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호세 파딜라
주연 : 조엘 킨나만, 애비 코니쉬, 마이클 키튼, 게리 올드만, 사무엘 L. 잭슨
개봉 : 2014년 2월 13일
관람 : 2014년 2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바쁘지만 이 영화만큼은 안볼 수가 없었다.
요즘 저는 회사일이 너무 바쁩니다. 거짓말 하나도 안보태고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참고 일을 할 정도입니다. 특히 이번주 들어서는 월요일에 회식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일 야근을 반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들은 아직 볼 엄두조차 못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주에는 기대작이 네편이나 개봉합니다. [폼페이 : 최후의 날], [아메리칸 허슬], [찌라시 : 위험한 소문],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까지... 결국 제 마음이 더욱 바빠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대작 중에서도 몇몇 영화들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로보캅]만큼은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근을 하고 느즈막히 집에 들어온 화요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아무리 바빠도 [로보캅]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 이유는 당연히 제 학창 시절에 본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에 대한 추억 때문입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폴 버호벤 감독은 1987년 할리우드로 진출하는데, 그가 할리우드에서 처음 내놓은 영화가 바로 [로보캅]입니다. 당시 [로보캅]은 1천3백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만 5천3백만 달러의 흥행을 거두었고, 이후 [로보캅]은 1990년에 2편, 1993년에 3편이 제작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7년이라면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1988년이었으니 [로보캅]이 극장에서 개봉했을 당시에 저는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비디오비젼(비디오 플레이어 + 텔레비젼)을 집에 들여 놓으시고, 제가 모든 용돈을 비디오 대여에 쏟아 부으면서 [로보캅]도 보게 되었는데, 은색 슈트를 입고, 적들을 한방에 쓰러뜨리는 '로보캅'의 모습은 저를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즘은 [트랜스포머], [리얼 스틸], [퍼스픽 림] 등 로봇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사 영화들이 많이 나왔지만, [로보캅]이 개봉했던 당시에 '로보캅'의 모습은 제게 대단한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물론 너무 어렸던 저는 [로보캅]에 담겨진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능력은 되지 않았습니다.(국가가 책임져야할 공공사업을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간기업에게 맡겼을 경우의 문제, 로봇이 된 인간의 정체성 혼란) 그저 '로보캅'의 외형과 활약에 환호를 보내며 그렇게 [로보캅]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로보캅]을 브라질 출신의 호세 파딜라 감독이 부활시켰습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이후 무려 27년이 지난 후였으며, 프레드 덱커 감독이 [로보캅 3]를 연출한 이후 21년이 지난 후였습니다.(비디오용 영화인 [로보캅 4]는 제외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호세 파딜라 감독은 추억의 영화 [로보캅]을 제대로 부활시켰을까요?
호세 파달라 감독의 과감한 선택.
케이블 TV에서 [로보캅] 개봉 기념으로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을 연일 방영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TV 볼 시간조차 없는 제게 복습을 하고 극장을 찾는다는 것은 사치와도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을 안고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영화를 본지 20년이 훌쩍 넘게 지나버렸기에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과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을 상세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영화를 보며 "내가 아는 '로보캅'과는 많이 다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입니다.
