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 마크 발레
주연 : 매튜 맥커너히, 자레드 레토, 제니퍼 가너
개봉 : 2014년 3월 6일
관람 : 2014년 3월 7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아카데미가 선택한 두 남자
한국시간으로 지난 3월 3일에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은 매튜 맥커너히가, 남우조연상은 자레드 레토가 수상했습니다. 이미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매튜 맥커너히와 자레드 레토는 드라마부문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나란히 수상한 만큼 이번 아카데미에서의 수상은 어쩌면 예견된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아쉬웠습니다. 왜냐하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막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또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다음으로 기약해야 했으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뮤지컬, 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메리칸 허슬]에서 기존 이미지를 무너뜨린 브래들리 쿠퍼의 명연기도 묻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자레드 레토의 남우조연상 수상을 지켜만봐야 했습니다.)
[달리스 바이어스 클럽]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래? 얼마나 대단한 연기를 펼쳤는지 보자!'였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기다렸던 [300 : 제국의 부활]도 다음으로 미루고, 3월 6일 개봉작 중에서 가장 먼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러 갔습니다.
막상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고나니 이번 아카데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중에서 아직 [네브래스카]의 브루스 던의 연기를 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메리칸 허슬]의 크리스찬 베일, [노예 12년]의 치웨텔 에지오프의 연기보다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매튜 맥커너히는 매력적인 근육남입니다. [웨딩 플래너], [10일 안에 남자 친구에게 차이는 법],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와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매튜 맥커너히의 진가가 더욱 발휘되는 것은 그의 외모 덕분이기도 합니다. 특히 [매직 마이크]는 매튜 맥커너히의 매력적인 근육을 볼 수 있는 여성 관객을 위한 눈요기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맥커너히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볼품없는 마초남입니다. 미리 영화의 정보를 읽지 않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봤다면 매튜 맥커너히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의 변신은 파격적입니다. 대머리에 맹꽁이배를 드러낸 [아메리칸 허슬]의 크리스찬 베일의 변신도 굉장하다고 생각했는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고나니 크리스찬 베일도, 돈에 미친 광기의 연기를 보여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최소한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마초남,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배경은 1980년대 미국의 서부 텍사스입니다. 당시에는 에이즈에 대한 선입견이 만연했었습니다. 에이즈는 동성연애자들만이 걸리는 병으로 무분별한 섹스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고 여겨졌었습니다. 또한 에이즈에 걸린 사람과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에이즈가 전염된다고 생각했기에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되어야만 했었습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바로 그러한 시기에 에이즈에 걸린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형적인 마초남으로 동성연애자를 혐오합니다. 영화의 초반 론이 친구들과 함께 록 허드슨에 대해 험담을 하는 장면만으로도 그의 성향은 잘 드러납니다. 록 허드슨은 [자이언트], [무기여 잘있거라]에 출연했던 미남배우이지만, 자신이 동성연애자임을 죽는 순간까지 숨겼고, 결국 1985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나며 그가 동성연애자임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고 합니다. 그러한 론에게 자신이 동성연애자나 걸리는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든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론은 죽음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화의 오프닝씬에서 로데오 경기장의 선수 대기실에서 섹스하는 론의 모습과 경기장에서는 황소의 뿔에 받혀 쓰러지는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론은 그러한 남자의 모습을 그저 담담하게 바라볼 뿐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저 일상적인 일에 불과할뿐입니다. 그렇기에 에이즈로 인한 30일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론은 평소처럼 친구들과 술마시며 여자끼고 노는 것에 집중합니다.(그래도 양심은 있기에 섹스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론이 결국 폭발하고 맙니다.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친구들이 그를 멀리하고, 동성연애자라며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죽음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고통은 바로 그러한 사회적 편견이었던 것입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론의 하루 하루를 담담하게 잡아냅니다. 시한부 인생을 다룬 다른 영화처럼 질질 짜지도 않습니다. '까짓거 죽음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아.'라며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치는 론이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가족도, 친구도 없는 론은 살겠다며 질질 짜기보다는 오히려 호기롭게 세상과 맞짱을 뜨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은 너무 큰 적이었습니다.
어쩌면 론이 그토록 증오하던 동성연애자인 레이언(자레드 레토)와 함께 동업을 하게되는 것도 그러한 외로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친구들조차 론을 외면하고 멀리하지만 레이언은 론에게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밉니다. 처음에 론은 그러한 레이먼을 외면하며 "저리 꺼져! 이 호모새끼야!"라고 욕을 해댔지만 결국 론의 외로움은 레이먼에게 스스로 손을 내밀게끔 만듭니다.
마트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가 레이먼과의 악수를 거부하자 폭력을 행사해서 억지로 악수를 하게끔 만드는 론의 모습은 동성연애자 혐오자인 론이 레이먼으로 인하여 많이 변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명장면입니다. 그렇게 론은 에이즈라는 병을 통해 스스로 편견을 깨고 일어섰으며, 세상을 향해 멋진 도전을 시작합니다.
