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노암 머로
주연 : 설리반 스탭플턴, 에바 그린, 로드리고 산토로, 레나 헤디
개봉 : 2014년 3월 6일
관람 : 2014년 3월 1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결국 [300 : 제국의 부활]까지 봤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월요일에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화요일에 [다이애나]를, 그리고 수요일에 [300 : 제국의 부활]을 보며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영화를 보며 이제 제겐 아쉽게 놓친 영화의 수가 ZERO가 되었습니다.
물론 몸은 힘들었습니다. 지난주부터 매일 야근을 해야했고, 지친 몸으로 퇴근을 하고나면 쉴 틈도 없이 곧장 극장으로 향하는 일정을 계속했더니 수요일에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집에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요일에 볼 영화가 3월 6일 개봉작 중에서 기대작 1순위인 [300 : 제국의 부활]이기에 휴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극장으로 향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화요일에 [300 : 제국의 부활]을 보고, 수요일에 [다이애나]를 남겨놓았다면 아마 저는 피곤하다며 [다이애나]를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300 : 제국의 부활]마저 보고나니 이제 속이 시원합니다. 물론 영화는 매주 새롭게 개봉할 것이고, 그럴때마다 욕심이 많은 저는 또다시 기대작을 잔뜩 쌓아놓으며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더이상 보기를 미뤄둔 기대작은 없는 셈입니다. 이번주중에 [우아한 거짓말]만 본다면 정말 완벽할 듯...
제가 [300 : 제국의 부활]을 보고나서 기분이 개운했던 것은 요며칠간 봤던 영화들이 모두 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르는 각각 다르고, 그에 따른 영화적 재미도 다르지만, 그만큼 다양한 즐거움을 저는 요며칠간 거의 매일같이 느낀 것입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는 배우들의 명연기에 의한 재미를, [찌라시 : 위험한 소문]에서는 우리나라 스릴러 영화의 묘미를, [다이애나]에서는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평범한 사랑은 할 수 없었던 실존 인물의 아픔을 극장에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영화 [300 : 제국의 부활] 역시 제게 피곤함을 무릅쓰고 극장을 찾은 것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줬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구피가 "우리 회사 동료들이 3D로 보고 왔는데, 피튀기는 것 외엔 볼 것 없대. 완전 비추래."라며 제 기대감을 한풀 꺾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300 : 제국의 부활]을 직접 보니 구피의 말이 맞기도, 또한 틀리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피튀기는 영화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작인 [300]부터 내려온 이 영화 특유의 재미인걸요. 피튀기는 것을 보기 싫으면 애초에 [300 : 제국의 부활]을 보러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300 : 제국의 부활]을 3D로 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얼굴 위로 튀어 오르는 검붉은 피와 잘려나간 신체를 즐기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리스 연합군과 페르시아의 잔인한 전쟁사.
[300 : 제국의 부활]은 2007년에 개봉했던 [300]의 후속작입니다. 그렇다면 [300 : 제국의 부활]은 [300]이후 벌어지는 이야기일까요?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300 : 제국의 부활]은 [300]의 무대가 되었던 테르모필레 전투와 동시대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원전 400년경에 벌어진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 대해 설명해야할 것 같습니다. [300 : 제국의 부활]의 시작은 페르시아의 2차 그리스 침략인 기원전 490년에 벌어진 마라톤 전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은 아테네를 정복하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마라톤 광야에 상륙하였습니다. 이에 그리스 연합군은 테미스토클레스(설리반 스탭플턴)의 제안에 따라 오랜 항해에 지친 페르시아 병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기습을 시도했고, 결국 소수의 정예군으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대파하였습니다.
마라톤 전투로 인하여 페르시아군은 6,400명의 병사를 잃은데 반해, 그리스 연합군의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뛰어난 전술로 소수의 병력으로 대군을 무찌른 최초의 전쟁으로 평가받는 마라톤 전투. 하지만 마라톤 전투가 더욱 유명한 것은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를 쉬지않고 달려 승전보를 알린 후 죽은 일화입니다.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라톤 경주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후예인 이란에서는 마라톤이 금기시되었습니다.)
