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신카이 마코토
더빙 : 카네모토 하사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아련한 아픔이다.
2011년 8월, 저는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의 개봉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과 판타지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기대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 때문입니다.
제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본 것은 2007년 6월입니다. [초속 5센티미터]라는 조금은 낯선 제목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구피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지만) 백수 생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집에서 먼 극장으로, 낯선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초속 5센티미터]를 본 후 집으로 향하는 극장에서 저는 영화가 안겨준 아련함으로 가슴이 아파야 했습니다. 제게 애니메이션은 흥겨움, 순수한 동심으로 설명할 수 있었는데, [초속 5센티미터]는 첫사랑의 아련한 아픔을 일깨워주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비록 2011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극장에서 놓쳤지만 2013년 8월에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인 [언어의 정원]을 집에서 굉장히 먼 대학로까지 찾아가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언어의 정원]은 [초속 5센티미터]만큼 아련하지는 않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아름다운 영상미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를 이해하기 위한 신화 코드
유난히도 바빴던 2011년 8월, 결국 저는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아쉽게도 극장에서 놓쳤습니다. 그렇게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 5월 황금 연휴의 넷째날, 결국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를 보게 되었습니다. 웅이와 함께...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과는 달리 아련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판타지, 모험 장르의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을 위해 차용한 신화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제목인 아가르타에 대해서 알아보죠. 아가르타는 스리랑카의 불교 전설에 나오는 성스러운 지하 공간입니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에서 슌을 비롯한 슌의 동생 신은 아가르타에서 온 소년들입니다. 아가르타의 문지기인 케찰코아틀은 멕시코 아즈텍 민족이 믿던 신이며, 아가르타의 존재를 아는 유일한 인간 조직 아크엔젤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 대립했던 가톨릭 이단 종파라고 합니다. 아가르타에서 생명을 나르는 배 샤쿠나 비마나는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신 비슈누의 비행기라고 하네요. 이렇듯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하나의 신화가 아닌 여러 신화들을 복합적으로 섞어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에 대한 그리움
하지만 여러 신화를 복합적으로 차용한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에서도 한가지 공통된 신화 코드가 있습니다. 바로 죽은 이를 살리기 위해 지하의 세계에 찾아가는 이들의 신화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르페우스 이야기입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인 에우리디케가 죽자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괴로워하다가 저승의 세계로 내려가 아내를 데려오기로 결심합니다. 오르페우스가 들려주는 천상의 음악 소리에 감복한 죽음의 신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었죠. 그것은 바로 지상 세계로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로 뒤돌아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그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봤고, 결국 에우리디케는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렸습니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본의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신화를 소개합니다. 이자나미는 일본의 창조신인 이자나기의 부인입니다. 이자나미는 이자나기와의 사이에서 수 많은 신들을 낳았는데, 불의 신 가쿠즈치를 낳다가 그만 죽어버립니다.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다시 지상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지하의 세계에 갑니다. 이에 이자나미는 이자나기에게 한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지상의 세계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얼굴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자나기는 약속을 어기고 이자나미의 얼굴을 봐버립니다. 이자나미의 몸은 이미 부패해 구더기가 끓고 있었고, 이에 이자나기는 그만 두려워서 달아나 지상쪽 입구에 큰 돌을 가져다 막아버리며 이자나미에게 완전한 이별을 고했다고 합니다. 이후 이자나미는 저승의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별을 위한 여행
아크엔젤의 일원인 모리사키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 아가르타에 집착합니다. 우연히 만난 아가르타의 소년 슌을 그리워한 아스나는 슌의 동생인 신을 쫓아 아가르타에 가게 됩니다. 어쩌면 아스나와 모리사키의 아가르타에서의 모험은 죽은 자를 그리워해서 지하의 세게에 발을 들여 놓은 오르페우스, 혹은 이자나기와 비슷한 것입니다.
하지만 오르페우스가 그러했듯이, 그리고 이자나기가 그러했듯이 모리사키도, 아스나도 결코 죽은 이를 되살릴 수 없었습니다. 모리사키는 신과의 거래를 통해 아스나의 몸에 아내의 영혼을 불러내는데 성공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죽은 아내를 불러들이는데 실패합니다. 아스나 역시 슌을 그리워하며 신을 쫓아 왔지만, 신은 결코 슌이 아니라는 진실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별이 서툴렀기에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하의 세계까지 오게된 모리사키와 아스나는 그렇게 아가르타에서의 모험을 통해 마지막 순간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비록 판타지의 외형을 띄고 있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들인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아련함.... 비록 아가르타라는 판타지의 공간에서 거대한 모험을 하지만 아스나도, 모리사키도 죽음으로 떠나버낸 사랑의 아련한 아픔을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속 5센티미터]와 비교해서 아련함은 줄었지만 영화적 재미만큼은 최강이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개인적으로 [초속 5센티미터]와 비교해서 아련함은 줄었지만 영화적 재미만큼은 최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가르타에서의 모험에서 아가르타인들의 거친 반격을 예상했지만(아가르타인들은 과거 수 많은 지상의 독재자들에게 자신들의 문화가 파괴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히려 아가르타인들은 너무 순했습니다. 그대신 이족이라는 섬뜩한 존재들을 내세워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시켰습니다.
어찌보면 악당이기도 하지만 영화 속의 캐릭터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었던 모리사키도 영화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아스나가 아가르타에 가는 이유는 설득력이 부족하지만(그녀는 그저 외로워서라고 대답합니다.) 모리사키는 죽은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는 확실한 동기가 있었고, 그 덕분에 영화의 짜임새로 촘촘해졌습니다.
[별을 쫓는 아이 : 아가르타의 전설]은 이렇게 3년의 기다림이 전혀 아깝지 않은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후 웅이도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 듯한 만족스러움을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더욱 뿌듯했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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