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가우리 신드
주연 : 스리데비, 아딜 후세인
영화 굿다운로드 어플 hoppin의 함정
제 작은 소망은 보고 싶은 영화를 빠짐없이 전부 보는 것입니다. 물론 압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고 싶은 영화가 한 주에도 몇편이나 개봉하는데, 직장 생활을 하는 저로서는 그들 영화를 모두 극장에서 챙겨볼 시간적 여유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 관람이 아닌, 제 2의 영화 관람 루트가 제겐 중요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보는 대표적인 방법은 비디오 대여점 이용이었는데,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이 모두 폐업하며 그 방법은 더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불법 다운로드 이용이었는데, 자칭 영화를 사랑한다는 영화광으로서 조금은 죄책감이 느껴져 최근에는 불법 다운로드 이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hoppin이라는 스마트폰의 영화 다운로드 어플을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도 보고 싶었던 영화이지만 국내 개봉이 무산된 [책도둑]과 유쾌한 인도 영화 [굿모닝 맨하탄]을 다운로드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가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다운로드를 받았다고해도 영화를 볼 수 있는 기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책도둑]은 다운로드 후 이틀이내에 영화를 봐야 했고, [굿모닝 맨하탄]은 일주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몰랐던 저는 이틀을 넘기는 바람에 [책도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뒤늦게 그러한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일주일 이내에 [굿모닝 맨하탄]을 보기 위해 평일 새벽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영화를 봐야 했습니다.
2시간 13분이라는 러닝 타임의 압박... 하지만 끊을 수가 없었다.
[책도둑]이 제 스마트폰의 다운로드 리스트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된 지난 화요일, 저는 분노하며 hoppin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지만 업무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다시 걸어달라는 자동응답만 듣고 전화를 끊어야 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건 시간은 오후 6시 5분쯤) 사실 이용 기간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기에 hoppin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받는다고 해도 뾰족한 수가 없긴 했지만...
결국 저는 [굿모닝 맨하탄]만큼은 놓칠 수가 없다는 의지로 [라스트베가스]의 영화 예매도 취소하고 집에서 [굿모닝 맨하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저는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당일의 컨디션 및 기분을 상당히 중요시하는데, 이렇게 시간에 쫓기며 어쩔 수 없이 [굿모닝 맨하탄]을 보기 시작했으니 당연히 기분이 안좋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굿모닝 맨하탄]을 보기 시작한 후에는 영화에 푹 빠져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거실의 시계가 고장나서 멈춰버린 탓에 새벽 1시가 넘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저는 [굿모닝 맨하탄]을 보느라 TV를 응시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덕분에 구피한테 안자냐며 잔소리들었습니다.)
결국 인도 영화답게 러닝타임이 긴 [굿모닝 맨하탄]을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에 걸쳐 봐야 했지만,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인도 특유의 흥겨운 음악도 좋았고,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무시당하던 샤시(스리데비)가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도 영어 울렁증이 있다.
[굿모닝 맨하탄]은 아름다운 외모와 완벽한 요리 실력을 갖춘 흠잡을데 없는 가정 주부 샤시의 일상을 보여주며 영화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샤시이지만,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딸과 남편에게 비웃음을 살 뿐입니다.
우선 샤시가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설정을 이해하려면 인도라는 나라의 특징을 알아야합니다. 인도는 1857년 무굴제국이 멸망한 후 영국의 직할 식민지에 편입되었고, 1947년 8월 15일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영국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자치령에서도 벗어났습니다.
