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쓰리데이즈 투 킬] - 첩보 스릴러의 긴장감을 포기하고 자상한 아빠의 미소를 선택하다.

쭈니-1 2014. 4. 9. 18:12

 

 

감독 : 맥지

주연 : 케빈 코스트너, 엠버 허드, 헤일리 스테인펠드, 코니 닐슨

개봉 : 2014년 4월 3일

관람 : 2014년 4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는 케빈 코스트너의 자화상? 

 

1990년대 영화를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케빈 코스트너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일 것입니다. 80년대 후반 [언터쳐블]과 [노 웨이 아웃], [19번째 남자], [꿈의 구장]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던 케빈 코스트너. 그는 90년대에 들어서 연출과 주연을 맡은 [늑대와 춤을]의 놀랄만한 성공과 [JFK], [로빈 훗], [보디가드]를 연속 흥행 시키며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몰락은 케빈 코스트너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SF 대작 [워터월드]의 흥행 실패로 가속화되었습니다. [워터월드]는 케빈 코스트너에게 많은 것을 빼앗아 갔는데, 흥행 배우로서의 명성은 물론 [로빈 훗]에서 감독과 배우로 처음 만난 이후 [라파 누이]에서는 감독과 제작자로 우정을 쌓아가던 케빈  레이놀즈와의 관계가 [워터월드]의 제작 도중 불협화음으로 끝장이 나버렸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 즈음 케빈 코스트너는 대학에서 만나 결혼까지한 조강지처 신디 코스트너와 결혼 16년 만에 이혼을 하는 등 영화 내, 외적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무리수를 두는데 [워터월드]와 비슷한 스토리 라인을 가졌지만 무대만 바다에서 사막으로 옮긴 [포스트맨]을 직접 연출과 주연을 맡으며 재기를 노린 것입니다. 하지만 [포스트맨]은 [월터월드]보다 더 재앙과도 같은 흥행 실패를 거두었고, 결국 케빈 코스트너를 재기불능 상황으로까지 몰아 넣었습니다.

 

하지만 케빈 코스트너는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자리에서는 어쩔수없이 내려 왔지만 [오픈 레인지], [그녀가 모르는 그녀에 관한 소문], [가디언] 등으로 꾸준히 건재함을 알렸습니다.

2013년 [맨 오브 스틸]에서는 수퍼맨(헨리 카빌)의 지구인 아버지 조나단 켄트를 연기하며 블록버스터로 돌아왔습니다. [맨 오브 스틸]은 북미 2억9천만 달러, 월드 와이드 6억6천만 달러의 흥행을 올리며 '수퍼맨'의 성공적인 귀환을 알렸고, 케빈 코스트너는 비록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했지만, 인상적인 연기로 블록버스터에서의 존재감을 부각시켰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케빈 코스트너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바로 [쓰리데이즈 투 킬]에서 한때 CIA의 최고 요원이었지만 이제는 뇌종양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에단 러너로 액션 히어로의 자리를 꿰찬 것입니다. [잭 라이언 : 코드네임 쉐도우]에서 주인공인 잭 라이언(크리스 파인)의 파트너에 만족해야 했던 케빈 코스트너의 입장에서 큰 변화인 셈입니다.

[쓰리데이즈 투 킬]은 여러모로 케빈 코스트너의 개인사를 연상시키는 영화입니다. 최고의 첩보 요원이었지만, 죽음을 앞둔 지금은 그저 평범한 남편, 자상한 아빠이고 싶은 에단 러너는 마치 최고의 할리우드 스타에서 한 순간에 나락까지 떨어진 케빈코스트너를 투영시킨 캐릭터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케빈 코스트너는 이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예전의 명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까요?

 

 

한때는 일이 우선, 하지만 지금은 가정이 우선

 

[쓰리데이즈 투 킬]의 오프닝은 시원스러운 액션으로 시작됩니다. 전설적인 테러리스트 울프를 잡기 위해 CIA 요원들이 현장에 잠입하고, 이를 눈치챈 울프의 부하 알비노로 인하여 한바탕 총격전에 펼쳐집니다.

