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47 로닌] - 블록버스터가 아닌 킬링타임용으로 영화를 본다면...

쭈니-1 2014. 5. 9. 10:33

 

 

감독 : 칼 린쉬

주연 : 키아누 리브스, 사나다 히로유키, 시바사키 코우, 키쿠치 린코

 

 

황금연휴 둘째날은 할리우드의 2013년 최대 망작과 함께...

 

5월 1일부터 6일까지 무려 6일간의 황금연휴 첫째날은 웅이와 [리오 2]를 보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하지만 황금연휴 둘째날은 회사에서의 무리한 산행으로 다리가 아프다며 징징대는 구피를 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보냈습니다. 제가 그렇게 간단하게 극장행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황금연휴 기간동안 보려고 준비해놓은 회심의 카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47 로닌]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47 로닌]은 조금은 낯선 영화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개봉이 무산되고 곧바로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47 로닌]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 영화가 제작비 1억7천5백만 달러(총 제작비는 무려 2억3천만 달러입니다.)가 들어간 블록버스터이며,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미 개봉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2013년 12월 25일에 개봉해서 개봉 첫주 9위라는 경악할만한 순위로 박스오피스에 데뷔했고, 최종 흥행 성적은 3천8백만 달러입니다. 그나마 월드와이드 성적이 1억5천만 달러라서 손해의 폭을 조금 줄였지만,  그렇다고해도 [47 로닌]은 할리우드 역사에 기록될만한 망작임은 분명합니다. 자! 그렇다면 [47 로닌]이 어쩌다가 망작의 불명예를 뒤집어쓴 것일까요? 솔직히 제가 [47 로닌]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그 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실화다.

 

[47 로닌]은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때는 1701년 3월 14일. 아코번의 영주 아사노 나가노리는 모욕감에 순간적으로 칼을 뽑아서 막부의 의전담당 고관무사인 기라 요시나카를 죽이려하다 실패합니다. 이를 본 천황은 크게 노하여 아사노 나가노리에게 자결을 명하였고, 그날부로 졸지에 아사노 가문은 영지를 몰수당하고 멸망하였습니다.

아사노 나가노리의 죽음으로 그가 거느리던 사무라이들은 자동적으로 낭인(로닌)이 되어 버립니다. 사무라이 사이에서 낭인이 되었다는 것은 주군을 지키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떠앉는 것입니다. 이에 아사노 가문의 사무라이들은 오이시 요시오를 중심으로 주군의 복수를 결심했고, 47인의 사무라이들이 거사에 동참하기로 결의합니다.

그로부터 1년 9개월 동안 기라 요시나카 저택의 설계 도면을 입수하는 등 철저하게 거사를 준비한 47인의 사무라이는 드디어 1702년 12월 14일 밤, 기라 요시나카의 저택을 습격, 기라 요시나카 소속의 사무라이 및 가족 36명과 기라 요시나카의 목을 베어 아사노 나가노리의 묘소가 있는 센가쿠지까지 당당하게 행군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수 많은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은 가담자 전원에게 무사의 예를 갖추어 죽을 수 있는 명예로운 자결을 판결되었고,  1703년 2월 14일 47인의 사무라이는 한날 한시에 장렬히 할복자살하였습니다. 지금도 아코번에는 사무라이 47인의 묘소가 있고, 수 많은 참배객들이 이 묘소를 찾는다고 합니다.

 

 

 

47인의 사무라이가 할리우드를 사로잡은 그 무엇.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는 사무라이 문화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만들어낸 일화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조금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러한 거부감이 [47 로닌]의 국내 개봉을 무산시킨 이유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거대 제작, 배급사인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에 크게 감동을 받은 듯합니다. 하긴 개인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는 서양에서 주군에 대한 사무라이의 복종과 죽음도 불사하는 명예 등이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유니버셜은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를 할리우드 블록버서트로 탄생시킨 것이겠죠.

어쩌면 유니버셜은 2003년에 개봉했던 [라스트 사무라이]의 흥행 성적에 기대를 걸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수 제작비 1억 4천만 달러가 들어간 [라스트 사무라이]는 북미 흥행 성적이 1억1천1백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일본에서 1억1천9백만 달러의 흥행 대박을 거둔 덕분에 월드와이드로 4억5천6백만 달러의 흥행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렇다면 [47 로닌]은? [라스트 사무라이]에 비해 제작비는 늘어났지만 북미 흥행 성적은 물론이고 기대했던 일본에서의 흥행 수입도 1백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47 로닌]은 일본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본에서마저 이 영화를 외면했으니 망작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죠.

 

 

 

내가 주관적으로 본 [47 로닌]

 

[47 로닌]이 망작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황금 연휴의 둘째날 직접 본 저 역시 이 영화를 외면하고 싶을만큼 재미가 없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 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47 로닌]은 일본을 무대로, 일본 배우들로 가득 채워진 영화이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영화인 만큼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가 필요했습니다. [라스트 사무라이]가 톰 크루즈를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47 로닌]은 키아누 리브스를 내세운 이유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카이는 47인의 사무라이에 대한 실화를 판타지 영화처럼 바꾸어 놓았습니다. 카이는 영국인 항해사와 일본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으로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습니다. 하지만 카이는 요괴의 손에 키워지고 소년이 되어 요괴에게서 도망쳐 아코번의 영주 아사노의 휘하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카이라는 캐릭터가 추가되면서 카이와 아사노의 딸 미카(시바사키 코우)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그리고 혼혈인 카이와 카이를 불길하게 생각하는 오이시(사나다 히로유키)의 갈등, 복수를 위한 화해 등이 다채롭게 그려집니다. 또한 아사노가 기라(아사노 타다노부)를 공격한 이유는 요괴 미즈키(키투치 린코)의 술책 때문이라는 설정도 삽입되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본 모습을 드러낸 미즈키와 카이의 대결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만약 [47 로닌]이 실화를 바탕으로한 사무라이 영화라면 저 역시 반감이 먼저 생겼을텐데, 이렇게 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판타지적 요소들이 끼어드니 부담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거대한 제작비가 필요했을까?

 

분명 2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오락 영화로서 [47 로닌]은 충분히 제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총 제작비가 2억 달러나 되는 블록버스터로서는 의문이 생기네요. 도대체 왜 이 영화에 그토록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어야 하는 것인지...

대부분 거대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들의 경우 스케일이 크거나, 특수효과가 호화찬란합니다. 하지만 [47 로닌]은 그렇게 스케일이 큰 영화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가 수천, 수만명의 군사들이 전쟁을 벌이는 영화가 아닌 47인의 사무라이가 복수를 하는 영화이기 스케일을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가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특수효과가 호화찬란하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의 특수효과라고 한다면 요괴가 등장하는 장면들인데, 영화의 초반 멧돼지를 닮은 요괴와, 카이를 키웠다는 요괴, 그리고 미즈키가 [47 로닌]에 등장하는 요괴의 전부입니다. 그 중에서 영화의 후반, 미즈키가 요괴로 변신해서 카이와 싸우는 장면이 그마나 특수효과의 진수를 만끽 할 수 있는 장면이지만, 요즘 이 정도의 특수효과는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시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야 영화의 제작비가 크다고 해서 관람료를 더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상관없지만, 그래도 블록버스터로서 [47 로닌]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그저 2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킬링 타임용으로 [47 로닌]을 관람하는 것이 나아보입니다. 물론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쏟아부은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속이 쓰리고, 할리우드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을테지만... 그런 것까지 걱정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