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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 - 전혀 매력적이지 못한 새로운 영웅 탄생

쭈니-1 2014. 4. 11. 13:06

 

 

감독 : 레니 할린

주연 : 켈란 루츠, 가이아 와이즈, 스콧 앳킨스, 로산느 맥키, 리암 게리건

개봉 : 2014년 4월 10일

관람 : 2014년 4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내겐 이야기 소재가 필요해.

 

주말 밤이면 웅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제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세요."라고 조릅니다. 웅이가 어렸을 적부터 잠들기 전에 이런 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줬는데, 12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웅이는 아직도 제 이야기를 들어야 잠자리에 듭니다.

처음엔 웅이가 좋아하는 공룡과 포켓 몬스터를 주인공으로한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고, 나중에는 제가 본 영화들을 이야기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소재가 무궁무진할리가 없습니다. 결국 소재가 고갈되었고, 웅이에게 해줄 이야기가 없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는 웅이에게 "오늘은 그냥 자!"라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그렇기에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들 중에서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가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이 영화의 관람 등급은 15세 관람가. 결국 웅이를 데리고 극장에서 볼 수는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주말 밤에 웅이에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의 소재가 충분히 되어 줄 것으로 보였습니다.

주말 밤을 하루 앞둔 목요일 밤에 구피와 함께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를 보러 갔습니다. 솔직히 신화 이야기를 좋아하는 웅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알기에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를 고스란히 영화에 옮긴 것이 아닌 상상력을 동원한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기를 바라며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 점에서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가 아닌 제가 원했던 새로운 이야기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펼쳐낸 새로운 이야기가 과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모험담보다 재미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결코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 중에서 가장 유명한 '헤라클레스'는 이미 수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었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헤라클레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를 매력적으로 재탄생시키지 못했고, 결국 흥행에 실패하며 셀 애니메이션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안타까운 역할만 수행해냈습니다.

그런데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헤라클레스]보다 한술 더 뜹니다. 차라리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개의 과업을 영화화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겠다고 느낄 만큼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새로운 이야기만 창조해냈을 뿐, 그 이야기에 그 어떤 매력도 불어넣지 못하는 처참한 결과만 안겨줬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지난 1월에 북미에서 개봉한 후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부실한 상상력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의 부실한 상상력을 설명 하기 위해서 먼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의 매력적인 이야기부터 (모두들 잘 아시겠지만) 되짚어 보겠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신중의 신인 제우스와 인간 여인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의 영웅입니다. 제우스의 바람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매우 유명한데, 또 다시 아내인 헤라를 속이고, 알크메네와 바람을 피운 제우스는 헤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알크메네의 아기에게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헤라클레스'는 바로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헤라클레스'에 대한 제우스의 사랑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는데, '헤라클레스'를 불사의 몸으로 만들기 위해서 제우스는 갖 태어난 '헤라클레스'에게 잠든 헤라의 젖을 물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의 젖을 빠는 엄청난 힘에 놀란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밀쳐냈고, 그때 분출된 젖이 흘러 은하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에 대한 제우스의 사랑은 헤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헤라는 8개월이된 '헤라클레스'의 요람에 독사 두마리를 풀어넣었지만 '헤라클레스'는 맨 손으로 뱀들을 목졸라 죽였습니다. 그러나 헤라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청년이 된 '헤라클레스'가 테바이의 왕인 크레온의 딸 메가라와 결혼해 세 자녀를 얻자, '헤라클레스'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그가 자신의 손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게 만든 것입니다. 바로 그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개의 과업은 '헤라클레스'가 이 끔찍한 죄를 씻기 위한 고행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바램과는 달리 12개의 과업을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죄를 씻어냅니다. 그러나 12개의 과업을 수행한 후에도 '헤라클레스'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는데, 그는 자신의 친구인 이피토스를 죽인 죄로 3년간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의 노예살이를 하게 됩니다. 노예 생활 동안 '헤라클레스'는 여자 옷을 입고 실을 잦는 등 순한 양이 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노예 생활을 끝낸 '헤라클레스'는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하였는데, 이번엔 데이아네이라의 미모에 빠져 그녀를 납치하려 했으나 오히려 '헤라클레스'에게 죽음을 당한 켄타우르스 네소스의 음모에 빠집니다. 네소스는 죽으며 데이아네이라에게 자신의 피를 받아두었다가 '헤라클레스'가 바람을 피울 때 그의 옷에 발라서 입게 만들면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순진한 데이아네이라는 그 말을 믿었고, 옷에 네소스의 피를 묻혀 '헤라클레스'가 입게 만듭니다. 네소스의 독으로 '헤라클레스'는 괴로워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데이아네이라는 결국 자결합니다. 네소스의 독으로 괴로워한 '헤라클레스'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불태워버립니다. 불길은 삽시간에 '헤라클레스'의 몸을 불태웠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신의 반열에 올랐고, 그제서야 헤라도 그를 용서하여 자신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 헤베와 혼인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자! 어떤가요? 저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상당히 매력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인간으로 살기엔 너무 과분한 힘을 가진, 그래서 비록 헤라의 저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수 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그런 영웅입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 신이 됨으로서 그 파란만장한 삶에서 비로서 행복을 되찾습니다.

