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우아한 거짓말] - 나와 내 가족의 삶에는 '우아한 거짓말'이 필요없기를...

쭈니-1 2014. 3. 17. 15:33

 

 

감독 : 이한

주연 : 김희애, 고아성, 김향기, 김유정, 유아인, 천우희, 유연미, 성동일

개봉 : 2014년 3월 13일

관람 : 2014년 3월 1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사춘기를 앞둔 아이를 둔 부모라면...

 

저는 가끔 웅이가 첫돌 때 찍은 사진을 우두커니 바라보곤 합니다. 사진 속의 아이는 볼살이 포동포동한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기입니다. 하지만 벌써 11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웅이는 어느덧 남자의 향기(?)를 풍기는 여엇한 12세 소년이 되어 있습니다. 웅이의 첫돌 때 사진을 보며 저와 구피는 "저 귀여운 아기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라고 푸념아닌 푸념을 하곤합니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웅이. 하지만 아직도 제게 웅이는 어린 아이에 불과합니다. 지난 토요일, 방과후 수업을 위해 등교해야하는 웅이. 하지만 저는 청소 때문에 웅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청소를 하면서도 계속 마음 한구석에는 웅이 혼자 학교에 가다가 사고가 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더군요. 결국 방과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하염없이 웅이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어땠지?'라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놀기 바빴던 기억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초등학교 때까지 저는 가족들과 자주 놀러 갔었는데, 중학교에 진학하더니 놀러가자고 해도 "내가 엄마하고 왜 놀러가요?"라며 친구들하고만 놀았다고 합니다. 그땐 섭섭했었다며 예전 일을 회상하셨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과 삼총사라며 몰려 다녔던 추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고나서는 가족들에 대한 추억이 거의 없습니다. 제 기억의 대부분은 친구들과 놀러 다녔던 기억이 전부였으니, 그만큼 당시 저는 가족보다 친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네요. 웅이와 함께 주말마다 놀러 다니고,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도... 몇 년후면 웅이도 저와 구피보다는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섭섭한 마음이 앞서지만 저 역시 그랬는걸요. 어쩌면 그러한 것은 당연한 성장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어느날 우연히 [우아한 거짓말]의 예고편을 봤습니다. 어린 막내딸 천지(김향기)를 먼저 저 세상에 보낸 어머니 현숙(김희애)과 언니 만지(고아성)가 천지에 대한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우아한 거짓말]. 저는 [우아한 거짓말]의 예고편만으로도 코끝이 찡해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웅이도 언젠가는 사춘기가 될것입니다. 사춘기에 친구들과의 문제, 혹은 성적 문제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에 대한 뉴스를 자주 접하곤 했는데... 과연 저는 웅이에게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웅이의 사춘기를 잘 보듬어줄 수 있을까요? [우아한 거짓말]의 예고편은 제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꼭 봐야만 했다.

 

[우아한 거짓말]이 개봉하자 저는 '이 영화는 꼭 봐야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구피 역시 "[우아한 거짓말]은 볼래."라고 선언했습니다. 슬픈 영화를 싫어하는 구피이기에 [우아한 거짓말]을 보겠다는 구피의 선언에 저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와 구피가 [우아한 거짓말]을 필수관람영화로 선택한 이유는 당연히 사춘기를 앞둔 웅이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웅이가 사춘기를 슬기롭게 넘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마 자녀에 대한 그러한 믿음은 이 세상한 모든 부모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목숨을 포기합니다. 웅이를 믿지만 그러한 비극은 남의 일이라며 넘길 수가 없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을 보며 천지는 어떠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천지를 잃은 가족들은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며 많이 울 것이고, 많이 가슴이 아플 것입니다. 저와 구피는 그러한 슬픔, 아픔을 감안하고 [우아한 거짓말]을 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천지에게 일어난 일이 웅이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지는 참 밝은 아이였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아빠는 잃었지만 엄마에게는 힘이 되는 딸, 언니에게는 귀여운 동생이었습니다. 곱게 교복을 다림질하는 천지의 모습이 너무 예뻤고, 귀여웠으며,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도 저런 귀여운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그러한 천지가 죽었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천지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영화 초반의 천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기에 천지의 죽음 장면을 어떻게 봐야하나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한 감독은 아예 천지의 죽음 장면을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천지의 유골을 강에 뿌리는 현숙의 모습에서 저는 참았던 눈물 한줄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천지 아빠, 천지를 만나거든 왜 그랬냐고 묻지마. 그냥 꼭 안아줘."라는 현숙의 눈물 섞인 목소리는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제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합니다. 막내 딸 천지를 잃은 현숙의 심정은 감히 제가 상상을 할 수 없는 아픔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숙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녀에겐 자신이 책임져야할 자식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만지를 위해서라도 현숙이 '괜찮다'라는 '우아한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의외로 담담하다.

