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몬스터] - 괴물같은 세상에 던져진 순수의 반격

쭈니-1 2014. 3. 18. 16:00

 

 

감독 : 황인호

주연 : 이민기, 김고은, 김뢰하, 안서현

개봉 : 2014년 3월 13일

관람 : 2014년 3월 1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오싹한 연애]의 황인호 감독은 믿을만 하다?

 

몇 주전부터 극장에서 제 눈과 귀를 괴롭히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몬스터]입니다. 인터넷에서 영화를 예매한 후, 극장에서 티켓 발권기로 영화 티켓을 뽑기위해 기나긴 예매번호를 서투르게 누르고 있으면, 티켓 발권기의 화면 가득 [몬스터]의 예고편이 나오는 겁니다. 김고은의 비명 소리와 이민기의 섬뜩한 눈빛, 저는 [몬스터]의 예고편이 보기 싫어도 그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몇번이고 반복해서 봐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짜증이 났습니다. 김고은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짜증났고, 어눌한 코믹 연기가 더 잘 어울리는 이민기의 어색한 날카로운 눈빛도 짜증이 났습니다. 특히 제가 영화를 보러 가는 시간은 극장 로비에 사람이 별로 없는 평일 밤 시간대이고, 대부분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 때문에 겁이 많은 저로써는 [몬스터]의 예고편 자체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런데 [몬스터]의 감독이 황인호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는 짜증이 호기심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황인호 감독이 누구냐하면... 바로 감독 데뷔작인 [오싹한 연애]를 통해 공포와 로맨틱 코미디를 효과적으로 조합했던 바로 그 감독입니다. 공포영화를 보지 못하는 저는 [오싹한 연애]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구피가 함께 영화를 봐준 덕분에 겨우 [오싹한 연애]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싹한 연애]를 보면서도 귀신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두 눈을 질끈 감아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싹한 연애]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공포와 로맨틱 코미디의 조합은 의외로 어울렸고, 손예진, 이민기의 상큼한 매력 또한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오싹한 연애]의 황인호 감독의 영화라면 믿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몬스터]를 먼저 본 분들의 리뷰 중 잔혹한 스릴러 영화이면서 코미디가 섞여 있다는 글을 읽고, 공포와 로맨틱 코미디를 조합했던 황인호 감독의 특기가 [몬스터]에도 발휘되었다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싹한 연애]처럼 매끈한 장르영화는 분명 아닙니다. [오싹한 연애]가 로맨틱 코미디에 공포를 섞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를 유지한 매끈한 장르영화였던데 비해, 잔혹 스릴러와 코미디의 조합은 처음부터 끝까지 삐그덕거렸습니다. 결국 [몬스터]는 굉장히 독특한 스릴러 영화일 수는 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 그렇다면 코미디같은 스릴러, 혹은 스릴러같은 코미디라는 낯설음으로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 [몬스터]에 대한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몬스터]를 월요일 밤에 혼자 봤지만, 그다지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왠지 뿌듯함. ^^)

 

 

허물어진 공포와 코미디의 경계

 

[오싹한 연애]는 공포와 로맨틱 코미디를 조합했지만 매끈한 장르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는 스릴러와 코미디를 조합했지만 매끈한 장르영화가 아닌 너무 독특한 변종영화가 되었습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스릴러와 코미디의 경계가 불분명하면서 벌어지는 어색함 때문입니다. 황인호 감독은 잔인한 싸이코패스 살인마 태수(이민기)를 통해 스릴러를, 약간 모자란 동네 바보 복순(김고은)에게는 코미디를 부여하며 영화 초반,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었습니다. 하지만 태수와 복순이 부딛히고,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러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몬스터]가 스릴러와 코미디를 조합한 퓨전 장르이기 때문에 이 둘의 경계가 어느 순간 허물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스릴러와 코미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나니 [몬스터]는 이도 저도 아닌, 그냥 독특한 영화가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보면 태수의 형인 익상(김뢰하)은 스릴러의 경계 속에 서있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태수의 악마성을 일찌감치 감지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태수와 연락을 끊으며 그를 피합니다. 하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불량자가 되자 막다른 길에 몰린 그는 결코 연락해서는 안될 태수에게 연락을 하고맙니다. 그러나 태수를 두려워한 그는 결코 태수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습니다.

 

문제는 스릴러의 경계 속에 있는 익상과 그의 주변 인물들이 코믹하다는 점입니다. 익상은 태수가 자신에게 해꼬지할 것을 두려워해서 보디가드를 고용하는데,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성문(배성우)은 오히려 코믹함으로 관객을 웃기려듭니다. 성문의 코믹함은 성문과 태수의 결투씬의 긴장감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내게 하는데, 스릴러의 경계 위에서 코미디를 시도한 부작용입니다.

이러한 장면은 이후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익상의 어머니인 경자(김부선)의 선술집 장면에서도 황인호 감독은 갑작스러운 코미디를 시도합니다. 익상이 광수(박병은)와 그의 부하들과 함께 태수를 노리며 기다리는 장면은 개그프로의 한장면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코미디의 경계에 있는 복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동생 은정(김보라)의 죽음으로 필연적으로 코미디의 경계에서 스릴러의 경계로 넘어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물불 안가리고 달려들 것이라 예상했던 복순은 나리(안서현)와 함께 허물어진 코미디와 스릴러의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할 뿐입니다.