1857년부터 1947년까지 무려 100년 가까이 영국의 식민지로 살았기 때문에 원래의 원주민 언어인 힌두어와 영어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식인 및 젊은 층은 영어를 주로 쓴다고 하니 샤시가 영어를 못하는 것은 '무식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샤시는 딸의 학부모 면담을 위해 학교에 가지만 딸의 담임이 힌두어가 서툴러 곤욕을 겪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도에서는 힌두어보다는 영어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무식하다고 무시당하는 샤시가 조카의 결혼 준비 때문에 홀로 뉴욕에 가야합니다. 비행기에서, 공항에서 잔뜩 주눅이 든 샤시의 모습이 저는 너무나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특히 뉴욕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제대로 주문하지 못해 창피를 당하는 장면은 마치 내가 그러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저 역시 샤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만큼 영어 울렁증이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인도만큼 실생활에서 영어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국 두려움의 극복은 자기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샤시가 4주 동안 속성으로 영어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는 영어 학원의 광고를 보고 영어 학원 수강 신청을 하면서 영화의 분위기가 급변합니다. 물론 [굿모닝 맨하탄]은 영화의 초반에도 밝은 분위기의 영화였지만, 샤시가 영어 학원에 수강하면서부터는 아예 코미디 영화로 돌아섭니다.
영어 학원에 모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수강생들은 이 영화의 코믹함을 이끕니다. 미국 아이를 돌보는 멕시코인 유모인 에바는 키우는 아이가 영어는 못하고 스페인어를 하는 바람에 아이의 엄마로부터 영어를 배우라는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택시기사 살만 칸은 영어를 배워서 예쁜 파키스탄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프랑스에서온 요리사 로랑은 샤시를 보기 위해 영어 학원에 나온다고 고백합니다. 그들이 펼치는 해프닝은 마치 학원 코미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빠지게 합니다.
그러면서도 [굿모닝 맨하탄]은 샤시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영어 수업을 받으며 점차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아주 세밀하게 잡아냅니다. 특히 핸섬한 프랑스인 요리사 로랑과의 아슬아슬한 로맨스까지 펼쳐지며, 로맨스 영화의 달달한 분위기도 만들어내는 놀라움을 보입니다. 물론 샤시가 두 아이의 엄마인 유부녀이기 때문에 샤시와 로랑의 관계는 일정 선을 넘기지 않았고, 샤시를 향한 로랑의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로 마무리짓는 영특함까지 보여줍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미국으로 오면서 샤시의 영어 학원 생활은 위기를 맞이합니다. 특히 그녀는 엄마로서의 의무감과 로랑과의 위태로운 감정으로 인하여 영어 배우기를 중도에 포기하려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예전의 샤시가 아니었습니다. 조카의 결혼식에서 영어로 유창하게 새신랑 새신부에게 조언을 해줍니다.
결혼이란... 아름다운 거예요. 동등한 두 사람이 아주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일이죠. 인생은 긴 여정이예요. 미라, 가끔은 케빈보다 부족하다고 느낄거야. 케빈도 가끔은 미라보다 부족하다 느끼겠지. 서로 동등하다고 느낄 수 있게 서로를 도와야 해. 그럼 행복할거야. 가끔... 부부끼리도 상대방의 기분을 모르곤 하거든.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 결혼은 끝난 걸까? 그럴 때는 스스로를 도와야 해.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하지. 그렇게 하면 다시 동등하던걸 느끼게 될 거야. 우정이 되돌아올거고 삶은 다시 아름다워질거야.
미라, 케빈 둘다 바쁘겠지만 가족을 이루고 아들, 딸을 갖는건 이 큰 세상에 나만의 작은 세상이 생기는 거야. 얼마나 행복한데. 가족은... 가족은 절대 단정지으면 안 돼요.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 라고요. 가족은 절대 서로를 무시하거나 서로를 하찮게 대해선 안 돼. 가족은... 절대 서로의 약점을 비웃어선 안 돼. 가족은 언제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런 곳이어야 해.
샤시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화의 주제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샤시는 로랑에게 말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그녀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됨으로서 더욱 당당해졌고, 그렇게 더욱 아름다워졌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는지? 나의 소중한 가족을 나도 모르게 무시한 적은 없는지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1년에 천여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는 세계 최대 영화 제작국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에 띄엄띄엄 개봉되는 인도 영화들은 그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엄선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엄선된 영화라서 그럴까요? 현재까지 인도 영화가 저를 실망시킨 적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굿모닝 맨하탄]도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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