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데이빗 O. 러셀
주연 : 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브래들리 쿠퍼, 제레미 레너, 제니퍼 로렌스
개봉 : 2014년 2월 20일
관람 : 2014년 2월 2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우와! 아카데미 시즌이다.
설날 연휴가 끝나는 2월은 극장가의 비수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제게 2월은 결코 놓칠 수 없는 황금시기이기도 합니다. 비록 흥행적으로는 별 볼일 없는 영화들이 개봉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대박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는 여름방학 시즌보다 볼 영화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카데미 시즌이 다가오는 2월 말이 되면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들이 개봉하며 더욱 저를 바쁘게 만듭니다.
올해 아카데미에는 아홉편의 영화가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그래비티]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캡틴 필립스]는 이미 봤고, [아메리칸 허슬]과 [노예 12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현재 상영 중이거나 개봉 대기 중입니다. 매번 아카데미 시즌이 오면 느끼는 것이지만 흥행작 위주로 상영하는 국내 멀티플렉스 구조에서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을 모두 관람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가 개봉하면 만사제쳐두고 얼른 챙겨봐야합니다.
지난 2008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기 위한 제 생쇼를 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2010년에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허트 로커]를 결국 극장에서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기억이 있기에 저는 이번 아카데미의 강력한 작품상 후보작인 [아메리칸 허슬]과 [노예 12년]을 최우선적으로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중 [아메리칸 허슬]을 먼저 봤습니다. 바쁜 회사일 와중에 생긴 오랜만의 여유 시간. [관능의 법칙], [찌라시 : 위험한 소문]도 보고 싶었지만, 몇 안되는 극장에서 상영하는 [아메리칸 허슬]의 상황을 비추어본다면 개봉 1주가 지나고나면 [아메리칸 허슬]을 극장에서 본다는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비록 외근을 마치고 [아메리칸 허슬]이 상영하는 극장으로 죽어라 뛰어야만 했지만, 그래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기 위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애교죠. 다행히 영화 시작 5분전에 극장에 도착해서 가뿐 숨을 내몰아쉬며 무사히 [아메리칸 허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단 [아메리칸 허슬]에 대한 제 느낌은 '굉장하다'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굉장하고, 매력도 굉장합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에너지도 굉장하고, 영화를 보고나서는 여운까지 남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다가, 긴장하다가, 마지막에 통쾌감까지 느꼈습니다. 과연 데이빗 O. 러셀 감독다운 영화입니다.
제가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11년에 본 [파이터]부터였습니다. 2013년에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을 보며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는 무조건 봐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그러한 제 기대감이 [아메리칸 허슬]에서도 여지없이 충족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아메리카 허슬]에 대한 쭈니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가짜들, 진짜를 건드리다.
[아메리칸 허슬]은 가짜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어빙(크리스찬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아담스)의 직업은 사기꾼입니다. 그들은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중개를 해주겠다고 속여 중개 수수료로 5천 달러를 받은 후 입을 씻어 버리는 수법으로 돈을 챙겨온 전형적인 가짜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FBI 요원인 리치 디마소(브래들리 쿠퍼)의 함정 수사에 걸려 버립니다. 감옥행을 면하려면 사기꾼 4명을 잡을 수 있도록 리치에게 협력을 해야만 합니다. 울며 겨자먹기로 어빙과 시드니는 리치의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가짜를 잡기 위해 가짜들이 힘을 합친 셈입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리치 역시 FBI 요원이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진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멋지고 치밀한 FBI 요원과는 달리 리치는 성급한 행동으로 어빙의 계획을 망칠뻔 하기도 하고, 성공욕에 휩싸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마구 저지르며 급기야는 자신의 상관을 폭행하며 폭주하기도합니다.
