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4년 영화이야기

[찌라시 : 위험한 소문] - 소문을 내기는 쉽지만, 진실을 캐내는 것은 어렵다.

쭈니-1 2014. 3. 11. 15:21

 

 

감독 : 김광식

주연 : 김강우, 정진영, 고창석,  박성웅

개봉 : 2014년 2월 20일

관람 : 2014년 3월 10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오늘이 마지막 기회이다.

 

몇 주전부터 제가 계속 미루면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찌라시 : 위험한 소문]입니다. 사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지난 2월 4일 회사에 연차휴가를 내고 '위험한 남자들의 썰戰'이라는 제목의 쇼케이스에까지 참석할 만큼 제겐 기대작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영화가 개봉한지 3주가 되도록 보지 못한 것일까요?

변명을 하자면 함께 첫번째, 함께 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과 같은 날 개봉한 [폼페이 : 최후의 날]의 경우는 블로그 친구인 404page님과 함께 봤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웅이와 함께 봤습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보다 1주 늦게 개봉한 [논스톱]은 구피와 함께 봤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우선순위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두번째,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좋은 흥행이 오히려 제가 이 영화를 미뤄두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개봉 첫주에 [폼페이 : 최후의 날]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 개봉한 [아메리칸 허슬]은 주말동안 고작 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7위에 그쳤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극장에서 좀 더 오래 상영할 것이 분명한 [찌라시 : 위험한 소문]보다 언제 극장에서 내려질지 모르는 [아메리칸 허슬]을 먼저 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보다 1주 늦게 개봉한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을 [찌라시 : 위험한 소문]보다 먼저 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세번째, 하필 아카데미 시즌이었습니다. 평소같으면 결코 기대작이 될 수 없었을 [노예 12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아카데미 시즌에 맞춰 기대작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노예 12년]은 작품상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남우주연상과 조연상을 차지하며 제 관람을 독촉했기에 또다시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관람을 뒤로 미뤄둘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지난 10주차 박스오피스에서 주말동안 7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7위를 차지했습니다. 조금 더 이 영화의 관람을 늦췄다간 극장이 아닌 다운로드 시장에서 만날 위기에 처한 것이죠.

결국 이번엔 [300 : 제국의 부활], [다이애나]를 뒤로 미루고 어제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을 예매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오늘은 [300 : 제국의 부활]을 뒤로 미루고 [다이애나]를 예매했습니다.) 그렇게 3주만에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저와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텅빈 극장에서 여유롭게 관람한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제가 뒤늦게라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선택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꽤 만족스러운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진실이 너무 오픈되어 있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실에 다가서는 스릴러 영화로서의 짜임새가 제법 탄탄했고, 캐릭터 역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진실보다는 소문에 더 귀를 기울이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까지 안겨주더군요.  

 

 

열혈 매니저, 가족과도 같은 배우를 잃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열혈 매니저 우곤(김강우)의 이야기입니다. 가진 것 하나없지만 열정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우곤은 자신을 믿고 함께 밑바닥부터 시작한 여배우 미진(고원희)과 성공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미진과 유력 정치가인 남정인(안성기) 의원의 스캔들 기사가 터지고 맙니다.  

어떻게든 스캔들 기사를 막아보려고 애쓰지만 이미 미진과 남정인 의원의 스캔들은 기정사실화되었고, 급기야 미진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우곤을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남은 것은 미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심뿐. 우곤은 미진과 남정인 의원의 스캔들 찌라시를 뿌린 최초 유포자를 찾아 미진의 억울함을 풀어주기로 결심합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초반은 우곤이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찾는 과정입니다. 찌라시 구독을 미끼로 찌라시 유통업자인 박사장(정진영)을 찾아낸 우곤. 하지만 박사장은 그저 단순한 찌라시 유통업자일 뿐입니다. 박사장을 통해 찌라시의 최초 유포자를 하나씩 밝혀내지만 그런데 깊숙히 파고 들면 들수록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찌라시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우곤의 목숨은 위협을 받게 됩니다.

 

저는 '찌라시'라 하면 그저 단순하게 증권가에서 떠도는 소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가 X 파일'을 저 역시 메신저를 통해 받아보았지만 그것을 진실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연예인을 상대로한 수 많은 헛소문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에 흥미롭게 봤지만, 또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러한 찌라시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최진실일 것입니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였던 최진실은 절친인 정선희의 남편 안재환의 자살과 관련한 소문들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에겐 그저 재미있는 소문들에 불과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목숨을 버릴만큼 괴로운 일이었던 것이죠.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바로 그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진과 남정인 의원의 스캔들. 사람들은 그저 '어머... 그랬대.'라며 수근대다가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미진은 목숨을 포기했고, 우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헛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미진과 우곤은 너무 큰 댓가를 치룬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곤이 소문이 아닌 진실을 원하면서부터였습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퍼트렸는가? 라는 진실을 캐내려는 그 순간 우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연예계를 또도는 헛소문으로 시작해서 거대한 음모론으로 번집니다.

