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세상의 끝까지 21일] -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

쭈니-1 2014. 6. 5. 15:44

 

 

감독 : 로렌스 스카파리아

주연 : 스티브 카렐, 키이라 나이틀리

 

 

당직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저희 회사는 토, 일요일과 명절을 제외한 휴일에는 남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섭니다. 사무실은 세콤으로 철통 경비 중이지만, 사무실 밖 회사내 주차장은 무방비 상태이기에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휴일날 회사에 나와야 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2년에 한번 자신의 차례가 되는 당직이 짜증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6월 4일 지방 선거날, 저는 당직을 섰습니다. 만약 그날 당직이 아니었다면 6월 5일 휴가를 내서 6월 4일부터 8일까지 무려 5일 간의 황금 연휴를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6월 4일 당직인 까닭에 굳이 6월 5일 휴가를 내지 않았습니다.

암튼 황금같은 연휴를 놓친 아쉬움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저는 기왕 당직을 서야한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당직을 서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영화입니다. 경비실에는 컴퓨터가 없기에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다운받아 오전에는 [올드보이]를 봤고, [올드보이]가 끝난 후에는 케이블 TV에서 방영해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다시 봤으며, 삼선짱뽕으로 배를 채운 오후에는 [세상의 끝까지 21일]을 보며 영화와 함께 짜증나는 당직은 오히려 즐겁게 보냈답니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어떤 영화?

 

[올드보이]의 경우는 제작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제 기대작이었기에 당직을 즐겁게 보낼 영화로 선택하는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심사숙고해서 고른 영화입니다.

일단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올드보이]가 무거운 분위기의 스릴러 영화이기에 [올드보이]를 본 이후에는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죠.

게다가 스티브 카렐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조합도 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스티브 카렐은 국내에선 큰 인지도를 얻지 못한 배우이지만 미국에서는 코미디 배우로 입지를 단단하게 굳힌 믿음직한 배우입니다. 그의 출연작으로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 [미스 리틀 선샤인], [겟 스마트] 등이 있으며, 특히 [슈퍼배드]의 그루 목소리를 연기하였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모두들 아시겠지만, [캐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이후 흥행작보다는 [데인저러스 메소드]와 같은 개성있는 연기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 중입니다. 이 두 배우가 만난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스티브 카렐의 특기인 코미디 장르의 영화이면서, 키이라 나이틀리가 최근 추구하고 있는 개성강한 영화이기도합니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면...

 

[세상의 끝까지 21일]의 독특함은 영화의 소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기 3주전을 담고 있습니다. 분명 소행성의 지구 충돌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소재입니다. 이미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아마겟돈]과 [딥임팩트]가 개봉하였고, 이후 수 많은 B급 SF영화에서 소행성 충돌은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소행성 충돌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아예 없고, 종말이 다가옴에 대한 극도의 혼란 역시 그렇게 눈에 띄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조용한 일상이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은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 중에는 폭동을 일으키며 잠재된 폭력으로 불안감을 감추려는 사람들도 있고, 정해진 죽음의 날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죽음의 공포를 쾌락으로 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인 도지(스티브 카렐)와 페니(키이라 나이틀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조용한 최후를 선택합니다. 도지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페니는 떨어져 지냈던 가족들과 마지막을 보내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종말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

 

[세상의 끝까지 21일]에는 정말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도지의 가정부는 종말 전날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합니다. 도지의 친구들은 도지가 싱글이 되었다며 마지막을 함께 보낼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려 하고, 또다른 도지의 친구는 도지가 소개받은 여자와 2대1 섹스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도지와 페니가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도 종말에 대처하는 방식이 각기 다릅니다. 암살자를 고용해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사주한 남자, 종말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과속 딱지를 끊으려하는 교통 경찰, 어느 음식점에서는 광란의 섹스 파티가 열리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해변가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냅니다. 도지의 옛 애인은 지하실에 피난처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여기에 있으면 안전하다며 자위합니다.

[세상의 끝까지 21일]을 보며 나는 저들 중에서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폭력이나 섹스 등 강한 자극으로 두려움을 잊으려 할까요? 아니면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한 현실 부정으로 일관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도지와 페니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조용히 마지막을 보내는 것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을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

 

그러한 와중에 도지와 페니의 여정은 끝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마지막 순간 진정 함께 해야할 사랑하는 이는 과거의 아쉬움이 만들어낸 존재가 아닌 바로 곁에 있는 그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함께 누운 도지와 페니의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퍼 보였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무리 함께 할 사람이 있다고해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후회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그 순간, 가장 사랑하는 이와 함께 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나서 만약 내게도 저런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구피, 웅이와 함께 꼭 끌어안고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지와 페니가 그랬던 것처럼... 얼굴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겠지만 후회 또한 없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물론 내 생애,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