자신의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아침마다 정성껏 가짜 머리를 이어 붙이는 어빙처럼 리치는 생머리를 곱슬머리로 만들기 위해 매일밤 파머를 하고, 아내인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에게 휘둘리는 어빙처럼 리치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꼼짝 못하며 투덜거리기만 합니다. 큰거 한건 올려서 거물 FBI요원으로 출세하겠다는 리치의 욕심은 사기꾼 커플인 어빙, 시드니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애초에 리치는 가짜를 이용해서 가짜들을 잡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그의 욕심은 가짜 잡기에 만족하지 않고 진짜 잡기에 집착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뉴저지 시장인 카마인 폴리토(제레미 레너)를 엮어서 감옥에 넣는 것이죠. 카마인이 죄가 있건, 없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가 죄를 짓도록 유도하려는 것입니다.
[아메리칸 허슬]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리치가 처음의 계획대로 조무래기 사기꾼을 잡겠다고 나섰다면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리치는 사기꾼을 잡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야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욕심을 부립니다. 그는 사냥감으로 정치인에게 눈길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리치가 먹잇감으로 눈독을 들인 카마인은 가짜가 아닌 진짜입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하여 뉴저지의 시장 자리까지 오른 카마인은 뉴저지의 경제를 살리고 실업율을 줄이기 위해 열정적으로 카지노 유치를 계획합니다. 그러기위해선 투자자가 필요했고, 그러한 카마인의 절박함은 리치의 덫에 걸려들게됩니다. 리치가 카마인이라는 진짜를 건드린 댓가는 달콤하고도 위험했습니다. 뉴저지의 카지노 유치를 위한 인허가 문제로 뇌물을 받은 정치인들이 줄줄이 엮이며 리치의 덫은 대성공을 거두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뉴저지의 카지노 사업을 탐내던 미국 최대 마피아 집단까지 미끼를 덮석 물며 일이 점점 커집니다. 리치는 쾌재를 부릅니다. 성공욕에 눈이 먼 리치는 진짜를 건드린 댓가의 달콤함만 보았을 뿐, 위험함은 미처 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빙은 위험을 직감합니다. 카마인이 진짜이듯, 마피아 조직의 중간보스인 빅터 텔레지오(로버트 드니로)역시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진짜가 되고 싶었던 가짜.
[아메리칸 허슬]은 리치 일당의 계획이 점차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상황을 잡아냅니다. 이제 일이 조금이라도 삐긋하면 감옥이 문제가 아니고,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있습니다. 하지만 리치는 성공욕에 휩싸여 그러한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폭주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로잘린은 마피아 조직원과 사랑에 빠져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어빙과 시드니는 다시 사기꾼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여 이 위기를 넘겨야 합니다. [아메리칸 허슬]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이러한 긴박함에서 나옵니다. 어빙이 아무리 "너무 위험해."라고 반대를 해도 리치는 어빙의 말을 들으려하지 않고, 어빙이 아무리 "제발 입조심해."라고 애원해도 로잘린은 마피아 애인에게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댑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빙은 카마인을 동경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이 가짜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죠. 그가 사기를 치지 않았다면 리치와 엮을 이유도 없었고, 그가 로잘린과 거짓된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않았다면 로잘린이 입방정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카마인은 진짜입니다. 가족들에게 사랑받고,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진짜 인생을 살고 있는 남자인 것입니다. 그제서야 어빙은 카마인처럼 자신도 진짜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진짜에 대한 욕망은 시드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어빙과의 사랑은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빙은 로잘린에게 휘둘리기만 합니다. 시드니는 어빙과의 사랑은 진짜라고 믿고 싶지만 로잘린은 그들의 사랑은 불륜일 뿐이라며 비웃습니다.
이 모든 가짜에 신물이 난 시드니는 결국 리치에게 자신의 가짜 이름이 아닌 본명을 밝힙니다. 만약 리치가 그러한 시드니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리치가 관심을 갖는 것은 진짜가 아닌 성공이었습니다. 시드니가 결국 리치가 아닌 어빙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동안 가짜였던 어빙과 시드니가 진짜가 되기 위한 위험천만한 마지막 계획입니다. [아메리칸 허슬]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그러한 어빙과 시드니의 마지막 위험천만한 모험을 잡아냅니다. 숨가쁘게 진행된 이들의 사기극은 결국 가짜가 아닌 진짜가 되려는 마지막 선택으로 종착점을 정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운이 남았습니다. 가짜 인생은 지긋지긋하다는 어빙과 시드니가 결국 진짜가 되는 그 마지막 순간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은 진실된 삶을 살게 되겠죠. 가짜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달픈지 알게 되었을테니...