 

 

영화 속의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를 굉장히 많이 변형시킵니다. 그러한 변형은 '헤라클레스'의 탄생의 비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폭군 암피트리온(스콧 앳킨스)의 만행에 그의 아내인 알크메네(로산느 맥키)는 여신 헤라에게 기도를 올립니다. 이에 헤라는 알크메네의 기도에 응하여 그녀가 제우스의 아들을 잉태하게끔합니다. 그리하여 '헤라클레스'는 암피트리온의 폭정을 끝낼 운명을 타고 태어난 것입니다.

일단 제우스의 바람끼로 태어났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 탄생기보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좀 더 폼나게 '헤라클레스'의 탄생을 그려 넣습니다. 그로인하여 헤라의 저주라는 '헤라클레스'의 최대 난적은 사라졌지만, 그 대신 암피트리온의 폭정을 끝내야한다는 멋진 운명이 주어진 것이죠.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곧바로 20년 후로 시간을 옮깁니다. 청년으로 성장한 '헤라클레스'(켈란 루츠)는 알키데스라는 이름으로 평범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왕위 계승자인 이피클레스(리암 게리건)가 자신의 연인 헤베(가이와 와이즈)와 결혼하려하자 이에 불복했고, 그로인하여 소티리스 장군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긴 원정에 떠납니다.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헤라의 딸이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가 크레타의 공주로 지위가 급하락하여 일찌감치 나온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헤라클레스'의 진정한 짝은 인간인 메가라, 데이아네이라가 아닌 여신 헤베이긴 했지만, 속편을 만들 생각이라면 헤베를 조금 아껴두는 편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합니다. 반란 진압은 사실 암피트리온이 '헤라클레스'를 없애기 위한 함정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소티리스와 함께 노예로 팔려 가는 굴욕을 맛봅니다. 노예 검투사가 되어 그리스로 돌아갈 날만을 꿈꾸던 '헤라클레스'. 그는 결국 최강의 검투사가 되어 그리스 입성에 성공합니다.

이러한 중, 후반부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바로 검투사라는 설정입니다. [글래디에이터]의 흥행 성공으로 검투사는 고대 그리스, 로마를 배경으로한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개봉했으나 흥행에 참패한 [폼페이 : 최후의 날]에서도 검투사의 활약담이 주요 내용이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헤라클레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헤베와 이피클레스의 결혼을 막기 위해서 빨리 그리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검투사로서 '헤라클레스'의 모험은 최대한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그를 검투사로 팔아넘긴 타랙이 "어떻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 돌아왔지?"라고 묻는 장면은 '겨우 그곳에 지옥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비웃음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폭군을 몰아낼 그리스 시민의 희망이 되어 암피트리온 왕과 이피클레스 왕자에 맞서 싸웁니다. 제우스의 힘을 각성한 '헤라클레스'. 인간에 불과한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써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제목 그대로 영웅의 전설을 완성합니다.

 

 

이 영화의 부실한 부분.

 

제가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의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서 이 영화 속의 '헤라클레스'가 전혀 매력적이지 못하다고 못 박은 이유를 이제부터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아무리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를 새롭게 각색한 것이라 할지라도 영화 속의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와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의 영웅이며, 헤베와 결혼한다는 것 정도만 같습니다. 그 유명한 12가지 과업 중에서 네메아의 사자를 맨 손으로 처치하는 부분이 영화의 초반에 나오지만, 그 장면 또한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헤라클레스'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혹은 판타지적) 부분을 될수있는한 없애려 한 듯한데, 굳이 그러한 선택을 왜 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우선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을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폭군 암피트리온의 폭정을 관객 앞에 보여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의 암피트리온은 그저 냉혹한 정복왕일 뿐, 폭군이라는 이미지를 관객에게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헤라클레스'를 죽이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암피트리온을 몰아내야할 폭군으로 단정짓기 힘듭니다.

그리스로 돌아온 '헤라클레스'에게 암피트리온과 이피클레스의 폭정을 이야기하며 그와 함께 하겠다는 군인들이 줄을 잇지만, 영화 속에서 암피트리온과 이피클레스의 폭정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탓에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어쩌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헤라클레스'의 각성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탓에 대강 그려집니다. '헤라클레스'라는 이름 대신 알키데스라는 이름으로 대부분의 인생을 산 그는 어머니인 알크메네가 "넌 헤라 여신이 보내준 제우스의 아들이란다."라고 진실을 이야기해줘도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무시할 정도입니다.

그런 '헤라클레스'는 암피트리온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우스의 존재를 믿게되고 신의 아들로서의 힘을 각성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각성의 계기가 그저 스승의 죽음 뿐입니다. 그럴 것이라면 진작에 각성하면 될 것을, 왜 계속 버텼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차라리 12 과업과 같은 모험을 겪으며 스스로 신의 아들로서의 힘을 각성하는 것으로 처리했다면 휠씬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레니 할린 감독의 영화답게 액션은 그런데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한때 [다이하드 2]와 [클리프 행어]를 통해 최고의 액션 감독으로 각광받던 레니 할린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적절한 슬로우 모션을 이용하여 꽤 멋진 액션을 완성해냈지만, 스토리 라인이 텅빈 액션은 그저 속빈 강정임을 다시한번 입증할 뿐입니다.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제겐 이렇게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더 많이 남겨준 영화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를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어내려면 좀 더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했어야 하지만, [헤라클레스 : 레전드비긴즈]는 그러한 새로움 없이 그저 '헤라클레스'를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조급함만 내비칠 뿐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웅이에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얻지 못했으니... 오늘 밤에 웅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지...

 

내가 기다린 영웅은 이렇게 평범한 '헤라클레스'가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욱 매력적이고, 복잡한 영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