애국심으로 그러한 짓을 벌였다면 조금은 수긍이 될텐데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하니 그깟 돈 때문에 너무 폭주하는 것은 아닌지 고개가 갸우뚱했습니다.

[표적]을 액션 영화로 평가한다면 그래도 그런대로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의외로 잘 어울렸던 류승룡의 묵직한 액션이 좋았고, 후반부의 총격전은 너무 막 나가는 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영화로서는 흔치 않는 장면이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의 진가는 영화의 후반부부터 밀려 들어오는 어이없는 분노입니다. 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국민 남편으로 인기를 끌었던 유준상이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투표때만 되면 '국민을 위한 일꾼이 되겠다.'라고 목청껏 외치다가 막상 당선만 되면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 하는 정치인의 겉과 속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게다가 [표적]을 보며 가장 섬뜩했던 것은 저 역시 그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돈 없고, 힘 없는 소시민으로서 우리는 언제든지 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표적]에서는 장애인, 임산부,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표적'이었지만, 재수없게 사건에 휘말린 태준처럼 우리 모두 재수없게 권력자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013년 7월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했던 [더 테러 라이브]가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스릴러 영화로 담아낸 영화라면, [표적]은 공권력의 횡포를 분노로 담아낸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표적]의 장르 영화적 만듦새는 조금 실망스러워도 권력자의 '표적'이 되기 쉬운 힘없는 소시민으로서 [표적]은 꽤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제가 진정 살고 싶은 세상은 [표적]과 같은 영화를 보며 "에이, 말도 안되. 경찰이 그깟 돈 때문에 저런 짓을 저지를리가 없잖아."라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국가에서도 그런 유토피아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섬뜩함을 느끼며 저는 극장 밖을 나섰습니다.

 

 힘 없는 소시민인 나는

제발 내가 권력자의 '표적'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