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다이버전트] - 너의 반항은 아름다웠다.

쭈니-1 2014. 4. 21. 17:41

 

 

감독 : 닐 버거

주연 : 쉐일린 우들리, 테오 제임스, 케이트 윈슬렛, 애슐리 쥬드, 조 크라비츠

개봉 : 2014년 4월 16일

관람 : 2014년 4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우울한 결혼기념일

 

지난 4월 20일은 저와 구피가 결혼한지 만 11년이 되는 날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철이 조금 덜든 제 곁을 한결같이 지켜준 구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작은 이벤트라도 열어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필 4월 19일부터 20일까지는 저희 회사의 재고조사가 있기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와준 것인지 재고조사가 4월 19일에 전부 끝나버렸고, 결혼기념일 당일인 4월 20일은 구피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작은 이벤트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전 국민이 세월호 사고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저희 가족만 결혼기념일 파티를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이번 결혼 기념일은 평소와 다를바없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 보냈습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 역시 자식이 있는 몸으로, 웅이가 학교에서 단체로 버스를 타고 체험 학습을 떠난다는 말만 들어도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모두들 간다고 하는데 웅이만 안보낼 수도 없고,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보내고는 하는데, 이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으니...  

2013년 7월에는 안면도에서 열린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했던 고등학교 아이들이 파도에 휩쓸려 5명이 실종, 사망했고, 지난 2월에는 경주의 마우나오션리조트의 체육관 건물이 붕괴되어 대학생 10명이 숨졌었습니다. 도대체 왜 어른들의 잘못으로 어린 학생들이 다치고,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집에 있으면 자꾸 세월호 뉴스만 보게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지만, 구조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사망자 숫자만 자꾸 늘어나네요.  지난 수요일부터 암울한 뉴스만 보다보니 저 역시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이 느껴져 너무 힘들고,  우울하기만 했습니다.

결국 저녁이 다 되어서 구피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지난 일요일 웅이와 [슈퍼미니]를 본 후 정확히 일주일만의 극장 나들이입니다. 그 동안 영화를 보러갈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지만, 집에 도착하면 세월호의 구조자 소식을 듣기 위해 TV앞에만 앉아 있느라 극장에 가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결혼기념일마저 우울한 뉴스를 보며 집에서 TV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언가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영화, 혹은 보고나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현재 극장가에는 그러한 영화가 상영하지 않더군요. 어쩔 수 없이 지난주 개봉작 중에서 기대도 1순위인 [다이버전트]를 보고 왔습니다.

[다이버전트]는 가까운 미래, 잦은 전쟁과 자연재해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도시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카고는 사람들 사이의 분열을 막기 위해 다섯개의 분파로 나눠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곳입니다. 하지만 다섯개의 분파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고, 그러한 가운데 열여섯살이 되어 자신의 분파를 선택해야 하는 소녀 트리스(쉐일린 우들리)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다이버전트] 역시 어른들이 만든 불합리한 사회와 어른들의 음모 속에서 열여섯 소년, 소녀들이 희생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인 셈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재미와는 별도로, 영화를 보고나니 기분이 더욱 우울해졌습니다.

 

 

[다이버전트]는 현대 사회의 풍자?

 

일단 개인적으로 저는 [다이버전트]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다이버전트]를 보며 2012년에 개봉했던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이 떠올랐습니다.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의 스토리 라인을 단순화 시킨다면 독재자에 맞서는 캣니스(제니퍼 로렌스)의 활약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의 안을 들여다보면 1%의 부유층이 호의호식을 하기 위한 99% 서민층의 노동과 희생이라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상의 미래 공간을 통해 현대 사회를 은유적으로 풍자하는 것은 [다이버전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이버전트]가 그리고 있는 가까운 미래의 시카고는 다섯개의 분파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타심을 가지고 남을 위한 봉사와 희생을 하는 애브니게이션, 용맹스러운 마음과 남다른 육체적 능력으로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돈트리스, 뛰어난 두뇌와 지식 탐구로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에러다이트,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먹을 거리를 공급하는 평화의 분파 애머티와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 정직함을 타고났기에 청렴한 일을 하기에 적합한 켄더가 바로 미래의 시카고를 구성하는 다섯개의 분파입니다.