밉상 마초남이 변하는 과정
사실 제 기준으로 본다면 론은 결코 좋아할래야 할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는 동성연애자 혐오주의자이며, 남성우월주의자입니다. 그에게 여자란 그저 섹스를 즐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초반에 여러차례 나오는 론의 섹스씬은 그저 욕망의 배설처럼 보일 정도로 지저분하기만합니다.
그런 그의 남성우월적인 편견은 병원에서 닥터 이브 삭스(제니퍼 가너)를 만날 때도 어김없이 드러납니다. 에이즈에 의한 고통 때문에 병원을 찾은 론은 의사를 애타게 찾습니다. 그때 이브가 다가오자 론은 호통칩니다. "간호사말고, 빌어먹을 의사를 데려오란 말이야."
도대체 온갖 삐뚤어진 편견에 휩싸인 그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러한 그가 점차 변해갑니다. 처음엔 너무 고통스러워 임상실험중인 신약 AZT를 몰래 뒤로 빼돌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범행이니 그 정도는 애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AZT로도 효과를 볼 수 없었던 론이 간호사가 알려준 멕시코의 무허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효과를 보자 미국에서는 불법인 약을 대량으로 밀수해서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섭니다.
가톨릭 신부로 분장하기도 하고, 전문 의사로 변장하기도 하며 세관의 눈을 피해 약을 들여오는 론의 모습은 결국 영화를 보는 제게 웃음을 안겨줍니다. 처음엔 도저히 좋아할래야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론이지만, 점차 그의 범행이 귀엽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그가 좌절하며 주저앉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론은 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돈벌이에 집착하는 론의 모습이 어이가 없게 느껴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론에게 돈이 무슨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어차피 죽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인데 론은 이상할만큼 돈에 집착을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한 론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숨을 쉰다고 해서 잘 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또는 가족을 위해서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노력을 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마 론 역시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을 것입니다. 남은 삶이 30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론은 7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의사들조차 약이 없다고 포기한 에이즈라는 불치의 병을 안고 있었으면서 7년 동안 삶을 끈질기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의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그의 목표는 돈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돈은 그저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저 그는 목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과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그에게 삶의 목표가 됩니다. 그렇기에 그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문닫게 만드려는 FDA(미국식품의약국)와 끈질긴 싸움을 펼치는 것입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그가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목표이기에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이죠.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 제도는 없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론 우드루프의 인생을 따라기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에이즈에 걸린 밉상 마초남이 서서히 변하는 순간을 보며 장 마크 발레 감독이 제게 던지는 질문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론은 묵묵히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제 마음 속에는 커다란 외침이 되어 울려퍼지는 것입니다.
에이즈의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았던 80년대. 뚜렷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감추고 유일한 에이즈 신약아라며 환자들에게 AZT를 비싸게 팔아먹으려는 대형 제약회사의 꼼수와, 그러한 꼼수를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병원 의사들, 그리고 FDA의 횡포.
물론 FDA의 입장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닙니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무허가 약을 환자들이 무분별하게 복용하였을 때의 부작용을 FDA 입장에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을 앞둔 이들입니다.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가족에겐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론이 주장하는 것은 AZT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자신이 복용하여 효과를 본 약에 대해 FDA가 귀를 기울여 주고 관심을 가져주기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론은 치열하게 싸웁니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레이언을 위해, 그리고 자신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쳐주는 에이즈에 걸린 동료들을 위해, 누군가는 그가 7년을 더 살았다는 것이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적이 아닌 의지였습니다. 살고자 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살리고자했던 삶의 의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보며 저는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비록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광기에 휩싸인 연기를 펼쳐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조용한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마지막에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론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자상한 자레드 레토의 연기도 완벽했습니다. 여장남자인 레이언은 론이 자신을 업신여겨도 끈질기게 그에게 말을 붙이며 접근했습니다. 아마도 레이언 역시 외로웠을 것입니다. 가족조차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가 남자 옷을 입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가 론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레이언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레이언이 남자옷을 입는다는 것은 제게 치마를 입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수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수치를 견딜만큼 레이언은 세상에 혼자였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론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던 것입니다.
처음 여장을 한 레이언을 모습을 봤을 때엔 론처럼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저 역시 여장남자에 대한 편견이 있나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면 레이언의 모습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나오는 그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마초남 론을 골탕먹이는 귀여운 장난질에서부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준 론을 위한 희생까지... 정말 매튜 맥커너히와 자레드 레토의 아카데미 남우주, 조연상 수상 덕분에 너무 좋은 영화, 너무 완벽한 연기를 본 것같아 행복했습니다.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은 30일을 7년으로 만들었다.
아직 많은 여생이 남은 우리는 그처럼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 어떤 편견도 없이, 부조리한 제도에 투쟁하던 그의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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