호텔의 한 층이 폭파되는 대혼란 가운데 에단은 알비노를 잡기 위해 추격에 나섭니다. 하지만 에단은 결정적인 순간 정신을 잃고 맙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에 누워 있었고, 의사는 에단에게 뇌종양이 폐로 전이되었다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합니다. 죽음을 앞둔 에단. 그는 마지막 인생을 그 동안 소홀했던 가족과 보내기 위해 파리로 향합니다.

한바탕 액션이 휘몰아친 이후 [쓰리데이즈 투 킬]은 에단의 시한부 인생 선고와 함께 가족을 찾아 파리로 떠나며 영화의 분위기를 180도로 전환시킵니다. 시원스러운 액션 영화를 기대한 분들은 상당히 당혹스러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며 [쓰리데이즈 투 킬]은 확실한 장점과 단점을 보유하게 됩니다.

우선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에단의 이야기가 꽤 진솔하게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쓰리데이즈 투 킬]을 연출한 맥지 감독은 만약 007 제임스 본드가 늙어 은퇴를 하고 가족에게 돌아간다면... 이라는 설정 아래 [쓰리데이즈 투 킬]의 스토리 전개를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실제 [쓰리데이즈 투 킬]은 그러한 맥지 감독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입니다.

 

첩보원 만큼 가정에 충실할 수 없는 직업은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죽음에 노출되어 있고, 자신으로 인하여 가족들 또한 위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세계를 떠돌며 활약을 해야 하니 가정에 충실한 첩보원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첩보원의 대명사인 제임스 본드는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쓰리데이즈 투 킬]의 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CIA의 베테랑 현장 요원이지만 딸의 생일날 축하 전화를 하는 것조차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한 그가 죽음을 앞두고 뒤늦게 가족과의 관계 회복에 나선 것입니다.

[쓰리데이즈 투 킬]에서 에단은 주이가 어렸을 적에 함께 보낸 놀이공원과 해변가에서 찍은 캠코더 영상을 반복해서 봅니다. 하지만 주이는 더이상 어린 꼬마가 아닌 사춘기 소녀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에단과 주이 사이엔 캠코더 속의 꼬마 아이와 사춘기 소녀 사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에단은 힘겨운 노력을 해야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이라면 에단이 주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입니다. 타는 법을 가르쳐줄 아빠가 없었기에 아직까지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주이. 그러한 주이에게 에단은 뒤늦게나마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며 주이와의 소통에 성공합니다. 지난 2011년 웅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던 일이 떠올라서 그 장면을 저는 흐뭇하게 봤습니다.

 

 

최고의 첩보원도 존경하는 최고의 아빠

 

[쓰리데이즈 투 킬]은 주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에단의 모습을 코미디적 설정으로 보여줍니다. 울프를 잡기 위한 암살 임무 와중에 주이의 전화가 울리면 급박한 임무를 잠시 멈추고 태연스럽게 주이의 전화를 받는 에단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이 영화의 최대 재미입니다.

특히 주이가 설정해준 벨소리는 국내 핸드폰 광고에도 사용되었던 Icona Pop의 'I Love It'입니다.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에단에게 갑자기 클럽에서나 흘러 나올 법한 시끄러운 벨 소리가 터져 나오니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웃음을 참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꽤 코믹한 설정이 많습니다. 에단이 울프를 잡기 위해 울프와 거래하는 주위 인물들을 납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에게 주이에 대한 상담을 받거나, 남자친구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주이를 위해 스파게티 소스 제작법을 묻는 등, 에단의 임무는 어느 사이 주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도구가 됩니다.

영화의 후반부 에단은 울프를 뒤쫓으면서도 주이에 대한 상담을 응해준 적을 구해줍니다. "왜 나를 죽이지 않냐?"라고 묻는 그에게 에단은 "당신은 최고의 아빠이니까..."라며 존경을 표합니다. 최고의 첩보원이었던 에단은 최고의 아빠였던 그를 존경하며 그의 가정을 지켜준 것입니다. 자신은 그렇지 못했기에...

