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튜어트 베티
주연 : 아론 에크하트, 빌 나이, 미란다 오토, 이본 스트라호프스키
개봉 : 2014년 2월 6일
관람 : 2014년 2월 1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내 기억 속의 베스트 '프랑켄슈타인'은 케네스 브래너 버전이다.
1818년 영국의 여류작가인 메리 셜리는 <프랑켄슈타인 :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의 괴기 소설을 발표합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죽은 자의 뼈로 괴물을 만들어내면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괴물은 추악한 자신을 만들어낸 빅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증오로 그의 동생을 죽이고 자신과 함께 살 여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그러한 괴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죠. 그러자 괴물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까지 죽입니다. 증오와 복수심만 남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쫓아 북극까지 가지만 탐험대의 배 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확인한 괴물은 스스로 몸을 불태우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며 소설은 끝난다고 합니다.
이후 <프랑켄슈타인>은 수십편의 괴기 영화로 재창조되었고, 그러한 과정에서 괴물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이라 잘못 부르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하면 머리에 못이 박힌 괴물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프랑켄슈타인'의 외형 또한 영화가 만들어 놓은 선입견인데, 1931년 미국 유니버셜 영화사에서 영화화하여 크게 히트한 연작물의 영향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저는 원작 소설을 읽지도 못했고, 머리에 못이 박힌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등장하는 미국의 고전 영화들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의 '프랑켄슈타인'은 너무나도 슬픈 공포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1994년작 [프랑켄슈타인] 덕분입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감독과 함께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연기했고, 로버트 드니로가 괴물 역을, 헬레나 본햄 카터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운의 약혼녀인 엘리자베스를 연기했습니다. 이렇게 연기력만으로는 최고임을 자부하는 배우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프랑켄슈타인]은 고풍스럽고, 여운이 가득 남는 영화로 탄생했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을 침범했다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하고 도망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 너무 추악한 외모로 탄생하여 자신의 창조주를 원망하면서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함께할 신부를 요구하는 괴물의 외로움. 괴물에 의해 희생된 후 빅터 프랑켄슈타인에 의해 또 다른 괴물로 재탄생되지만 자신의 추악한 외모를 본 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엘라지베스의 절규. 이렇게 [프랑켄슈타인]은 괴기 영화의 장르에서 벗어나 마치 세익스피어의 장엄한 비극을 보는 듯한 고풍적인 분위기로 재탄생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각본으로 유명해진 스튜어트 베티 감독이 자신의 창조주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죽음 이후 괴물의 활약상을 담은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을 관객 앞에 선보였습니다. 과연 저는 20년전 [프랑켄슈타인]을 보았을 때의 그 강렬한 여운을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에서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는 선인가? 악인가?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괴물(아론 에크하트)의 나래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창조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분노에 휩싸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뒤쫓다가 북극에서 얼어죽은 원작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설명해줍니다.
결국 괴물은 비참하게 죽은 자신의 창조주를 묘지에 묻어줍니다. 그리고 영화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그를 데려가려합니다. 그러자 이번엔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존재가 이를 막아섭니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일까요?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인간 세계를 두고 벌어는 천사와 악마의 전쟁이라는 세계관 속으로 괴물을 끌어 들입니다. 천사의 집단은 가고일이라 불리우며 레오노르(미란다 오트)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인간 세계를 구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악마 집단은 나베리우스(빌 나이)의 지휘 아래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가고일을 압박합니다.
레오노르에게 아담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괴물.(이후 괴물 대신 아담이라 쓰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집단에도 속해 있지 않기에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나베리우스의 끊질긴 추격 속에서 아담은 200년간 숨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더이상 숨어만 살 수는 없는 법. 아담은 자신을 끊질기게 추격하는 나베리우스를 직접 찾아가 처단하기로 결심합니다.
분명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프랑켄슈타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만약 아담이 자신을 불태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살아 남았다면 어떤 일을 겪게 되었을까? 라는 상상력은 꽤 흥미진진합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대상과 자신의 외로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구세주를 동시에 잃은 아담은 과연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죽음 이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이 내세운 상상력은 바로 선과 악, 천사와 악마의 전쟁에 아담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설정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이죠. 선과 악의 전쟁은 굉장히 고전적인 설정이고, 천사와 악마의 전쟁 역시 새로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과연 아담을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지정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가 영화 속에서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담은 아무런 죄가 없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동생과 약혼녀를 죽였습니다. 단순히 복수심 때문이죠. 그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레오노르의 호위무사인 기드온은 아담을 당장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보호가 임무인 가고일에게 아담은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오노르는 아담을 살려줍니다. 아담이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아담이 인간성을 갖게되는 과정을 먼저 담았어야 했습니다.
아담이 영웅이 되기까지...
아담은 신이 창조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탄생한 괴물입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수 많은 영화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기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그러한 아담을 영웅으로 만들으려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렇다면 먼저 레오노르가 보았다는 아담이 인간의 영혼을 가질 수 있는 희망을 관객에게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과정도 없이 200년이라는 시간을 허무하게 훌쩍 뛰어 넘어가버립니다.
