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4년 아짧평

[집으로 가는 길] - 힘없는 서민들은 참 골 아프다.

쭈니-1 2014. 3. 3. 11:50

 

 

감독 : 방은진

주연 : 전도연, 고수

 

 

2013년에 놓친 영화 중 가장 아쉬운 영화

 

[밤의 여왕], [동창생]에 이어 2013년에 놓친 한국영화 시리즈 3탄입니다. 사실 앞선 두 영화와 비교해서 [집으로 가는 길]을 놓친 것은 두고 두고 후회가 되었습니다. 2013년 박스오피스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누적관객 176만명을 기록하며 전체 37위를 기록했고 (이는 2013년 박스오피스 중에서 제가 극장에서 못 본 영화 중[컨저링]다음으로 높은 순위입니다.)  영화에 대한 평도 대체적으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몇가지 변명을 하자면 이 영화가 개봉한 2013년 12월은 유난히도 바빴었고(그럼에도 불구하고 1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무엇보다도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가 엄연한 범죄자인 주인공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거부감도 살짝 들었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확인한 [집으로 가는 길]은 일단 제가 우려했던 것처럼 범죄자를 미화한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영화의 후반부 정연(전도연)이 프랑스 재판에서 최후 진술할 때 밝힌 "저는 죄인입니다."라는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변명을 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집으로 가는 길]의 미덕은 정연의 범죄를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죄를 지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운반하는 것이 마약인줄 몰랐다고하지만 원석을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운반하는 것 역시 범죄이며, 정연은 그 댓가로 거액의 돈까지 받았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러한 정연의 범죄를 영화 초반에 덤덤하게 풀어 놓습니다. 사람좋은 정연의 남편 종배(고수)가 친구에게 보증을 서줬고, 그로인하여 운영하는 카센타와 집을 잃고, 반지하 셋방에서 월세값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딱한 상황이 그려지지만, 그러한 장면들은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흘러갈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만한 사정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원석을 옮기는 범죄에 가담하는 정연을 동정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한 원칙을 [집으로 가는 길]은 충실하게 지켜나갔고, 그렇기에 정연의 사정은 마치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듯, 구구절절한 설명없이 최대한 간단히 지나가버립니다.

 

 

 

그녀는 왜 정당한 죄의 댓가를 받지 못했을까?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입니다. 정연의 사정이 어떠하건, 그녀가 지은 죄는 명백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죄의 댓가를 받으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정연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낯선 프랑스 땅에서 그녀는 홀로 남겨졌고, 그렇게 고독과 고통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2년이라는 세월을 혼자 견뎌내야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관객에게 내던지는 화두는 바로 그것입니다. '정연은 죄가 없다. 그녀는 억울하다.'가 아닌 '왜 그녀는 정당한 죄의 댓가를 받지 못한채 프랑스에 홀로 버려져야 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그녀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이고,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프랑스 주재 대사관은 그녀를 외면한 것일까요?

[집으로 가는 길]은 프랑스에 홀로 버려진 정연과 그러한 정연을 외면하는 프랑스주재대사관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정연에게 "나라 망신 다 시켰다."라며 손가락질을 하지만, 아무리 그녀가 나라 망신을 시킨 장본인이라고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보호를 받을 권리는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 세금을 꼬박 꼬박 내는 것이니까요.

 

 

 

무기력한 남편은 골 아프다.

 

정연이 프랑스에 홀로 버려진 상황.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종배의 사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엄마를 잃은 어린 딸을 돌보며 정연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홀로 고군분투해야하는 종배의 사정 또한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정연을 속여 마약을 나르게 한 문도를 잡아야만 정연이 단순 가담임을 밝힐 수 있는 상황. 단 한시도 아쉬운 종배와는 달리 검찰은 느긋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네, 제가 마약 남편입니다."라며 울부짖는 종배는 문도를 잡기 위해 거리로 나섭니다. 하지만 문도를 잡는다고해도 이 악몽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마약 주부 정연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대한민국 소시민의 무기력함을 잡아낸 영화입니다. 마약인줄 모르고 운반했다는 문도의 진술만 있었다면 1년만 감옥에서 살면 될 일을 정연은 프랑스주재대사관의 무관심 속에 2년을 버텨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사이 종배는 어린 딸과 함께 무기력함을 실감하며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더이상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기력한 소시민이 힘을 합치다.

 

그러나 알려진 사실대로 [집으로 가는 길]은 무기력한 소시민들이 힘을 합치며 정연에게 관심조차 없는 대한민국을 일깨우는 장면이 후반부에 펼쳐집니다. 그들 한명 한명은 아무런 힘이 없지만, 그들이 하나로 힘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이죠. 어쩌면 [집으로 가는 길]이 진정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만약 정연이라면, 내가 만약 종배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너무 답답하고,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말도 안통하는 프랑스 감옥에 홀로 갇힌 정연과 감정이입을 해도 답답하고 두려웠고, 서울에 남아 아내를 집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종배와 감정이입을 해도 막막했습니다.

그렇기에 2시간 1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제겐 괴로웠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몇 번이고 일시정지를 누르고 한참 숨을 고르다가 다시 영화 보기를 반복해야 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저는 2시간조차 괴로웠지만 정연과 종배는 2년이라는 세월을 버텼습니다. 재판을 통해 부당하게 갇혔던 1년이라는 세월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프랑스 변호인의 말에 "아뇨.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정연의 모습에서 그제서야 괴로움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제발... 힘없는 소시민이 골 아프지 않은 그런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를 지었다면 그 죄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치루고, 노력을 했다면 그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나라. 그것은 과연 꿈에서나 이뤄질 수 있는 유토피아일까요? 너무 당연한 것같은데,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은 소시민인 제게 슬픈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