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성강
더빙 : 이병헌, 공형진, 류덕환, 안성기, 배종옥, 나문희
일요일 계획은 무조건 방콕!!!
5월 24일 토요일, 웅이와 우럭 낚시를 다녀왔습니다. 저희 회사 낚시 동호회 모임에 웅이를 데려간 것이죠.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하고, 바다 위에서 무려 9시간 이상을 버텨야 하는, 어른에게도 힘든 일정이기에 웅이가 잘 따라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웅이는 배멀미도 하지 않고, 직접 낚시대를 잡고 3마리의 우럭과 1마리의 노래미를 낚아 올리는 일취월장한 실력까지 뽐냈답니다.
우럭 낚시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오후 8시. 지칠대로 지친 웅이는 목욕 후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잠이 들기 전 "아빠, 일요일에는 아무 계획없죠? 우리 그냥 방콕해요."라고 말합니다. 힘들긴 했나봅니다. 하긴 저도 출렁이는 배 위에서 버티고 서서 우럭 낚시를 하느라 허벅지에 알이 배길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황금같은 일요일이지만, 집에서 뒹굴거리며 웅이와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영화는 바로 [마리 이야기]. 2002년에 개봉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으로 제26회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입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신화, 이성강 감독의 시작.
비록 2002년 개봉 당시에는 [마리 이야기]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천년여우 여우비]를 극장에서 보면서 이성강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의 장편 데뷔작인 [마리 이야기]를 꼭 보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놓친 영화를 뒤늦게 보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겐 보고 싶은 영화가 신작만으로도 차고 넘칠만큼 많으니까요. 그렇게 [마리 이야기]는 신작 영화들에 밀려 제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웅이와 함께 영화보기를 즐기면서 웅이에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도 보여줘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마리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보게된 [마리 이야기]는 분명 명성만큼 아름다웠지만, 아무래도 할리우드의 시끌벅적한 신나는 애니메이션에 길들여진 웅이에게는 조금 지루했나봅니다. 영화가 끝나자 "응? 이게 끝이에요? 헐!!!"라고 실망하는 것을 보니...
흥미로운 설정, 하지만 조용한 전개.
[마리 이야기]는 평범한 회사원이 된 남우(이병헌)가 오랜만에 고향 친구 준호(공형진)을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해외로 발령받은 준호는 떠나기전 남우에게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물건 하나를 건네 줍니다. 그리고 남우는 어린 시절 속으로 추억의 여행을 하게 됩니다.
바닷가 외딴 마을, 사고로 뱃사람인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나문희), 어머니(배종옥)과 사는 열두살 소년 남우(류덕환). 그는 유일한 친구인 준호(성인규)와 함께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래된 버려진 등대에서 마리라는 이름의 소녀와 환상 속의 여행을 경험하게 된 것이죠.
남우, 준호가 마리와 환상 속의 아름다운 여행을 하는 동안 마을에는 폭풍이 밀려오면서 준호의 아버지와 남우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경민(안성기)은 큰 위험에 빠집니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마리 뿐, 남우와 준호는 폭풍을 헤치고 등대로 달려갑니다.
[마리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 남우와 아버지를 잃을 위기에 처한 준호. 마리와의 환상적인 여행과, 마리로 인한 위기 탈출 등... 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은 조용하고 잔잔한 전개입니다. 하긴 그러한 특징은 이성강 감독의 최고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천년여우 여우비]에서 드러났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그러한 잔잔한 전개가 웅이에겐 따분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묘한 여운이 남더군요. [마리 이야기]는 우리 어른들이 잊고 살았던 순수함에 대한 우화를 파스텔톤 애니메이션을 통해 그려냈기 때문입니다.
남우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할머니는 지병으로 쓰러지셨고, 유일한 친구인 준호도 곧 서울로 전학을 갑니다. 그렇기에 남우가 경민에게 적대심을 드러내는 것은 어머니마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남우가 어른들에게 반항하며 삐뚤어지는 것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에겐 아직 순수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순수함은 마리와의 만남으로 형상화되고, 준호의 아버지와 경민이 폭풍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순수함은 간절한 소망이 되어 기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냥 어린 시절의 순수함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어른이 된다면 순수한은 더이상 미덕이 아닌 사회 적응의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어른이 된 남우도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순수함을 회상할 뿐, 되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리 이야기]를 보며 나는 어떤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잊고 살았는지 잠시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도, 돌아가서도 안되지만, 그래도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각박한 세상의 활력소가 될테니까요. 그렇기에 [마리 이야기]는 12살 웅이를 위한 영화가 아닌 40살인 저를 위한 영화처럼 느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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