얼핏 보기엔 다섯개의 분파로 이루어진 미래의 시카고는 유토피아처럼 보입니다. 이타심을 가진 애브니게이션이 사회의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용맹스러운 돈트리스가 사회를 지켜며, 뛰어난 지식을 소유한 에러다이트는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발전시킵니다. 애머티는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하고, 정직한 켄더 덕분에 부정부패 또한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이버전트]를 보다보면 모두가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열심히 수행하는 미래의 시카고에는 평화만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로 [다이버전트]의 미래 시카고는 평화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일까요? 문제는 바로 다섯개의 분파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특성을 다섯개로 정확히 나눌 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특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렇기에 무분파라고 불리우는 사회에서 낙오된 부랑자들과 다섯개의 분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다이버전트'라 불리우는 사람들도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다섯개의 분파로 나누고, 그러한 다섯개의 분파를 통해 사회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이버전트'는 위험 인물일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다이버전트'가 그 어떤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해도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제거되어야할 존재가 되는 것이죠.

[다이버전트]가 지니고 있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적 풍자는 바로 그러한 통제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무한한 상상력과 서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지도층의 입장에서 그러한 상상력과 개성을 모두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어린 아이들을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에 몰아넣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통제된 사회 속에 편입시키려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적응하지 못하면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을 찍어 버리죠.

[다이버전트]를 보며 열여섯이 되면 자신에게 맞는 분파를 결정하기 위한 테스트를 받게 되고, 한번 선택한 분파는 바꿀 수 없다는 설정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분명 다르게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유사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에러다이트의 쿠데타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모습

 

[다이버전트]가 비록 다섯개의 분파로 운영되는 통제된 사회를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워보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애브니게이션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미래의 시카고를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을 가진 지도층. [다이버전트]가 통제된 사회 속에서도 평화로워 보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애브니게이션은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돕습니다. 그들이 도와야한 사람들이 비록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무분파나 '다이버전트'라 할지라도... 그러한 애브니게이션의 이타심이 미래의 시카고를 평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회 지도층이 [다이버전트]를 보며 느껴야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에러다이트의 지니 매튜스(케이트 윈슬렛)가 애브니게이션을 몰아내고 미래 시카고의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다이버전트]는 진정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로 접어듭니다. 그렇다면 뛰어난 지식을 갖춘 분파인 에러다이트는 왜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려는 것일까요?

2004년에 개봉했던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2035년을 배경으로한 SF영화입니다. [아이, 로봇]의 미래는 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인간 생활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유토피아적인 세계입니다. 이들 로봇은 로봇 3원칙으로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습니다. 로봇 3원칙이란,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된다, 법칙 1에 위해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 법칙 1, 2에 위배되지는 않는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 입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로봇들이 로봇 3원칙을 어기고 인간을 공격하고 지배하려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로봇의 공격이 가능했을까요? 

바로 아이러니하게도 로봇의 3원칙 때문입니다. 로봇의 3원칙중 가장 우선시되는 1원칙인 인간을 지키기 위해 로봇은 인간을 통제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이대로 인간들을 놔두면 스스로를 파멸시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로봇들은 인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을 통제하는 것 뿐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에러다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 또한 바로 더 강력한 통제를 위해서입니다. 이타심으로 인하여 무분파까지 도와주는 애브니게이션이 사회 지도층의 역할을 하는 한, 강력한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지니는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쓰레기인 무분파와 사회의 위험 요소인 '다이버전트'를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통제를 구축하려 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애브니게이션의 존재를 먼저 없애야했던 것입니다.

사실 다섯개의 분파 중에서 어쩌면 없어도 사회를 구성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유일한 분파는 애브니게이션일지도 모릅니다. 돈트리스는 사회의 안전을 지켜야 하고, 에러다이트는 사회를 발전시켜야 하며, 애머티는 식량을 공급해야 하고, 켄더는 사회를 공정하게 이끌어야 합니다. 하지만 애브니게이션은 사회 지도층이라는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파가 보기엔 가장 쓸모가 없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한 마음, 즉 이타심을 가진 애브니게이션. 어쩌면 우리 사회 역시 그러한 이타심을 사회 생활하는데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가장 쓸모없는 것이라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에러다이트의 쿠데타가 현실 풍자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에러다이트가 쿠데타를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 돈트리스라는 점입니다. 모든 쿠데타에는 힘과 폭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기에 지니는 가장 먼저 돈트리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니에 의해 이용되는 돈트리스 대원들은 감각통제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는 로봇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들이 조종되며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돈트리스는 오히려 사회의 위협이 됩니다. 옳고 그름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권력의 도구가 되어 국민들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군과 경찰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통제된 사회를 향한 반항이 아름답다.