호세 파딜라 감독은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을 리메이크하는데 있어서 많은 것을 바꾼 듯 했습니다. 물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로보캅'의 검은색 슈트입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에서는 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그것은 '로보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세 파딜라 감독은 그러한 상징을 과감하게 버린 것입니다. 마치 [맨 오브 스틸]을 연출하는데 있어서 '슈퍼맨'의 상징이었던 파란색 쫄쫄이에 빨간색 팬티 의상을 바꿔버린 잭 스나이더 감독의 선택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이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과 비교해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그런 외형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로보캅'이 된 알렉스 머피(조엘 킨나만)의 내면적인 부분을 호세 파딜라 감독은 손을 댄 것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하던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을 아주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장면은 '로보캅'이 된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에게 동료 경찰인 루이스(낸시 알렌)가 "혹시 머피가 아니냐?"고 묻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알렉스 머피는 루이스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 기억속의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은 그러했습니다. '로보캅'은 자신이 알렉스 머피였음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인간으로서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은 처음부터 알렉스 머피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머피를 '로보캅'으로 재탄생시킨 데넷 노튼(게리 올드만) 박사는 머피의 두뇌는 가만히 놔두고 육체에만 '로보캅' 슈트를 입힌 것입니다. 다시말해 '로보캅'은 몸은 비록 로봇이지만, 머리는 여전히 알렉스 머피입니다. 로봇으로 시작해서 인간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을 다룬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과는 시작부터가 완전히 다른 셈입니다.
그러한 호세 파딜라 감독의 선택은 원작과 비교해서 [로보캅]을 대폭 변화시켰습니다. 인간의 머리와 로봇의 육체를 가진 알렉스 머피는 '로보캅'이 되기 위해 수많은 실험과 훈련을 거쳐야 했고, 영화의 초반은 그러한 장면들로 상당 부분 채워집니다. 상영 시간이 1시간 40분에 불과했던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은 호세 파딜라 감독의 선택과 그러한 선택에 의한 훈련 과정 덕분에 2시간이 훌쩍 넘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알렉스 머피가 인간성을 잃게 되는 과정
호세 파딜라 감독의 과감한 선택은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과 비교해서 영화의 초반부에만 변화를 준 것은 아닙니다. 중반이 되면서 원작과의 변화폭은 점점 넓어져갈 뿐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로보캅'이 머피로서의 자의식을 잃고 좀 더 완벽한 임무 수행이라는 미명아래 점점 로봇화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납니다.
저는 '로보캅'이 머피의 자의식을 잃어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 머피는 슈트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로봇화가 되었지만 머피의 뇌에서 내려지는 명령에 의해 슈트가 움직이는 구조인 것이죠. 하지만 그러다보니 '로보캅'은 매톡스(잭키 얼 헤일리)가 이끄는 로봇 군단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임무 수행에 있어서 뇌에서 내려지는 명령을 슈트가 반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개입이 되기 때문에 임무 수행이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옴니코프사의 대표인 레이몬드 셀러스(마이클 키튼)는 그러한 '로보캅'의 약점 보완을 데닛 노튼 박사에게 지시하고, 그래서 내려진 결정이 전투 상황에서 슈트가 머피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물론 머피는 자신의 뇌에서 내려진 결정에 의해 슈트가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머피의 뇌가 내리는 명령과는 별도로 이미 슈트는 전투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머피가 자신이 살해되던 당시의 기억으로 불안전한 상황이 되자 데넷 노튼 박사는 아예 머피의 자의식을 지우고 '로보캅'을 완전한 로봇으로 변화시킵니다. 이렇듯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과는 달리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은 머피에 대한 로봇화를 서서히 진행시킵니다.
그러면서 호세 파딜라 감독은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에서 지니고 있는 주제를 좀 더 복합적으로 바꿔 놓습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고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대기업의 횡포와 인간과 로봇 사이의 정체성에서 혼란을 겪는 머피의 모습까지...
옴니코프사가 '로보캅' 프로젝트를 실행한 이유는 단순히 미국내 로봇 경찰 도입을 통해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국민들이 좋아할만한 영웅이 필요했고, 머피가 그러한 영웅으로 선택된 것 뿐입니다. 레이몬드 셀러스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머피를 인간이 아닌 로봇으로 만들었고, 머피와 만나려하는 아내 클라라(에비 코니쉬)의 접근을 의도적으로 방해합니다.
폴 버호벤 감독의 [로보캅]이 공공부문의 민영화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돈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자행하는 대기업의 횡포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웅보다 더 위대한 것은 죽은 영웅"이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레이몬드 셀러스. 그러한 대기업의 횡포는 먼 미래의 모습이 아닌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섬뜩했습니다.
