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정호
주연 : 정재영, 이성민
보고 싶다 VS 보고 싶지 않다
지난 4월 10일 [방황하는 칼날]이 개봉하면서부터 제 마음 속에서는 [방황하는 칼날]에 대해서 '보고 싶다'와 '보고 싶지 않다'의 상반된 감정이 서로 싸웠습니다. '보고 싶다'라는 감정이 앞서면 영화를 예매했다가, '보고 싶지 않다'라는 감정이 다시 앞서면 예매를 취소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 정도이니까요.
제가 [방황하는 칼날]이 보고 싶었던 것은 히가시노 케이고의 원작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내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진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와 [용의자 X]로 인하여 감성 스릴러의 진면목을 선보였던 히가시노 케이고의 소설들. 그러한 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방황하는 칼날] 또한 믿음이 갔습니다.
하지만 제가 [방황하는 칼날]이 보고 싶고 않았던 것은 하나 뿐인 딸을 성폭행으로 잃은 아버지의 분노라는 설정 때문입니다. 영화를 볼때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보는 저로써는 이런 끔찍한 설정은 아무래도 피하고 싶어집니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라면 더욱더 저를 힘들게 하죠. 그러한 이유로 저는 [방황하는 칼날]을 선뜻 보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다운로드 후에도 재생 만료 기간 전까지 버텼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방황하는 칼날]을 극장에서 놓쳤습니다. 그리고 2개월 후, [방황하는 칼날]이 다운로드 시장에 공개되자 마자 또다시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앞서 서둘러 다운로드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운로드 받은 이후에는 '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저를 지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의 재생 가능 기간은 다운로드 받은 이후 일주일까지였습니다. 결국 저는 재생 만료 기간이 거의 다가와서야 '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을 억누르고 [방황하는 칼날]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방황하는 칼날]은 제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슷한 소재를 지닌 [돈 크라이 마미]의 경우는 은아(남보라)가 당하는 충격적인 범죄의 현장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분노를 이끌어내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방황하는 칼날]은 수진(이수빈)이 당하는 범죄의 현장을 최대한 생략하는 대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딸의 복수를 결심하는 상현(정재영)과 그의 뒤를 쫓는 형사 억관(이성민)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입니다.
상현의 복수를 공감하고 말았다.
[돈 크라이 마미]가 은아가 당하는 성폭력의 끔찍함을 통해 분노를 하게 만드는 영화라면, [방황하는 칼날]은 딸을 잃은 상현의 복수에 공감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처음에 그는 그저 무기력한 아빠였습니다.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그는 그저 무기력하게 아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봤을 뿐입니다. 수진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경찰서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상현에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범인의 정보를 담은 익명의 문자를 받은 상현은 딸을 죽인 범인과 마주하게 되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됩니다. 무기력했던 상현은 그때부터 폭주합니다.
[방황하는 칼날]은 복수를 하려는 상현과 그를 막으려는 억관이라는 두개의 시선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하지만 끔찍한 범행의 범인인 조두식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가벼운 법의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영화를 보는 저는 상현의 복수를 응원하게 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은 없다.
[방황하는 칼날]은 상당히 우직한 영화입니다. 스릴러 영화이면서 그 어떤 반전도 없고, 그저 상현의 복수를 묵묵히 뒤쫓기만합니다. 그렇다고 상현의 복수로 인한 쾌감을 안겨주지도 않습니다. 복수를 하는 상현의 모습이 힘겨워 보여서 오히려 '불쌍하다.'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러한 우직함은 이정호 감독이 내세운 주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상현은 딸의 복수를 위해 이미 두명이나 죽인 살인자이지만, 그의 살인을 바라보는 저는 상현이 불쌍하다는 생각만이 들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은 없다는 말이 이 영화를 보며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러한 살인자 상현에 대한 동정심... 그것이 [방황하는 칼날]이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누가, 무엇이 상현을 살인자로 만들었는지, 왜 우리는 상현의 살인을 보며 불쌍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방황하는 칼날]이 끝나고 나면 곰곰히 생각하게 됩니다.
범죄에 애, 어른이 없다.
분명 상현의 사정은 딱합니다. 애지중지 키운 어린 딸이 강간 살해를 당했으니 그 어떤 부모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상현의 범죄에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법치 국가에서 개인적인 복수는 엄연한 범죄라고... 맞습니다. 모든 억울한 사정은 법으로 해결해야지, 개인적인 복수로 해결을 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비규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가끔은 어이없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법 처벌이 그러합니다. 요즘 미성년자 범죄가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법은 그러한 범죄를 막을 수준이 못됩니다. 그렇기에 [돈 크라이 마미]의 유림(유선)도, [방황하는 칼날]도 상현도 법에 기대지 못하고 스스로 복수를 선택하는 것일 겁니다.
결국 그들을 살인자로 만든 것은 허술한 법입니다. 억관은 말합니다. "범죄에 애, 어른이 어디있어." 그렇습니다. 똑같은 범죄라도 우리나라의 미성년자 범죄는 처벌보다는 교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영화를 보며 그저 내겐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 밖에요... 영화를 본 후 이런 답답함이 있기에 저는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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