마라톤 전투에서 테미스토클레스의 화살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은 그리스 침략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이에 다리우스왕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로드리고 산토로)가 왕위에 오르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기원전 480년 3차 그리스 침략을 시도합니다.(실제 다리우스왕은 기원전 486년 이집트 반란 진압 도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크세르크세스왕은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향해 육로와 바다로 동시에 진격해나갔습니다. 바로 [300]의 소재가 되고 있는 테르모필레 전투는 크세르크세스왕이 이끄는 페르시아군과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제라드 버틀러)이 이끄는 스파르타 정예군 300명이 벌인 전투입니다. 비록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군은 패하고 레오니다스왕을 비롯한 스파르타 정예군 전원이 사망했지만, 테르모필레 지역에서 스파르타군에 막혀 진격이 지연된 페르시아군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크세르크세스왕이 대군을 이끌고 스파르타와 혈전을 펼치는 동안 바다로 진격한 스파르타의 총사령관 아르테미시아(에바 그린)은 마라톤 전투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와 해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300 : 제국의 부활]의 주요 소재입니다. 처음 테미스토클레스와 아르테미시아가 맞붙은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 테미스토클레스는 전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하지만, 이후 살리미스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결국 크세르크세스를 물러나게 했습니다.
용맹한 레오니다스에 뒤지지 않는 지략가 테미스토클레스
[300 : 제국의 부활]은 레오니다스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군을 무찌른 크세르크세스는 레오니다스 시체의 목을 잘라버립니다. '마치 레오니다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테미스토클레스의 시대이다.'라는 선언처럼 말입니다.
곧이어 스파르타의 여왕이자 레오니다스의 아내인 고르고(레나 헤디)는 10년전 벌어진 마라톤 전투부터 시작하여 '오직 신만이 그리스를 벌할 수 있다.'는 선왕의 유언을 받아들인 크세르크세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스스로 신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고르고의 나래이션은 [300]의 프리퀼이 되는 셈이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를 소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무명의 병사였지만 마라톤 전투에서 기발한 전략을 내놓아 2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활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을 쓰러뜨린 영웅입니다. 하지만 그는 한가지 실수를 하고 맙니다. 바로 다리우스왕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를 살려둔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복수심에 불타는 크세르크세스는 10년 동안의 전쟁 준비를 거쳐 3차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결자해지라 했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작은 실수가 불러온 이 거대한 전쟁을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내려 합니다. 그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육로의 페르시아 침략은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르테미시온 해전을 준비합니다.
사실 [300]의 재미는 근육질의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이 펼치는 전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페르시아에 패하여 모두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300 : 제국의 부활]은 과연 어떠한 영화적 재미를 내세울 수 있을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 [300 : 제국의 부활]은 굉장히 영리한 선택을 합니다. 바로 레오니다스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테미스토클레스를 내세운 것입니다. 사실 테미스토클레스는 카리스마 넘치는 레오니다스와 비교한다면 상당히 약해보입니다. 하지만 테미스토클레스에게는 레오니다스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략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레오니다스와 비교해서 부족한 카리스마를 레오니다스에게는 찾아볼 수 없던 지략으로 완벽하게 메꾼 것입니다.
물론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이 매력적일 수 있었던 것은 [300 : 제국의 부활]의 전투가 해전이라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바다 위에서의 전투. 테미스토클레스는 자신의 지략을 이용하여 수적 우세가 확실한 페르시아 해군에게 큰 타격을 입힙니다. [300 : 제국의 부활]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그것입니다. '스파르타'를 외치며 앞으로 진격하던 레오니다스의 카리스마를 볼 수는 없지만,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과 스펙타클한 해전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300]과 같은 듯, 서로 다른 [300 : 제국의 부활]의 장점인 것입니다.
에바 그린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하다.
하지만 [300]에 열광했던 관객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바로 카리스마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분명 지략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지니고 있지만 아무래도 카리스마면에서는 레오니다스에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300 : 제국의 부활]은 그러한 영화의 단점 또한 독특한 방법으로 보완해나갑니다. 바로 페르시아 해군의 총사령관 아르테미시아의 존재입니다.
사실 그녀는 그리스인입니다. 하지만 그리스군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자신은 노예로 팔려갔다가 죽을 위기를 겪게 됩니다. 결국 아르테미시아는 그리스에 방문한 페르시아 특사의 눈에 띄어 페르시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는 검술로는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는 막강한 전사로 거듭 태어납니다. 그리스인이지만 그리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페르시아 전사 아르테미시아. 그녀는 레오니다스가 빠져 허전해진 영화의 카리스마를 혼자 책임집니다.