로봇 경찰,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비록 데넷 노튼 박사에 의해 머피로서의 자의식이 지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보캅'은 스스로 자의식을 회복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내인 클라라와 아들에 대한 사랑, 자신을 죽음에 빠뜨린 범죄자들에게 대한 복수가 복합적으로 작용됩니다. 사랑과 복수라는 인간의 말초적인 감정이 '로보캅'을 다시 알렉스 머피로 되돌려 놓은 것이죠.
그런데 바로 머피가 자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질문이 동반됩니다. 바로 법의 집행과 시민의 안전을 수행하는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과연 인간이 적합한가? 아니면 로봇이 적합한가? 라는 의문입니다.
영화의 초반 TV쇼의 진행자인 팻 노박(사무엘 L. 잭슨)은 로봇 경찰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사실 '로보캅'의 초기 활동을 보면 팻 노박의 로봇 경찰 지지는 합당해보입니다. 범죄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고, 언제든지 도시의 모든 CCTV가 연결이 가능해서 범죄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로보캅'. 그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범죄를 소탕해나갑니다. 그는 로봇이기에 돈에 매수될 가능성도 없고, 개인 감정이 끼어들 여지도 없습니다. 그저 정해진 데이터를 통해 범죄를 소탕할 뿐입니다.
영화의 후반 '로보캅'은 알렉스 머피의 자의식을 되찾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른 범죄 소탕보다는 개인적 복수에 더욱 집중합니다. 어쩌면 그러한 알렉스 머피의 모습은 팻 노박이 로봇 경찰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공정한 법의 집행에 있어서 개인적인 복수심은 분명 피해야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봇 경찰을 반대하는 이들은 법의 집행을 로봇에게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로봇에게 선과 악은 주어진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인 해석에 의한 것인데, 만약 주어진 데이터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다면 그것을 판단할 능력이 로봇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옴니코프사는 '로보캅'을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에서 레이몬드 셀러스를 비롯한 옴니코프사의 주요 인사들을 공격하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습니다. 다시말해 로봇은 프로그래밍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러한 프로그래밍을 조작하는 자에 의해 '로보캅'의 법집행은 방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솔직히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에 저는 100% 만족할 수는 없었습니다. 초반에 비해 후반으로 갈 수록 스토리 전개가 대충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초반과 중반까지 스토리 전개를 세세하게 진행하던 이 영화는 러닝타임의 압박 때문인지, '로보캅'이 알렉스 머피의 자의식을 되찾는 과정, 데넷 노튼 박사의 변심 등 중요한 감정의 변화들을 대충 넘어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호세 파딜라 감독의 [로보캅]에 만족할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로봇 경찰에 대한 제 결정을 계속 고민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만큼 호세 파딜라 감독은 영화의 주제를 제게 효과적으로 전달한 셈입니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 팻 노박이 "미국 만세"를 외치는 그 순간 로봇 경찰에 대한 제 선택은 반대로 기울어졌지만...
권력이 있건, 돈이 많건, 정의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한다.
'로보캅'이 그러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지만,
프로그램에 의해 결국 조종되는 존재라면 결국 인간 경찰보다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
'영화이야기 > 201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멋진 상상력이 멋진 상업영화가 꼭 되는것은 아니더라. (0) | 2014.02.26 |
---|---|
[폼페이 : 최후의 날] - 더 많은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면 좋았을텐데... (0) | 2014.02.24 |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 - 가장 특별한 괴물의 가장 평범한 영웅 이야기 (0) | 2014.02.13 |
[넛잡 : 땅콩 도둑들] - 어린이를 위한 교훈과 어른을 위한 풍자, 그리고 갱스터무비의 묘미까지... (0) | 2014.02.12 |
[레고 무비] - 내가 바로 창의력을 방해하는 악당이었구나. (0) | 2014.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