 

하지만 [쓰리데이즈 투 킬]은 앞서 언급했듯이 장점과 단점이 분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사춘기 딸과 관계 회복을 하고 싶은 에단의 노력과 그로인한 코믹한 설정에 의한 색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첩보 스릴러 영화로서의 짜임새가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프랑스에 온 에단. 그의 앞에 CIA 국장의 직속 부하라고 자신을 밝힌 비비(엠버 허드)가 나타납니다. 비비는 에단에게 울프를 죽이면 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약을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CIA 간부들은 비비에게 다른 CIA 요원들이  알비노 체포 작전에 투입되는 동안 울프를 잡는데 주력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들은 울프의 모습은 물론 정체 또한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비비가 에단에게 접근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알비노 체포 직전까지 갔던 에단. 그는 울프를 체포할 수 있는 CIA의 유일한 연결 끈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코 에단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고, 에단을 이용하여 울프를 잡으려합니다. 현장 요원을 단순히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CIA의 고위 간부들에겐 당연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나옵니다.

 

 

첩보 스릴러의 짜임새는 불합격

 

과연 울프는 CIA가 죽어가는 에단을 이용할 만큼 주도면밀한 악당일까요? 대답은 NO입니다. 울프에게 접근하기 위해 비비가 에단에게 전해준 단서는 딱 두가지입니다. 울프와 관계가 있는 리무진 렌탈 업체 사장의 소재지가 그 첫번째 입니다. 이를 통해 에단은 알비노의 회계 담당자의 위치를 알게 되고, 알비노의 회계 담당자를 납치함으로서 울프의 자금줄을 막아버립니다.

그러자 너무나도 간단하게 울프가 에단 앞에 등장합니다. CIA의 막강한 정보력이라면 울프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운 일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울프의 정체가 이렇게 허술하게 밝혀지니 첩보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울프는 에단과 에단 가족을 처치하기 위한 킬러를 고용합니다. 그 킬러가 제대로 역할만 수행했다면 어쩌면 [쓰리데이즈 투 킬]은 제 2의 [테이큰]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맥지 감독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에단 가족을 위협할 임무를 띤 킬러는 영화의 중반부에 아주 간단히 에단에게 제압됨으로서 영화의 긴장감을 끌어올릴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립니다.

에단의 집을 무단으로 점거한 노숙자 가족들도 [쓰리데이즈 투 킬]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통해 에단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설정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노숙자 가족들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영화의 전개와 조금 겉돌기만합니다.

 

만약 [쓰리데이즈 투 킬]이 [테이큰]의 긴장감을 갖고 있으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에단이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이야기가 진솔하게 그려졌다면 더욱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이 영화의 깨알같은 코미디마저 훼손되지 않고 가지고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하지만 맥지 감독은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첩보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과 짜임새를 포기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맥지 감독의 전작인 [디스 민즈 워]를 상당히 재미있게 봤기에 코믹 액션과 첩보 스릴러의 조화를 [쓰리데이즈 투 킬]에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쓰리데이즈 투 킬]은 그러한 기대감은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케빈 코스트너가 오랜만에 자신의 몸에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것 같아 개인적으로 나름 만족한 영화입니다.

자! 그렇다면 초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과연 [쓰리데이즈 투 킬]로 인하여 케빈 코스트너는 예전의 명성을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아직은 NO입니다. 이 영화의 북미 흥행 성적은 고작 3천만 달러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흥행 성적이라면 케빈 코스트너의 예전 명성을 되찾아주기에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케빈 코스트너의 매력만큼은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었기에, 언젠가 다시 케빈 코스트너의 제 2의 전성기가 찾아올 것이라 믿어보고 싶습니다.

 

 직장에서 아무리 최고의 능력을 인정받았더라도,

좋은 남편, 멋진 아빠가 되지 못한다면 그 인생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한 에단을 노력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