[300 : 제국의 부활]은 크세르크세스가 유약한 왕자에서 자신을 신이라 믿는 강력한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르테미시아 덕분이라며 영화의 초반부터 그녀를 띄워줍니다. 하지만 카리스마라는 것이 영화에서 띄워준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여성이라는 한계와 에바 그린이 이전 영화에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겹치며 쉽게 카리스마가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계를 [300 : 제국의 부활]은 아르테미시아와 테미스토클레스의 섹스씬으로 단번에 뒤집에 버립니다.
자신이 이끄는 페르시아 해군을 궁지로 몰아넣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에 감탄한 아르테미시아는 테미스토클레스를 중립 지역으로 불러 자신의 편이 되어달라고 유혹합니다.
아르테미시아와 테미스토클레스의 섹스씬은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진행됩니다. 에바 그린이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섹스씬을 찍은 이후 온 몸에 멍이 들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르테미시아와 테미스토클레스의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섹스가 아닌,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투와도 같은 격렬한 섹스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몸으로 적장인 테미스토클레스에게 결코 지지 않으려는 아르테미시아의 강렬한 몸짓에서 저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 독기를 품은 아르테미시아에 의해 테미스토클레스는 처절한 패배를 맛봅니다. 아르테미시아를 만나고온 테미스토클레스에게 동료들이 무엇을 보았냐고 묻자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녀는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할거야."라고 대답합니다. 과연 테미스토클레스의 말대로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유혹을 거부한 테미스토클레스에게 처절한 지옥을 맛보게한 셈입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카리스마와 테미스토클레스의 지략의 대결. 이것이 바로 [300 : 제국의 부활]이 내세운 새로운 재미입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카리스마에 압도된 저는 그렇기에 [300 : 제국의 부활]의 새로운 재미를 맘껏 즐기며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몇가지 잡담
두산백과에서는 마라톤 전투를 페르시아의 2차 원정으로,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3차 원정이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위키 백과에서는 마라톤 전투를 1차,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2차로 설명합니다.
이렇게 차이가 있는 이유는 두산백과는 기원전 492년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이 자신의 사위인 마르도니우스를 사령관으로 하여 그리스 북쪽의 트라키아 원정에 나선 것을 1차 페르시아 원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페르시아가 노린 것은 트라키아 뿐이라는 점에서 페르시아 전쟁에 포함시키지 않는 학자도 있다고 합니다.
아르테미시아는 실존인물을까요? 어느 매체에서는 아르테미시아가 페르시아의 속국,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라는 실존인물을 토대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소개합니다. 카리아의 여왕 아르테미시아는 영화에서처럼 그리스인이 아닌 다리우스왕의 의붓딸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다른 매체에서는 아르테미시아라는 캐릭터는 그리스 전쟁의 여신 아르테미스와 아르테미시온 해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여성 캐릭터라고 분석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이야기를 쓰면서도 아르테미시온 해전과 아르테미시아의 이름이 비슷해서 깜짝 놀랬었습니다.
한편 아르테미시온 해전에서 테미스토클레스가 폭이 좁은 만으로 페르시아 해군을 유인해서 승리를 거두는 장면은 실제로는 살라미스 해전에서라고 합니다. 그나저나 기대했던 살라미스 해전이 후반부에 많이 생략되어 이래저래 아쉽네요.
에바 그린은 [다크 섀도우]에서 조니 뎁과도 독특한 섹스씬을 찍었었습니다. [다크 섀도우]와 [300 : 제국의 부활]을 섹스씬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그러고보니 청순해 보이는 이 배우... 악녀로서의 섹시 카리스마도 장난이 아닙니다.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군에게 패배한 크세르크세스왕은 마르도니우스만 남겨두고 퇴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리스에 남은 페르시아군은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격퇴당하고, 미칼레 전투에서 무너지며 더이상 그리스 본토를 정복할 시도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300]의 세번째 이야기는 플라타이아이 전투와 미칼레 전투가 소재가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라톤 전투를? 물론 [300 : 제국의 부활]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 먼저이겠지만...
마라톤 전투를 1차로,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2차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으로 분류한 위키 백과는 3차 전쟁으로 세스토스 전투, 키프로스 전투, 비잔티움 전투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들 전쟁에 대한 설명은 없네요. 언제 벌어졌는지, 누가 이겼는지 조차... 제가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에 관해서는 위키 백과가 아닌 두산 백과를 참고한 이유입니다.
역사라는 것은 참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300 : 제국의 부활]이 철저한 고증을 통한 역사극은 아니지만,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매력적인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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