2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담은 수 많은 인간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에 숨어 살았다고해도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을 완벽하게 피해 살아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나베리우스의 부하들은 그를 뒤쫓습니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아담과 인간의 교류와 나베리우스 일당의 공격 속에 수 많은 이야기들이 파생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속에서 아담은 인간성을 조금씩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식입니다. 인간을 피해 살던 아담은 자신의 흉측한 외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해주는 한 소녀를 만나게 되고, 점차 소녀와 우정을 쌓게 됩니다. 그런데 아담을 뒤쫓던 나베리우스 일당의 공격으로 소녀는 죽음을 당하게 되고, 이에 대한 분노로 아담은 더이상 숨어살지 않고 나베리우스를 직접 찾아가 복수를 하기로 결심합니다. 뭐 특별할 것이 없는 설정이지만 이 정도의 설정만 삽입했어도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에서 아담의 캐릭터가 훨씬 깔끔해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마치 귀찮다는 듯이 자신을 뒤쫓는 나베리우스 일당과의 몇 번의 전투씬으로 2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뜁니다. 도대체 왜 2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단지 시대 상황을 현대에 맞추기 위해서? 저는 이 영화가 200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무런 이야기도 만들지 못하고, 허무하게 건너뛴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암튼 아담은 200년 동안 숨어 살다가 갑자기 인간 세상으로 돌아옵니다. 나베리우스 일당에게 쫓기는 것이 귀찮았던 것일까요? 뭔가 200년 동안 숨어살던 아담이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이유가 설명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그렇게 200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으니 아담이 괴물에서 영웅이 될 만한 변화 역시 감지하기 어려웠습니다. 단지 바뀐 것이라고는 괴물보다는 영웅의 외모에 맞게 단정해진 아담의 모습 뿐입니다.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은 그제서야 아담의 영웅담을 맘껏 펼쳐보입니다. 나베리우스 일당을 멋진 포즈로 무찌르는 아담. 그리고 아담을 차지하기 위한 나베리우스 일당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인한 천사와 악마의 전쟁. 꽤 멋진 컴퓨터 그래픽으로 탄생한 선과 악의 전쟁에서 여전히 아담은 선도 악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서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튜어트 베티 감독은 아담을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테라(이본 스트라호프스키)를 뒤늦게 투입합니다.
테라는 제 2의 프랑켄슈타인? 아니면 아담의 연인?
1818년 탄생한 원작에서도 그랬고, 1994년 만들어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그랬습니다. 아담이 원했던 단 한가지는 그저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인생이 동반자를 얻는 것 뿐입니다. 너무 흉측한 외모로 인하여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아담은 사무치는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동반자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죽어 버렸습니다. 원작에서 아담이 스스로 몸을 불태움으로써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했던 이유입니다. 평생 홀로 외로움 속에 사느니 죽음이 더 낫다고 아담은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에서의 아담은 200년 동안이나 외로움과 싸우며 혼자 살았습니다. 어쩌면 가끔 찾아오는 나베리우스 일당의 공격은 그의 외로움에서 유일한 다른 존재와의 접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로인해 아담은 외로움이라는 강적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나베리우스와의 전쟁을 마무리짓겠다면 스스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고,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일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더이상 외로움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희망의 불씨는 바로 테라입니다. 나베리우스에게 고용된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했던 것처럼 죽은 사람을 소생시키는 연구를 하던 테라는 200년이라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담이 진정 원했던 단 한가지 소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구원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스튜어트 베티 감독은 테라에게 제 2의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조금은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임무를 맡기는 대신, 아담의 연인이라는 아주 단순한 역할을 떠안깁니다.
물론 테라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설정에서 처음부터 눈치챌 수 있었지만, 테라가 제 2의 프랑켄슈타인이 되지 못한 것은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 스스로 단순한 팝콘 무비이기를 원한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테라와 아담의 미묘한 관계는 비로서 아담에게 인간의 영혼을 안겨주는 계기가 됩니다. 참 손쉬운 방법이죠. 그러한 가운데 아담은 나베리우스에게 잡힌 테라를 구하기 위해 적지에 뛰어들고, 천사와 악마의 마지막 전쟁은 그렇게 클라이막스로 치닫습니다.
솔직히 단순한 팝콘 무비로 [프랑켄슈타인 : 불멸의 영웅]을 평가하라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볼거리는 충분히 안겼으니까요. 하지만 고전 '프랑켄슈타인'을 200년만에 이어나가는 영화로는 결코 합격점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담은 악마에게서 인간을 구원하는 영웅이 되었음을 선언하지만, 제 기억 속의 아담은 여전히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자신을 창조한 인간의 오만함에 분노를 느끼고, 평생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괴로워하던 그런 괴물일 뿐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여전히 저는 영웅 아담이 아닌 흉측한 괴물이 그리웠습니다.
이 영화의 평범한 영웅담에 만족하기에는
아담은 내게 너무나도 특별했던 괴물이었다.
제게 필요한 것은 손가락 추천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진심어린 소중한 댓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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