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올리버 히르비겔
주연 : 나오미 왓츠, 나빈 앤드류스
개봉 : 2014년 3월 6일
관람 : 2014년 3월 11일
등급 : 15세 관람가
Table M관을 통째로 빌리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보고나니 이제 어느정도 한시름이 놓였습니다. 그동안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다며 마음이 급했는데, 미루고 미루던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결국 봐버리니 뭔가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까지 들더군요.
이제 보고 싶은 영화 중에서 남은 것은 [300 : 제국의 부활]과 [다이애나]. 당연히 2014년 3월 6일 개봉작 중에서 기대작 1순위인 [300 : 제국의 부활]을 봐야했지만, 제 선택은 [다이애나]입니다. 목요일에 신작들이 개봉하면 [다이애나]를 상영하는 극장에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 흥행작인 [300 : 제국의 부활]은 일단 뒤로 미룬 것이죠.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저녁식사는 짜장면으로 대충 떼운 이후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밤 9시 35분 영화를 예매했기에 상영관 입장시간인 9시 25분에 극장에 도착. 그런데 상영관 입구에는 영화 티켓을 검표하는 직원도 없고, 어쩔수없이 검표없이 상영관에 들어섰지만 상영관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통상적이라면 영화 시작 10분 전부터 영화 예고편, 광고들이 시끄럽게 상영되고 있었을텐데, 9시 35분이 다되도록 스크린은 그저 조용히 꺼져있기만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빈, 그리고 깜깜한 상영관의 좌석에 홀로 앉아 있으려니 뻘쭘하더군요. 혹시 제가 날짜와 시간을 잘못 안 것은 아닌지 제 영화 티켓을 여러번 확인까지 했습니다.
영화 시작 시간인 9시 35분이 되어서야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럼 그렇지. 아무리 [다이애나]가 흥행 실패작이라해도 이 큰 상영관에서 나 혼자 영화를 볼리가 없지.'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은 극장 직원이었습니다. 상영관에 관객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들어온 극장 직원은 텅빈 상영관에 저 혼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자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나서야 영화 예고편과 광고들이 상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평일 밤에 영화를 보는 편이라 저는 한산한 상영관의 풍경에 익숙합니다. 아니 오히려 편합니다. 시끄러운 핸드폰 벨소리가 들릴 염려도 없고, 제 등받이를 발로 차는 롱(?)다리의 뒷좌석 관객도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상영관에서 혼자 영화를 본 것은 정말 드문 일입니다. 게다가 제가 [다이애나]를 본 상영관은 Table M관으로 메가박스에서 M2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관보다 비싼 상영관입니다.
마치 상영관 전체를 전세낸 듯 여유롭게 혼자 본 영화가 [다이애나]라는 사실도 참 의미심장합니다. [다이애나]는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의 사랑과 죽음을 다룬 영화입니다. 로얄 패밀리의 일원으로 화려한 삶을 살다 간 '다이애나'. 그런데 저는 마치 '다이애나'가 오랜만에 극장 나들이를 위해 상영관 전체를 전세내듯이 Table M관을 독차지하며 영화를 본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마치 내가 로얄 패밀리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다이애나의 삶은 어땠을까?
사실 제가 영화 [다이애나]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다이애나'를 연기한 나오미 왓츠의 싱크로율이 놀라웠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다이애나'라는 실존 인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머나먼 영국이라는 나라의 왕세자비였다는 사실과 1997년 그녀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뉴스에서 소개했던 이야기가 제가 아는 '다이애나'의 전부였습니다.
과연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녀의 어떤 면이 이렇게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급기야 영화로까지 제작되게 하였을까요? 영화를 보러가기전 저는 '다이애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잠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녀는 1961년 영국의 명문 귀족가문인 스펜서 백작의 1남3녀의 막내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저는 얼핏 그녀가 평민 출신이라 알고 있었는데, 잘못된 상식이었나봅니다. '다이애나'에 대해서 구피는 언니의 약혼녀를 빼앗은 동생으로 기억하더군요. 그러한 사실은 어느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찰스 왕세자는 '다이애나'의 언니인 새러와 교제하였으나 여왕의 권고와 '다이애나'의 청순함에 반해 그녀와 1981년 7월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영화에서 '다이애나'의 친정 가족이 전혀 등장하지 않던데, 혹시 그러한 이유 때문은 아닐런지...
'다이애나'는 결혼 1년만에 아들 윌리엄을, 2년 후에는 둘째 아들 해리를 출산하였습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는데 찰스 왕세자가 결혼 전부터 시종무관의 부인이었던 카밀라 파커 볼스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92년 12월 공식적인 별거에 들어갔고, 1996년 8월,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영화 [다이애나]는 '다이애나'가 별거중이었던 1995년부터 그녀가 이집트 재벌 2세 도니 알 파예드와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격을 피하려 고속 질주를 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게 되는 1997년의 8월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이애나'의 연인은 도니 알 파예드일까요?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영화 [다이애나]는 '다이애나'의 수석 집사였던 폴 버렐의 증언을 토대로 '다이애나'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도니 알 파예드가 아닌 심장 전문의 하스낫 칸이라고 밝힙니다. 그런데 어째서 '다이애나'는 하스낫이 아닌 도니 알 파예드와 함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일까요? 영화 [다이애나]의 시작은 바로 그러한 궁금증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과 평범한 남성의 사랑!
