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프랭클
주연 : 제임스 코든, 알렉산드라 로치, 줄리 월터스, 콤 미니
개봉 : 2014년 3월 13일
관람 : 2014년 3월 19일
등급 : 12세 관람가
누군가의 기회가 되어준다는 것!
지난 수요일, 회사 체육대회를 하기 위한 잔디구장 섭외를 위해 송추에 가야 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송추까지는 차가 안막힌다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송추의 잔디구장 담당자와 오후 3시 이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느긋하게 회사에서 출발하려고 차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른 부서 여직원이 외근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어디 가냐고 물었고, 여직원은 힘없이 과천 정부청사에 가야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과천 정부청사까지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가려면 거의 2시간 거리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간 후 1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사당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야하는... 차가 없는 여직원에겐 험난한 여정입니다.
여직원은 제게 혹시 과천까지 태워주면 안되겠냐며 간절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사실 과천과 송추는 정반대 방향이었기에 제가 과천에 들렀다가 송추로 간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잔디구장 담당자와의 약속시간은 여유가 있었기에 저는 그냥 여직원에게 과천까지 태워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순간 너무 환하게 웃는 여직원의 표정은 제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과천까지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른 부서의 여직원이었기에 저와 친해질 기회가 없었는데, 과천까지 가는 짧은 시간동안 여직원과 굉장히 많이 친해진 기분이었습니다.
그 여직원은 제게 태워줘서 감사하다며 제가 과천까지 태워줄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저 지하철역까지 태워만 줘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의외로 흔쾌히 과천까지 태워준 것이죠. 과천에서 여직원을 내려주고나니 기분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사실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그 여직원의 작은 기회가 되어준 것입니다. 과천에서 송추로 차를 모는 동안 그냥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송추에서의 일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기엔 조금 어정쩡한 시간이라 회사엔 퇴근하겠다고 보고하고, [원챈스]를 봤습니다. [원챈스]는 오페라 가수를 꿈꾸는 평범한 휴대폰 판매사원 폴 포츠(제임스 코든)가 꿈의 오디션에서 우승을 한 후 오페라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실화 영화입니다. 하지만 저는 폴 포츠의 성공담보다는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와닿았습니다. 폴 포츠가 포기하지 않고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이루도록 응원해준 그의 가족. 그들이 바로 폴 포츠의 진정한 기회가 아니었을까요?
지지리도 운없는 이 남자
[원챈스]는 폴 포츠의 어린 시절부터 잡아냅니다. 성가대에서 유난히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던 어린 소년 폴 포츠. 하지만 그 꼬마는 고막이 터져 노래를 부르는 도중 쓰러집니다.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폴 포츠는 성인이 됩니다. 그리고 그에겐 두번째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가 이사장으로 있는 베니스의 학교에 입학을 하게된 것이죠. 그곳에서 폴 포츠는 파바로티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그 기회를 망쳤고, 학교를 그만 두게 됩니다.
고향에서 평범한 휴대폰 판매사원으로 일하며 그는 자신의 첫사랑인 줄스(알렉산드라 로치)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기회가 그에게 찾아옵니다. 바로 뮤지컬 [아이다]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이죠. 하지만 공연 전날 맹장이 터지고 맙니다. 맹장 수술후, 실밥도 뜯지 않는 가운데 공연을 강행하지만 수술 부위가 터져 공연 도중 쓰러집니다. 병원에서 다행히 출혈은 멈췄지만 그의 성대에 혹이 발견되고, 폴 포츠는 다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위기에 처합니다.
6개월 후,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된 폴 포츠. 너무 기쁜 나머지 가족들에게 "나, 이제 노래를 할 수 있어!"라고 외치다가 이번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이쯤되면 '뭐 저렇게 운없는 남자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사실 [원챈스]를 보기 전에 저는 '과연 폴 포츠의 성공담이 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할까?'라는 의문을 품었었습니다. 분명 그는 평범한 휴대폰 판매사원에서 세계적인 오페라 스타의 자리에 오르는 매력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지만 1시간 45분동안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파란만장한 삶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다보니 '이 남자, 참 파란만장하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어디까지가 영화적 재미를 위한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폴 포츠가 실제 겪은 일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어린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불운한 사고로 그 기회를 놓치는 장면들이 반복되며, 폴 포츠가 오페라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참 파란만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수 많은 불운 속에서도 폴 포츠는 오페라 가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영국의 오디션 TV 프로인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우승을 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며칠 전 우리나라에 방한하여 어느 예능 프로에서 노래를 하는 폴 포츠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서 세계적 스타라는 자만심보다는 소박함이 돋보였습니다. 아마 수 많은 실패를 딛고 어렵게 일어섰기에 가능한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의 진짜 기회는 바로 가족이다.