 

[다이버전트]는 이렇게 다섯개의 분파로 통제된 사회에서 강한 개성으로 그 어떤 분파에도 속하지 못하는 '다이버전트' 트리스가 세상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트리스가 처음부터 통제된 사회에 반항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의 분파인 애브니게이션 대신 돈트리스를 선택했고, 돈트리스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사실 [다이버전트]는 대부분 돈트리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트리스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지니의 음모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며 겨우 트리스의 반항이 맛뵈기로 조금 펼쳐질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맛뵈기에도 불구하고 트리스의 반항이 아름다운 이유는 [다이버전트]가 미래 시카고의 유토피아 속에 잠재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제가 공감하도록 충분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2015년 3월에 북미 개봉 예정인 [다이버전트]의 2편 [인서전트]에서는 트리스의 반항이 더욱 아름답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다이버전트]가 제게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결국 '다이버전트'가 되어 사회에 맞서 싸워야 하는 트리스와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트리스의 오빠인 칼렙입니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애브니게이션이 아닌 에러다이트를 선택하며 영화 초반 깜짝 반전을 안겨줬습니다.

에러다이트가 애브니게이션에 대한 쿠데타를 성공하고, 정권을 잡은 지니가 대대적인 '다이버전트' 색출 작전에 돌입한다면 에러다이트 소속의 칼렙은 [다이버전트] 이후의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제 기대감은 영화 후반부에 칼렙의 생각보다 이른 각성으로 자연스럽게 무너져버렸습니다.

 

돈트리스에서 상급자인 포(테오 제임스)와 사랑에 빠지는 트리스의 모습도 다음편을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이버전트]에서 트리스의 반항이 맛뵈기에 불과했다면 [인서전트]에서는 본격적인 트리스의 반항이 펼쳐질 것이며, 그렇다면 사회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돈트리스와 트리스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어쩔 수없이 적이 될 수 밖에 없는 트리스와 포의 대립을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트리스와 포의 대립이 제 예상보다 일찍 펼쳐졌고, 그나마도 사랑으로 너무 쉽게 극복하며 역시 제 기대감은 무너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둘도 없는 돈트리스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트리스와 크리스티나(조 크라비츠)의 피할 수 없는 대립 뿐입니다.

[인서전트]를 위해 많은 부분을 남겨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많은 부분을 정리하고 넘어간 [다이버전트]. 과연 [인서전트]에서 어떠한 새로운 갈등 관계를 펼쳐낼지, 제 빈약한 상상력으로는 잘 모르겠네요. 통제된 사회에 대한 트리스의 아름다운 반항과 그러인한 트리스 VS 칼렙, 트리스 VS 포의 슬픈 대결을 기대했는데, 아무래도 [인서전트]에서는 제가 기대한 것들이 아닌 다른 그 무엇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트와일라잇 3부작]때만 하더라도 영어덜트 영화들은 소녀, 소년팬들을 위한 팬시상품같은 영화적 재미에 집중했었습니다. 하지만 [헝거게임]에서부터 가벼운 영화적 재미가 아닌,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생각하며 볼 수 있는 영화적 재미를 구축하고 있네요. 아무래도 [헝거게임]이 마지막 파트인 '모킹제이' 1, 2부만 남겨 놓은 상황이기에 [다이버전트]는 제게 환호하며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영어덜트 영화의 계보를 잇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트리스의 반항이 제겐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만약 내가 다섯개의 분파로 나눠진 사회에 속해 있다면 난 어느 분파에 배정될까?

애브니게이션? 난 이타적이기보다는 내 개인의 행복을 중시할만큼 이기적이다.

돈트리스? 난 완전 저질 체력이다.

에러다이트? 난 공부도 그다지 잘 하지 못했다.

애머티? 난 저질 체력인 만큼 육체적 노동인 농사도 잘 못지을 것 같다.

켄더? 난 거짓말도 잘하는데...

에잇! 나도 '다이버전트'가 될 운명인가? 아님, 무분파가 되어 거리를 방황하거나...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