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우디 알렌
주연 : 알렉 볼드윈, 엘렌 페이지, 제시 아이젠버그, 페넬로페 크루즈, 로베트토 베니니, 우디 알렌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싶다.
목요일, 원래대로라면 퇴근 후 극장에서 새로 개봉한 기대작 1순위를 보는 행복한 날입니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습니다. 기대작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와 [천재 강아지 미스터 피바디]는 주말에 웅이와 함께 보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기대작이었지만 이상하게 저와 인연이 닿지 않은 [방황하는 칼날]을 예매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분으로는 [방황하는 칼날]을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몇일동안 우울한 기분이 계속되다보니 [방황하는 칼날]처럼 어두운 영화보다는 밝은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방황하는 칼날]의 예매를 취소하였고(세번째 예매 취소입니다.) 집에서 볼 수 있는 밝은 영화들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게 낙점된 영화가 바로 [로마 위드 러브]입니다. 제가 비록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를 굉장히 유쾌하게 봤던 기억이 나서 [로마 위드 러브]로 요즘의 축 쳐진 기분을 달래보려 시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제 시도는 완벽하게 성공하였습니다.
로마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사건들
[로마 위드 러브]는 네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로마에서 휴가를 보내는 건축가 존(알렉 볼드윈)은 우연히 만난 젊은 건축학도 잭(제시 아이젠버그)을 만나게 되면서 잭과 샐리, 그리고 샐리의 절친인 모니카(엘렌 페이지)의 삼각관계를 지켜보게 됩니다.
지극히 평범한 로마 시민 레오폴드(로베르토 베니니)는 어느날 갑자기 벼락스타가 되어 유명세를 톡톡히 치뤼게 되고, 갓 결혼한 신혼부부 밀리와 안토니오는 로마에서의 생활에 부풀어 있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콜걸 안나(페넬로페 크루즈)로 인하여 모든 상황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로마 여행 중 만난 남자와 결혼을 선언한 딸 때문에 로마를 방문하게된 은퇴한 오페라 감독 제리(우디 알렌)는 장의사를 하고 있는 예비 사돈의 판타스틱한 노래 소리에 매료되어 그를 오페라 가수를 데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이들이 로마라는 멋진 도시에서 겪게되는 사건들은 현실과 환상을 오고가며 영화를 보는 제게 달콤한 웃음을 안겨줍니다. 때로는 가슴 설레이고, 때로는 섹시하며, 때로는 코믹한 그들의 이야기.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펼쳐진 우디 알렌 감독의 역량이 이번에도 제대로 펼쳐진 셈입니다.
은밀한 판타지... [미드나잇 인 파리]가 연상되다.
[로마 위드 러브]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은밀한 판타지입니다. 특히 중년의 건축가 존이 젊은 건축학도 잭을 만나는 에피소드와 평범한 로마 시민 레오폴드가 벼락스타가 되어 겪게 되는 에피소드가 바로 은밀한 판타지로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며 존의 에피소드는 많이 헷갈렸습니다. 잭과 샐리, 그리고 모니카의 삼각관계에서 존은 그들의 곁을 맴돌며 잭에게 충고를 하기도 하고, 모니카와 설전을 벌이기도 합니다. 얼핏 존이 잭의 무의식이 만든 존재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되다가도, 모니카와 존이 설전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구피는 존이 유령이 아닐까? 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존이 로마에서 예전에 살았던 동네를 혼자 산책하며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 속으로 추억 여행을 떠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유야 어떻든, 존은 잭의 삼각관계를 통해 현재의 자신과는 달리 안정보다는 모험을 선택하는 청춘의 설레임을 만끽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안정적인 애인 샐리 대신 언제 떠날지 모르는 바람끼 많은 모니카를 선택하는 잭을 지켜보며... 이미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 설정으로 파리를 여행했던 우디 알렌 감독. 그러한 그의 판타지 여행은 [로마 위드 러브]에서도 계속된 것입니다.
짜릿한 불륜... 로마니까 하지만 괜찮아.
존의 에피소드와 마찬가지로 레오폴드의 에피소드 역시 현실이라기 보다는 환상에 가깝습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레오폴드,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는채 스타가 되어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의해 공개됩니다. 스타가 된 레오폴드에겐 섹시한 개인 비서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할께요."라며 유혹하고, 속옷 모델들은 레오폴드와 섹스를 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달려듭니다.
그러한 짜릿한 외도는 갓 결혼한 신혼 부부 밀리와 안토니오에게도 펼쳐집니다. 매력적인 콜걸 안나는 순진한 청년 안토니오에게 천국을 맛보게 해주겠다며 달려들고, 로마에서 길을 잃은 밀리는 자신이 그동안 동경하던 무비 스타와 하룻밤을 보낼 절호의 기회를 맞이합니다.
어찌보면 레오폴드도, 그리고 밀리와 안토니오도 배우자를 놔두고 다른 상대와 섹스를 한 불륜남, 불륜녀입니다. 하지만 [로마 위드 러브]는 불륜이라는 불편한 소재마저 판타지적 분위기로 불편함을 해소합니다. 왜 레오폴드가 벼락스타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갔는지 영화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안나를 기용해서 안토니오의 방에 보낸 사람은 누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밀리가 '최고의 섹시남'이라며 우러러보는 무비스타는 대머리에 배불뚝이(구피는 절 닮았다며 웃었습니다.)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이 영화의 불륜은 현실이 아닌, 그냥 짜릿한 하룻밤의 꿈처럼 보일 뿐입니다.
나는 로마에서 달콤한 꿈을 꾸었네.
감독인 우디 알렌이 직접 출연한 제리의 에피소드는 제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샤워를 하며 부르는 예비 사돈의 노랫 소리에 흠뻑 빠진 제리는 딸의 결혼 문제는 뒤로 하고 예비 사돈을 오페라 가수로 데뷔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매력적인 노랫소리는 샤워 중에서도 가능하다는 점. 그에 대한 제리의 해결책은 공연장에서 샤워를 하며 노래를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부 샤워를 하며 '팔리아치' 공연이 펼쳐지는 장면은 [로마 위드 러브]의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평론가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에는 극찬을 가했지만, 오페라에 샤워씬을 끼워 넣은 제리에게는 악평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떻습니까? 어차피 제리는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비평 기사는 읽지도 못한채 공연장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고 즐거워합니다.
[로마 위드 러브]는 로마의 아름다운 관광 명소와 함께 일상에서는 겪을 수 없는 판타지한 에피소드를 겪는 캐릭터들을 다수 내세워 영화를 보는 제게 달콤한 꿈을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힘이겠죠? 한바탕 웃고나니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앞으로 한동안은 행복한 영화들을 찾아 봐야겠습니다. ([방황하는 칼날]에겐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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