하지만 과연 폴 포츠가 휴대폰 판매원에서 오페라 스타가 되기까지 폴 포츠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능했을까요? 아닙니다. 어쩌면 그의 꿈을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기에 지금의 폴 포츠가 있었을 것입니다. [원챈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가족의 응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부르기를 좋하했던 폴 포츠. 그러한 아들을 아버지인 롤랜드(콤 미니)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젊은 시절 미식축구 선수이기도 했던 그는 소음공해와도 같은 오페라에 심취한 폴 포츠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폴 포츠에게 '헛된 꿈을 꾸지 말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라'며 호통을 칩니다.
만약 폴 포츠의 곁에 그의 꿈을 응원하는 어머니 이본느(줄리 월터스)가 없었다면 그는 결국 평범한 휴대폰 판매사원으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릅니다. 폴 포츠를 이해하지 못했던 롤랜드와는 달리 어린시절부터 아들의 꿈을 응원했던 이본느.
분명 롤랜드도, 이본느도 폴 포츠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단지 사랑의 방법이 달랐던 것지요. 롤랜드는 미식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폴 포츠의 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허황된 꿈이라 생각되었고, 그가 자신처럼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롤랜드가 이해되었습니다. 허황된 꿈에 빠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아마 롤랜드가 폴 포츠에게 걱정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현실부적응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 이본느가 폴 포츠의 첫번째 기회라면 아내인 줄스는 폴 포츠의 두번째 기회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남편의 꿈을 응원했던 그녀는 교통사고로 폴 포츠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묵묵히 폴 포츠의 곁을 지켜주며 응원합니다.
어쩌면 줄스는 가장 이상적인 아내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을 이해해주고, 남편의 꿈을 이루도록 응원하는 헌신적인 아내. 물론 그러한 이상적인 아내가 되기 위해 줄스에게도 숨겨진 아픔은 많았을 것입니다. 비록 영화에서는 그러한 줄스의 희생이 생략되었지만, 영화를 보는 저는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폴 포츠는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정 또한 있었습니다. 재능과 열정이 있기에 그는 성공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불운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기회가 찾아올때마다 그의 불운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러한 불운이 계속되면서 결국 그는 재능을, 열정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마트 계산원으로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온 줄스, 하지만 폴 포츠는 빈둥거리며 TV만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롤랜드가 그랬던것처럼 '이 친구야, 정신차려!'라고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줄스는 묵묵히 그가 다시 열정을 되찾게 되기를 기다려주고 응원합니다. 그러한 줄스가 있었기에 폴 포츠는 불운을 떨치고 다시 일어났던 것이죠. 그렇기에 폴 포츠의 '원챈스'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아닌 그의 꿈을 변함없이 응원해준 가족일 것입니다.
나는 누군가의 기회였던가?
솔직히 [원챈스]는 지나치게 잔잔합니다. 오페라 스타가 되기 위한 기회가 올때마다 폴 포츠를 덥치는 불운들은 분명 파란만장하지만, 다른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것과 비교하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실제 폴 포츠가 <브리튼지 갓 탤런트>에서 부른 '네순도르마(공주는 잠못이루고)'가 울려 퍼지면 나도 모르고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것은 모든 역경을 딛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폴 포츠의 성공담이 아닌, 묵묵히 그의 꿈을 응원한 가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기회였던가? 꿈을 향해 달려가는 누군가의 작은 기회가 될 수 있을까?'
분명 고생물학자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웅이에게 저는 기회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웅이가 좌절하고, 꿈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을 때, 저는 과연 묵묵히 웅이의 꿈을 응원하며 그가 다시 열정을 되찾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다보면 저는 롤랜드와 같은 아빠이기 보다는 이본느, 줄수와 같은 아빠가 될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꿈을 이루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가 되어주는 것 또한 힘들고 중요한 일임을 [원챈스]를 통해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가 되어주는 것 또한 멋진 일이 아닐까?
나는 그런 기회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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