 

[우아한 거짓말]은 의외로 담담하게 진행됩니다. 아니, 담담하다못해 코믹하기까지 합니다. 지금까지 영화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는 극단적인 분노로 인한 복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더 파이브]의 은아(김선아)가 그랬고, [몽타주]의 하경(엄정화)이 그랬으며, [돈 크라이 마미]의 유림(유선)이 그랬습니다.

물론 이들 영화 속의 엄마들과 [우아한 거짓말]의 현숙은 다릅니다. [더 파이브]의 은아는 아무런 이유도 모르는채 잔인한 살인마에게 딸을 잃었고, [몽타주]의 하경은 유괴범에게, [돈 크라이 마미]는 집단 강간으로 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지는 그러한 끔찍한 범죄에 노출된 것은 아닙니다. 만지는 천지의 죽음에 대해 혹시 성폭행을 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지만, 현숙은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 놈을 발기 발기 찢어 버릴거야."라고 말합니다. 

분명 [우아한 거짓말]에는 현숙이 발기 발기 찢어버릴 놈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앞선 영화들처럼 잔인한 스릴러의 형식이 아닌, '왜 천지는 그러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영화를 이끌고 갑니다. 현숙과 만지가 천지 혼자 감당해야 했던 사춘기 소녀의 고통을 알아가고, 천지가 남겨준 쪽지를 발견하는 과정이 담담하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떤 분들은 '고작 그딴 일로 자살을 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천지가 겪는 일은 결코 삶을 포기할만큼 큰 일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살다보면 이보다 더 큰 부당한 일을 수도 없이 겪게 되니까요.

하지만 천지는 이제 겨우 중학생인 어린 소녀입니다. 어른의 입장에서 천지가 겪는 것은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지의 입장에서 자신이 겪는 일은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천지의 입장에서 천지를 이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포인트입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바로 현숙과 만지의 천지 이해하기에 초점에 맞춰져 있습니다. 처음에 만지는 천지가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만지 입장에서 천지의 고민은 별 것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지가 죽고 나서 천지가 겪은 일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며 천지를 이해하게 되고, 천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게 됩니다.

사춘기를 앞둔 웅이의 아빠 입장에서 저는 [우아한 거짓말]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웅이의 말에 귀를 기울였는가?' 저는 웅이에게 친구같은 아빠라고 자부하지만, 저 역시 가끔은 웅이의 말에 귀찮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른의 입장이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웅이와 대화를 하고, 고민을 듣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우아한 거짓말]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천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그토록 괴롭혔던 것들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막내 딸을, 귀여운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에 대해서 현숙과 만지는 어떠한 행동을 했을까요? 잔인한 복수? 아닙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아한 거짓말]은 현실성을 부여받습니다.

만지는 현숙에게 "다른 부모들은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엄마는 아닌 것 같아."라고 따집니다. 그렇습니다. 현숙은 마치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씁니다. 평소처럼 마트에서 일하고, 식사 때가 되며 국수를 곱배기로 먹으며, 그녀는 평소처럼 행동하려합니다.

급기야 이웃집 청년인 추상박(유아인)과 현숙에게 끊질기게 매달리는 백수건달 곽만호(성동일)에 의한 코믹 코드까지 이 영화는 선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린 딸을 먼저 보낸 현숙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삶을 지속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숙에게는 아직 지켜야할 자식인 만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분노가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후반부에 현숙이 했던 행동들이 그녀 나름대로의 복수임을 보여줍니다. 물론 처절하고 잔인한 복수는 아닙니다. 그녀에게 복수의 대상은 잔인한 살인마, 유괴범, 강간범이 아닌, 우리가 똑같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니까요.

 

제가 [우아한 거짓말]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화연(김유정)에 대한 만지의 대처입니다. 천지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인 화연. 하지만 그녀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입니다.

만지는 자신의 절친인 미란(천우희)과 미란의 동생이자 천지와는 같은 반 친구인 미라(유연미)를 통해 화연을 이해하고 용서한 것입니다. 그러한 장면은 마치 관객들에게 우리들이, 혹은 우리들의 자식들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와도 같습니다. 

[우아한 거짓말]을 보기 전에 저는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아이들은 심각한 문제아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화연은 결코 문제아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어린 여자아이일 뿐입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어쩌면 제 2의 천지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어린 여자아이일 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화연의 눈물과 만지의 용서를 보며 제 가슴 속은 먹먹해졌습니다. 이제 그들은 각자의 아픔을 지니고 평생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겉으로는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천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 아픔, 죄책감을 안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거짓말은 우아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아픔, 죄책감을 안고 있지만 삶을 지속할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구피도 저도 별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먹먹함을 간직한채 집으로 발길을 돌릴 뿐입니다. 그날따라 웅이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웅이의 입장에서 웅이를 이해하며... 그렇게 저는 결코 '우아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저희 가족이기를 희망합니다.

 

슬프지 않다, 힘들지 않다, 외롭지 않다, 행복하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의 삶에서 '우아한 거짓말'이 아닌 진실이기를

나는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