 

 

B급 인생들의 반란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가진 것이라고는 열정 밖에 없는 B급 인생과 돈, 권력을 모두 움켜쥔 A급 인생의 한판 대결입니다. 자신이 관리하던 여배우를 잃은 매니저 우곤, 한때 기자였지만 지금은 찌라시 유통업자로 근근히 살아가는 박사장, 그리고 불법 도청계의 레전드라는 거창한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말을 제대로 붙여 보지도 못하는 백문(고창석)이 같은 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맞서야 하는 상대는 어마어마합니다. 청와대 비서실, 거대기업인(삼성그룹 정도) onC 관계자들. 그들은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그것도 모자라 완력으로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onC의 해결사인 차성주(박성웅)는 우곤을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앞으로 조용히 살아라."라고 경고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을 절대 이길 수 없는 상황. 과연 우곤 일행은 어떻게 저런 막강한 자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어차피 상대는 처음부터 오픈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도 남정인 의원과 박영진 실장의 관계로 영화 초반에 쉽게 드러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그들을 이길 것이냐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막강한 자들을 이기고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요?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약간은 낙천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한 낙천적인 자세는 바로 미진 비디오의 존재에서 드러납니다. 차성주의 사무실에 보관되어 있는 미진 비디오의 실체. 어쩌면 차성주에겐 나중을 대비한 회심의 히든 카드였을지도 모르지만, 우곤 일행에게는 버거운 상대를 단숨에 쓰러뜨릴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곤 일행의 반격이 너무 낙천적이라며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영화적 재미를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분명 그러한 낙천적인 장치가 없었다면 결코 우곤 일행이 청와대 비서실과 거대기업 onC를 무너뜨릴 그 어떤 방법도 없었을테니까요. 그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이렇게 우곤 일행이 버거운 상대와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는 과정을 통해 스릴러 영화의 재미를 획득합니다. 처음엔 그저 증권가 찌라시라는 작은 소문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 거대한 음모론으로 확산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우곤 일행이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막강한 상대들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스릴과 쾌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 뿐일까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의 시작은 바로 이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

 

 

비밀이 진실을 잃으면 찌라시가 된다.

 

미진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찌라시'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곤 일행이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것 역시 '찌라시'입니다.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는 '찌라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까요? 

흥미로운 것은 미진의 죽음을 앗아간 거짓 '찌라시'가 뿌려지는 과정입니다. 믿을만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살짝 정보를 흘리고, 정보맨들이 정보 회의에서 자신이 들은 정보를 밝히면, 찌라시 유통업자들에게 정보가 들어가고, 그러한 정보는 마치 진실로 포장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뿌려집니다. 너무 간단하고 손쉽게 거짓 '찌라시'들은 진실의 탈을 쓰고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진실을 밝히는 우곤 일행의 '찌라시'는 어떻게 유통이 되었을까요? 우곤이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고, 손가락이 여러번 부러진 끝에 목숨을 걸고 얻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모르는 만큼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찌라시'의 맹점입니다.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찌라시'의 세계. 결국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들은 그저 호기심으로 '찌라시'를 보고, 재미삼아 지인들에게 터트리지만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사실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면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호기심만으로 '찌라시'를 보지 말고, 이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관심을 기울여 달라는 것이죠. 우리가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찌라시'는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키고, 또한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만약 우곤처럼 목숨을 걸고 진실을 캐내는 것이 싫다면 '찌라시'에 쉽게 현혹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저 호기심과 재미 뿐일지도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목숨을 포기할만큼 힘든 시련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찌라시 : 위험한 소문]은 관객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찌라시'를 믿지 말라고...

영화의 마지막에 박사장은 이런 말을 합니다. "비밀이 진실을 잃으면 찌라시가 된다." 어쩌면 그 한마디에 이 영화의 모든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부터라도 진실이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모든 소문들을 차라리 믿지 말아야 겠습니다. 저는 우곤처럼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힐 용기가 없기에...

 

자극적인 소문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다.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진실을 우리는 쉽게 외면해버린다.

자극적인 소문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이,

자극적이지 않은 진실에 대한 우리의 외면이, 찌라시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