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장형윤
더빙 : 유아인, 정유미
개봉 : 2014년 2월 20일
관람 : 2014년 2월 23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마당을 나온 암탉], [점박이 : 한반도의 공룡]을 잇는 국산 애니메이션
처음 포털사이트의 개봉예정작 리스트에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이 올라와 있는 것을 봤을 때 저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독특하다못해 유치한 제목이 초등학교 저학년을 위한 애니메이션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연히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고, 그 순간 저는 마음 속으로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래, 이 영화다.'싶었습니다. 멋진 상상력과 정겨운 캐릭터들이 가득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 애니메이션의 진수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고편을 웅이에게 보여줬습니다. 웅이 역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기발한 상상력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결국 주말에 웅이와 함께 보기로 약속하고 일찌감치 예매까지 마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보기 전날, 저는 블로그 친구들과의 정모에서 그만 기분에 취해 새벽까지 놀다가 늦게서야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침 해가 이미 중천에 떴지만, 이불 속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제게 구피는 사랑의 잔소리를 해댔고, 웅이는 빨리 일어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보러가자고 보챘습니다. 컨디션은 최악이었지만, 웅이와 약속을 지켜야 했고, 오랜만에 만나는 우리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도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쓰린 속을 부여잡고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지루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에 웬만한 애니메이션은 거의 재미있게 보는 편인데,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만큼 지루함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가 제게 묻습니다. "아빠가 기대했던것 만큼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 별로 재미없었어."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웅이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만든 애니메이션이라 저는 좋았어요."라며 만족감을 표현했지만, 저는 단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좋게 평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 구피도 물었습니다. "재미있었어?" 하지만 제 대답은 같았습니다. "아니, 기대보다 별로였어." 구피가 의아해하며 다시 묻습니다. "어떤 면에서?" 문제는 바로 그 부분에서 저는 말문이 막혀 버렸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제게 재미가 없었던 것일까요? 꼭 집어서 그 이유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보러갈 당시의 제 컨디션이 안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제가 너무 과도한 기대를 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문제는 그런 개인적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멋진 상상력과 정겨운 캐릭터를 담아내지 못한 이 영화의 분위기가 문제였습니다. 지금 저는 바로 그러한 이 영화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멋진 상상력과 정겨운 캐릭터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멋진 상상력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가진 영화입니다. 우주에 머물면서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 우리별 일호(정유미). 모든 기능이 멈춰버린 우리별 일호이지만, 경천(유아인)이 부르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노래의 주인공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우리별 일호는 한반도로 추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가 도착한 한반도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잃은 사람들이 동물로 변하기 시작했고, 무시무시한 소각자가 마음을 잃은 사람들을 소각시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노래를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실망한 경천은 얼룩소로 변해서 소각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과, 마음을 잃고 얼룩소가 되어 버린 청년.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데,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한때 위엄있는 마법사였지만 나무에서 잠들었다가 골프장이 들어서며 나무가 벌목되는 바람에 두루마기 휴지가 되어 버린 멀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의 간을 팔아서 한몫 챙기려 하는 오사장, 멧돼지의 형상을 하고 있는 북쪽마녀 등등 조연 캐릭터들도 한결같이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매력적인 캐릭터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잃은 우리 시대의 청춘은 마음을 잃고 얼룩소가 되어 버린 경천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동물로 변한 사람들의 간을 빼서 부자들에게 파는 오사장이 사채업자와 손을 잡았다는 설정은 학자금 대출 및 사채로 힘든 삶을 사는 소시민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한때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이라며 화제가 되었지만 이젠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혀진 존재가 된 우리별 일호는 멀린에 의해 소녀의 모습이 되어 경천 앞에 나타납니다. 희망이 없는 청춘과 존재가 잊혀진 인공위성. 결국 이 두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저는 정말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경천을 지키기 위해 손을 발사시키는 일호와 오작동된 일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은 경천이 "그래도 네 팔은 놓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장면은 훈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 영화는 코믹 코드도 풍부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하필 두루마기 휴지가 되어 버린 멀린이 " 난 휴지가 아니라니깐~~~"이라며 외치는 장면,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얼룩소인 경천의 젖을 짜서 파는 장면 등은 어린이 관객은 물론, 어른 관객들에게도 웃음을 안겨줄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들입니다.
그런데 심심하다?
이렇게 주욱 나열하고 보니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꽤 멋진 영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멋진 캐릭터, 멋진 상상력, 멋진 설정을 영화가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상당히 잔잔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판타지적인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코믹 코드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떠들썩한 애니메이션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경천은 얼룩소가 되었습니다. 그런 경천의 집에 마법사라며 두루마기 휴지와 팔과 목이 분리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간 모습을 한 인공위성 일호가 찾아와 함께 살게 됩니다. 무시무시한 소각자는 물론이고, 유리와 유리 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악당 오사장도 경천의 간을 노립니다. 이쯤되면 영화의 분위기를 시끌벅적한 소동극이 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경천과 일호의 사랑이 완성되고, 경천을 구하기 위한 일호의 마지막 선택이 감동적으로 그려져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의 분위기는 잔잔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유아인과 정유미라는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한 더빙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이지만 어찌되었던 그들에게 애니메이션 더빙은 낯선 체험이었을테니까요. 하지만 단순히 더빙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웃고 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감독의 몫입니다. 결국 장형윤 감독이 그러한 분위기 조성을 실패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음악입니다. 특히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주인공인 경천은 뮤지션입니다. 한마디로 음악에 있어서 충분한 장점을 보일 수 있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흥행에 실패했지만 [플랜맨]의 경우, 한지민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의 경쾌함 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천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조차 지루했습니다. 경천이 일호를 찾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피아노가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영화 속의 사람들이 경천의 노래에 흠뻑 빠져 "로맨틱하다."라고 느끼는 것처럼, 저 역시 그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경천의 노래가 아무런 감흥을 제게 주지 못하니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서도 큰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소각자와 오사장이라는 악당 캐릭터를 내세운 긴장감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경우는 어린이를 상대로한 애니메이션이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제 옆 좌석에 앉은 어린 관객은 소각자만 나와도 무섭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의 배경 음악, 또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액션과 몸개그, 더빙 연기 등을 적절히 넣어서 좀 더 떠들썩한 분위기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왜 지루함없이 어린이와 어른 관객들에게 오랜 사랑을 받는지 장현윤 감독은 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멋진 상상력이 멋진 상업영화가 꼭 되는것은 아니더라.
저는 아쉬웠습니다. 차라리 이 영화의 멋진 캐릭터를 가진 영화가 아니라면 덜 아쉬웠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 영화가 멋진 상상력을 가진 영화가 아니라면 아쉬워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가 지니고 있는 캐릭터도 완벽했고, 영화를 이루고 있는 상상력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이라고는 고작 추욱 늘어진 영화의 분위기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단점이 이 영화의 커다란 장점을 모두 집어삼켜버렸으니 아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제작사가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여러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장형윤 감독이 5년이라는 제작기간동안 완성한 영화라는 점에서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꽤 깊습니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상업 애니메이션입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멋진 상상력과 캐릭터를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면 상업 영화답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지난 주말동안 209개의 상영관에서 918회 상영하며 1만2천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물론 좀 더 많은 상영관을 잡지 못한 배급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왜 더 많은 관객들이 이 멋진 상상력을 담은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 제작사 '지금이 아니면 안돼'와 장형윤 감독은 좀 더 고민해봐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실패와 실패를 통한 경험 축적이 우리나라 상업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흥행 실패가 끝이 되어서는 안된다.
실패를 거울삼아 조금씩 개선해나간다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끝이 아닌 시작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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