영화 [다이애나]는 초반부터 '다이애나'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광과도 같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고, 그녀가 어디를 가던 파파라치가 끈질기게 따라붙는 상황.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묵묵히 참고 견뎌냅니다.
그러한 그녀가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하스낫 칸(나빈 앤드류스)이라는 심장 전문의 의사에서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됩니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그녀이지만, 1992년 남편 찰스 왕세자와의 별거 이후 외로움을 느껴야 했던 '다이애나'는 하스낫을 만난 이후 마치 사춘기 소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스낫을 집으로 초대하며 벌이는 '다이애나'의 작은 소동은 그녀가 왕세자비가 아닌 사랑을 원하는 평범한 여성임을 드러냅니다. 하스낫이 좋아하는 재즈를 배우고, 유명세를 싫어하는 하스낫을 위해 검정 가발을 쓰고 하스낫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다이애나'의 노력에 하스낫도 그녀와의 조심스러운 교제를 시작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과 평범한 삶을 살던 남성의 사랑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온 소재입니다. 오드리 햅번, 그레고리 펙 주연의 전설의 영화 [로마의 휴일]은 공주와 평범한 사진 기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이며, 유명 여배우와 평범한 서점 주인의 사랑을 담은 [노팅 힐] 역시 로맨틱 코미디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이애나]는 [로마의 휴일]이나 [노팅 힐]처럼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로마의 휴일]과 [노팅 힐]은 가공된 이야기이고, 따라서 관객이 좋아할만한 결말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향해 갈 수 밖에 없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다이애나]는 [로마의 휴일]과 [노팅 힐]과 비교한다면 비슷한 소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명녀와 평범남의 사랑에 대한 현실의 문제를 끊임없이 영화 속에 제기합니다.
하스낫은 파키스탄 출신의 이슬람교인입니다. 파키스탄은 1906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입니다. 하스낫의 어머니가 영국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것은 그렇기에 당연합니다. 게다가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의 사랑이라니... '다이애나'가 영국의 왕세자비가 아니라고 해도 그들 사이의 장벽은 굉장히 높은 것입니다.
하스낫은 '다이애나'와 사랑을 이뤄 나가면서도 의사로서의 자신을 버릴 수 없다며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는 '다이애나'의 연인으로 산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다이애나'와 하스낫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해피엔딩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아닌, 안타까운 비극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됩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방법
만약 [다이애나]가 가공된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충분히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이애나'와 하스낫의 사랑은 로맨틱 코미디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하게 사랑하고 싶었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다이애나'의 비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은 왜 '다이애나'의 비운의 죽음은 하스낫이 아닌 도디 알 파예드였는가? 라는 의문에 답해줍니다. 그것은 '다이애나'가 하스낫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심장 전문의로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하스낫을 위한 마지막 배려였던 것이죠.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진실을 가슴에 안고 영원히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다이애나]는 조금 밋밋한 영화입니다. 분명 '다이애나'에 대한 나오미 왓츠의 싱크로율은 최고였지만, 생전 '다이애나'의 표정과 버릇을 너무 완벽하게 따라하려는 강박때문인지 '다이애나'가 안고 있는 슬픔, 고민들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나오미 왓츠가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유일 것입니다.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도 영화의 밋밋함을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하이라이트가 될 수 있었던 '다이애나'의 죽음 장면이 생략된 것이 그 증거입니다. 가장 극적인 장면을 생략해버렸다는 것은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이 [다이애나]의 상업영화로서의 재미를 포기한 것과 같습니다.
처음엔 저 역시 [다이애나]가 밋밋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이애나'가 죽은 이후 쓸쓸히 뒤돌아서는 하스낫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슬픔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하스낫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다이애나'의 소박한 꿈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라는 그녀의 화려함에 의해 좌절됩니다. 처음에 그녀는 하스낫과의 사랑을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하스낫이 불행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되며 그녀는 하스낫을 놓아줍니다.
도니 알 파예드와의 스캔들을 이용해서 하스낫에게 자유를 주려는 그녀의 슬픈 사랑. 비록 그러한 그녀의 심정이 영화의 밋밋함으로 인하여 제 가슴 깊숙이 직접 와닿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서 하스낫의 뒷모습을 보며 뒤늦게 슬픔이 치밀어 오른 것입니다.
우리들은 화려한 인생을 꿈꿉니다. '다이애나'의 인생은 바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일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인지도를 이용해서 대인지뢰 추방 국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사회적 활동에도 높은 기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화려함에 개인적인 행복이 결여되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조차 없는 화려함을 과연 그 누가 원할까요?
영화가 끝나고 하스낫과의 사랑에 들뜬 사춘기 소녀와도 같은 '다이애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화려함을 가진 대신 우리 모두가 가진 소박한 행복을 가질 수 없었던 어쩌면 가장 불행했던 여성이 아니었을까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다이애나'의 일생을 조금 곰곰히 생각하며 '다이애나'는 가질 수 없었던 제 소박한 행복이 기다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혹시 이 영화가 하스낫 칸의 평범한 삶을 지켜주고 싶었던
다이애나의 마지막 바램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나서 문득 그것이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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