[오싹한 연애]가 매끈한 장르영화일 수 있었던 이유는 영화 속의 공포가 로맨틱 코미디를 돋보이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몬스터]는 영화 속의 코미디가 스릴러를 돋보이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릴러의 긴장감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만 가져옵니다. 황인호 감독이 스릴러와 코미디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코미디는 그저 스릴러를 돋보이게하는 역할로만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괴물과 순수의 대결

 

분명 [몬스터]는 매끈한 장르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몬스터]를 재미없는 영화로 치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최소한 저는 [몬스터]를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입니다. 제게 [몬스터]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바로 괴물같은 세상에 던져진 순수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이었습니다.

[몬스터]에서 순수함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바로 나리입니다. 이제 겨우 아홉살에 불과한 나리는 의지했던 언니 연희(한다은)가 태수에게 살해당하며 괴물의 세상에 홀로 던져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나리는 이미 괴물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악덕 공장주  전사장(남경읍)이 지배하는 세상. 연희는 그러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사장과 위험한 거래를 했고, 그로인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연희라는 가림막이 사라지자 나리는 무방비 상태로 괴물 같은 세상에 남겨집니다. 살기 위해서는 무조건 도망가야 하지만, 아무리 도망쳐도 괴물같은 세상에서 빠져 나갈 길은 없습니다. 결국 그녀가 택한 것은 자신과 같은 수수함을 간직한 복순을 또 다른 가림막으로 선택하는 것 뿐입니다.

영화를 보며 아역 배우가 소화하기에 나리라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물 같은 세상에 홀로 던져지기엔 너무 어린 나리. 괴물같은 세상에서 도망치기보다는 맞서 싸우길 선택한 복순. 그러한 복순을 가림막으로 선택한 나리는 그 가녀린 몸으로 온갖 고초를 당합니다.

 

결국 [몬스터]는 괴물과 순수의 대결입니다. 살인에 대한 그 어떤 죄책감도 없는 싸이코패스 태수. 그리고 태수를 둘러싼 온갖 추악함으로 무장한 괴물들. 버려진 아이였던 태수는 끊임없이 익상과 경자에게 "우린 가족이지?"라고 확인하려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괴물은 경수가 아닌, 익상과 경자, 그리고 전사장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이 다급할땐 가족임을 내세워 태수를 이용하다가도, 태수를 죽이려하는 익상과 태수가 가져다준 돈을 보며 좋아서 웃음 짓지만, 다른 한편으로 태수를 죽이려는 익상의 음모를 모르는 척하는 경자. 

그리고 돈을 앞세워 자신의 눈 밖에 난 여공에서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전사장과 어린 익상이 아버지에게 가정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까지 덧붙인다면 태수의 괴물됨은 괴물같은 익상 가족들에게서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괴물이 아닌, 괴물같은 사람들의 손에서 괴물로 키워진 것은 아닐까요? 잔인한 싸이코패스 살인마이지만 끊임없이 가족애를 갈구하는 태수의 태도에서 저는 조금은 안쓰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괴물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복순과 나리는 순수입니다. 바보이기에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복순과 너무 어린 나이이기에 아직은 때묻지 않은 나리. 그렇다면 이 연약한 순수는 무지막지한 괴물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겠다는 복순의 순진한 욕구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괴물과 순수의 싸움을 이끕니다.

 

 

다른건 몰라도 배우들에겐 박수를...

 

[몬스터]의 괴물과 순수의 대결이 흥미로웠던 것은 대부분의 스릴러 영화에서 순수의 존재는 괴물에게 짓밟히거나, 괴물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했던 모습이었습니다. [몬스터]처럼 이렇게 순수 그 자체가 괴물과 싸웠던 영화는 제 기억으로는 드뭅니다.

그리고 [몬스터]의 또한가지 재미는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솔직히 이민기의 잔인한 싸이코패스로의 연기 변신은 평가를 조금 유보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해운대], [오싹한 연애], [연애의 온도] 등을 통해 어리버리한 순정남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몬스터]로 변신을 시도했고, 그러한 시도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자연스럽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민기의 이미지 변신은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앞으로도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한 모험을 시도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이민기라는 젊은 배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김고은의 연기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네요. 이미 [은교]를 통해 가장 충격적인 데뷔를 치룬 김고은은 [몬스터]를 통해 다시한번 완벽한 바보 연기를 선보입니다. 제가 김고은의 연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가 정말 바보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순수한 바보라고 할지라도 결코 사랑하는 것을 지키는데에서는 악착같은 위험한 바보입니다. 아직은 젊은 배우가 이런 복잡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역배우인 안서현의 연기도 너무 좋았습니다. 그녀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은정의 죽음 이후 복순에게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은 나리에 대한 보호본능을 자극시키며 [몬스터]에 대한 몰입감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몬스터]는 장점과 단점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영화입니다. 스릴러와 코미디를 접목시킨 이 영화의 독특함은 분명 장점입니다. 게다가 젊고 어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괴물같은 세상에 정면으로 도전한 순수의 반격도 이전의 스릴러 영화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소재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을 황인호 감독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스릴러를 만들겠다는 그의 도전은 [몬스터]를 통해 전혀 새로운 스릴러 영화를 만들어내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릴러와 코미디의 적당한 접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이 두 장르가 섞였을 때의 시너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삐그덕거리는 역효과만 드러낸 것입니다.

[오싹한 연애]의 성공과 [몬스터]의 실패를 통해 황인호 감독이 더 나은 세번째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러 장르를 뒤섞은 퓨전장르로의 도전은 독특함만으로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뒤섞인 장르가 얼마나 어색하지 않고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지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싹한 연애]는 그것을 성공했고, [몬스터]는 실패했습니다. 그 작은 차이를 황인호 감독이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처음에 나는 [몬스터]가 괴물과 괴물의 대결인줄 알았다.

그렇기에 괴물과 순수의 대결이 펼치지며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만족한다.

순수가 괴물을 이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통쾌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