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크리울리
주연 : 에릭 바나, 레베카 홀, 짐 브로드벤트
최신형 TV도 HD화질은 버티지 못하나보다.
결혼 후 저희 집 TV는 12년 동안 골동품이었습니다. 남들은 벽걸이 TV이다, HD 화면이다, 자랑을 하지만 저희 집 TV는 화면도 크지 않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는 이제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말 그대로 골동품 TV입니다. 그런데 이 골동품이 좀처럼 망가지지 않으니 최신형 TV로 바꿀 명분이 없더라고요.
그러던 어느날 저는 열심히 비상금을 모아 구피에게 거금 1백만원을 쥐어주며 "우리도 최신형 TV로 바꾸자!"라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1백만원으로 최신형 TV로 바꾸기에는 돈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나름 제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알뜰한 구피는 바꿀 TV 모델에 대해서 거의 한달 동안 심사숙고를 했고, 결국 저희 집도 최신형 벽걸이 TV로 교체했습니다.
최신형 TV로 바꾸면서 제가 가장 기대한 것은 스마트폰과 TV를 연결시켜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요즘 저는 hoppin을 통한 스마트폰 영화 다운로드의 세계에 푹 빠져 있었고, 스마트폰과 TV를 연결한다면 hoppin에서 다운로드 받은 최신 영화들을 TV를 통해 맘껏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해서 대망의 첫 영화로 저는 [프라이버시]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TV에서 연결하여 보기 위해 무려 2.47GB의 HD화질로 다운로드 받았건만 TV와 연결하니 화면이 자꾸 끊기는 현상이... 결국 스마트폰과 TV를 연결해서 HD급 화질로 영화를 본다는 제 계획은 무너졌고, [프라이버시]는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으로 감상을 해야 했습니다.
요즘 정부에 대한 불신과 [프라이버시]의 영화적 상황
제가 [프라이버시]를 최신형 TV를 위한 역사적인 첫 영화로 선택한 이유는 이 영화의 소재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집에 최신형 TV가 처음으로 설치되던 날, 비극적인 세월호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는 HD 화면으로 재미있는 TV 프로를 실컷 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세월호의 비극만 HD 화면으로 실컷 보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가 저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배 안에 갇힌 많은 사람들을 조금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아무리 희망을 가지고 TV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늘어나는 것은 사망자 숫자뿐이었습니다. 정부의 그러한 미숙한 대처에 대한 실망, 불신이 놀랍게도 영국 스릴러 영화인 [프라이버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프라이버시]는 런던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을 하는 상황을 담은 영화입니다. 경찰은 신속하게 폭탄 테러의 범인으로 한 터키인을 체포합니다. 어쩌면 이대로 영화가 끝나야 마땅하지만 [프라이버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영화를 시작합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리고 포스터에 쓰여진 '범인은 바로 정부이다.'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후의 제 글에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쓰여질 예정이니,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길 추천합니다.
무능력한 정부보안기관이 저지른 실수
[프라이버시]의 폭탄 테러에 대한 진실은 이러합니다. 영국의 정부보안기관인 MI5는 국제적인 테러범인 파룩 에두간을 회유하여 영국내 테러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파룩 에두간은 MI5의 편에서 활동하는 척하다가 오히려 120명의 생명을 앗아간 폭탄 테러를 저질러 버립니다. 문제는 바로 그 다음부터입니다.
만약 파룩 에두간이 MI5의 정보원이었고, MI5가 오히려 파룩 에두간에게 이용당했음을 밝혀진다면 MI5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MI5는 진실은 은폐하려합니다. 하지만 MI5가 진실을 은폐하려할수록 문제는 점점 커집니다. MI5는 파룩 에두간의 변호사 사이먼 펠로우즈가 진실을 알아내자 그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합니다. 그리고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마틴 로즈(에릭 바나)를 새로운 변호사로 선언합니다. 그러나 마틴 로즈도 사건의 진실을 파헤쳤고, MI5는 그의 목숨마저 위협합니다.
사건을 은폐하려한 MI5의 요원은 파룩 에두간의 특별 변호인인 진실을 알아버린 클로디아(레베카 홀)를 죽이려 시도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넌 세상 걱정없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 그건 우리가 피 흘리며 지킨 대가란 말이야. 우리가 없으면 넌 지옥으로 떨어졌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저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뒤편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노력 덕분일지도...
누구든 실수는 한다. 하지만 누구도 실수를 덮으려하면 안된다.
우리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완벽한 인간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실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실수를 했다면 인정하고, 그에 대한 실수의 댓가를 정당하게 치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실수가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프라이버시]에서 MI5는 파룩 에두간을 정보원으로 믿은 명백한 실수를 합니다. 그로인하여 120명의 무고한 시민이 테러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실수를 한 MI5는 실수를 인정하고 그에대한 댓가를 정당하게 치뤄야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 했고,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죄를 계속해서 저지르는 것이죠.
이 영화를 보며 불과 몇 주전에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국정원의 증거 조작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부정보기관인 국정원.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있기에 너희는 북한의 위협 속에서도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증거를 조작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 역시 그러합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해경을 비롯한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 기관의 실수와 무능이 드러났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자신들의 실수를, 무능을 덮으려하지 말고, 실수를 인정하고 죄의 댓가를 받아야 할 것이며, 개혁을 통해 다시는 그러한 실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영국내 가상의 테러 사건을 다룬 [프라이버시]를 보며 우리나라의 슬픈 현실을 읽게되네요.
사건을 은폐한 법무부장관(짐 브로드밴트)은 말합니다. "청문회다 뭐다 몇 년 시끄럽겠지만 질질 끌다가 유야무야 되겠지. 단, 주제넘게 설치는 놈만 없다면..."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법무부장관의 사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성난 목소리입니다. 이렇듯 정부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려한다면 결국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살 뿐입니다. 우리 정부도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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