연기의 신들... 그들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저는 [아메리칸 허슬]을 보며 시드니의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그녀는 영리했고, 또 과감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라 믿었던 어빙이 로잘린에게 휘둘리며 이혼을 하지 못하자 절망하게 됩니다. 어빙에 대한 사랑이 가짜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한 어빙에 대한 의심 속에 시드니는 무너집니다. 철저하게 가짜 인생을 살았던 시드니.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진짜라고 믿었던 어빙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자 아무리 강한 그녀라도 더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드니는 자신에게 다가온 리치에게 쉽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클럽의 화장실씬과 리치에게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씬에서 시드니는 과감했고, 섹시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했습니다. 진짜에 대한 강한 욕망. 성공욕에 휩싸여 카마인을 엮어 넣기에 급급한 리치는 그러한 시드니의 욕망을 채워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시드니의 모습을 에이미 아담스는 완벽하게 잡아냅니다.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영화는 항상 그랬습니다. 사실 그의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 향연에 의한 재미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파이터]에서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찬 베일, 에이미 아담스, 멜리사 레오의 연기는 두고 두고 회자가 되었었습니다. 특히 제83회 아카데미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이 [파이터]로 남우조연상을, 멜리사 레오가 여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에이미 아담스도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또 어떻고요. 제85회 아카데미에서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브래들리 쿠퍼는 남우주연상에, 로버트 드니로는 남우조연상에, 재키 위버는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었습니다.
[아메리칸 허슬]은 [파이퍼]의 크리스찬 베일과 에이미 아담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로버트 드니로가 힘을 합친 영화입니다. 다시말해 이 영화는 데이빗 O. 러셀 감독의 드림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아메리칸 허슬]은 제86회 아카데미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남우주연상에, 에이미 아담스가 여우주연상에, 브래들리 쿠퍼는 남주조연상에, 제니퍼 로렌스는 여우조연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이어 4개의 연기부문에 모두 후보를 낸 영화가 된 셈입니다. (개인적으로 에이미 아담스가 꼭 여우주연상을 탔으면 좋겠습니다.)
섹시한 '배트맨'에서 대머리에 맹꽁이배를 가진 사기꾼 어빙 로젠필드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 변신에 대한 극찬은 생략하겠습니다. 이 배우는 그 동안 카멜레온 같은 변신을 자주 선보이며 언제나 저를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다보니 이제 크리스찬 베일의 변신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이건 칭찬입니다. ^^)
하지만 제니퍼 로렌스에 대한 극찬은 안할 수가 없군요. [헝거게임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의 차세대 여배우로 발돋음한 제니퍼 로렌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걷잡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선보이더니 [아메리칸 허슬]에서는 어처구니없게 미운 로잘린 역을 너무 완벽하게 해냈습니다. 만약 제가 어빙이라면 그녀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을 정도로 그녀는 완벽하게 얄미웠습니다. 어떻게 저런 사랑스러운 얼굴로 이토록 얄미운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것인지... 비록 [아메리칸 허슬]은 가짜들의 영화이지만, 그들의 연기만큼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진짜였습니다.
영화의 에너지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지금까지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고,
글을 쓰면서도 영화를 볼 당시의 여운이 남아 설랬다.
'영화이야기 > 2014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 - 인류의 문화유산을 지켜준 그들에게 감사하며... (0) | 2014.03.03 |
---|---|
[관능의 법칙] - 불타 죽기 전에 불타오르자! (0) | 2014.02.28 |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 멋진 상상력이 멋진 상업영화가 꼭 되는것은 아니더라. (0) | 2014.02.26 |
[폼페이 : 최후의 날] - 더 많은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면 좋았을텐데... (0) | 2014.02.24 |
[로보캅] - 로봇 경찰.. 나는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0) | 2014.0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