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파이크 리
주연 : 조슈 브롤린, 샬토 코플리, 엘리자베스 올슨, 사무엘 L. 잭슨
내 인생의 한국영화는 [올드보이]였다.
몇 년전, 어느 영화 사이트의 가장 인상깊은 영화에 대한 설문조사에 응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자칭 영화광이라고 자부하지만 저는 내 인생의 영화라고 할만한 영화가 특별히 없었습니다. 물론 영화를 사랑하고, 수 많은 영화에 재미와 감동을 느꼈지만, '이 영화가 단연 최고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는 영화는 딱히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적어낸 영화가 바로 [반지의 제왕 3부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중에서는? 제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선택한 한국영화중의 최고 영화는 바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였습니다.
제가 [올드보이]를 한국영화 중에 최고의 영화로 손꼽은 이유는 그만큼 [올드보이]가 제겐 굉장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잔인한 복수를 꿈꾸는 남자와 가장 잔인한 복수를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올드보이]는 영화를 단 한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함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 이유
대부분 스스로 선택한 인생의 영화라고 한다면 영화를 한번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여러번 반복해서 관람을 했을 것입니다. 저 역시 [반지의 제왕 3부작]은 DVD를 구입해서 여러번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2003년 11월 27일 딱 한번 극장에서 관람한 이후 두번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올드보이]가 2013년 11월 21일 재개봉했을 때에도 저는 차마 극장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개봉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었고, 감독으로 [똑바로 살아라], [모베터 블루스], [정글 피버], [말콤 X] 등 90년대 흑인 감독의 선두주자였던 스파이크 리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누구보다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2014년 1월 16일 개봉했을 때에는 만사 제쳐두고 극장으로 달려가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국내 흥행 실패로 일찌감치 극장 간판이 내려진 탓에 저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를 극장에서 놓쳤습니다. 그러다가 6월 4일 지방 선거날, 회사에서 당직을 서며 회사내 경비실에서 뒤늦게 [올드보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
일단 저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가 북미 흥행과 국내 흥행에서 모두 실패해서 "도대체 얼마나 엉망이길래..."라는 생각에서 영화를 봤기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꽤 괜찮은 스릴러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단 배우들의 연기력이 출중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이 맡았던 오대수 역을 조쉬 브롤린은 조 두셋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었습니다. 조 두셋은 영화 초반 찌질한 나쁜 남자에서 이유를 모르는채 20년간 감금된 이후 복수를 꿈꾸며 신체를 단련한 강인한 남자로 매끄럽게 변모했습니다.
[디스트릭트 9]에서 인상적인 데뷔를 치룬 후 [A-특공대], [엘리시움], 그리고 최근 개봉한 [말레피센트]에서도 멋진 연기를 선보인 샬토 코플리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의 유지태가 맡은 이우진과는 많이 다른 에이드리안 프라이스의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초반에는 솔직히 이우진이 그립긴 했지만 후반부에는 나름대로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강혜정이 연기했던 복수의 도구로 이용된 비련의 여성 미도 역을 마리 세바스찬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승화시킨 엘리자베스 올슨의 연기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그녀는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스칼렛 위치를 연기했다고 합니다. [어벤져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리메이크되면서 같은 듯 달라진 [올드보이]의 복수
제게 아무리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대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해도 어차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10년 전에 본 영화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아쉽게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를 상세하게 비교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끄집어내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과 비교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잔인한 복수를 감행한 것은 누나인 수아(윤진서)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오대수가 아무 생각없이 퍼트린 소문으로 인하여 수아가 자살을 하자 오대수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에이드리안에게 누나에 대한 사랑보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심어 놓았습니다. 에이드리안의 누나와 사랑에 빠진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 아버지였고, 조 두셋의 소문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하자 조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 것이죠.
이 같은 듯 다른 한미 [올드보이]에는 공통적으로 근친상간 코드가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우진이 근친상간의 당사자로 사랑을 잃은 아픔에 대한 복수를 감행한다면, 스파이크 리 감독은 에이드리안은 근친상간의 당사자가 아니며,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 존경심을 바탕으로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 복수를 감행합니다. 그 결과 이우진은 매끈한 미남으로 설정되었지만, 에이드리안은 애정결핍에 약간은 찌질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쉬운 조 두셋과 마리 세바스찬의 사랑
하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이 원작 영화와 비교해서 가장 크게 바꿔 놓은 것은 복수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조와 마리의 사랑을 진행시키는 방식입니다. 서로 부녀 관계인지 모르는채 사랑에 빠지는 조와 마리. 둘의 사랑은 에이드리안의 복수의 핵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굉장히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라는 점입니다. 조와 마리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면 에이드리안의 복수는 실패하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은 그러한 종잡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붙잡기 위해 최면이라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최면에 걸린 오대수와 미도(강혜정)는 타의에 의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최면을 빼버립니다. 그 대신 마리가 과거에 당한 불행이 조에게 사랑을 느끼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최면이라는 소재가 조금 만화적이긴 하지만, 마리가 과거의 불행 때문에 당연히 조와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에이드리안의 확신이 더 만화적입니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은 오대수 딸의 존재를 제대로 밝히지 않음으로서 마지막에 미도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의 충격을 극대화했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처음부터 조에게 딸을 향한 사랑에 집착하게 함으로써 마지막 반전을 어느정도 예측하게 했습니다. 물론 워낙에 유명한 원작 영화의 반전 때문에 스파이크 리 감독으로써는 반전을 감출 수가 없었고, 결국 아예 대놓고 드러내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점이 리메이크 영화의 한계일 것입니다.
리메이크 영화의 한계는 넘지 못했지만, 영화적 재미는 충만하다.
분명 스파이크 리 감독은 리메이크 영화의 한계를 넘지 못했습니다. 특히 반전을 기반으로한 스릴러 영화의 리메이크는 원작의 반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관건인데, 스파이크 리 감독은 [올드보이]의 반전을 넘어서지도, 그렇다고 바꾸지도 못한채 어정쩡한 대처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가 재미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매력도 좋았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대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오마주 또한 뿌듯했습니다.
조 두셋이 20년 동안 군만두를 먹는 장면과 장도리 액션 씬은 미국의 정서상 다른 것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 같은데, 스파이크 리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고스란히 재현해냈습니다. 특히 장도리 액션씬은 이 영화가 미국영화임을 감안해서 총격씬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파이크 리 감독은 굳이 장도리 액션씬을 선택하며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습니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박찬욱 감독에 대한 존경을 담은 또다른 오마주 장면은 낙지 장면입니다. 오대수가 생낙지를 먹는 장면은 외국 관객들에게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회자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스파이크 리 감독은 조 두셋이 수족관 안의 (낙지 대신) 문어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장면을 통해 마치 '낙지 먹는 장면은 도저히 재현하지 못하겠어!'라며 하소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는 원작과 비교해서는 그 충격이 덜했고, 리메이크 영화의 한계도 뛰어넘지 못했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특히 저처럼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좋아하지만 잔인함 때문에 두번은 보지 못하는 분들에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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